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1.
거대한 창.
극한까지 응축되고 가속된 마력은 숭고하게 빛나는 하나의 선이 되었다.
바라보는 눈을 멀게 할 정도의 극광이 허공을 내달린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호문쿨루스는 저도 모르게 팔과 함께 그림자를 뻗었다.
특별히 방어를 취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고양이가 호기심에 레이저 끝을 쫓아가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뻗어진 팔은 폭류와 같은 마력의 흐름에 가루가 된다.
마력 자체에는 아무런 공격능력이 없다 해도 이 정도의 농도와 이 정도의 압축률이라면 그 자체로 거대한 병기나 다름 없다.
끝부터 끓어올라 분해되는 손끝.
빛의 창은 새벽의 어둠을 걷어내는 여명처럼 그림자를 쫓아냈다.
호기심으로 데굴거리는 세 개의 붉은 눈을 뒤덮은 마력의 분류는.
그림자, 괴물의 몸체, 신체의 첨단에 이르러 모든 것을 불사르고는 사라졌다.
2.
시우는 소리없는 빛의 폭발에 삼켜진 호문쿨루스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한 것을 지켜보았다.
-털썩
마라톤을 완주한 심정으로 풀밭 위에 털썩 무릎을 꿇는다.
"우...우웩...! 우웩...!"
간신히 몸을 지탱하던 긴장의 끈이 느슨해지자마자 구역질과 함께 신물이 역류했다.
오늘 참 미친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호문쿨루스를 물리치기 위해 시우가 취한 비책은 그 중에서도 가장 미친 짓이었다.
그 순도 높은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몸 안의 마력 회로를 하나의 '길'로 제공했다.
아주 작은 계산 실수만 있었더라도 과부하 된 마력에 의해 몸이 터져나가거나 영원히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모든 걸 대체로 성공한 지금도 주화입마의 전조에 들어선 것 같다.
"뒤지겠네."
시우는 토사물을 피해 몸을 뒹굴돌려 드러누웠다.
전신의 혈관이 맥박을 따라 부풀었다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탈력감, 버섯 도핑까지 이용해 뇌를 혹사한 탓에 오는 번아웃, 그리고 거대한 마력이 잔뜩 날뛰고 가 삐걱이는 몸까지.
"크큭...크크크큭...."
그럼에도 시우는 오랜만에 중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되어 맘껏 웃었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혼자서 열심히 마법을 연구하긴 했지만 그 실력을 확인하거나 증명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일 만큼 성대한 성과로 말이다.
평생 봇만 패면서 '나 시발 잘하는 거 맞나?'라고 고민했는데 모든 배치전을 압도적으로 캐리하며 승리한 기분이다.
15 위계 즉, 자율방어를 지닌 마녀가 아니라면 잡을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한다는 호문쿨루스를 격퇴한 것이다.
쌍둥이조차 고작 멈춰 세우는 게 고작이었던 무시무시한 괴물을 말이다.
그때 저 멀리부터 쌍둥이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조수니이임!"
"조수님! 조수님! 조수님!"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자 언덕을 오르며 시우에게 달려오는 쌍둥이의 모습이 보인다.
거의 슬라이딩하다시피 멈춰선 오딜은 앉은 자세의 시우를 꼭 껴안았다.
뺨을 찬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다급하게 묻는 오딜.
"괜찮아? 어디 이상한 곳은 없고?"
"조수님, 이거 몇 개로 보여요? 괜찮으시죠?"
그에 질새라 오데트도 한쪽 팔을 끼고 매달린 채 시우 앞에 손가락 세 개를 흔든다.
시우는 피식 웃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렸다.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쉰 쌍둥이는 이번에는 펄쩍펄쩍 날뛰기 시작한다.
두 뺨이 발갛게 상기된 걸 보니 시우보다도 들떠 있는 듯했다.
"계획을 들었을 땐 그냥 미쳤구나 했는데. 조수님은 내 생각보다 멋지게 미친 사람이었어!"
"조수님이 물리쳤어요! 정말 저 호문쿨루스를 물리치셨다구요!"
오데트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오딜 역시 연신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잘했어 조수님."
"믿고 있어다구요!"
어찌나 시끄럽게 꺅꺅거리던지 성취감에 불타던 시우가 좀 차분해질 정도였다.
