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9화 (89/917)

#89

1.

“어떻게 됐나요?”

예빈은 놀랐다.

워낙에 집중하고 있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정밀검사에 투자한 것 같은데.

메리골드 남작이 아직까지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심코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부담감이 찾아온다.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상태가 결코 좋지 않다는 말을 앞으로 건네야 했으니까.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회복은 가능할 거에요.”

“아아....”

아멜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휘청였다.

만약 오늘 초면인 예빈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을 것이다.

“온몸이 엉망이에요. 주요 장기들에 극심한 손상이 있었고, 무엇보다 마력 회로의 쇼트가 입힌 내상이 극심해요. 응급처치가 없었더라면 아마 회복 불능이었을 테지만.... 다행히 너무 늦지는 않았어요.”

“회복이 가능하다는 건 어떤 의미죠?”

“자세한 건 조금 자료를 정리해서 가져올 수 있을까요?”

“그래요, 고생 많았어요.”

정밀 검사 과정에서 피로도가 너무 쌓여있기도 했고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펜과 종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머지 대화는 아멜리아와 예빈의 대화는 저녁 식사가 끝난 이후.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예빈은 정밀검사의 내용을 정리한 차트를 한장 한장 아멜리아에게 보여주었다.

“이 차트는 치유가 필요한 장기를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 건데.... 뇌를 재생하기에 앞서 전신에 누적된 각종 부상들을 돌보는 게 먼저가 될 것 같아요. ”

“........”

사람의 인체와 각종 장기가 선으로 그려져 있는 차트 위에 부상당한 곳만을 짚어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원이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쉬울 지경이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다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차트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실감이 다르다.

아멜리아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체를 재생 주술이 가능할 정도로 몸을 재건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이건 좀 말씀드리기 어려운 일인데...”

“솔직하게 전부 말해주세요. 그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럼 뇌의 상태에 대해서 말씀 드릴게요.”

망설이는 예빈.

아멜리아는 결의가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재촉한다.

예빈은 두 번째 차트를 꺼내 들었다.

뇌 전체를 도식화해서 그려낸 네 장의 도면이었다.

“보시다시피 뇌막은 당연히 손상되었고요. BA47, 45, 44부분 즉, 복 외측 전전두피질의 손상이 극심해요. 특히 왼쪽 눈을 통해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안와전두피질은 거의 소실된 상태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습니다.”

예빈이 중간에 말을 하다 멈춘 것은 아멜리아가 하늘이 무너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저녁 식사 이전에 말을 할걸.

오랜만에 먹은 근사한 만찬이 모조리 얹힌 기분이다.

물론 마녀는 체 따위 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수술 이후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수도 있어요.”

“어떤 면에서요?”

“먼저 안와전두피질은... 각종 감각 기관과 연결되어있어요. 미각, 시각, 후각 그리고 공감각에 대한 수용체와 경로가 존재하는 곳이라 소생 이후 확실하게 재기능할지에 대해선 확답을 드릴 수 없어요.”

“그리고?”

예빈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지금 그녀는 마녀가 아닌 의사로서 이곳에 있다.

환자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의사의 의무이다.

“또 변연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는 곳이라 욕구와 동기를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곳이에요.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욕구와 동기에 따른 보상 시스템이 발현되면서 인간의 행동을 사회화시키죠.

학습에 대한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욕구와 직접 연관되는 곳이다 보니 성욕의 측면에서도 장애가.... 더 해도 괜찮을까요? 힘드시다면 잠시 쉬시는 게.”

굳세게 눈물을 참던 아멜리아는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뚝뚝 손등 위로 물방울을 떨어뜨리면서도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예빈은 한숨을 숨기며 말을 이었다.

“....전전두피질 같은 경우엔 ‘집행 기능’의 대부분 담당하는 곳이에요. 의사결정, 상황에 따른 행동 조율, 언어적 표현, 비판적 사고 같은 곳이 여기에서 실행돼요.

현세에서도 이 부분에 전전두피질 손상을 입은 환자에 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고등한 정서처리 기능 불능 및 충동 조절...이 힘들어지죠.”

아멜리아가 너무 서글퍼 보였기에 차마 비유를 들 수 없었지만 한 마디로 로봇처럼 변한다는 의미이다.

