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99화 (99/917)

#99

1.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연구동에 가서 평소처럼 깃펜을 쥐어든 아멜리아.

갑작스러운 마력의 파동이 울려퍼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그녀는 허겁지겁 숙소로 돌아왔다.

시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멜리아가 시우 방에 들어서자마자 본 것은 다리 사이로 허연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알몸의 예빈.

그리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허리만 뒤로 넘어가 누워있는 시우.

처음 예빈을 보았을 땐 왈칵 분노가 치밀었던 아멜리아지만 시우의 모습을 보자마자 퍼득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의 자세가 바뀌어있다.

자의로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취할 수 없는 자세로.

“아....아아....”

아멜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난 듯이 주저 앉았다.

예빈은 옷을 갖춰 입으려다가 제 드레스가 찢어졌음을 깨닫고 이불로 적당히 몸을 둘둘 만 채 아멜리아에게 달려왔다.

“깨어난거죠...?”

“네...그게, 이걸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지...”

예빈은 우물쭈물거리면서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소상히 늘어 놓았다.

성관계 도중 시우가 갑자기 일어나 자신의 의지로 움직인 일.

마력을 흡수해가더니 증폭해서 돌려주었던 일.

이 두 가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럼, 치유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는 말이죠?”

“네...넷! 그래도 몸이 움직인다는 건 희소식이에요. 움직임에 있어 이상한 부분도 없었으니 회복의 성과가 순조롭다는 말이거든요.”

예빈이 설명하는 동안 아멜리아도 어느정도 침착해졌는지 차분하게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나 마음이 진정되었다 한들 이 사태에 대해 정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제... 생각에는 무의식의 궁전에서 그를 만났었는데요. 그곳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어요. 아마도 자성마법진의 개변이었을거라고 생각해요.”

“개변?”

“네, 순식간에 다시 쌓였다가 무너지길 반복하면서 전혀 다른 형태들로 변화하고 있었거든요.”

그건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순수한 마력의 증폭 작용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

그는 지금까지 전혀 없던 ‘자성마법’을 또 하나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 그의 상태는 어떤가요?”

“바로 확인해 볼게요.”

예빈은 허둥지둥 기괴한 자세로 누워있는 시우에게 다가갔다.

아멜리아의 눈치를 슬쩍보고 몸에 찰싹 밀착해 진단용 촉각을 풀었다.

신체 각부는 멀쩡한지, 장기에 손상은 가지 않았는지, 마력 회로에는 이상이 없는지에 대해 약식 진단했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 다음엔 눈에 있는 의안을 통해 직접 뇌에 간섭한다.

“어.....?”

그리고 예빈은 자신의 촉각에 걸려든 정보가 진실인지에 대해 한참이나 고민했다.

예빈의 반응에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한 아멜리아.

“뭐가 잘못 됐나요?”

“어.....”

두 번, 세번을 점검해도 똑같다.

예빈이 임시로 형태만 잡아두었던 모든 신경회로의 체계가 정상이 되어있다.

그 말인 즉, 손상되었던 뇌가 모두 재생되어 있었다.

뇌가 찰흙도 아니고 이렇게 쉽게 재생이 된다고?

게다가 이 형태는 예빈이 크게 아웃라인을 잡아 두었던 신경의 배치와 거의 비슷하다.

마구잡이로 쌓아올린 게 아니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제대로 수복했다는 의미로 예빈이 목표로 했던 치유의 7할 정도가 저절로 끝난 셈이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에 예빈이 떨리는 눈으로 시우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조용히 그의 눈이 떠졌다.

그의 손이 움찔 움직이는 것을 보자마자 아멜리아는 벌떡 일어나 침대의 바로 옆에 섰다.

시우의 마법적 성취도, 이상현상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깨어났다는 사실이었다.

“스미르나 양, 잠시만 자리를 비워줄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건 조금 이따 듣겠어요.”

“아, 네... 메리골드 님. 하지만 지금 완벽하게 회복된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아 주세요. 조심히 다루셔야 해요.”

예빈은 살짝 걱정이 되는 듯 당부의 말을 건네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멜리아는 지그시 시우를 내려보았다.

시우의 눈은 흐리멍텅했다.

명확한 이지는 느껴지지 않았고 무언가를 인식하고 반응하는데까지는 명백하게 시차가 존재한다.

한 눈에 봐도 정상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움직인다.

눈을 뜨고 무언갈 바라보고, 분명히 살아있다.

백일 간이나 눈도 뜨지 못하고 인형처럼 누워있던 그가 지금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아멜리아는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상체를 기울여 그의 뺨을 만지자 시우의 눈이 아멜리아의 손으로 향한다.

따뜻하다.

이 안도의 감정을, 미안함의 마음을 지금 전한다면 그에게는 얼마정도까지 닿는걸까?

아멜리아는 허리를 숙였다.

시우의 뺨에 가볍게 뽀뽀를 하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다행...이에...엣?”

그리고 아멜리아의 울먹거리던 목소리는 그대로 의아함에 뒤집혀 버렸다.

-쭈물 쭈물

그의 손은 어느새 아멜리아의 가슴으로 뻗어 있었다.

탐욕스러운 손놀림으로 가슴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있다.

“아....?”

아멜리아는 동공지진을 시전했다.

청명한 하늘색 눈동자가 144Hz로 진동하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느릿하게 캐치한다.

그의 단단한 손이 옷너머로 아멜리아의 모양 좋은 가슴을 제멋대로 이지러뜨리고 있다.

가슴을 만져?

아멜리아가 힉 소리를 내며 몸을 빼기 무섭게 시선의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 움직인다.

시우의 손을 떨쳐낼 생각도하지 못한 채 녹이 쓴 기계처럼 끼기긱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멜리아.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렸던 그곳.

