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1.
한걸음에 수십 미터.
아멜리아는 어깨 위로 덮은 케이프와 나이트가운을 휘날리며 언덕길을 달렸다.
아카데미의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본다면 뒤로 자빠지리라.
그 고고하고 고상한 아멜리아가 달밤에 달음박질이라니.
어쩌면 할일 없는 마녀들의 일상이나 찍어내는 게헨나의 가십지에 실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멜리아는 그런 시시한 것을 생각할 겨를이 아니었다.
시우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도 아멜리아가 당장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자성 마법을.
게다가 그 마법을 게헨나 탈출을 위해 사용하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겨우 노예 하나가 도망가는 것뿐이다.
이렇게 호들갑 떨 필요도 없고 놀랄 필요도 없는데, 분명 머리는 그렇게 말하는데 마음이 진정되질 않는다.
너무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우선 그의 얼굴을 보고 똑똑히 물어봐야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전까지는 아무리 되뇌어도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
축사에서 저택으로 일직선으로 난 지름길.
장미 정원을 뛰어넘어 하늘을 날다시피 달리던 아멜리아가 문득 멈추어 선다.
아까는 다른 경로로 이동했기에 발견하지 못했고, 지금도 워낙 빠르게 지나가는 통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신경 쓰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멜리아는 땅에 착지한 채 물도마뱀 걸음을 해제했다.
정원의 분수대 옆에 불쑥 주차된 마차 한 대.
마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보란 듯이 가문의 상징인 쌍조가 음각되어 있었으니.
“제머나이 백작가...”
사실 평상시였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주위 대부분의 것에 무신경한 아멜리아라면 백작가의 마차 정도야 어디에 있건 그다지 신경쓸 일 아니다.
그래서 아멜리아도 한 번 지나쳤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튀어나와 뇌리를 스치는 시우의 한 마디.
‘혹시 제머나이 백작님께 뭔가 들으신 게 있나요?’
오늘 숙소로 돌아온 시우는 케이크를 먹던 중 제머나이 백작을 언급했다.
그때는 실없는 말이라 생각해 넘겼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지 않은가?
뜬금없이 제머나이 백작을 언급한 시우, 한밤중에 창문을 열고 사라진 시우, 그리고 늦은 시각 아멜리아의 저택 근처 공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마차.
그가 요즘 오딜 오데트 쌍둥이와 사이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
직감이었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여자의 촉.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한 가슴을 진정시켰다.
별일 아닐 것이다.
사실 왜 이렇게 불안해진 것인지도 스스로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아멜리아는 마차 문손잡이를 잡고 숨을 크게 쉬었다.
일단 들어가 보는 거다.
안에 백작이 있다면 적당한 핑계를 대서 대화를 나누고, 꼬맹이들이 있다면 ‘이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다니 과제가 부족한가 보네요’라고 말하며 추가로 과제를 내주자.
전혀 위축될 필요 없다.
사실 불안해할 일 따위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삐걱...!
아주 조용히 문을 연 아멜리아.
공간 굴절 마법이 걸려 있는 탓에 마차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입구가 한번 꺾여 있는 탓에 내부가 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윽고 안에서 흘러나오는 미지근한 공기.
제법 쌀쌀한 바깥 날씨와는 대비되는 눅눅하고 습기 찬 공기였다.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진득할 정도의 밤꽃 냄새와 땀 냄새,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짙은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나지 않게 아주 조심히, 조금 더 문을 열자.
마차에 둘러진 방음 결계가 흐트러지며 안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츕....츄웁....추릅...”
“하아....”
이 마차의 습기만큼이나 축축한, 태어나서 들어본 적 없는 요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마치...
무언가를 열심히 빠는 듯한 소리? 그리고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섞인 듯하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멜리아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하.. 조수님.... 내... 좋아...?”
거리가 좀 있었기에 전부 듣진 못했지만 그건 오딜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조수님?
그 순간 아멜리아는 등골을 쫘르륵 타고 올라오는 한기를 느꼈다.
무언가 이상하다, 이 이상을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는 본능의 외침이었다.
그럼에도 아멜리아는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렇게 싸놓고... 아직도 엄청 건강하네? 그렇게 내 얼굴에 싸고 싶어?”
“솔직히... 좀 힘들긴 하네요...”
그렇게 싸놓고? 얼굴에 싸고 싶어?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일련의 대화들이 지나간다.
