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1.
"저놈을 잡는 겁니다."
시우의 침착한 말과 함께 오데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금까지 목숨을 위협하던 호문쿨루스 앞에 다시 선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냥 이대로 숨어 있으면 안 될까요?"
오데트의 반응은 예상대로 였다.
딱히 그녀를 질책한 생각은 없다.
목숨이 걸린 상황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니까.
"좋은 방법이 있는 거겠지?"
"어, 언니까지 왜 그래? 우리가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해?"
"오데트, 진정해.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거야. 이대로 앉아서 벌벌 떨고 있을 순 없잖아."
오딜은 겁에 질린 오데트를 끌어안으며 시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까 들어 올렸던 나뭇가지로 흙 위에 마법식을 적어 내렸다.
"안개 속에서 도망칠 때, 연막을 치고 남은 마력으로 검은 그림자를 샘플링했어요."
안개 속으로 무차별적으로 발출된 세 자루의 창은 시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었지만 시우는 재빠르게 창의 궤적에 남아있는 검은 그림자를 분석했다.
"아마 저 그림자가 괴물 고양이의 자성마법일 겁니다. 아까 오데트 님의 공격마법도, 구조신호를 보내는 마법도 모두 저 그림자에 닿자마자 구성이 깨지며 흩어져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시우는 그림자의 구조를 형상화한 분석식을 보여주었다.
"저 그림자는 단일 마법식이 아닙니다.
입자 하나하나가 모두 아주 작은 마법식이고 그게 모여 만들어진 거예요.
이미지로 나타내자면 무수히 많은 가시가 돋아난 구 형태인데 끝부분이 갈고리처럼 휘어서 다른 마법에 무분별하게 달라붙어요."
워낙 짧은 순간에 관찰한 것이기 때문에 자세히는 살피지 못했지만...
"일정 이상으로 정교한 마법이 그림자에 닿게 되면 역으로 침식을 시작합니다.
제멋대로 패스를 잇고 식의 구성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쇼트를 일으키죠.
이 정도의 다발적인 오류가 단번에 생겨나면 즉흥적인 피드백도 소용이 없잖아요? 그냥 마법이 깨져나가는 거예요."
-쿠쿠쿵....!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조금 전보다 가깝다.
설명을 듣던 오딜과 오데트는 무엇인가 깨달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근데 조수님, 다중 마법진인 걸 알았다는 건 그렇다 쳐도... 모양은 어떻게 알았어?"
"맞아요! 아무리 샘플링을 했다 해도 모양까지는 볼 수 없을 텐데..."
"오데트 님의 신호마법이 깨지는 모양새와 간섭의 순서를 떠올려서 역산해 봤어요. 이런 형태가 아니면 마법식이 동시다발적으로 붕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
"......"
단언하는 시우의 말에도 쌍둥이는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간섭하는 모양새를 보고 역산해내 마법식의 형태를 추론한다?
폭파사가 무너지는 건물의 형태를 보고 건물 어디 어디에 폭약이 설치되었는지를 추론하는 것보다 비현실적이다.
잠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민하던 오딜은 눈을 번쩍 떴다.
"좋아, 계획이 뭐야? 밑준비가 필요해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 거겠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숨어있다가 호문쿨루스를 사냥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구태여 선택지를 두 가지로 나눠 제시했을 리 없다.
"언니! 너무 위험한 일이야!"
"여기서 얼마나 오래 도움을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가 갈기갈기 찢어진 뒤에야 오실지도 모르지.
앉아서 죽을 바에는 뭐라도 해보는 게 좋잖아?"
"그냥 도망가자. 라티푼디움을 나가는 방법도 있잖아...!"
오데트의 말에 오딜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라티푼디움의 끝자락이야. 저 괴물을 지나쳐 가야 하는데 도중에 걸리면?"
확실히 시우가 제안한 사냥법에는 착실한 밑준비가 필요하다.
도망치거나 숨으면서 제 2안으로 채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망치다가 걸리는 건 그냥 숨어 있는 것보다 최악이에요. 그땐 정말 방법이 없을 겁니다."
"그럼, 정말 잡아야 하나요...? 저 무서운걸?"
시우는 오데트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잡았다.
지금은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때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오데트 님.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은 저도 알아요."
"너무, 너무 무서워요... 어떻게 다들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냥 가만히 있다 보면 방법이 생겨날지도 모르는데..."
"한 번만 믿어주세요. 만에 하나라도 계획이 꼬이면 그땐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그동안 오데트 님과 오딜 님이 도망치시면 되는 거예요."
