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1.
모처럼의 제안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시우의 모습을 보고 오딜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혼란에 가득 찬 시우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오딜 님, 이곳에 저희만 있는 게 맞나요?"
"여기? 어디?"
"라티푼디움에요."
"다른 사람은 없어. 말했잖아 휴한기라 우리가 전세냈다고."
"그럼 저 까만 건 뭐죠?"
창밖에서 관리동 안쪽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검은 것.
시우가 그것을 까만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 이외에는 정확히 모습을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지 위에 달라붙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
그 주위로는 그림자가 나풀거리고 있다.
결코 묘사나 비유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로 '그림자'가 아지랑이처럼 그것의 몸체를 덮고 있었다.
"뭐?"
그가 쳐다보는 방향을 쫓아 천천히 고개를 돌린 오딜.
그와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기긱.
관절에 녹이 슨 것처럼 기형적으로 꺾이는 목.
어두운 그림자가 안개처럼 흩어지며 시우는 그제야 그것의 모양새를 가늠할 수 있었다.
거대한 검은 고양이의 머리.
일반적인 짐승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동체.
치렁치렁하게 늘어져 추운동을 하는 꼬리는 첨단에 거대한 낫이 달려있다.
"저건...."
오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끼기기기긱
칠판을 긁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눈을 뜬다.
심연보다 검고,
일렁이는 그림자보다도 입체감이 없는 머리통에서.
지옥에 핀 꽃처럼 세 개의 붉은 눈이.
즐거운 듯 빙글거리며 이쪽을 바라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의 주변에서 뭉치기 시작한 그림자.
그 그림자가 뚜렷한 입체감을 띄우기 시작하자마자 오딜이 노래를 시작했다.
"cum sanctis tuis in aeternum! quia pius es!"
매우 빠르고 정확한 노래.
어지간한 곡조는 흥얼거리며 생략하는 것만으로 완수하는 오딜도 이번만큼은 완전한 영창을 시현했다.
그와 동시에.
-끼이이이이익!
그라인더로 강철을 갈아내는 소리와 함께 부딪힌 검은 창과 관리동 전체를 감싼 투명한 막.
굉음.
진동.
마력의 충돌.
찰나의 순간 괴물 쪽을 주시하던 시우는 보았다.
그림자로 직조된 세 자루의 창이 관리동으로 날아오는 것과 오딜에게서 펼쳐진 투명한 막이 격돌하는 것을.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창밖의 괴물이 마법을 이용한 공격을 날렸고 오딜이 그것을 맞받아쳤다는 것.
"좆될 뻔했네!"
오딜의 험한 말.
시우는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혹시 저거 제머나이 님이십니까?"
"그럴 리가 있나!"
합당한 의문이었으나 오딜은 기가 찬다는 듯이 부정했다.
다행히 제머나이가 자신의 견습마녀를 희롱하는 불한당을 발견하고 제거하려는 건 아닌 듯하다.
아니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그럼 뭐죠?"
오딜이 대답하기에 앞서 다시금 격렬한 충돌이 방을 울린다.
아까와는 달리 굉음이 아닌 진동이었다.
폐의 공기를 울리는 중후한 공기의 떨림.
또다시 쏘아진 그림자의 창이 오딜 베리어에 부딪혔다.
오딜은 자색의 마력 반사광이 넘실거리는 눈으로 밖을 쏘아보며 말했다.
"호문쿨루스인 것 같아. 스승님께 게헨나에 남아 있는 호문쿨루스는 없다고 들었었는데..."
"저게 그 창조의 마녀의 호문쿨루스란 말씀인가요?"
"딱 봐도 그렇잖아!"
시우는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함을 느꼈다.
호문쿨루스.
창조의 마녀가 만들어 냈다고 알려진 지적 생명체.
창조의 마녀가 자신의 유산을 지키도록 만들어낸 '가디언'이다.
그것들은 이 세계 어딘가에 몸을 움크리고 잠들어 있거나 조용히 배회한다.