게다가 오딜의 말에 답하는 남자는 예상대로 시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의 목소리를 잘못 들을 리는 없으니까.
그는 이 늦은 시간에 쌍둥이 자매와 마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아멜리아는 케이프의 끝자락을 구깃 쥐었다.
아까 그렇게 찾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주인인 자신을 두고 다른 마녀와 희희낙락 중이라니!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은 저만치 사라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만이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이 또한 생전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이었다.
“쭈웁, 쭈우우웁...조수님은 기분 좋은 게 얼굴에 다 드러나서 좋아.”
하지만 어쩐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탐탁지 않다.
안에 들어가서 뭘 어떻게하지? 라는 생각이 드니 발걸음이 턱 멈췄다.
게다가 그렇게 노발대발을 한들 야밤에 사라진 노예를 찾아 동네방네 뛰어다니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그와는 별개로 불길한 호기심이 울컥울컥 자라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체통 없는 짓임을 자각하면서도 마법을 펼쳤다.
‘마법의 촉각’.
마력을 사용해 또 다른 감각기관을 체외에 만들어 내는 것.
아멜리아의 경우 향수의 분말처럼 아주 작고 세밀한 ‘색입자’들이었다.
순식간에 만들어낸 ‘청’ 입자들.
이 정도의 청 입자라면 거의 육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현상을 관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만들어낸 입자들을 시신경과 링크한다.
그만한 입자를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낸 아멜리아는 후속조치까지 확실히 취했다.
‘적’ 입자가 손에서 피어난다.
허공에 흩날리던 두 색의 입자가 섞이며 완전히 투명해졌다.
이 적 입자는 모든 마법의 기척을 깔끔하게 없애 줄 것이다.
22위계에 달하는 아멜리아는 그 모든 입자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고위계의 마녀가 아니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마법의 사용이었다.
하물며 견습마녀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후우...”
아멜리아는 작게 입으로 바람을 불어 그 입자를 방안으로 밀어 보냈다.
충분할 정도의 입자가 방안을 채우자 마치 감시카메라를 보는 것처럼 방 내부의 상황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했다.
“.......!”
아멜리아는 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꽉 틀어막아야 했다.
보인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아멜리아의 예상대로였다.
신시우, 오딜, 오데트.
세 명은 공통점이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는 점이다.
아멜리아를 놀랍게 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점잖게 차를 마시며 알몸 다과회를 하고 있더라면 아멜리아는 그래도 간신히 이해력을 쥐어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부터 들려오던 축축한 물소리.
무엇인가를 물고 빠는 소리의 근원이 무엇인지 확인했을 땐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오딜은 시우의 물건, 그러니까 성기를 입으로 물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혀와 입술을 이용해 정성껏 성기를 빨고 있었다.
그의 물건은 핏줄이 선 채로 아주 빳빳이 서 있었다.
사실 성기 자체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시우를 교보재로 알차게 써먹은 아멜리아는 10번이나 그의 물건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사정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다.
지금 그의 성기는 그 어떤 때보다 컸고, 붉었으면 또 유달리 징그러워 보였다.
사자가 사슴의 내장을 뜯어먹는 것을 엿보고 있는 기분이다.
속이 니글거리고 괜히 몸이 오싹거렸다.
“기분 좋지?”
시우를 올려보며 묻는 오딜.
그렇구나.
저건 구강성교이다.
아멜리아는 가까스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해괴망측한 행위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여성이 남성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해 주는 행위.
아주 예전 오두막의 골방에 틀어박혀 있던 무슨 지침서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대충 훑어 본 뒤 흥미가 떨어져 고스란히 땔감으로 썼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허황된 것이라 치부했던 지침서의 내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제머나이의 견습마녀이자 아멜리아의 담당학생인 오딜이 일개 노예에 불과한 시우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그의 성기에 봉사하는 것이다.
“읏... 오딜 님...”
상황을 부정하려는 듯 자꾸만 현실에서 멀어지려는 아멜리아를 기분 좋은 듯한 시우의 목소리가 바로잡았다.
“페헤... 쌀 것 같아?”
자지를 물고 빨고 핥던 오딜은 그의 사정을 유도하며 매우 음란하고 저속하게 속삭인다.
“특별히 내 고아한 얼굴에 씨를 뿌리도록 허락해 줄게.”
