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8화 (58/917)

#58

1.

"조수님 오데트를 데리고 도망쳐.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오딜은 시우와 오데트를 감싸며 앞으로 나가아갔다.

결코 가벼운 허세나 자만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시우 이상으로 저 호문쿨루스의 위험함을 알고 있다.

느긋하게 나무를 기어 내려오는 거대 고양이.

커다란 세 개의 눈을 끔뻑거리며 여유롭게 나무 기둥을 타는 모습은 물리법칙을 초월한 것처럼 기형적이다.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한 고양이의 모습에 현실감이 증발했다.

"뭐해? 빨리 도망가라니까?"

속이 타는 듯한 오딜의 닦달 속에서도 시우는 차분하게 전황을 헤아렸다.

그와는 별개로 오데트에게는 정확한 지시를 내린다.

"오데트 님 오르골은 작동 중인가요?"

"아! 네...넷!"

아까부터 왠지 치맛자락을 잡고 꿈지럭거리던 오데트는 재빨리 오르골을 내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불안한 듯이 시우를 올려보며 말한다.

"조수님... 도망가셔도 좋아요 전 언니 두고 못가요!"

"안 돼! 오데트! 내가 막는 동안 네가 구조요청을 해줘야 한다는 말이잖아!"

"지, 지금 할게!"

예상대로 오데트는 오딜보다 상황판단이 느렸다.

자다 일어난 탓인지 좀 더 담대하지 못한 성격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딜의 지시를 들은 오데트는 곧바로 영창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눈앞의 호문쿨루스가 이쪽의 소란을 그저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을 보는 듯한 꺼림칙한 눈동자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알.

그 꺼림칙한 감시 속에서 오데트의 마법이 만개한다.

하늘로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한 거대한 문자열.

시우가 사용한 스카이보드보다 한 차원 높은 마법식이다.

라티푼디움의 우거진 나무를 뚫고 하늘을 밝혀 도움을 요청할 긴급 구조 신호였다.

"됐어, 언니!"

"좋아! 이제 튀자! ...크윽!"

그리고 오데트가 마법을 작동시킨 즉시 마력에 반응한 것인지 괴물 고양이가 움직인다.

사슬낫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꼬리.

그 속도는 육안으로 제대로 식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세로 재빨랐다.

마치 지금까지의 사냥은 장난에 불과했다는 듯이.

-콰과광!

오딜이 미리 펼쳐두고 있던 방어진.

'안식의 노래'가 너무나도 쉽게 박살 났다.

흩어지는 마법진의 잔해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오딜.

"한....한번에 부쉈다고?"

대전차 미사일도 막아낼 정도의 경도를 지닌 방어진이 휴지장처럼 찢어지는 모습에 오딜은 경악한다.

그 순간에도 시우는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데트가 쏘아 올린 구조요청.

하늘로 올라갈수록 점점 커다랗게 변모하던 문자열이 어느새 라티푼디움을 자욱하게 덮고 있는 검은 그림자에 부딪힌다.

-쩅!

그리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찬란한 자색으로 빛나던 문자열이 그림자에 닿자마자, 검은 그림자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마법에 간섭했다.

조각조각 나버린 문자열이 수천 개의 파편이 되어 시우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아...."

오데트는 망연히 마지막 희망이 박살나는 광경을 보았다.

구조신호는 불발.

오딜의 방어막은 괴물의 꼬리에 성뚱 잘려나갔다.

이쪽의 어떤 공격도 적에게 통하지 않는다.

평온한 일상이 갑작스레 뒤집혀 진 탓에 쫓아가지 못한 사고가 전환한다.

조금 늦었지만 세 사람은 동시에 같은 감상을 공유했다.

죽음.

고약한 농담처럼만 느껴졌던 두 글자가 선연하게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시우의 눈길에 닿은 것은 호문쿨루스의 뒤에 흐르는 라티푼디움에 마력 공급을 담당하는 마력수의 강.

"오데트 님 오딜 님을 보호해주세요. 제가 연막을 치겠습니다."

모두가 섬짓한 예감에 몸을 떠는 동안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시우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분명 죽음이 코 앞인데 어쩐지 머리의 얇은 막이 사라진 것처럼 사고의 전환이 빠르다.

기분 좋게 혈관을 흐르는 아드레날린이 후들거려야 할 다리를 대신 지탱했다.

달린다.

시우는 쏘아지는 화살처럼 괴물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조...조수님!"

오데트의 다급한 붙잡음은 순식간에 멀리 뒤쳐졌다.

