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02화 (102/917)

#102

1.

쌍둥이는 무척 울적했다.

시우의 이상 현상에 놀라 아멜리아에게 달려갔다.

가슴 한 켠에는 유능한 부교수인 아멜리아라면 무언가 해결해주지 않을까하는 바램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포기하고 있었다.

울먹이며 보고하는 쌍둥이에게 아멜리아는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치료할 수 있는 건 저게 한계에요.’

더 이상 회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치료의 결과물은 감정도 무엇도 남지 않은 채 마법만을 바라보는 꼭두각시가 된 시우였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행복으로 가득하던 쌍둥이는 초췌하게 변한 채 터덜터덜 마차로 돌아왔다.

시우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건강한 그의 모습을 기대하며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이런 잔혹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욱...우욱.... 언니....”

“울지마, 오데트.”

오데트는 마차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자색 눈동자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딜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주먹을 꾹 쥐고 서 있긴 하지만 눈 전체가 벌겋게 달아올랐으니까.

“나, 나 때문이야....내가... 내가 그때 추방자의 말을 들었더라면....”

“아니야! 이게 왜 너 때문이야!”

“하지만, 하지만 내가 재빨리 무릎을 꿇고 조수님을 살려달라고 빌었다면... 뭔가 달랐을지도 모르잖아!”

오데트의 자책이 시작되었다.

그 자책의 굴레에서 오딜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우는 어쨌거나 오데트 뿐아니라 오딜을 지키기 위해서도 추방자와 맞선 것이다.

“어떡해... 우리 조수님 어떡해.... 흐아아앙....!”

“오데트, 일어나.”

그럼에도 오딜은 꿋꿋하게 눈물을 삼키며 오데트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만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오데트는 흐느껴 울며 언니의 품에 안긴다.

“다시 가자... 다시 가서 조수님께 말 걸어보자... 응? 아니면... 우리가 준비했던 거 말씀드려보자! 그러면, 그러면... 정신을 차리실지도 모르잖아... 좋아하시면서....”

기껏 공들였던 화장이 눈물로 엉망진창이 되면서도 오데트는 히끅히끅 울어댔다.

“그만 울라니까!”

“왜? 왜 울면 안 되는데... 너무, 너무 슬프단 말이야....”

오데트에게 역정을 부리던 오딜의 어깨도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다.

“너가 울면... 나도 울고 싶어진단 말이야...”

여동생에 비하면 어른스러운 오딜이라지만 마음이 여린 것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결국 펑펑 울기 시작한 오딜은 오데트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2.

게헨나 마법 작물 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라티푼디움.

호문쿨루스가 휘젓고 가 폐허가 되었던 라티푼디움은 십여 명의 마녀가 달라붙은 결과 불과 한 달 만에 모든 복구 작업을 끝냈다.

휴지 기간 동안 지력을 되찾게 하도록 쉴새 없이 공급되는 마력수는 거목의 가지와 잎에서 태어난 어둠을 환하게 밝힌다.

그러나 그 불빛조차 밝히지 못하는, 나무의 뿌리와 커다란 바위가 얽혀있는 구덩이.

절묘하게 수풀에 가려 누구의 발걸음도 시선도 닿지 않는 공간에 인기척이 일었다.

반투명한 점막과 그 위로 도드라진 핏줄과 근막.

흘러나온 점액에 의해 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그것은 거대한 내장으로 만든 침낭을 연상시켰다.

안이 흐릿하게 비칠 정도로 반투명한 막이 찢어지며 안에서 끈끈한 양수가 터져 나왔다.

찢어진 막 사이로 끈적하게 젖어있는 팔이 더듬더듬 뻗어 나온다.

목련처럼 하얗고 가느다란 팔이었다.

번데기에서 우화하는 나비처럼 한동안 버둥거리던 팔은 힘겹게 나머지 막을 찢고 나왔다.

“으, 으윽....우웩...”

버둥거리며 간신히 빠져나온 여자는 흙바닥에 엎드린 채로 입에서 대량의 끈적한 액체를 토해냈다.

그녀의 몸 전체를 덮고 있던 것과 같은 액체였다.

“빌어먹을.....”

어꺠에서 끊어지는 검은 단발.

점액이 눌어붙은 눈꺼풀 사이로 흉흉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길쭉하게 뻗은 팔다리와 여성적인 곡선을 그리는 새하얀 나신.