단단하게 오데트의 손을 붙잡는 시우의 굳센 손.
차갑게 식어있던 오데트의 손에도 살짝 온기가 돈다.
"욱...우욱...."
오데트는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더 위로해주고 싶긴 한데 시간이 없다.
시우는 흙 위로 새로운 마법진을 휘갈기며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2.
검은 고양이는 주변을 배회하며 사방으로 그림자의 창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세 개의 눈동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협곡의 구석구석을 확인한다.
여느 짐승이 그렇듯 명확한 이지는 없다.
자성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이성의 활용이라기보다는 체내의 품은 '유산'의 힘을 빌린 것뿐.
갓 잠에서 깨어난 이 짐승에게는 자신의 힘을 능숙하게 활용할 지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처럼의 장난감.
지루하고 오랜 잠이 끝난 끝에 찾아온 게임의 시간은 사냥 본능을 촉발했다.
신선한 마녀의 자궁을 꺼내 으적으적 씹어먹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라고.
그렇게 더욱 강대해진 힘을 통해 더욱더 자유롭게 세상을 즐길 수 있다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짐승은 자연히 깨닫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익!"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숨바꼭질에 흥분한 호문쿨루스는 사냥감이 숨을 만한 장소 구석구석을 들쑤시며 당당한 걸음새로 협곡을 활보했다.
그리고.
"ne perenni cremer igne~"
"Inter oves locum praesta~"
아름다운 곡조가 저 멀리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껏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던 협곡에 흐르기 시작한 마법의 노래.
짐승에게 미적 감각이 존재할 리 없거늘, 그런 짐승조차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아름다운 곡조였다.
나무뿌리의 사이를 헤집던 짐승은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고고한 걸음새로 검은 그림자를 휘장처럼 두른 채 빠르게 달려나간다.
"♬~ ♪"
노랫가락의 근원지는 호문쿨루스의 예상대로 작은 마녀 둘이었다.
특히나 나무가 많이 모여있는 공터의 한가운데.
두 손을 꼭 맞잡은 어린 마녀들은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스노 글로브처럼 주변을 둥그런 막으로 두른 채 두둥실 떠올라 있다.
주변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하는 완벽함만이 느껴진다.
이미 인간의 목소리라기보다는 하나의 악기 소리 같은 하모니는 공간을 진동시키며 오르골처럼 조용하게 울려 퍼진다.
듣기 좋은 선율이었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쾅!
호문쿨루스는 잠시 흥미진진한 눈으로 둘을 바라보다 힘껏 꼬리를 휘둘렀다.
태어날 때부터 달고 있던 꼬리.
좀 전에 이상하고 얇은 막을 쉽사리 찢어냈던 일격은 형편없이 튕겨 나갔다.
하다못해 어떠한 반응이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두 자매는 자신들만의 세계에 몰입한 듯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일정한 노랫가락을 읊조렸다.
"뀨우?"
이상하다는 듯이 쌍둥이 주변을 빙빙 돌며 반응을 살피던 괴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다시 후려쳤다.
-투쾅!
아까보다 확실한 반응이 있다.
둘 중 하나가 질겁한 듯이 살짝 눈을 뜨고 괴수 쪽을 힐끔 보았다.
이내 다시 질끈 눈을 감긴 했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장난감이 생긴 괴수는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이 시우가 노리던 빈틈이었다.
3.
시우는 약 50M 떨어진 곳에서 호문쿨루스를 요격할 준비 중이었다.
필요한 것은 초 고농도의 마력.
그리고 마력을 발출할 즉흥적인 마법식.
시우가 즉석에서 계산한 필요 마력 양을 들은 오딜은 눈가를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서 그런 고농도의 마력을 어디서 구해? 미리 말하지만 나랑 오데트는 이미 마법을 너무 많이 사용했어.
앞으로 기껏해야 두 세 번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전부일 거야.'
'조수님, 낙인이 아닌 그릇은... 그렇게 많은 마력을 담을 수 없어요.'
이어지는 오데트의 염려에 시우가 손을 들어 가리킨 것.
강처럼 흐르는 마력수 정도로는 부족하다.
조금 더 짙고 정제된 것이 필요했다.
가령.
가만히 놔둬도 전등만큼 강렬한 빛을 내는 마법수액이라던가.
"후우...."
시우의 등에는 마법수액을 나무뿌리에 주입하던 주삿바늘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주위에 있던 바늘을 모조리 뽑아내 염동을 통해 몸에 직접 연결한 것이다.
그렇게 도합 12개의 바늘을 몸에 꽂았다.
