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1.
아멜리아의 하루는 시우의 방을 찾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불을 걷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그의 팔과 다리를 닦는다.
아직도 퀭하게 뚫려있는 눈구멍의 거즈를 교환해주고 나머지 부분은 마법으로 청결을 유지한다.
사실 굳이 필요한 작업은 아니었다.
시우의 몸은 거의 시간이 정지해 있는 상태이고 대사작용에 의한 분비물 따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결국 이것도 있으나 마나 한 속죄의 일환일 뿐이다.
15분 정도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그의 머리맡에서 혼잣말을 늘어놓는다.
별 말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허한 넋두리 같은 것.
이후에는 연구실로 향해 새로운 마법의 연구를 시작한다.
사실 치유 마법은 그리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는 분야가 아니다.
마녀 혹은 견습마녀는 모두 영체.
낙인을 구심점 삼아 마력과 사념으로 이뤄진 몸뚱이는 섬세한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 인간의 몸에 비하면 상당히 복원이 쉬운 편이다.
팔이 잘려나간다 해도 그 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재생시킬 수 있고, 설령 장기 하나가 떨어져 나간다 해도 충분한 마력만 존재한다면 ‘어떻게든 된다’.
각종 종양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같은 것은 그렇게 신경 쓸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고작 인간을 완벽하게 치유하기 위한 치유 마법에 몰두하겠는가?
마녀를 위한 회복 마술은 10 위계.
딱 그 정도 선까지만 존재하면 됐다.
그런 마녀의 영체조차 쉽사리 치유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뇌’이다.
인간의 이지, 이성, 사상, 관념, 사고의 군집.
달을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의 지평을 넓힌 인류가 아직도 완벽히 검증하지 못한 가장 복잡한 장기.
수억 개의 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 화학작용은 고작 10 위계 정도의 회복 마술로는 처리할 수 없기에 마녀에게조차 뇌 손상은 죽음을 의미했다.
하물며 인간의 연약한 몸이야...
과연 어느 정도까지 수준을 올려야 그를 눈뜨게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장벽이 연달아 앞을 막고 있는 막막함.
금방 주저하고 싶은 마음속에서도 아멜리아는 포기를 떠올리지 않았다.
“........”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스승님이 떠나가시던 그 날에 비하면 이 정도 절망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속수무책으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발버둥 칠 수단이 있다.
아직 어떻게든 만회할 방법이 있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고통스러운지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덜컹!
“아멜리아!”
어쩐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연구동의 문이 벌컥 열렸다.
치렁치렁한 보랏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사람은 소피아.
아멜리아의 오랜 친구이자 조언자였다.
“무슨 일이죠?”
“찾았어!”
소피아는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방방 날뛰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녀에 비하면 경박한 감이 있는 소피아긴 해도 저렇게까지 체통을 잃고 날뛰는 모습은 처음 본다.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뭘 찾았다는 거죠?”
“시우 조수를 치료할 수 있을 만한 마녀를 찾았다고!”
“저, 정말요?”
갑작스레 가슴을 뭉클 부풀리는 희망에 아멜리아는 가슴을 콱 붙잡았다.
그러나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소피아는 한시가 급한 듯이 자신의 품에서 종이 뭉치 두 개를 꺼내 들었다.
“폐기 서고에서 논문을 뒤적였는데 뇌 재생에 관해 저술한 마녀가 있어.”
하나는 논문이었다.
아멜리아는 재빨리 소피아에게 논문을 넘겨받고 제목을 읽어 보았다.
제목 ‘인체 주조를 통한 뇌재생:다세계 심상 해석과 엔트로피 수복’.
아멜리아도 깊이 있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슬쩍만 내용을 훑어봐도 지금 시우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논문 저자는 ‘스미르나’. 인체주조술에 정통한 19 위계의 마녀야. 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어...”
“알 것 같네요.”
아멜리아가 소피아의 말을 듣자마자 느꼈다.
바로 이 논문이 폐기 서고에 있었다는 점.
그건 논문의 저자가 추방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추방 사유는 뭐죠?”
“나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아마 실험 중에 10명 정도의 시민에게 직접 손을 댄 것 같아.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더라고.”
기쁨으로 들떴던 아멜리아는 차분히 옷자락을 꾹 움켜쥐었다.
본래 아멜리아는 추방자들에게 악감정이 없었다.
애초에 접점 자체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격돌한 에아 사달멜리크.
그녀의 잔혹함과 위험함을 깨달은 아멜리아에겐 ‘추방자’라는 세글자 자체가 혐오감과 더불어 불안함을 이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소피아가 먼저 말을 건넨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모든 추방자가 ‘공적’처럼 사악한 것도 아니고. 물병자리의 마녀는 추방자 중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던 정신병자거든.”
“위치는 알고 있나요?”
“북동 그린란드 국립공원에서 공방을 발견했어. 전 세계 철새들에게 ‘천리안’을 부여했거든.”
기대감에 부풀었던 마음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아멜리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멜리아는 염려를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우를.
다른 부분도 아닌 뇌를 수복하는 일을 다른 마녀의 손에.
그것도 추방자에게 넘기다니.
“아멜리아, 네가 노력하는 건 잘 알겠지만... 그래서는 시간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어. 너도 알고 있잖아? 시우 조수는 아주 조금씩 상황이 악화하고 있어. 네가 설령 지금 수준의 상처를 치유할 마법을 갖춘다고 해도 그때는 그걸로 부족할 수가 있는 거야.”