그것도 무척 난폭하고, 일차원적인 충동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로봇 말이다.

“치료 이후에도 그럴까요?”

“혹시 접시 하나만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아멜리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예빈은 근사한 디저트가 담겨 있던 접시 하나를 염동으로 조각냈다.

수십 개의 조각으로 분해된 유리 조각을 퍼즐 맞추듯이 짜내기 시작한다.

“찢어진 피부와 뼈를 재조립하는 건 이런 거예요. 어차피 세포들이 담당하는 건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고 조립할 조각도 큼직큼직하죠. 어렵지도 않고 설령 잘못 조립된다 해도 다시 시도하면 그만이에요.”

일반적인 염동보다 힘은 약하지만 훨씬 섬세한 ‘수술 염동’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접시를 끼워 맞췄다.

모든 모서리가 맞물린 접시는 깨지기 전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했다.

“하지만 뇌의 경우는 이런 느낌인 거죠.”

-콰직

훨씬 더 잘게, 수천 조각으로 부러지는 접시.

“뇌는 ‘구조’ 자체가 ‘기능’과 밀접한 연관을 가져요. 게다가 모든 인체 기관을 통틀어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기관이죠. 아무리 제가 노력을 다해도 처음과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해요. 기껏해야 이 정도겠네요.”

비록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복원했다지만 다시 맞춰진 접시 전체에는 거미줄 같은 실금이 존재했다.

한눈에 봐도 듬성듬성 비어있는 부분이 보였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다시 깨어난 저 환자분....”

“신시우에요.”

“...신시우 씨가 예전과는 다른 사람일지라도?”

여기까지가 예빈이 해야 할 말이었다.

단순히 살려낸다고 능사가 아니다.

환자는 혼수상태인 관계로 그 의지는 물을 수 없지만 보호자의 의지는 존중해야 한다.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어요. 이 자리에 제가 아닌 누가 와도 이 이상의 말씀을 드릴 수는 없을 거예요.”

아멜리아는 손수건을 꺼내 곱게 눈물을 훔쳤다.

“상관없어요. 제가 짊어져야 할 일이에요.”

각오는 끝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예빈에게 남은 것은 전력을 다해 시우를 회복시키는 일뿐이다.

“그럼 앞으로 예정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예빈은 수술 예정이 담긴 종이를 아멜리아의 앞에 펼쳐 보였다.

“뇌 재생에 앞서 신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뇌의 기능을 일부 복원시킬 거에요.

뇌에는 손상을 입어도 신경회로의 배치를 바꿔 뇌의 다른 부분에 역할을 넘기는 신경가소성(神經可塑性)이라는 성질이 있어요.

이 재설계 능력을 유도해서 회복에 필요한 기능을 확보합니다.

여기까지 대충 한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요. 추가로 이 기간 동안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에 대한 ‘맵핑’도 이뤄질 거에요.”

“필요한 물자는 모두 제공할게요.”

예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남은 설명을 끝냈다.

“이후에는 망가진 뇌 부분을 재생시킬 겁니다. 최대한 원래 기억과 기능을 확보하는 데에 주력할 거예요.

재생이 끝나면 재배치된 신경회로를 원래대로 끌어오는 거죠. 아무리 회복을 완벽하게 끝냈다고 해도 태어날 때부터 주어졌던 파트의 퍼포먼스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좋아요,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나요?”

“필요한 물품들을 적어 드릴 테니 구비해 주실 수 있나요? 지금 바로 시작할게요.”

예빈은 열의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지금까지 코요테나 바다표범으로만 실험해 봤던 수술을 인간에게 직접 활용할 수 있다는 학구열이 두 번째.

눈앞에 눈물을 쏟고 있는 아멜리아 남작의 근심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 첫 번째였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막중하고 중요한 책무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알겠어요.”

아멜리아의 전폭적인 협조를 시작으로 시우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2.

예빈은 하루 16시간씩 시우의 회복에 전념했다.

방 전체에 전개되어있는 생체시계를 늦추는 마법.

응급처치로는 훌륭했지만 근본적인 회복에 있어서는 방해만 되는 요소이다.