물병자리의 마녀, 에아 사달멜리크는 온몸에 달라붙은 끔찍한 양수의 감촉에 몸서리를 쳤다.

“빌어먹을....!”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동자로 주위를 경계하더니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법을 사용했다.

청결의 마법을 활용하자 뚝뚝 떨어지던 양수의 한 방울까지 깔끔하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머리카락에 묻었던 역한 냄새까지 단박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머릿속을 찌르는 두통.

그건 신체의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 일처럼 생생히 느껴지는, 몸에서 꽃이 피어나 양분이 되어버리는 공포가 의식을 되찾자마자 에아를 덮친 것이다.

-핏!

꽉 깨문 아랫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자신의 몸이 거름이 되는 느낌, 고고하게 에아를 내려다보던 메리골드 남작의 눈빛, 마지막 순간 비참하게 삶을 구걸했던 자신의 추태와 항거할 여지조차 보이지 않던 압도적인 격의 차이까지.

몸이 재생되는 동안 뭉쳐있던 과거의 사념들이 에아를 쓰디쓴 굴욕의 늪으로 내몰았다.

“언젠가 천 배 만 배로 갚아주겠어... 개 같은 년.... 죽여 버릴거야...”

에아는 증오스러웠던 아멜리아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려는 공포를 밀어냈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일단 살아있으면 다음 기회는 반드시 온다.

에아는 분명 즉흥적인 쾌락을 좇는 마녀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가 무분별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공적인 그녀가 여태껏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에아는 게헨나에서 마녀사냥을 결심한 이후 두 가지 안전장치를 설치해 두었다.

비상시에 도망칠 수 있는 백도어를 말이다.

하나는 지금 그녀가 몸을 빼낸 아티팩트 ‘환생의 고치’.

소유자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낙인에서 위계를 가져가는 대가로 단 한 번 요람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정확히는 위계가 아닌 낙인에 구축된 마법 건축물을 가져가는 것이나 어차피 그것들을 빼앗기면 위계가 내려가는 것이니 차이가 없다.

“얼마 정도지?”

에아는 만취해 필름이 끊긴 다음날 영수증을 더듬는 것처럼 하복부에 새겨진 낙인을 어루만졌다.

뺵빽하게 들어찼던 공간이 휑하니 비어있다.

빈 곳을 하나하나 헤아릴 때마다 분노와 증오는 커져만 갔다.

남은 획수는 15 획.

아슬아슬하게 자율방어만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를 제외하고 6 위계가 통째로 증발했다.

-철퍽!

에아는 100일간 그녀가 웅크리고 있던 태막을 발로 찼다.

젖을 걸레를 내동댕이치는 소리와 함께 대굴대궁 구르며 양수를 분출하는 태막.

“젠장, 젠장...! 그 싸가지 없는 년...”

일단 목숨을 건진 것은 좋다.

그러나 한두 개도 아닌 여섯 개의 위계가 내려갈 정도의 막대한 대가다.

앞으로 그것을 복구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래서야 복수고 뭐고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것이다.

에아는 입술에서 흘러 턱 밑까지 줄줄 흐르던 피를 대충 손등으로 훔쳐내었다.

하얀 가슴 위로도 떨어진 핏방울이 몹시 선정적이다.

그와는 별개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증오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준비해 두었던 두 번째 백도어가 제대로 남아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주변의 지리를 눈으로 익힌 에아의 등에서 리본이 너울너울 피어오른다.

다행히도 에아의 주 무장이던 ‘처녀의 베틀’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물병’ 역시 거래의 대가로 지명되지 않은 것 같았다.

에아는 리본을 이용해 커다란 바위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수많은 마녀와 호문쿨루스를 사냥한 사냥꾼이었고 그만큼 다양한 아티팩트가 많았다.

개중에서는 결계를 게헨나의 결계를 뜯어내고 출입구를 만드는 ‘결계분리기’라는 이름의 아티팩트도 존재했다.

“.........”

들어올린 바위틈에는 손바닥만 한 공간의 틈새가 열려 있었다.

수술을 위해 개복한 뱃가죽처럼 뻐끔 벌려진 채로 고정되어 있다.

그 주변엔 에아가 설치한 조그마한 물병 형태의 ‘이면결계’가 존재했다.

메리골드 저택을 습격하며 사용했던 것처럼 내부의 이상 현상을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하는 에아의 주특기이다.

호문쿨루스를 이용해 게헨나로 들어온 것도, 열쇠로 사용한 호문쿨루스를 죽이지 않고 보란 듯이 풀어둔 것도 모두 기만책이었다.