소피아의 말이 옳다.
아멜리아가 하려는 것은 천체물리학자가 갑자기 의과대학에 들어가 세계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뇌수술을 집도할 실력이 될 때까지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환자가 그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있으리란 보장은 누구도 주지 않았다.
“케테르 공작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나요? 그녀라면 이 정도는 치유할 수 있을 텐데.”
“아멜리아... 너도 알겠지만 그녀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도 올해로 82년째야.”
상아탑에 은거한 케테르 공작.
단 한 번도 낙인을 물려받지도, 넘겨주지도 않은 채 홀로 30 위계에 도달한 최고(最古)의 마녀.
모든 마녀가 고개를 조아리는 경외의 대상.
사상과 순리를 비틀 수 있는 그녀라면, 시우를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멜리아가 사건 직후 당장 찾아간 곳도 케테르 공작의 상아탑이었으니까.
그러나 원체 속세의 일에 무관심하기로 유명한 케테르 공작이다.
한 달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알현을 청했지만 아멜리아가 만난 사람은 흘리듯이 건네는 조언이라도 받기 위해 상아탑 앞에 노숙하는 두 자릿수의 마녀뿐.
상아탑에 펼쳐놓은 사상결계는 초대받지 않은 자의 발걸음을 거부했고, 아멜리아는 쓸쓸히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하루에 한 편씩 꼬박꼬박 비둘기를 날렸지만 회신은 없다.
“결정을 해야 해. 확실한 건 우리가 지체할수록 신시우의 회복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거지.”
소피아도 아멜리아가 걱정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박혀있는 아멜리아다.
또 다른 소중한 사람의 사활을 다른 마녀의 손에 걸어야 하는 건 두렵고 힘든 결정이겠지.
하지만 간절한 마음과 신중함이 언제나 최고의 선택을 쥐여주진 않는다.
지금은 결단이 필요할 때였다.
아멜리아의 침묵은 길었다.
이번 선택은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모든 가능성을 물색한다.
아멜리아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연락은... 닿았나요?”
“오늘 아침에 닿았어. 제머나이 백작에게도 임시 통행증 발급 건에 대해 물어봤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더니 2시간 만에 시민권의 복권까지 추진 중이라더라.”
치료를 위해서는 스미르나라는 마녀를 직접 게헨나로 들일 필요성이 있다.
지금의 시우는 포탈을 통해 현세로 나갈만한 상태가 아니니 말이다.
추방자가 합법적으로 게헨나에 발을 들이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 건에서 도움이 된 것은 견습마녀의 목숨을 두 번이나 빚진 제머나이 백작이었다.
시우를 치료하기 위해 추방자의 시민권 복권이라는 파격적인 보상까지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문진 정도만 받아보도록 할게요. 그녀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닌 마녀인지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으니까.”
“물론 그래야지. 그럼 어떻게 할까?”
“지금 당장 불러 들여주세요.”
2.
현세와 게헨나의 경계를 잇는 ‘문’.
‘문’을 오가는 데 필요한 건 세 가지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강물, 혹은 바다.
게헨나의 시민권.
강력한 염파.
이 세 가지가 있다면 전 세계 어디서라도 문을 통해 게헨나에 입성할 수 있으며, 반대로 문을 통해 전세계 어느 곳으로든 이동이 가능하다.
출입국 관리소의 특급 라운지에서 아멜리아는 손을 꼭 모은 채로 문을 통해 넘어올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각은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스미르나’.
소피아가 천리안으로 얻은 영상을 복원해 현상했으니 생김새 정도는 얼추 알고 있다.
비록 철새의 눈을 빌린 영상이라 화질이 매우 나쁘긴 했지만.
“........”
그러나 몇 명의 마녀가 오가는 와중 아직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갑작스러운 초대에 의심이 도져 그대로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닐까?
영체임에도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아멜리아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직접 찾아가서 데려오는 것이 맞았을까?
이번에도 성급한 판단으로 일을 망쳐버린 것이 아닐까?
곰팡이처럼 증식하는 불안감 가운데 개찰구의 문이 열렸다.
“아....”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쭈뼛쭈뼛 라운지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봤다시피 동양인이었지만 황인이라는 인종 분류가 무색하게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찰랑이는 검은 머리카락은 목덜미를 훤히 드러내는 시뇽 스타일로 묶었고, 까맣고 반짝거리는 눈동자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본다.
체크무늬 촌스러운 치마와 촌스러운 꽃무늬가 그려진 털옷 그리고 하얀 장화.
누구에게도 입혀 놓아도 소화하기 힘들 파격적인 패션에 등에는 뭘 그리 바리바리 싸 들고 왔는지 제 상체보다 큰 배낭을 메고 있다.
저게... 현세의 패션?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패션감각에 황당해하고 있던 아멜리아에게 예빈이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제가 게헨나는 초행이라 그런데... 아멜리아 메리골드 남작님... 맞으신가요?”
“맞아요, 반가워요.”
“아! 그러시구나...! 저는 예빈 스미르나라고 합니다. 스승님 이외에 마녀를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데... 악수해야 하나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옷에 손바닥을 쓱쓱 닦더니 손을 건네는 예빈.
아멜리아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악수를 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자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어느 쪽인가요?”
“우선 포탈을 타고 이동해야 해요.”
“네, 넵! 그럼 이쪽? 이쪽인가?”
“이쪽이에요.”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버리를 까는 예빈의 팔을 끈 아멜리아는 그녀와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