제 것처럼 가슴을 주무르던 시우의 하물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더니 꼿꼿하게 서기 시작한다.

정액과 예빈의 애액이 분명할 액체로 코팅된 채 말이다.

시우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다.

물론 손은 여전히 아멜리아의 가슴을 주무르는 채.

머리를 한 대 두들겨 맞은 것처럼 멍해진 아멜리아는 입을 반쯤만 벌린 채로 시우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아.....”

시우의 반대 손이 뻗더니 아멜리아의 뒷목을 감싼다.

부스러지는 화려한 금발이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목을 잡힌 아멜리아는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그의 맨 가슴에 상체가 기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아연해진 아멜리아의 반응에도 시우는 아랑곳 않았다.

그의 얼굴이 아멜리아의 옆 얼굴에 가까워진다.

“킁킁.”

언제나 향수를 뿌린 빗으로 빗어 향긋한 꽃향기를 풍기는 아멜리아의 머리카락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어째서인지 거미줄로 온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 있다.

머리 냄새를 맡고 있다.

그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뛴다.

“왜.... 이러시는 거죠?”

“..........”

아멜리아는 침을 꼴딱 삼키며 말끝을 떨었다.

어쩐지 모르게 가팔라진 숨.

뭔가 그에게 품평당하고 있는 것 같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것마저도 그리 싫지 않았다.

괜히 양 허벅지가 움츠러든다.

아멜리아는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손을 쭉 뻗어 어정쩡하게 허공을 더듬으며 시우의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

어쩌면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

머리카락에 코를 박던 그의 얼굴이 점차점차 내려온다.

귓가를 스치며 한 줄기의 숨으로 귓볼을 간질이고, 까칠한 입술이 뺨을 스쳤다.

그리고 입을 벌려 아멜리아의 사슴같은 목덜미를 한 입에 문다.

“우흣...!”

아멜리아의 머리털이 놀란 고양이처럼 삐쭉 섰다.

그의 말캉한 혀가 뜨겁게 민감한 살결을 핥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훗훗하고 아멜리아는 묘하게 이상한 콧소리를 내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건 무슨 사인일까?

아직 정신이 돌아온 게 아닌 시우가 왜 이런 짓을 하는걸까?

아멜리아는 뻗뻗하게 앞으로 나란히하고 있던 팔을 조심스럽게 접었다.

“시, 시우... 간지러워...요....”

비록 허락도 받지 않고 가슴을 주무르면서 목덜미를 빨고 있지만 지금이라면 용서해 줄 수 있다.

원래는 설령 교제하게 되더라도 3년 정도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키스도 100일 뒤에야 할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렇게 밀어붙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그의 뒤통수를 끌어 안으려 할 때 가슴을 주무르던 시우의 손이 사라진다.

딱딱하게 굳어 긴장했던 아멜리아의 어깨도 어느정도 힘이 빠졌다.

그때 그의 손이 뱀처럼 아멜리아의 드레스 안쪽을 파고든다.

그러니까, 치맛자락을 올려 그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단 말이다.

오늘따라 폭이 널널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손은 거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아멜리아의 드레스를 가슴께까지 젖혔다.

그리고 아멜리아가 무언가 해볼 틈도 없이 그의 손이 쑥 브레지어 밑을 파고든다.

몰캉거리는 가슴을 확실하게 주무르며 첨단에 있는 젖꼭지를 꼬집으려 들었다.

“힉....!”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시우를 휙 밀쳤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혹감이 가시질 않는다.

새하얗게 질린 아멜리아는 삐뚤어진 브라의 어깨끈을 옮겨 고쳐매고 아차 싶은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괘...괜찮아요?”

원래라면 여기서 역정을 내도 이상하지 않을 아멜리아지만 시우는 환자다.

게다가 그의 행동이 여기까지 올 때까지 방임하던 것도 자신이 아닌가?

뒤로 넘어간 시우는 느릿하게 다시 몸을 일으켰다.

복잡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아멜리아.

시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두 발로 걸었다.

이 역시 회복이 순조롭다는 청신호였지만 아멜리아가 인식하는 것은 꼿꼿하게 서 있는 자지가 스프링처럼 낭창거리는 모습 뿐이다.

“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

그의 얼굴을 불만족스러운 듯이 찡그려져 있었다.

그래도 아멜리아는 자신의 의결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시우는 다가섰고, 아멜리아는 뒷걸음질 쳤다.

처음 시우가 펄펄 뛰며 화를 내었던 그 날의 모습 같았다.

시우의 입술이 달싹인다.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갈라지고 힘 없는 쉰 목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멜리아에게는 생생하게 들렸다.

“...개같은 년.”

시우의 입장에서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바를 달성하는 것에 차질이 생기고, 아멜리아에 대한 기억이 결코 좋지 않다는 점이 결부되어 되는대로 주어섬긴 것과 다름없다.

그가 아직 제정신일 무렵 아멜리아에 대한 감상은 결코 긍정적이지 못했으니까.

아멜리아는 가슴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

100일을 기다렸다.

전전긍긍하고 다른 여자와 몸을 섞는 것을 묵인하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차디찬 한마디였다.

그러나 아멜리아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곧은 눈빛으로 애잔하게 시우를 바라본다.

“알아요.”

거기까지.

아멜리아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거기까지다.

“내가 밉겠죠.”

시우는 아멜리아가 무엇을 감내했는지 모른다.

그는 막 잠들었다 깨어난 것이니까.

사정을 알고 있는데도, 이해하고 있는데도 가슴이 아팠다.

뜨거운 것을 집어 삼킨 것처럼 목울대가 아려온다.

“당신이 날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래요.”

그러나 시우는 아멜리아에게 이미 관심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휙 몸을 돌리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아멜리아는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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