쌍둥이가 대신 한껏 기뻐해 주었으니 말이다.
한동안의 자축 이후 시우는 쌍둥이가 건넨 손을 각각 잡고 일어섰다.
"하마터면 이대로 죽는 줄 알았어, 조수님 덕분이야."
"조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저희 모두 큰일 났을 거예요."
"오딜 님과 오데트 님이 주의를 끌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그건 맞지."
"맞아요! 저희가 미끼가 되는 동안 저격이라니! 그래도 대단해요!"
너무 뻐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적당히 겸양을 떨어주었는데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자축과 함께 호문쿨루스가 소멸한 공터로 발걸음 옮기는 세 사람.
워낙 강렬한 힘의 분류였기 때문인지 마력의 창을 쏘아 보낸 일대는 포탄을 맞은 것처럼 땅이 뒤집혀 있었다.
구태여 이곳으로 다시 온 것은 당연히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열심히 레이드를 뛰었는데 당연히 보상도 받아가야지.
시우와 쌍둥이는 풀쩍 구덩이 안으로 뛰어내렸다.
그 안에는 은은한 검은색으로 빛나는 알이 하나 있었다.
크기는 대충 달걀 정도 될까?
다만 형태와 크기가 달걀과 비슷하다는 것이지 생김새는 캐츠아이에 가깝게 생겼다.
얇은 유리로 되어있는 듯한 알의 내부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검은 그림자가 갇혀있었다.
"이게 그 창조의 마녀의 유산인가요?"
"네, '그노시스(γνῶσις)의 알'이네요."
"그건 또 뭐죠?"
알을 둘러싸고 쪼그려 앉은 셋은 한참 동안 전리품의 신비로운 모습을 구경했다.
"호문쿨루스를 사냥하면 나오는 유산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어. 내 오르골처럼 아티팩트이거나, 아멜리아 님의 향수처럼 마법의 묘리가 담긴 포션이거나, 마법진이 휘갈겨진 종이 쪼가리인 경우도 있지."
"그노시스의 알은요?"
"일종의 기억 저장 장치야. '낙인'의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할까?"
"새로운 마법에 대한 지식이나 깨달음을 직접 전수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들었어요."
그제야 몇몇 마녀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호문쿨루스 사냥에 혈안이 된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요컨데 이 조그마한 알이 일종의 스킬북이라는 말이 아닌가?
옆에서 오딜이 팔을 뻗어 알을 들어 올렸다.
서로 눈이 마주친 쌍둥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협의를 끝냈다.
"자, 이건 조수님 거야."
"그래도 되나요?"
내심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 가치를 지닌 물건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마법에 대한 탐구심과 집착은 견습마녀인 쌍둥이의 편이 훨씬 강할 터.
게다가 계획을 짜고 실행한 것이 시우라해도 목숨을 걸고 호문쿨루스의 시선을 끌어준 것은 쌍둥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순순히 건네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나도 욕심이 나긴 하는데... 그래도 이건 조수님에게 주는게 맞는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조수님이 없었더라면 전 아직까지 벌벌 떨고만 있었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긴 뭘, 우리가 더 고맙지."
"맞아요! 조수님 엄청나게 멋있었어요."
오데트는 친애가 담긴 눈빛으로 엄지를 척 날리더니 시우의 손바닥에 그노시스의 알을 넘겨주었다.
거의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는 알이 손 위에서 빙글 구르자 안을 채운 그림자가 우주의 은하처럼 회전한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그노시스'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강렬한 사념이면 충분하다고 해요."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은 학자 본연의 본능이다.
시우는 비록 만개하던 와중 납치당해 수학자로서의 꿈을 거세당해 버렸지만 대신 마법이란 새로운 학문에 그 열정을 쏟고 있었다.
게헨나에서 탈출하게 되면 더 고위 마법을 배울 수 없게 된다는 점이 못내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기회는 너무나도 기대되는 이벤트다.
시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알을 꽉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몸이 어둠 속으로 삼켜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간 속으로 의식이 빨려 나가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은 시우.
"뭐, 뭐야...."
다시 눈을 떴을 때 존재하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고 공허한 공간.
시우의 몸은 그 공간 한가운데를 둥둥 유영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굉음에 시우는 몸을 돌려 굉음의 근원지를 보았다.
