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01화 (101/917)

#101

1.

아멜리아의 숙소 앞 정원의 분수대를 들이박을 기세로 정차한 마차.

두 마리의 새가 음각되어있는 마차 문이 활짝 열린다.

“오데트! 빨리 내려!”

“자, 잠깐만! 나 구두가 벗겨졌단 말이야!”

새처럼 시끄럽게 지저귀는 두 소녀가 무려 지체 높은 제머나이 백작가의 후계를 이을 견습마녀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빨리! 빨리! 빨리이이!!”

“아! 조용히 좀 해 언니!”

달리듯이 마차 문을 박차고 나온 오딜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오데트를 재촉한다.

오데트는 한 손가락을 구두 뒤축에 넣은 채 깽깽이 발로 뛰어나왔다.

“재촉 좀 말라니까? 언니는 항상 성격이 급해서 문제야!”

“뭐? 네가 바이올린 레슨 말아먹어서 30분이나 늦어진 건 벌써 까먹었니?”

“으으으으, 그건 언니가 어젯밤에 시끄러우니까 연습 그만하고 자라고 해서 그런 거잖아!”

“그러게 나처럼 주말에 연습했어야지!”

구두를 똑바로 신은 오데트와 오딜.

둘은 쉴 새 없이 투닥거리면서도 바쁜 걸음으로 도도도 달려나갔다.

갈리나 시녀장이 보았더라면 혼쭐이 났을 정도로 급하게 말이다.

오늘 점심시간.

오랜만에 마주한 스승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

이틀 전에 신시우 조수가 깨어났다.

그 말을 들은 직후부터 쌍둥이는 일과가 끝나고 아멜리아의 저택으로 달려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일주일에 한 번 16번의 병문안 동안 눈을 뜨지 않았던 그가 정신을 차렸다니.

어찌 곧장 달려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쌍둥이의 목숨을 두 번이나 멋지게 구해주었다.

게다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일평생 갚아야 할 은혜를 받은 것이다.

“언니 나 어때?”

“오데트 나 어때?”

저택의 문을 열기에 앞서 주춤한 쌍둥이가 동시에 서로를 돌아보며 말한다.

도착하기 전에 시종들에게 꽃단장을 받았다.

심지어 페챠는 방방 들뜬 기색으로 어여쁜 화장까지 해주었다.

“보닛이 삐뚤어졌어.”

“언니도 브로치가 떨어질 것 같아.”

자매는 사이좋게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헝클어진 옷차림을 정돈해주었다.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쌍둥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아멜리아의 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달음에 시우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대쪽같지만 먼저 그녀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맞는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묘약 건으로 조금 껄끄러워지나 싶었던 쌍둥이와 아멜리아의 관계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멜리아는 여느 때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강단에 서서 강의했으니까.

굳이 그 건에 대해 추궁하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물론 앙갚음이랄까 뭐랄까... 평소 배에 달하는 과제 전술핵 폭격이 떨어졌지만 자업자득이라 생각해 달게 받아들였다.

-똑똑

노크를 하자 잠시 후 저절로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시우 조수님이 깨어나셨다는 말을 듣고 얼굴을 보러 왔어요.”

방 안에는 시우의 주치의인 예빈과 아멜리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좋지 않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멜리아는 홀짝이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한동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어차피 쌍둥이도 곧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당부만을 늘어놓는다.

“신시우 조수는 아직 완벽하게 회복된 게 아니에요. 조심해주세요.”

“네, 교수님.”

“가보겠습니다. 교수님.”

아멜리아가 가보라며 손짓을 하자 쌍둥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닫힌 문을 한동안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던 아멜리아는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후우....”

뿌연 연기가 퍼지고 아멜리아는 미간을 찡그리며 숨을 거칠게 쉬었다.

그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예빈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술잔의 술을 마셨다.

“그래서 이 이상은 치유가 불가능한 거군요.”

“네... 두 차례나 더 시도해봤지만... 정말 정말 열심히 해봤거든요... 그런데...”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예빈은 면목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죽을죄를 졌다는 듯이 죄악감의 벌벌 떠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더 책망할 마음조차 사라졌다.

여기서 분풀이로 예빈에게 꾸중한 들 바꿀 수 있는 건 없지 않은가?

예빈은 이후에도 시우의 무의식의 궁전에 들어가기 위해 두 번의 시도를 했다.

그 결과는 모두 실패.

심지어 두 번째부터는 공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조차 없었다.

이렇게 되면 시우의 완전 치유는 불가능해진다.

예빈이 목표로 했던 것 중 단 7할이 그녀의 한계였다.

“스스로 회복할 가능성은 없나요? 정황상 당신의 자성마법을 어느 정도 흡수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 안될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 시우의 몸은 단순히 마법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완벽했다.

자폐(自閉)라는 문자 그대로이다.

외부와의 소통을 끊고 잡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오직 본인의 세계에 몰두한다.

그 힘을 통해 말도 안 되는 집중력과 연산으로 예빈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경이를 선보이고 있다.

더욱이 그것에 매우 흡족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거듭 예빈의 치료를 거부한 것에서 증명된다.

감정이 존재했을 때의 시우라면 몰라도, 지금의 시우는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치료가 끝나면 ‘고기능 자폐 상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그는 마법적으로 ‘불완전’해질 테니 말이다.

현재의 시우에게는 이 상태가 더 이상의 간섭이 필요없는 최적의 컨디션이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인간성과 감정, 외부와의 교류를 포기한 대신 악마적인 마법 재능을 손에 얻었다.

까마득한 지평에선 그에겐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

여기까지가 예빈의 결론이었다.

아멜리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담배를 지져 껐다.

“그간 수고 많았어요. 아베느가 남작에게 가면 합당한 보상을 해줄 거에요. 그리고 여기.”

