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90화 (90/917)

#90

1.

오늘도 아멜리아의 하루는 시우의 병문안으로 시작되었다.

예빈이 집중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이 경과하고 뇌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기는 회복이 끝났다.

따라서 그의 주변에 치렁치렁하게 늘어졌던 마법진은 거둬졌다.

예빈 스미르나의 솜씨는 확실했다.

가만히 두었더라면 며칠 안에 죽었을 시우의 몸을 정상으로 만들어 두었으니.

그녀의 호언장담대로 그 어떤 마녀를 데려다 놨어도 망가진 인간의 몸을 여기까지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시간을 지연시키지 않더라도 시우는 자신의 힘으로 숨 쉬고, 심장을 뛰게 한다.

심폐기능을 비롯한 대사 관련 생리작용이 모두 돌아온 것이다.

아멜리아는 그제야 비로소 그가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혈색이 돌아온 그를 보았을 때 아멜리아는 한참이나 시우의 손을 잡고 그의 맥박을 느꼈다.

예전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예빈의 추측은 무거운 추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그래도.

살아 있으면 된 거야, 살아 있으면 된 거야...라고,

매일 같이 중얼거리며 한동안 굳은살 가득한 그의 손마디를 하나하나 헤아렸다.

“아, 죄송해요... 여기 계신 줄 몰랐어요.”

“아니에요,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예빈이 들어왔다.

해석이 난해한 옷가지를 걸치고 있던 초반의 행색에 비하면 지금은 제법 근사한 마녀답다.

아멜리아는 조용히 시우의 손을 놓았다.

예빈의 노력은 옆에서 지켜보는 아멜리아가 더 닦달할 수 없을 정도로 가상했다.

하루 12시간 치유에 매달릴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8시간은 뇌 치유를 위한 자성마법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으니까.

네 시간의 휴식을 제외하면 하루를 통째로 시우의 회복에만 전념하는 셈이다.

그걸 아는 아멜리아도 구태여 예빈을 불러들여 시시콜콜 상황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치게 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되어 가나요?”

“아, 뇌 시술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비워둔 왼쪽 안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상화됐어요.”

반 시체 및 뇌사에 가까운 식물인간 상태에서 여기까지 호전시키다니.

현대 의료로도 불가능한 일을 홀로 해낸 셈이다.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삼일 뒤에는 본격적인 마력회로 재건과 뇌 재생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아멜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빈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를 꼭 껴안는다.

“고마워요, 정말....”

“이, 이러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남작님이 지원을 끙....!”

“고마워요, 고마워요....”

어찌나 꼭 껴안는지 숨을 쉬기 힘들어진 예빈이 간신히 그녀를 떨쳐냈다.

뿌듯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직 그녀에게 전달하지 못한 말도 있다.

“시우 씨와 더 시간을 보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차피 잠깐 상태를 살피러 온거니... 그럼 이만.”

“네....”

예빈은 한숨을 쉬고 문을 닫고 방으로 돌아왔다.

식당에서 들여온 커다란 테이블에는 뇌 모형과 수천 장에 달하는 종이들이 팔랑이고 있었다.

신시우가 그저 한 마리의 동물이었더라면 이 정도의 준비는 필요 없다.

생존에 필요한 기능만이라면 이미 복구되었고 신경가소의 유도 역시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니 말이다.

의도적으로 잠재워 둔 그를 각성시키면 그만이리라.

그러나 예빈의 의무는 그를 최대한 원래 상태에 가깝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가 했던 생각, 기억, 사상, 행동 양식들을 유지하며 말이다.

그리고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하던 예빈의 계획은 거기서 턱 막혀 버렸다.

스승님이 저술하셨던 논문을 제공받은 이후 낙인을 통해 전수 받은 지식과 꼼꼼하게 검토해 봤지만...

딱 한 가지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삼일의 여유를 둔 것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이긴 한데...

솔직히 원래 계획 이외의 방법이 생겨날 가망은 거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근데 이걸 남작한테 어떻게 말하냐고....”

예빈은 테이블 위에 털썩 엎어졌다.

