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1.
마녀가 된 이후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던 것 같다.
한 당돌한 노예가 밤시중을 거절했을 때도, 무척 당혹스럽고 부끄럽긴 했지만 이 정도로 머리가 복잡하진 않았다.
거칠게 폭풍이 부는 망망대해에서 돛단배 하나만 타고 표류하는 기분이랄까.
너무 많은 문제 중에 무엇을 먼저 떠올려야 할지조차 의문이었다.
“웃....우웃....”
도망치듯이 돌아온 방안.
아멜리아는 어느 한자리에 앉거나 눕지 못하고 정신없이 서성였다.
자신의 치기 어린 실수가 그에게 커다란 고난을 안겨주었단 것도.
시우가 마법을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 마법이 게헨나를 탈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모두 중요한 안건이었지만 지금 아멜리아의 머릿속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하나.
바로 쌍둥이와 시우가 마차에서 벌였던 일이다.
“어떻게 그런 더러운 짓을....”
촉각을 사용해 똑똑히 보았는데도 믿을 수가 없었다.
시우는 마녀나 견습마녀와 달리 영체가 아니다.
즉, 오딜이 맛있다는 듯이 입으로 쭉쭉 빨았던 곳은 소변이 나오는 더러운 신체부위라는 것이다.
구강성교.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위가 실존할 줄이야.
심지어 오딜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노예인 그의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쏟아지는 정액을 얼굴로 받아냈다.
아멜리아는 탁상 위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충격이 조금이나마 가시자 비로소 어지럽혀 있던 퍼즐 조각이 맞물린다.
아멜리아는 시우가 마녀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아멜리아가 시우에게 저지른 짓을 고려해도,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결코 호의적이라고 보기 어려웠으니까.
뿐만 아니라 그는 아멜리아를 제외한 그 어떤 마녀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마치 벽을 나누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동료인 다른 관리인이 몇몇 마녀와 문란한 관계를 갖는동안 절개를 지키며 지내왔던 것이다.
그런 그가 최근 쌍둥이와 부쩍 가깝게 지내는 이유.
아멜리아는 그 이유에 대해서 항상 궁리해왔다.
그리고 오늘 목격한 광경으로 그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남녀 간의 유대를 이어준다는 육체적인 관계.
쌍둥이와 신시우는 그걸 맺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불결하고 징그러운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 줄 정도로.
서로 알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함께 있을 정도로...
아멜리아는 정서가 불안한 어린아이처럼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책상에 앉았다.
빈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위를 장식한 서류들.
깃펜을 잡고 앉은 아멜리아는 마법을 연구하기 위해 잉크에 펜을 적셨다.
“........”
연구를 하자.
막혀 있던 부분에 대해서 풀어나가 보자.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이따금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질 때면 이렇게 앉아서 마법에 관해 궁리했다.
몇 년째 정체되어 있지만 오히려 이런 격렬한 감정이 연구의 몰두를 도울 때도 있었다.
-탕!
그리 다짐하기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멜리아는 거칠게 깃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함께 소풍을 갔던 것도...”
퍼득 떠오른 사실.
아멜리아의 제안을 거절하고 쌍둥이와 영산으로 소풍을 갔던 시우.
거기서 무엇을 했겠는가?
보지 않아도 뻔하다.
홀딱 벗고, 서로의 알몸을 보며 주무르고, 입으로 성기를 핥고 빨고 또...
아멜리아의 고운 손가락이 말려 들어 가며 주먹을 쥐었다.
왜.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문득 깨달은 자신의 마음에 아멜리아는 또다시 혼란스러웠다.
무엇하나 해결되는 일 없이 복잡해지기만 하는 감정의 진창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
지금까지 정신을 다잡지 못해 떠올리지 못했던 사실.
견습마녀는 남성과 성관계를 할 수 없다.
낙인이 새겨질 그릇, 즉 자궁 내부에 마력이 침투할 경우 섬세한 그릇의 구성이 헝클어지며 낙인을 짊어질 수 없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워낙에 충격적인 모습을 엿보았던 탓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직접 성교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철없는 쌍둥이라도 마녀가 되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시우와의 성관계에 집착하지 않겠지.
그 사실을 떠올리자 마음속 조바심이 조금이나마 가셨다.
아멜리아는 한결 침착해진 분위기로 담배를 하나 꺼내고 불을 붙였다.
칼칼한 연기가 폐부에 스며들자 조금 더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쌍둥이는 시우가 조수로 동석한 수업에 유독 흥미를 보여왔다.
그 방향성이 마법을 향한 탐구심이 아닌 남성의 육체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것 정도는 아멜리아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혹시 시우는 쌍둥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협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죠.”
아멜리아는 자신의 사고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정의 순간 그는 분명 기분이 좋아 보였다.
게다가 오딜과 시우 사이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마냥 일방적인 협박 관계라고 여기기엔 어려웠다.
이하 정리.
시우는 쌍둥이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교가 아닌 유사 성행위 정도.
시우과 쌍둥이와 부쩍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 밀회에서 기인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했을 땐, 한 모금도 들이마시지 않은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 가 손끝을 얼얼하게 만들고 있었다.
-덜컹!
그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여는 듯했지만 오감이 바짝 곤두서 있는 아멜리아에게는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시우가 돌아온 것이다.
아멜리아는 죽은 척하는 초식동물처럼 꽁꽁 굳은 채 밖의 기척을 살폈다.
중앙계단을 거쳐 복도를 지나며 점점 멀어지던 인기척은 시우의 방문이 닫히는 것으로 완전히 끝이 났다.
“후우....”
아멜리아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럴 일은 정말 없지만 만약 그가 방문을 열고 이 안에 들어왔더라면 아멜리아는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이런 심정으론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조언이 필요했다.