추방자가 게헨나 내부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마녀들을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개구멍부터 막을 것이다.

어차피 결계의 틈새만 막히면 에아는 독 안에 든 쥐꼴이 되니 말이다.

“됐네.”

원래 사냥꾼은 가장 큰 굴을 보면 다른 작은 굴은 들쑤시지 않고 떠나는 법이다.

에아 역시 사냥꾼이었기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녀가 따로 마련했던 작고 소중한 탈출구는 여전히 들키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게헨나에서 몸을 뺄 수 있다는 것은 희소식이다.

그럼에도 에아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15 위계는 온갖 호문쿨루스와 위험한 마녀들이 돌아다니는 현세를 살아가기엔 부족한 능력이다.

게다가 오직 원한만을 쌓아온 에아의 처지는 다른 마녀보다 나빴다.

그녀가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지금껏 에아에게 피해를 입어왔던 온갖 마녀들이 그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 그녀를 잡기 위해 현세를 떠도는 티페레트 공작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녀가 존재조차 신경 쓰지 않고 등한시했던 잡스러운 것들도 어마어마한 위험요소로 돌변하겠지.

그러나 에아는 절망하지 않았다.

더 많은 마녀의 자궁을 빼앗으면 된다.

더 많은 호문쿨루스를 사냥하면 된다.

이 수모는 언젠가 다시 돌려주면 된다.

가령 언젠가 메리골드가 견습마녀를 들이는 날.

견습마녀에게 그릇을 심어주고 메리골드의 힘이 제한된 이후를 노려도 괜찮다.

-우우우웅

에아는 손을 뻗어 결계분리기를 작동시켰다.

작은 진동음과 동시에 물병 안의 분리기가 차원을 더욱 벌리기 시작한다.

최소한의 크기로 유지를 해두었으니 에아가 통과할 수 있을 수준이 되기까지는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현세로 돌아가면 일단 옷부터 어떻게 하자.

에아는 훤하게 드러난 제 알몸을 훑어보더니 혀를 탁 찼다.

그때.

-부스럭

별안간의 인기척.

에아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휴한기라 인적이 없는 라티푼디움에서도 특히나 외진 곳이다.

에아가 결계분리기를 설치하기 위해 후보 장소를 물색한 곳 중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말이다.

“누구야!”

대답도 없이 팽팽한 적막을 꺠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남자였다.

환자복처럼 헐렁한 옷을 걸친 익숙한 얼굴의 남자.

저 얼굴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있나.

에아가 손수 눈알을 파주고, 뇌까지 확실하게 관통시켰던 남자인데.

분명 깊게 휘저어주었는데 살아 있었다니.

자신은 이렇게 많은 것을 잃었는데 메리골드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

잡스러운 생각 와중에도 에아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녀의 등 뒤로 10가닥 정도 되는 리본이 날카롭게 벼려진다.

지금의 에아로서는 이것이 한계였다.

“어머 오랜만이네, 길이라도 잃었니?”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하지만 사실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이 한적한 곳까지 그 혼자 왔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곧 메리골드 남작이 모습을 드러내거나, 다른 마녀가 히죽히죽 웃으며 손쉬운 먹잇감이 된 에아를 잡아 죽이려 할지 모른다.

“..........”

그러나 1분이 지났는데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달리 모습을 보이는 자도 없었다.

“뭐니?”

곧 에아는 시우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손수 꿰뚫어 주었던 왼눈을 가리는 안대가 있는 것은 물론, 마치 시체를 되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적대하는 인물임이 분명할 에아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대신 결계분리기가 벌여 놓은 공간의 틈새만을 지그시 관찰하고 있다.

마치 에아의 존재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영문인지, 어떤 경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에아는 희열에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저놈을 갈기갈기 찢어 이곳에 뿌려 놓는다면 지금 당장 메리골드에게 어느 정도의 복수가 가능하지 않을까?

“좋은데?”

에아는 씨익 웃었다.

등 뒤로 파르륵 소리를 내며 리본이 전개된다.

“마침 분해 죽을 것 같았는데. 아주 잘 됐어.”

에아는 시우를 보았다.

그 순간 시우도 에아를 보았다.

이제야 그녀의 존재를 인지한 듯 시우의 입가가 비틀린다.

무표정했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격렬한 표정.

확연하게 떠오른 그 감정이 증오라는 것을 에아는 알고 있다.

“피어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