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4화 (74/917)

#74

1.

“그럼 이건 미뤄두자. 오늘 모든 걸 알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휴우... 좋아요.”

아멜리아는 한사코 시우를 향한 마음의 근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가령 소피아가 ‘왜 신시우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나서 아무리 유도를 해도 ‘제 것이니까요’처럼 어린애 같은 답만 반복할 뿐.

사랑은커녕, 호감, 호의, 좋아한다는 수준의 말조차 입에 담지 않았다.

그녀 안에 있는 고지식한 마녀로서의 자아가 노예에게 특별한 감정을 지닌 자신을 결코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특별한 감정이 무엇인지도 혼동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아무튼 너는 신시우 조수가 떠나질 않기를 원한다는 거지?”

“그건 인정하겠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하루 이틀 준비한 일이 아니라는 건 그만큼 탈출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는 말이잖아.”

아멜리아는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마법 연구 자료와 마력수는 압수하고 절대 허튼짓 못 하게 감시하면 되겠죠.”

“아멜리아, 정말 그게 맞다고 생각해?”

뜨악한 표정을 지은 소피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지만 그는 노예잖아요...”

“그렇게 하고 나서 뭘 어쩌려고? 물론 네 말대로라면 조수님이 널 떠날 수 없게 되겠지. 하지만 굉장히 굉장히 미워하게 될걸? 저번에 나한테 조수님이랑 사이좋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지 않았어?”

“..........”

말하는 와중에 눈치챘다.

아멜리아가 아무리 어린아이 같더라도 그 당연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녀는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문답에 대해 투정을 부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상의 대화는 큰 의미가 없겠구나.

소피아는 진도가 너무 빨랐다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이게 마지막인 것 같아.”

“뭐죠?”

“조수님이 좋아하는 걸 해 줘. 네가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모습을 보여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혼자서 오래 지낸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아집이 굉장히 강하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피아도 아멜리아가 단번에 그녀의 조언을 모두 수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등을 떠밀어줘야겠지 않는가?

“물론 선택은 네 몫이지.”

생각보다 훨씬 길어진 상담이 끝나고.

작은 창가에 선 소피아는 멀어지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걸음이 퍽 답답해 보였다.

문을 나가는 순간에도 아멜리아는 답답함이 전혀 풀리지 않은 눈치였다.

마녀는 자식을 가질 수 없지만 만약 딸이 생겨 사춘기가 온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아멜리아는 정서적 미숙아였다.

너무나도 오랜 고독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남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자각하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랑이란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감정이었다.

그 복잡함을 아멜리아가 단번에 이해할 리 없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 준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설렘에 잠들지 못하고, 때로는 가슴 아파하고, 때로는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해 번뇌하면서 직접 배워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피아가 해 줄 수 있는 조언도 굉장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들이었다.

전부 알려줘 버리면 결국 아멜리아는 비슷한 문제가 닥쳤을 때 소피아를 찾아와야 할 것 아닌가?

“그래도 좋게좋게 얘기했으니까. 잘 풀리면 좋겠네.”

그렇기에 소피아가 던져줄 수 있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방향성.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아멜리아의 몫이다.

당연히 실수도 있을 것이다.

본인이 미처 예상치 못한 일도 생기고,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도 있을 것이다.

“불안 불안하긴 한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사랑인걸.”

2.

소피아를 만나면 조금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다.

마법만큼은 아멜리아가 소피아보다 위계가 높았지만 현세를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한 소피아는 꽤 지혜로운 조언을 내어주곤 했으니까.

그러나 상담 이후 아멜리아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져 있었다.

고려하지 못했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추가로 짊어진 기분.

어느새 저택까지 돌아온 아멜리아는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중앙계단을 올랐다.

여기서 왼쪽은 아멜리아의 방.

오른쪽은 신시우의 방이다.

갈림길에 섰을 때 갑작스레 소피아의 조언이 떠올랐다.

무심코 그의 방문에 눈길이 닿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해줘.’

그가 좋아하는 것.

자연스럽게 아멜리아의 머릿속에서 재생된 것은 오딜의 펠라치오를 받으며 쾌락에 겨워하던 시우의 모습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라고?

희뿌옇게 망상이 전개된 아멜리아의 머릿속에서 오딜의 모습이 자신의 것으로 대체된다.

불쾌함.

아멜리아는 미간을 꽉 찌푸린 채 방안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제가 그런 걸 할 것 같나요?”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읊조린 아멜리아는 괜스레 씩씩거렸다.

천박한 행위이다.

오직 남자의 쾌감을 위해서 그 아래 무릎을 꿇고 더러운 곳을 빨아야 하는 거니까.

“.........”

하지만 그렇게나 좋아했었는데.

마녀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우가 단번에 가까워진 이유도 그것 때문일 텐데.

아멜리아는 고민에 빠졌다.

물론 하늘이 두 쪽나도 그의 물건을 입으로 빨 생각은 없었다.

힐끗.

“...큼.”

아멜리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찬장을 가득 채운 뭉툭한 원기둥처럼 생긴 유리병이었다.

동식물에서 직접 추출한 에센셜 오일로 아멜리아가 향수를 만들 때 활용하는 재료 중 하나이다.

아멜리아는 발꿈치를 들어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둥그런 모양이나, 두께나 길이나.

거북이의 머리 같은 부분은 없지만 대충 이 정도면 시우의 물건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제뿐 아니라 여러 차례 수업에서 발기한 그의 성기를 관찰한 바 있다.