예빈의 일차 목표는 시우의 시간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도 죽지 않을 정도로 몸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극한까지 저하된 세포의 회복능력만을 복원하는 일인데도 막대한 양의 마력수와 체력이 필요했다.

수술용 촉각과 염동을 최대한 활용해 말 그대로 세포 하나하나를 한 땀 한 땀 꿰매야 하는 작업이었으니 말이다.

“후우.....”

마스크를 쓴 예빈은 한숨을 뱉으며 침침해진 눈을 깜빡였다.

일단 걸레짝이 된 심폐기를 회복시키는 데만 사흘에 가까운 시간이 소모되었다.

우선 한숨 돌릴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문을 연 예빈이 곧장 마주한 사람은 쌍둥이 자매였다.

마치 인형처럼 아름다운 모습에 거울을 맞대놓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다.

“조수님 상태 어때요?”

“괜찮으신건가요...?”

서로 손을 꼭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묻는 쌍둥이.

예빈은 어렵지 않게 그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신시우가 마법을 이용해 탈출시켰다던 제머나이 가의 견습마녀겠지.

“아, 안녕하세요. 저는 예빈 스미르나라고 합니다.”

“아, 저는 오딜 제머나이.”

“저는 오데트 제머나이에요.”

급한 마음에 인사도 잊고 있다 그제야 치맛자락을 나란히 붙잡으며 꾸벅 인사를 하는 쌍둥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가지런한 동작이었기에 예빈은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금 심폐기 회복을 끝냈어요.”

“좋은 거죠?”

“완전 다행인 거 맞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예빈의 모습에 팔짝팔짝 뛰며 안도의 감사를 표하는 오딜.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걱정했던 기색이 보여 예빈은 새삼스러운 감개를 느꼈다.

얼마 전에 찾아온 아베느가 남작도 그렇고, 이 저택의 주인인 아멜리아도 그렇고.

그를 향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졌는데 이 쌍둥이는 한술 더 뜬다.

“지금 들어가도 괜찮아요?”

“조수님 얼굴 보고 싶은데...”

“아니요, 당분간은 절대안정을 취하셔야 해서...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동시에 푹 꺼지는 쌍둥이의 어깨를 보니 딱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아직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이 정도의 인덕을 쌓은 사람이라면 분명 괜찮은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힘드신 건 없나요?”

“저희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아, 아뇨... 딱히 그러실건...”

이미 아멜리아가 필요한 모든 물품을 제공해주고 편의를 봐주는 터에 예빈은 오로지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쌍둥이는 예빈의 팔목을 잡아끈다.

“그러지 마시고 저희 마차로 와보셔요.”

“스미르나 님이 좋아하실 만한 걸 준비해 왔어요.”

“어? 어어?”

반쯤 강제로 마차로 끌려들어 간 예빈은 잘 부탁드린다는 쌍둥이의 부탁과 함께 근사한 옷부터 희귀해 보이는 마도구까지 어마어마한 선물더미를 받았다.

한 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된 눈물 어린 신시우의 영웅담은 덤이었다.

“저희 조수님은 노예이고 남자인데 마법도 사용하셔요.”

“심지어 21 위계의 악독한 추방자와도 당당히 맞서 싸우셨어요. 저희를 구하기 위해서요...”

“그, 그러시군요.”

“도망칠 기회가 있었는데도 저희를 먼저 대피시키셨죠.”

“저희의 영웅이에요.”

양 옆에서 번갈아 말하는 화법에 정신이 쏙 빠질 것 같다.

쌍둥이들의 마지막 부탁은 아멜리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조수님을 잘 부탁드려요.”

“저희 제머나이 백작가에서도 은혜를 잊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쌍둥이와의 대화가 끝난 뒤 예빈은 부담을 등에 업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

사실 마법을 사용해 추방자에게 맞섰다는 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한 전말을 전해 들은 것은 처음이다.

죽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추방자에 맞서 마녀를 지키다니.

쌍둥이의 말대로 ‘영웅’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헌신적인 행보였다.

항상 뉴스나 신문으로만 접했던 멋진 사람을 직접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일까?”

치료가 끝나면 아마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예빈은 시우와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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