시술 자체에 요구되는 방법도 절대 단순하지 않았고, 예빈 자체도 낯이 뜨거워 쉽게 입을 열 수 없는 문제였다.

무엇보다 남작에게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가장가장가장 커다란 고민거리다.

차라리 남작이 시우를 대하는 모습을 하나도 보지 않았더라면 몰라.

예빈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이나 시우의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인데...”

과연 그 수술법을 불가항력이라고 퉁치고 넘어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겠지.

“근데 진짜 어떻게 말하지...”

예빈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2.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다.

발 닿을 곳 없이 부유하는 의식은 느릿하게 유영한다.

그 아래에는 넓게 펼쳐진 두 개의, 아니 이제는 하나가 된 구조물이 보였다.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지고 폭격이라도 당한 듯 무너져 내린, 시우가 쌓아 올렸던 모든 것.

모든 기능이 정지한 잔해조차도 찬연히 빛나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은 어째서일까.

“.........”

시우는 그것을 보았다.

확실히 보고, 인지했지만 물 흐르듯 이어지던 사고는 끊어져 있다.

끊어진 사고의 틈새를 연결하는 것은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이성, 혹은 본능.

잡념에 흐트러지지 않는 두 눈은 마법진의 잔해더미를 직시한다.

시우는 팔을 들어 올렸다.

무언가를 의도한 것은 아니다.

깊게 숙고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충실한 종복이자 언제나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던 마법진이 일제히 격동한다.

-쿠구구구구궁!

세계의 변모.

검은 세계는 진동한다.

금빛으로 톱니바퀴가, 선이, 점이, 문자가, 그림자가 일제히 튀어 오른다.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아름다운 궤도를 그리는 은하의 별처럼 순리에 따라, 본능에 따라,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자리 잡고 은은하게 빛난다.

언제나 창조는 파괴로부터 태어난다.

수만 개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유산은 전혀 다른 형태의 ‘규칙’을 일궈내었다.

시우의 눈동자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의 구가 보였다.

진리를 담은 알처럼, 그림자의 둥지에 품어진 새로운 규칙을.

“..........”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듯이 성의 없이 다시 손을 휘적이자 또다시 붕괴한다.

어떠한 ‘규칙’에도 구애받지 않고 새로이 쌓인 ‘규칙’.

그 모순이 무너진다.

무너진 잔해는 아까처럼 아인의 밑바닥에 널브러져 주인의 명령을 기다렸다.

칠흑에 잠긴 망망대해 같은 공간 속에서.

시우의 손짓 한 번에 따라 규칙은 창조되었고 또한 파괴되었다.

나, 자유.

나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문득 의식의 한 자락을 붙잡은 두 가지 단어에 시우의 미간이 찡그려진다.

한참이나 그 의미를 곱씹었지만 결국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시우는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굴리는 신처럼.

어차피 시간이라면 많다.

이 세계는 그의 세계였다.

3.

아멜리아는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시우를 위한 연구는 그만둔 지 오래다.

예빈을 초빙한 상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마법 연구가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멜리아의 일상이랑 줄곧 시우를 돌보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전부였다.

“아멜리아, 들어가도 괜찮아?”

“들어오세요.”

그때 노크와 함께 소피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도 시간이 나는 대로 아멜리아를 귀찮게 하던 그녀이지만 요즘 들어 부쩍 방문이 잦다.

실의에 빠진 친구를 위로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고 있고, 고맙게 여기고 있다.

방에 들어선 소피아는 여느 때처럼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아멜리아를 보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시우에게 비극이 들이 닥쳤을 때 아멜리아 역시 힘들어 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언제와도 눈물 자국이 가려지지 않을 정도이니.

그렇다고 그녀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거나 하진 않았다.

아멜리아는 이미 스승님을 잃고 그 충격으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적이 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세계 속에 매몰되었던 연약한 아이인 것이다.

그런 아멜리아가 겨우겨우 용기를 내 마음을 연 상태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소피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할래?”

“죄송해요, 지금은 좀 힘들어요.”

“중요한 이야기야.”