그가 좋아하는 걸 해줘.

그가 좋아하는 걸 해줘.

그가 좋아하는 걸 해줘.

그가 좋아하는 걸 해줘.

머릿속에서 무수한 에코와 하울링을 남기며 되풀이되는 소피아의 조언.

담배로도, 옷으로도, 케이크로도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소피아에게 들은 대로 이상한 곳에서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멜리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살짝 입을 열었다.

이건 절대로 연습 같은 게 아니다.

남작이자 마녀인 자신이 그에게 이런 추잡한 짓을 해줄 리 없다.

그냥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해보는 거다.

그렇게 생각을 끝낸 아멜리아는 혀를 슬쩍 내밀어 에센셜 오일이 담긴 시약의 밑동을 핥았다.

매끈한 유리병 위를 말랑한 혀가 기어갔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

아멜리아는 행위의 적극성을 살짝 높였다.

오딜이 했던 행위를 떠올리면 대충 이런 식.

두 손으로 병을 잡고 조심스럽게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꽤 버거웠다.

턱이 빠져라 입을 크게 벌려야 했고 입안 공간이 좁아지면서 코로밖에 숨을 쉴 수 없다.

“흡....흐음...흠....”

이런 식으로 하면 되는 걸까?

오일이 찰랑이는 병을 손으로 고정한 채 슬쩍 고개를 움직여 본다.

이에 유리가 부딪치는 불쾌한 감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의외로 움직임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츕...츄윱....

사실 행위 자체의 난이도만 고려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물건을 깨끗하게 소독한 뒤에 이 유리병을 빠는 것처럼만 하면 된다.

손으로 쥐었을 때, 단단하고 커다랗고 또 묘하게 야하게 생겼던 그의 물건을...

불현듯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감각.

혈관을 타고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간질거린다.

손발의 말단이 찌릿거리고 괜스레 아랫배가 꼬이는 것 같다.

“.....훔.....”

입에 유리병을 넣은 채로 고민하던 아멜리아.

본격적으로 고개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추웁... 츄우....츄우웁....

오딜이 그의 물건을 빨고 있을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

이빨이 병에 닿으면 불쾌했기 때문에 최대한 크게 벌린 상태로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그럴 때마다 아까부터 몸을 간질이던 묘한 감각이 점점 강해졌다.

손에 꼽힐 정도의 일류 마녀답게 어느덧 아멜리아의 심상은 완벽하게 어젯밤의 밀회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오딜이 이렇게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면 시우는 기분 좋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 상태에서 계속 자극을 하다 보면 아마 희뿌연 아기씨를 흩뿌리겠지.

입안에 뭘 물고 있던 채로 계속 움직인 탓일까?

어쩐지 숨이 조금 가빠졌다.

가슴의 절반으로만 숨을 쉬는 기분이다.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허벅지를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본능적으로 다리 사이를 향했다.

왠지 여기가 가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위를 긁는 것은 전혀 고상하지 못한 행동이지만 아마 아주 시원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이트가운의 얇은 옷자락 위로 손을 뻗으려는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멜리아 님.”

“힉!”

꿈속의 정원을 산책하는 것처럼 잃어버렸던 현실감이 돌아온다.

아멜리아는 다급하게 입에 있던 병을 빼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당황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다가 말문이 막힌 시우가 서 있었다.

“.......”

“.......”

얼마나 정신을 쏙 빼놓고 있던 걸까?

방으로 들어올 때 문을 닫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가 문을 열고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조차 하나도 듣지 못했다.

-쨍그랑!

아멜리아의 손에 들려있던 병이 힘없이 미끄러져 깨져 나갔다.

아직은 괜찮다.

방문을 등지고 있었다.

무슨 행동을 했는지 막 방에 들어온 그에게는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병이 깨진 모습을 본 시우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아...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네?”

어찌나 당황했는지 목소리를 높여 시우를 만류하는 아멜리아.

처음 보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당황한 시우가 우뚝 멈추어 선다.

병이 깨져버린 이상에야 티가 날 리 있겠냐만 저건 아멜리아가 침을 듬뿍 발라놓은 것이다.

혹시 유리 조각을 치우다 그가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간 자세한 상황을 보지 못한 시우라도 눈치챌 여지가 있었다.

“제가 치울게요.”

아멜리아가 마법을 읊자 산산이 깨졌던 조각들과 바닥에 퍼졌던 오일 웅덩이가 쓰레기통으로 쏙 들어갔다.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아멜리아.

“무슨 일이죠?”

아멜리아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유감스러운 점은 그곳이 의자가 아닌 협탁이었고 마침 그 위치에 서브 조명용 램프가 있었다는 것이다.

-쨍그랑!

아멜리아의 엉덩이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진 램프는 아까 유리병처럼 바닥에 부딪혀 유명을 달리했다.

마침 융단이 깔려있지 않은 장소였던 것이 가장 큰 사망원인이었다.

“.........”

아멜리아는 한숨을 쉬더니 좀 전처럼 마법으로 그것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다시 태연하게 팔짱을 끼고 시우를 바라보는 아멜리아.

잠깐 고민하던 시우가 입을 열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긴 했는데... 바빠 보이셔서 죄송스럽네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럼 이만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끼이익 쿵!

문이 닫혔다.

그리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우의 행동을 본 아멜리아는 직감했다.

그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노라고.

“우우.......”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울고 싶어진 아멜리아는 한참이나 벌겋게 변한 얼굴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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