또다시 한 박자 늦게 아멜리아의 인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얼굴에 싼다. 씨를 뿌린다.
아까 오딜이 했던 말이 겹치며 비로소 그들이 하려는 행위를 짐작해냈다.
그리고.
울컥울컥 비처럼 쏟아진 시우의 정액이 오딜의 얼굴을 잔뜩 더럽혔다.
불결하게만 보이는 남성의 체액을 피하지도 않고 역정을 내지도 않은 채 얌전하게 받는다.
마치 오래전부터 해 왔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멜리아는 촉각을 거둬드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걷은 것이 아니라 집중력이 흩어지며 자연스레 대기 중에서 소멸한 것이다.
멍하니 문을 잡고 있자 그 뒤로도 대화들이 속속 귀를 통과해 지나간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해야 할 말이 많았다.
혼자 몰래 마법을 배우던 일에 대해 추궁해야 했다.
생각보다 가혹하게 그를 괴롭혔던 일에 대해 사과도 해야 했다.
그러나 마차 안의 광경을 본 순간 그저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
아멜리아의 손에 힘이 풀리며 마차 문이 쾅 닫혔다.
퍼득 정신을 차린 아멜리아는 뒤를 돌아 마치 도망치듯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2.
광란의 밤, 그리고 모든 뒷정리가 끝난 뒤.
시우는 쌍둥이를 포탈까지 바래다 주는 중이었다.
그 중 오딜은 시우의 등에 아기처럼 업혀 싱글싱글 웃고 있다.
가위바위보에서 졌다는 이유로 시우의 선물꾸러미를 쥔 채 걸어가야 하는 오데트는 분한 듯 죽상이었지만.
“오딜 님.”
“응?”
“아까 무슨 소리 못 들으셨나요?”
“뭐가?”
“오딜 님 얼굴에 그...”
“내 얼굴에 뭘?”
짓궂게 시우를 놀리는 오딜.
“오딜 님 얼굴에 사정했을 때 말입니다... 마차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요.”
“설마요, 이 시간에 여길 지나다니는 사람이 어딨다구요.”
“그도 그런데...”
그렇지만 분명 문이 닫히는 소리 같았다.
시우는 저도 모르게 흘낏 아멜리아의 숙소 쪽을 보았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아... 진짜 이렇게 좋은 걸 알아버려서 어쩌나. 조수님 그냥 여기서 살자. 우리가 마녀가 되면 밖으로 데려가 줄게.”
“정말요?”
“응, 한 20년, 아니 15년 정도만 더 기다리면 돼.”
“...됐습니다.”
솔깃했던 제안이지만 15년 20년이라니 그걸 언제 기다리겠는가?
“그때쯤이면 오딜 님과 오데트 님도 성숙하셨겠네요.”
“그렇지, 견습마녀의 성장은 인간보다 조금 느리니까. 아마 그때쯤이면 가슴도 더 커질걸?”
음, 뭔가 들으면 안 될 걸 들은 것 같은데.
시우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도착했습니다.”
“고마워.”
쌍둥이를 포탈 관리소의 입구까지만 데려다준 시우.
오딜은 폴짝 시우의 뒤에서 뛰어내렸다.
꿈만 같았던 하룻밤이 지났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오데트와 시비가 붙은 오딜이 말싸움을 하는 것이 보인다.
암만 봐도 귀족 가문의 영애.
저런 쌍둥이를 동시에, 그것도 뒷구멍으로 취하고 다가 피날레로 얼굴에 정액까지 뿌리다니...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아마 평생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겠다.
게헨나에서 살면서 눈만 높아져서 말이지.
“오늘 하루 저도 좋았습니다.”
“나도 좋았어.”
“조수님이 제일 고생하셨죠, 뭘.”
“다음에 혹시라도 시간 나면 또 놀러 올게.”
쌍둥이들이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빼서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은근한 기대감에 부푼 시우.
“조수님!”
“네?”
손을 흔들며 포탈을 향해 걸어가던 쌍둥이.
이제 헤어질 분위기에서 갑자기 오데트가 시우를 불렀다.
도도도 달려온 오데트는 시우의 한쪽 뺨에 쪽 뽀뽀를 하고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어요.”
“아, 네....”
얼떨떨하게 뺨을 쓰다듬은 시우.
오데트는 활기차게 팔을 흔들며 못마땅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는 오딜에게로 달려갔다.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