심상치 않은 소피아의 반응에 아멜리아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탐스러운 금발이 찰랑거리며 좋은 향기를 뿌린다.

“시우에 관한 일인가요?”

“응.”

소피아는 자연스럽게 침대에 걸터앉고 아멜리아의 손을 꼭 잡았다.

“먼저 내가 하게 될 얘기가 너에게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지고, 복잡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

“무...무슨 이야기죠? 설마 무슨 문제가...!”

“진정해, 조금 대답을 잘못했네. 이건 너에 관한 이야기야. 물론 시우도 관련이 있긴 하지만.”

혹시 그새 시우의 몸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까 하얗게 질린 아멜리아를 다독이는 소피아.

그녀는 헝클어진 아멜리아의 머리를 차분히 쓸어주었다.

“넌 신시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소피아의 의도를 짚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멜리아의 눈동자.

왜 새삼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한 의문이 떠오르긴 했지만 쉽사리 무언가 말하지는 못했다.

“좋아....해요.”

겨우겨우 말을 꺼낸 아멜리아의 손을 소피아는 한층 더 세게 잡았다.

소피아는 다시 묻는다.

“그럼 나는?”

“당신도 좋아요.”

“왜?”

“...꼭 말해야겠어요?”

멋쩍은 듯이 시선을 피하는 아멜리아.

소피아는 한숨을 푸욱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소피아의 반응이 이상한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멜리아는 순순히 말을 꺼낸다.

“언제나 도와주고, 힘을 주는... 친구니까요.”

“그렇지? 그럼 시우는? 친구여서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거야?”

“........”

아멜리아는 역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소피아는 굉장히 걸리는 점이 있었다.

아멜리아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감정을 의식하게 된 것은 좋다.

애초에 소피아가 시우와 아멜리아를 붙이려 했던 것도, 반쯤은 그녀의 정신적 성숙을 돕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러나 아멜리아가 생각보다 무구한 상태라는 것은 계산에 넣지 못했다.

아멜리아가 시우에게 느끼는 것이 단순히 호의인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싹튼 사랑인지,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착각에 불과한 것인지.

소피아는 알지 못했다.

시우가 아멜리아의 짝이 되는 것이 탐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충분히 멋지고 착한 남자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피아가 아멜리아를 아끼긴 해도 연애 관계에 끼어들어 시누이 노릇을 할 정도로 극성인 것도 아니다.

“대답해 줄래?”

한참의 망설임 끝에 아멜리아는 입을 열었다.

“저는, 사랑... 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랑이 착각이라면 어떻게 할래?”

“소피아!”

유리잔이 깨지는 것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날이 선 반응이었다.

이글거리는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소피아를 쏘아본다.

아무리 친구라도 이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분노의 빛이 아른거렸다.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건 말해주고 싶었어. 너는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였잖아.”

“저도 사리 분별 정도는 할 줄 알아요.”

“아멜리아, 우선 진정...”

“이 감정이....! 그가 누워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가 떠날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이게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사랑인데요?”

발악하듯이 언성을 높이는 아멜리아의 모습에서 소피아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아니다.

부채 의식은 사랑이 아니다.

상실에 대한 공포 역시 사랑과는 별개의 감정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죄책감이 무엇인지.

책임감이 무엇인지.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친애란 무엇인지.

호의란 무엇인지.

우정이란 무엇인지.

아멜리아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제 막 눈을 뜬 상태에 불과한 것이다.

눈을 뜬 오리가 처음 본 생명체를 어미로 인식하고 따라다니는 것처럼.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닌 감정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면 어떨까?

소피아가 지나치게 간섭한 끝에 자연스럽지 않은 감정의 흐름이 생겨난 것이라면?

결정적으로 ‘호의’ 정도에 그쳤어야 했을 인과에 ‘마법’이 끼어 있었다면?

그것은 정말 사랑인가?

“화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것까지는 네가 들어줬으면 싶어.”

소피아가 손짓하자 방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쌍둥이가 서 있었다.

“아멜리아 교수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녀들은 마치 커다란 죄를 고해성사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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