무중력처럼 두둥실 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하는 것만으로 몸이 저절로 방향을 틀고 움직인다.
"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무지의 어둠을 물리치는 지혜의 황금빛.
원근감이 희박해지는 공간 속에서도 전혀 바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구조물의 정체는.
온갖 룬 문자와 직선과 곡선, 점과 면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었다.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맞물린 마법진의 각부는 천천히 돌아가면서 커다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임에도 강렬한 기시감을 느낀다.
시우는 거리감을 앗아가는 거대한 구조물의 정체를 곧장 알아보았다.
저건 시우가 3년 동안 연구하고 만들어가던 대규모 마법진이었다.
이 공간은 시우가 탐구하고 연구해 왔던 마법적 지식과 지혜의 축적이 가시적으로 구현되는 장소였던 것이다.
시우가 아직 마법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구조물 역시 완성된 모습이 아니다.
어둠으로 가지를 뻗은 장치의 끝부분은 흐릿한 어둠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군데군데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헛도는 톱니바퀴도 보였다.
전율.
자신이 연구하던 마법이 이토록 경외감을 품게 하는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안계가 트이는 기분이다.
숲 안에 갇혀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내려보는 풍경이 시우에게 또 다른 영감을 안겨주었다.
지금이라면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잘못 방향성을 잡은 파트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더 높은 경지를 향해 고쳐나갈 수 있었다는 자신감이 피어났다.
신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우의 마법진의 4분의 1 정도 되는 커다란 알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이즈는 격이 달랐지만 그 형체와 모습은 정확히 시우의 손에 들려있던 그노시스의 알과 일치했다.
그 안에서 맥동하던 그림자는 같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피어오르며 유리막을 벗어나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아..."
기묘한 감각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잊었던 것을 다시금 깨닫는 것처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새로운 지식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
공간에서 너울치는 그림자가 새로운 구조물을 구축해가는 동안.
인지가 확장된다.
사고가 깊어진다.
혼자서라면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렸을지 모르는 새로운,
묘리,
순리,
법칙,
진리가 뇌간을 파고든다.
이것이 마녀가 보는 세상.
그노시스의 알이 시우에게 지식을 전수함에 따라 본디 낙인이 없는 그가 발을 들일 수 없던 세상 속으로 초대된 것이다.
어느새 시우의 우주에 또 다른 건축물을 세운 그림자는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이 어둠 속에 녹아 사라진다.
호문쿨루스가 내뱉었던 그림자가 어떻게 마법을 무효화시킬 수 있었는지.
그런 무수한 마법진을 마땅한 마법 동력도 없이 개별 유지할 수 있던 방법이 무엇인지.
그토록 조그마한 마법진이 서로의 구성에 간섭하지 않고 물처럼 흐를 수 있던 법칙이 무엇인지.
깨닫고 깨닫는다.
그림자의 건축물이 완벽하게 모습을 갖추기 전에,
시우는 다시금 의식이 빨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헛!"
이 공간에 입장하던 때와 그대로다.
그저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의식은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자유롭게 떠다니던 몸이 중력에 거부감을 느끼고 한없이 열려 확장되던 사고는 주변의 불순물을 받아들인다.
눈을 초롱거리며 시우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모습이 코앞에서 보였다.
"......."
새로운 힘이 생겨났다.
새로운 지식이 생겨났다.
시우는 새삼스레 자신의 손을 보며 그렇게 읊조렸다.
"아름답지? 조수님이 보고 온 곳이 바로 '아인(אין)'이야. 현현하지 않는 삼계의 일부이자 평범한 인간 관념으로는 관측도 판단도 할 수 없는 '0'의 세계지."
쌍둥이는 같은 시우와 같은 세계를 공유했다는 것이 마냥 기쁜 듯했다.
라티푼디움을 보여줄 때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인식할 수 없다고 해서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요. 아인은 마법을 다루는 모두의 관념에 잠들어 있어요."
"조수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로 태어난 게 너무 아까워. 마녀의 후손으로 태어나 낙인을 계승했다면 꽤 이름을 날렸을 텐데."
그제야 시우는 쌍둥이가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넘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우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준 건 아니지만 진정한 '마법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할게."
쌍둥이는 아무런 질투도 없이 순수한 축하의 의미를 보이며 활짝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