여담으로 태어나서 맞았던 주사 중에 이게 제일 아팠다.
사전준비라는 것도 이를 의미했다.
호문쿨루스를 피해 도망치면서 이렇게 많은 바늘을 몸에 꽂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다음은? 마력을 그렇게 끌어올려서 뭐 할 건데?'
'우선 오딜 님과 오데트 님은 30초, 아니 15초 정도만 저 괴물의 주의를 끌어주시면 됩니다.'
'그 이후에는요?'
시우의 발치에는 두 개의 오르골이 돌아가고 있었다.
마법이 발동되는 시간동안 기척을 숨겨주기 위한 은폐 장치였다.
시우가 사용할 마법은 여느 마법보다 훨씬 거칠고 소란이 클 테니까.
'방금 설명해 드렸듯이 저 호문쿨루스의 검은 그림자는 마법에 직접 간섭을 해서 식의 구성을 모조리 무너뜨립니다. 어중간한 수준의 마법이 간섭을 당하는 구조라면...'
게임 내부에서 까다로운 패턴과 상태 이상을 구사하는 보스 몹에게는 특효약이 하나 있다.
'간섭할 여지가 없게 만들면 돼요.'
딜찍누.
언제든지 방해받을 수 있는 섬세하게 짜낸 마법식이 아니라 순수한 마력을 다발로 쏘아 보내면 된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시우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피어라."
시우가 구상 및 설계 중인 문을 여는 마법은, 한 방울의 마력수마저 낭비 없이 사용해야 발동이 가능한 대규모 마법진이다.
마력 저장 능력이 전무한 바.
시우가 연구에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외부의 마력을 온전히 끌어들여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야매 마법사인 시우에게 유일한 장기였던 셈이다.
영창과 동시에 강렬한 마력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위험하다.
전혀 다른 색을 지닌 12가지의 마력을 몸에 직접 받아들여 정제해야 하는 것이니.
"크윽!"
거칠게 날뛰는 말처럼 체내를 두드리는 막대한 양의 마력은 그대로 통증으로 전환되었다.
어마어마한 과부하와 함께 온몸의 핏줄이 거칠게 부푸는 것이 느껴진다.
한 걸음을 떼기 힘들 정도로 온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
작은 계산 실수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마력의 농도도 절대적인 양도, 지금까지 다뤄왔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실제로 평소의 시우였다면 이 방대한 양의 계산을 즉각적으로 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흰갓광대버섯이야. 생으로 먹어도 괜찮은 몇 안 되는 버섯인데. 대뇌피질에 작용해서 사고와 계산속도를 가속해.'
오딜이 설명대로 흰갓광대버섯의 도핑은 아주 유효했다.
사고의 속도가 3배로 가속된 것 같다.
오감은 뚜렷하게 깨어나고 머릿속에 몇 헥타르의 칠판이 생긴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우는 마법의 발동을 위해 필요한 계산을 오로지 즉흥적인 암산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정맥이 일어나고 있는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파츠츠츠츠츠츠
무식할 정도로 순수한 마력.
시우의 몸 전체에서는 그 어떤 색도 띠지 않는 순백의 마력이 촉수처럼 꿈틀거렸다.
한껏 억누른 탓에 조금만 방심해도 튀어 나갈 정도로 압축된 마력의 흐름을 정류하고 정류한다.
떠올린 이미지는 창.
이어진 심상은 압도적인 힘.
순백의 광채와 함께 번뜩이는 시우의 눈동자는 호문쿨루스에게로 향했다.
불타는 것처럼 체내 곳곳을 뜨겁게 하는 마력을 끌어당기고, 끌어당기고, 끌어당긴다.
그리고 미리 타이밍을 맞춰두었던 오르골이 연주를 끝내며.
강력한 마력의 파장이 호문쿨루스에게 퍼져나갔다.
"끼익?"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함께 붉은 눈이 뒤늦게 이곳을 향한다.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문쿨루스의 반응을 확인하고 모든 마력을 해방했다.
저 괴물이 그림자를 방패처럼 활용하며 보호하려 했던 뻘건 눈.
저 곳이 이 창으로 노려야 할 약점일 것이다.
"이제야 이쪽을 보는구나? 이 씹새야. "
한계까지 응축되어있던 마력.
시우가 트리거를 당기는 즉시 거대한 창으로 변모한 마력의 다발.
허공을 가르며 적을 꿰뚫는다는 일념으로 쏘아졌다.
굉음이 사위를 흔들고.
눈을 아리게 만드는 섬광이 어둠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폭발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