마법에 환장한 마녀들은 호문쿨루스를 발견할 때마다 사냥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호문쿨루스를 죽이면 창조의 마녀가 남긴 유산, 아티팩트, 연구자료, 엘릭서, 마법진의 편린 등을 얻을 수 있으니까.
조금 더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해석하자면 일종의 이벤트 몹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창조의 마녀의 유산에는 그 어떤 마녀의 성취도 올려줄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큰일이네. 조수님 오데트를 챙겨줘."
오딜은 흐트러짐 없는 눈동자로 밖에서 연거푸 날아오는 그림자의 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랑한 뺨은 전에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벤트 몹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낙관이 함유된 표현이다.
그러기엔 호문쿨루스는 너무 위험했다.
호문쿨루스는 다름 아닌 창조의 마녀가 손수 빚어낸 생명체.
제각기 다양한 자성마법을 사용하며 몸 안에 심어진 유산을 지키기 위해 발악하는 호문쿨루스의 위험도는 레이드 몹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자그마치 '마녀가 예기치 못하게 소멸하는 이유' 2위를 당당히 차지하는 괴물이니 말이다.
시우는 이런 소란 속에서도 쭉 뻗어있는 오데트를 끌어안고 창가에서 멀리 떨어졌다.
"어떻게 하죠?"
"몰라, 생각 중이야... 우선 오데트를 깨워줄래?"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오딜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대담하게 웃어넘기는 그녀가 지금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다.
호문쿨루스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마녀들은 15 위계 미만의 마녀에겐 그 어떤 호문쿨루스의 사냥도 시도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그렇다면 쌍둥이의 위계는 어느 정도일까?
"오딜 님, 아직 낙인이 없으시니 정확한 계산을 불가능하겠지만 대충 몇 위계 정도의 마법이 가능하신 겁니까?"
오딜은 생각보다 침착한 시우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듯이 눈을 치켜떴다.
"오들오들 떨지 않아서 좋네. 오데트와 함께 자성마법을 사용하면 8위계 정도야."
"우선 바깥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위계는 15.
둘이 합쳐 8위계.
턱 없이 부족하다.
마녀 한 명이 자신의 인생 전부를 투자해도 위계 하나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콰과광!
시우는 유심히 창밖을 보았다.
오딜의 방호벽은 이 연구동 전체를 구처럼 덮고 있다.
그리고 호문쿨루스가 쏘아 보내는 창이 벽에 충돌하고 흩어질 때마다 시야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림자가 수통에 번진 물감처럼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저편에 존재하는 호문쿨루스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져 간다.
이쪽만 적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불안함을 가속시켰다.
다시금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니 창밖에서 마력의 불똥이 번뜩였다.
시우가 부지런히 어깨를 흔들던 오데트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다.
"힉! 흐...아, 이게 이게 무슨 일이에요?"
오데트는 비몽사몽 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시우는 간략하게 상황을 요약해 전달했다.
"그, 그럼 어쩌죠?"
하지만 오데트의 반응도 오딜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애초에 쌍둥이가 마법 전투 경험이 있을 리도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둘이 합쳐 8 위계로 호문쿨루스를 사냥하는 것읃 무리이다.
지금은 그저 도망치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
"오딜 님 몇 번 정도나 더 막을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위력이 약해. 지금 분당 3~4번 정도의 공격이니까 10분은 견딜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넉넉하다는 점이었다.
"오데트 님, 제머나이 님이나 다른 마녀분께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있나요?"
가령 시우는 지난번 여관에서 스카이보드라는 마법을 사용해 소피아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아마 오딜과 오데트라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있긴 한데... 여기서는 사용이 불가능해요. 지금 언니가 펼친 '안식의 노래'는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마법 뿐 아니라 내부의 마법도 차단해버리거든요."
"그럼, 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이 연구동은 방공호다.
이곳에서 나간다는 말은 폭격 중에 방공호를 벗어나 신호탄을 쏘는 위험에 필적할 것이다.
"오르골! 오르골이 있어요! 이거라면 일단 눈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오데트는 주섬주섬 제 망토에 있던 오르골을 꺼내 들었다.
그때.
-끼이익! 끼이이익!