아멜리아는 책에 끼워져 있던 은빛의 티켓 하나를 건넸다.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건 케테르 공작의 손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그노시스의 알’.

게헨나의 시민권 및 통행증이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남작님... 제가, 제가 조금만 더 유능했더라면...”

아멜리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이상의 사과는 받을 필요가 없다.

예빈은 최선을 다했고 트러블이 생겨난 것은 순전히 시우의 기묘하고 예측 불가능한 재능에 의해서였으니.

“차도가 있으면 다시 도움을 구하겠어요.”

“네....”

아멜리아는 부러질 것 같은 마음을 다잡고 간신히 예빈을 배웅했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책상에 다시 털썩 앉았다.

그토록 노력했건만 모든 게 끝이 났다.

이제는 정말 천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우.....”

다른 마녀였다면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당장 아멜리아만 해도 저런 신비한 노예를 손에 얻게 되었다면 은연중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그 노예가 시우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이자 아멜리아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리버리한 모습도.

의외의 순간 다정해지는 모습도.

화를 내는 모습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아멜리아는 무표정하게 서랍 가장 위 칸에 있는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예빈 스미르나를 초빙하기 전 시우를 위해 진행했던 치유 마법 연구였다.

아마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이다.

설령 아멜리아가 천재적인 기량을 발휘해 시우를 치유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도 그는 이미 죽어 세상에 없겠지.

영생을 가진 마녀가 아닌 필멸자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멜리아가 이 서류를 꺼내 든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각사각.

종이 위를 긁어내는 펜촉은 오늘따라 힘이 없었다.

2.

“언니 창문으로 들어갈래?”

“그냥 가자니까 왜 자꾸 오두방정이야.”

“그치만 그게 더 인상적이잖아.”

쌍둥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우의 방문 앞에서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근사한 꽃다발과 함께 짠! 하고 등장하면 끝.

멋지게 문을 박참과 동시에 기운 좋게 점프, 그리고 동시에 착지했다.

“쨘! 쨘! 쨘!”

“조수님! 퇴원 축하드려요!”

나란히 등을 맞대고 각기 다른 쪽으로 팔을 활짝 뻗는 퍼포먼스.

고운 드레스가 조금도 흐트러지 않는 가운데 역동적인 동작으로  짠 나타났지만 뭔가 이상하다.

“조수님, 우리 왔다니까?”

“조수님....?”

이 커다란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도 없는데.

그는 여전히 쌍둥이를 등진 채 손끝으로 벽지를 파내며 무언가 그려내고 있었다.

“오....”

그것은 나무 형태의 프랙탈 도형이었다.

뿌리부터 시작한 나무에 반복적인 형태의 가지가 더해짐으로써 하나의 커다란 나무를 이룬다.

쌍둥이는 조수님이 집중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그의 뒤로 걸어왔다.

감동적인 재회가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거의 죽을 것 같은 모습으로 침상에만 누워있던 그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멀쩡하게 일어나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쌍둥이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사각사각

“..........”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력이 서린 손끝이 벽을 파낸다.

“도대체 뭘 그리시는....”

“쉿 오데트, 가만히 있어 봐.”

가장 먼저 오데트가 그 그림의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단순히 기하학적으로 아름다운 모형이 아니었다.

뻗어 있는 가지의 선 하나, 매달린 잎사귀 하나가 모두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아무리 형태를 달리해보거나 심상 속에서 3차원으로 구현을 해봐도 도저히 이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 그림은 오딜이 알고 있는 그 어떤 형태의 마법식과도 부합하지 않는 시우만의 체계였다.

물론 이것이 마법식이라는 가정하에 지만.

시우는 손끝으로 툭 마지막 잎새를 그리는 것으로 벽화 작업을 끝냈다.

“조수님, 우리 왔어요.”

더는 참지 못한 오데트가 시우의 한쪽 소매를 꾹꾹 당기며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한다.

마침내 시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목덜미에 매달릴 예정이었던 쌍둥이는 그대로 주춤했다.

“.........”

시우는 왼쪽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색 안대를 제외하면 굉장히 멀쩡해 보였다.

그러나.

반가움, 기쁨, 아니면 당혹스러움, 놀람.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쌍둥이를 돌아본 순간.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래? 우리 왔는데. 안 반가워?”

“조수님 드리려고 이렇게 꽃다발도 준비했는데....”

오딜은 예상에 전혀 없던 반응에 우물쭈물했고 오데트는 형형색색의 안개꽃이 포장된 꽃다발을 쓱 들이밀었다.

그러나 시우는 꽃다발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쌍둥이를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다.

이윽고 느릿하게 손을 뻗어 오딜의 뺨을 어루만졌다.

“뭐야! 갑자기! 조수님 이런 거 싫어.”

재미없는 장난이라고 여긴 오딜이 심통을 부렸다.

뺨에 맞닿은 그에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조수님 저는요?”

시우가 오딜에게만 관심을 보이자 괜히 오데트도 촐랑대며 시우의 손을 끌어당긴다.

“킁킁.”

“새, 새로운 환영법이야?”

시우는 오딜에게 슬쩍 붙어 그녀의 정수리 냄새를 맡았다.

영문 모를 일에 꼼짝없이 얼어붙은 오딜과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오데트.

“킁킁.”

“조수님 저 머리 냄새 좋죠?”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 오딜이 아닌 오데트의 냄새를 맡는다.

아무튼 친애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는지 싱글거리던 오데트의 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딱딱하게 굳었다.

한동안 쌍둥이의 체취를 맡던 그가 몸을 휙 돌린 것이다.

이후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던 프렉탈로 이루어진 나무 그림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한다.

쌍둥이는 이후 몇번이나 시우에게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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