"뭐하는 거야!"

시우는 호문쿨루스와 대치하고 있던 오딜마저 지나쳐 괴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뀨?"

먹잇감이 도리어 뛰어오는 것이 상정 외였던 것인지 호문쿨루스의 머리가 직각으로 돌아간다.

시우는 달려가는 순간에도 쉴 새 없이 호문쿨루스에 대해 분석했다.

지금까지 관찰한 호문쿨루스의 전투수단.

최초 연구동을 습격했던 그림자의 창.

그림자가 뭉치기 시작하는 것부터 발출까지 대략 5초.

동시에 발출되는 최대 갯수는 3발.

공격 사이의 텀은 꽤나 길다.

그러나 저 괴물의 느긋한 태도로 미루어 봤을 때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님을 감안해야 한다.

그 속도는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며 위력은 둘레 수십 미터의 거목을 꺾을 정도로 강력하다.

시우가 가진 어떤 마법으로도 대응할 수 없는 것은 명확했다.

다음은 꼬리.

끝에 낫이 달려 사슬낫처럼 휘둘러지는 꼬리는 쉽게 공격 범위를 가늠할 수 없다.

일견 대단할 것 없어 보이는 위력이지만 오딜의 방어진을 단번에 깨뜨린 것을 보면 맨몸으로 맞았을 때 조각조각이 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지막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

단순히 그림자를 경질화 시킨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어느 순간부터 스모그처럼 공중을 장악한 그림자는 오데트의 구조 술식을 깨부쉈다.

그렇다면 사실상 외부와 소통할 수단은 없다고 봐야 한다.

라티푼디움 일대가 저 괴물의 사냥터로 변한 것이다.

질주를 거듭하는 시우와 그것을 멀뚱히 바라보는 호문쿨루스 양자의 거리는 이제 20M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간절한 시우의 바람이 무색하게 호문쿨루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거대한 곤충이 낼 법한 기괴한 울음과 함께 허공에서 꿈틀거리던 꼬리가 먹잇감을 노리는 독사처럼 낭창거리기 시작한다.

침착하게 타이밍을 재던 시우는 허공으로 팔을 뻗는다.

게헨나의 어떤 곳보다도 대기 중의 마력이 풍부한 라티푼디움.

이곳이기에 쓸 수 있는 비장의 한 수.

단 한 번이면 된다.

중요한 건 타이밍.

"피어라!"

권총의 총구처럼 시우를 겨누던 꼬리가 흉흉한 소리를 내며 휘둘러진다.

그리고 그 순간 시우의 몸이 잔뜩 구부러졌던 스프링처럼 대각선으로 도약했다.

-후우우웅!

발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꼬리가 노면을 헤집는 것이 아주 느릿하게 보였다.

3M가 훌쩍 넘는 괴수의 머리 위를 뛰어넘은 것은 죽음의 순간에서 발휘되는 초인적인 힘 따위가 아니었다.

어제 오딜이 떠나가며 보여주었던 '물도마뱀 걸음'.

발끝에 마력을 집중시켜 기동력을 높이는 술식을, 한계까지 바득바득 긁어모은 마력으로 단 한 번 도약하는데 사용한 것이다.

"아....!"

맨몸으로 3층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발아래 디딜 것이 없다는 불안함은 금방 더 커다란 불안감에 의해 희석되었다.

바로 추락에 대한 공포다.

시우는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지면을 보며 충격에 대비했다.

"끄악!"

단숨에 20여 미터를 날듯이 뛰어오른 시우가 착지한 곳은 마력수의 강변.

급박한 순간 착지에는 전혀 마력을 쏟지 못했기 때문에 물수제비처럼 지면 위를 튕긴 시우는 발목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포물선을 그리는 낙하였기에 망정이지 수직 낙하였다면 그대로 죽거나 기절한 뒤 고양이에 의해 죽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

눈앞에서 사라진 먹잇감을 쫓는 괴물 고양이의 느릿한 눈빛이 금방 시우를 찾아낸다.

-기이이이잉!

주변에 그림자가 뭉쳐 창을 만들며 자신의 머리를 뛰어넘은 괘씸한 먹잇감을 단죄하려는 고양이.

시우는 고통을 억누르며 코앞의 강물로 팔을 뻗었다.

지끈거리는 통증은 무시한다.

절뚝거리는 모양새로 물 위에 손을 담근 채 달리며 외쳤다.

"피어라!"