2.
어느덧 떠오른 샛별을 등진 채 달려온 아멜리아가 도착한 곳은 소피아의 숙소였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내부, 사슴 숲 옆에 위치한 그녀의 저택은 예전에 아멜리아가 살았던 오두막을 연상케 할 정도로 아기자기 했다.
-똑똑똑
나무문의 문고리를 두들기자 조금 뒤에 문이 열렸다.
“누구야? 이 시간에...”
푹신해 보이는 고양이가 그려진 파자마를 입은 소피아가 나른한 목소리로 나타났다 .
그녀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문을 열다가 불청객의 정체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멜리아가 먼저 소피아를 찾아온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기사였기 때문이다.
“어머, 아멜리아?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녀의 몰골을 보고는 더욱 놀랐다.
복도에서 걷는 것조차 기품있던 아멜리아의 옷자락과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정황상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았다.
게다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표정만 봐도 보통의 일이 아니다.
“내가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가진 마녀라는 건 알아줘... 라고 할 때가 아닌가 보네, 들어와.”
“........”
아멜리아는 대답도 없이 소피아가 열어준 문으로 쏙 들었다.
벽난로가 타고 있는 안락한 오두막 곳곳에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손님이 왔는데도 깨지도 않고 전장 위 대들보에, 장롱 위에, 테이블 밑에서 각자 꿈나라 삼매경.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달라붙지 않는 것은 아멜리아에게 호재였지만, 그런 소박한 호재에 감사할 만큼의 정신머리는 없었다.
“커피? 홍차? 코코아? 뭐가 좋아?”
벽난로 옆 소파에 아멜리아를 앉혀둔 소피아는 찬장을 뒤지며 묻는다.
“급해요, 아베느가.”
“잘 자던 사람 깨웠으면서 쌀쌀맞긴.”
소피아는 웃으며 차를 준비하는 대신 아멜리아와 마주 앉아 무릎 담요를 덮었다.
사실 소피아도 도대체 무슨 일이 아멜리아를 이렇게 다급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
그러나 급하다고 말한 주제에 아멜리아는 침묵만을 지킬 뿐이었다.
막상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이다.
“내가 맞춰볼까? 신시우 조수님 문제지?”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한껏 커진 아멜리아의 눈.
그리고는 아주 작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잡아떼는 아멜리아가 저렇게 순순히 인정할 줄이야.
천하의 소피아도 조금 놀랐다.
“설마... 했니? 조수님이 덮쳤어? 아니면 네가...?”
“천박한 소리 마세요. 그런 거 아니니까.”
찌릿하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본 아멜리아는 몇 번이나 망설이더니 오늘 봤던 모든 것을 소피아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조수님이 탈출을 위한 자성 마법을 창시해 언제 도망칠지 모르는 상태이고, 그리고 견습마녀와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고?”
“그래요.”
아멜리아는 뒤늦게 무엇인가를 덧붙였다.
“견습마녀이니 삽입 같은 건 없이 유사 성행위를 한 것 같아요.”
소피아는 아멜리아의 추측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남자와 연결될 수 있는 구멍이 생식기만은 아니니 단정 지을 수 없지.
구태여 말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제가 무슨 이상한 말 했나요?”
“아니, 아니야. 그래서....”
아직 아멜리아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이르다 싶었기에 소피아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뇨?”
“이 늦은 시간에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헐레벌떡 뛰어서.”
“헐레벌떡 뛰지 않았어요.”
“아무튼 간에.”
한참을 기다려 주었지만 아멜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못 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감이 잡히질 않았기에 소피아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귀찮고 시시콜콜한 조언은 뜻밖의 곳에서 도움이 되는 일이 많았으니까.
“오늘 일을 보고 나서 화가 났어?”
아멜리아는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겨를에 찬란한 금발이 슬쩍 흔들린다.
“왜 화가 났을까?”
“신시우는 제 전속 조수이니까요.”
조금 전과는 다르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 또렷한 확답이 들려왔다.
소피아는 서투른 아멜리아를 위해 차근차근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녀는 영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니까.
“그럼 네 소유인 신시우가 다른 여자와 놀아나고, 또 네 밑에서 벗어나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이야?”
“그래요.”
“조수님이 네 전속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잖아. 만약 조수님이 전속이 아닐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화내지 않았을 거야?”
“당연하....”
아니다.
설령 신시우가 전속이 되기 전에도 이런 일을 목격했더라도 혼란스럽고, 머리가 복잡해지고, 영문모를 분노가 치솟았을 것이다.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자신의 사고에서 모순을 발견한 것이다.
그 모습에 소피아는 빙긋 웃었다.
“참 이상하지? 사람 마음이라는 건.”
“........”
“네 말대로라면 화낼 일은 어디에도 없는데도 화가 났을 거잖아.”
“...전속이 되기 전에도 화났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전속으로 삼으려고 눈여겨 보고 있던 노예였으니까요.”
따뜻한 소피아의 눈길에 아멜리아는 엉겁결에 이유를 찾아냈다.
스스로의 말이 구차한 변명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왜 눈여겨 보았는데?”
“그게 왜 궁금한 거죠?”
소피아는 포근한 눈빛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스승님의 것과 조금 닮아있어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길을 피했다.
“중요하니까. 감정을 느끼는 것만이라면 동물이라도 할 수 있어. 우리 고양이들도 날 무척 좋아하거든.
하지만 그 감정이 왜 생겨났는지 자신을 타자화해 분석할 수 있는 게 인간의 특권이잖아.”
“저는 아멜리아 메리골드, 마녀예요.”
“알아, 그 전에 한 명의 인간이지.”
“..........”
고민에 빠진 아멜리아를 보고 소피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가져올게. 아무래도 좀 길어질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