"조...조수님..."
오딜의 부름과 함께 철제 프레임을 잡아 찢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창밖에서 울려온다.
시우는 무심코 숨을 집어삼켰다.
온몸에 그림자를 두른 거대한 고양이가 오딜의 마법을 잡아 뜯고 있었다.
낫처럼 날카롭게 휘어있는 꼬리를 투명한 벽에 박은 채 위아래로 거칠게 휘젓는다.
"키릭...키익...킥칵....!"
호문쿨루스는 세 개의 붉은 눈을 번뜩이며 입을 벌렸다.
뭉개지듯 벌어진 주둥이에선 타르처럼 끈적한 그림자가 뚝뚝 흐른다.
호문쿨루스를 처음 보는 시우조차도 저것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은 웃고 있었다.
가지고 놀 장난감이 3개나 있다는 것이 즐거워 마지 않다는 듯이.
"오데트!"
"응! 언니!"
쌍둥이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서로의 의중을 낱낱이 알고 있는 쌍둥이에게 자세한 논의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오딜이 방어막을 거둬들임과 동시에 창밖으로 팔을 펼친 오데트의 영창이 시작된다.
"Requiem aeternam dona eis!"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오데트의 영창은 적의 묘비에 바치는 레퀴엠이었다.
-콰아앙!
영창의 구절대로 오데트의 팔에서 뻗어진 희뿌연 광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배리어에 매달려 있던 호문쿨루스의 얼굴에 적중한다.
잠깐 존재하다 사라진 것만으로 방 안의 온도를 10도는 올려버린 것 같은 고열의 빛.
마법이 스쳐 지나갔을 뿐인 유리는 벌겋게 달궈져 설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말 도 안돼...!""
쌍둥이는 동시에 중얼거렸다.
이 만한 위력이다.
얼굴에 직격한 이상 어느 정도의 피해는 줄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끼이이익?"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호문쿨루스는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다.
등골을 울리는 섬뜩한 한기.
"피해요!"
시우는 반사적으로 쌍둥이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낮췄다.
0.2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의 차이로 무엇인가 등허리 위를 스쳐지나간다.
-부우웅!
-콰지지지직!
방 안에 작은 폭풍이 휘몰아친 것 같았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호문쿨루스의 꼬리가 횡으로 연구동 내부를 헤집은 것이다.
우지끈 무너지는 벽과 부서지는 가구들.
순식간에 일어난 흙먼지가 시야를 자욱하게 갈랐다.
"도망쳐요... 일단 도망치죠!"
만약 가만히 서 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오딜과 오데트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몸을 돌린 시우는 처참하게 박살이 난 나무 기둥을 보며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끼이이이익!
쇠뇌를 장전시키는 것처럼 팽팽함이 느껴지는 소리.
괴수가 연구동을 향해 그림자의 창을 던질 때마다 신경을 긁던 마찰음이다.
어차피 도망칠 곳은 한 곳이다.
"뛰어요!"
"꺄아아악!"
시우는 까마득히 높은 트리하우스에서 쌍둥이를 껴안고 그대로 다이빙했다.
그와 동시에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등 뒤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두 자루의 창.
-투쾅!
라티푼디움을 떠받들던 수십미터에 달하는 고목이 스티로폼이 박살 나듯이 쓰러지는 모습이 추락하는 시야 앞에서 재생된다.
"으아아아아!"
비행도 아닌 부유의 마법은 쌍둥이에겐 아주 손쉬운 마법이다.
그럼에도 30M에서 로프도 없는 번지점프는 무섭기 짝이 없다.
시우는 옷차락을 펄럭이는 바람과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노면에 비명을 질렀다.
사뿐한 착지에 성공한 쌍둥이와 다르게 시우는 다소 거칠게 땅을 굴렀다.
"조수님! 괜찮으세요?"
후다닥 달려오는 오데트와 트리하우스에 남아있는 호문쿨루스를 바라보는 오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 거대한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사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조수님 오데트를 데리고 도망쳐.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오딜은 땅에 우뚝 선 채 붉게 번뜩이는 3개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