목숨을 걸고 강물로 향한 것은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손끝으로 빨아들여진 풍부한 마력수의 농도는 시우가 마법 연구를 위해 사용하던 상급 마력수에 필적했다.

하나의 전개.

하나의 변화.

그리고 하나의 연성.

그림자의 창이 시우를 꼬챙이로 만들기 직전.

강물이 폭발하듯이 부풀었다.

-슈와아아악!

"끼이이이익?"

강물에 넘실거리던 마력이 일제히 꿈틀거리며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자욱한 안개로 변화했다.

훌륭한 눈가림이었다.

상황이 제대로 식별되지 않는 가운데 호문쿨루스는 미리 만들었던 3개의 창을 시우가 서 있던 강변으로 발출했다.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하늘까지 치솟았던 흙더미가 강물로 떨어지는 소리.

"끼익?"

시간이 지나 시계가 확보될 정도로 안개가 바람에 날려 사라졌을 땐 시우도 쌍둥이도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2.

"조수님 괜찮아?"

"크으으윽...."

순간적인 임기응변이었던 만큼 시우가 쌍둥이와 합류한 것은 천운에 가까웠다.

문자 그대로 오리무중 속에서 시우를 찾아 달려온 쌍둥이가 아니었으면 뿔뿔이 흩어졌을 가능성도 있었겠지.

다행히 시우를 찾아낸 쌍둥이는 즉시 물도마뱀 걸음을 사용하며 호문쿨루스와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숨어든 곳은 밑동이 갈라진 나무의 옹이구멍.

양송이 같은 버섯들이 군락을 이루던 곳이었다.

"어디 봐요...!"

오데트는 시우의 바지를 걷어 상처 부위를 살폈다.

발목이 완전히 맛이 갔다.

그 짧은 순간 동안 1.5배는 두꺼워진 것을 보면 뼈에 금이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어!"

오딜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시우를 질책했다.

"앞에서 계속 대치하고 있었더라면... 결국 다 죽었을 거예요."

시우의 상황판단은 정확했다.

오데트의 구조 신호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공격은 무효화 되었다.

쌍둥이가 방어진을 계속 펼친다 한들 결국 시간 벌이 밖에 되지 않는다.

둘의 마력이 바닥나는 순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호문쿨루스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오르골로 마력탐지를 방지할 수 있다면 눈 앞을 가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너무 위험했어! 깜짝 놀랐단 말이야."

"맞아요, 전 사실 조수님이 두동강 나는 줄 알았어요."

오딜이 시우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빠르게 속삭였고 오데트도 옆에서 거들었다.

시우가 달려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쌍둥이는 그가 어떤 사선을 넘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찰나의 타이밍에 맞춰 휘둘러지는 꼬리를 피해 점프라...

말이 쉽지 너무 늦게 뛰거나 너무 빨리 뛰면 두 동강이 나도 불평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목숨을 건 리듬게임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이렇게 일단 시간을 벌었잖아요."

"가만히 있어 봐 일단 치료해줄게."

따뜻한 빛이 퉁퉁 부어있는 시우의 발목으로 쏟아진다.

"걸을 정도는 되지만 아까처럼 뛰거나 하면 안 될거야. 사실 나도 다친 사람한테 쓰는 건 처음이라 잘 몰라."

"주의하겠습니다."

돌팔이 같은 말을 듣긴 했어도 괜찮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마법을 통한 회복은 세포의 분열을 촉진해 자체회복력을 비약적으로 상승 시키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어쩌죠? 이대로 숨어 있으면 되는 걸까요?"

시우의 응급처치가 끝나자마자 오데트가 불안한 듯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콰직! 쿠구궁!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땅을 울리는 굉음이 들린다.

이윽고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며 일으키는 진동이 엉덩이로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눈앞에서 장난감을 놓친 호문쿨루스가 그들을 찾기 위해 주변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지가 두 개 있어요."

시우는 옹이 안에 뒹굴던 나뭇가지 하나를 들었다.

안에는 버섯재배를 위한 부드러운 흙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간이 칠판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이대로 얌전히 기도하면서 이변을 알아차린 다른 마녀님이 이곳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오르골이 있는 이상 육안으로 식별하기 전까지 세 사람의 위치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 기회를 살려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하는 것.

즉 기도메타.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난사하고 다니는 호문쿨루스의 눈먼 마법에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기도메타의 단점은 '운이 나쁘면 좆된다'니까.

오딜도 그것을 아는지 심각한 표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저 놈을 잡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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