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0화 (50/917)

#50

1.

갑자기 웬 보더 타운?

사실 그곳은 그다지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이 아니다.

시우의 머릿속에 보더타운의 이미지는 이미 온갖 위험요소가 가득한 양아치 타운으로 정립되어 있었다.

솔직히 두 번 다시 발을 들이고 싶지도 않다.

게다가 내일은 메뉴얼에도 적혀 있듯이 쉬는 날이 아닌가?

모처럼의 휴일에 같이 캠핑을 하러 가자고 제안했던 담당 교수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양털 파자마도 받았겠다.

시우는 아멜리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끔 말했다.

"죄송합니다. 내일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멜리아의 눈썹 한쪽이 쓱 올라간다.

꽤 놀랐을 때의 반응이다.

"왜죠?"

"그, 선약이 있습니다."

모처럼 휴일에 상관과 함께하는 보더 타운 데이트라니. 달가울 리 없다.

그래도 타카쇼와의 약속이었더라면 선약을 취소하고 아멜리아를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은 그토록 궁금하던 영산에 쌍둥이와 함께 놀러 가기로 했다.

그것도 오르골을 받기로 하고 말이다.

"무슨 약속이죠?"

예상대로 아멜리아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시우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진실을 전했다.

어차피 내일 아침 일찍이라도 허가를 받을 사안이었다.

전속 노예가 다른 마녀를 따라 피크닉을 가는 것이니까.

"견습마녀와? 영산에? 소풍을 동행한다구요?"

아멜리아는 퍽이나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초반에는 그저 못마땅한 기색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 더 눈에 보였다.

하긴 시우와 쌍둥이는 지난 2년간 거의 접점이 없다시피 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네, 내일 아침에는 아멜리아 님께 허가를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요."

아멜리아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손끝으로 제 팔뚝을 톡톡 두드린다.

"어쩔 수 없네요. 내일은 이것저것 필요할 것 같은 물품을 사주려고 했는데."

"어... 죄송합니다."

"됐어요."

아멜리아는 휙 일어나 성큼성큼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오딜을 의식하던 시우는 가장 커다랬던 위험인 아멜리아가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

-쾅!

분명 제 발로 걸어 나왔건만 반쯤 쫓겨난 기분이다.

아멜리아는 큰 소리를 내며 닫힌 시우의 방문을 쓰윽 바라보았다.

울컥.

뭔가 치밀어 오른다.

맨 처음 그에게 밤 약속을 거절당한 이후로 시우를 볼 때마다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

바로 이 짜증이었다.

아멜리아는 괜히 거칠게 걸음을 옮겨 방으로 돌아왔다.

"......."

지난번 시우와 함께 보더 타운으로 가기 전.

아멜리아는 소피아와 대화를 나눴다.

소피아를 먼저 붙잡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수업을 끝내고 2층 교사를 거닐던 중 아멜리아는 보았다.

제머나이 백작의 부탁으로 그녀가 담당하고 있는 견습마녀 쌍둥이가 회랑에서 신시우 관리인과 즐겁게 떠들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거리가 멀었기에 무슨 내용을 나누는지는 하나도 듣지 못했지만 쌍둥이는 퍽 즐거워 보였다.

신시우 역시 쌍둥이를 피하지 않고 대화를 받아주었고 말이다.

그가 마녀를 싫어한다고 굳게 믿고 있던 아멜리아로서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아멜리아는 소피아의 연구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고? 나한테?'

연구동 의자에 걸터앉아 빙글빙글 돌아가던 소피아는 아멜리아의 방문에 깜짝 놀란 듯 보였다.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요.'

더군다나 마법에 관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두 번째 쇼크를 받은 소피아.

마녀가 되어서 노예의 행동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아멜리아의 질문은 굉장히 완곡적이었다.

'아하, 그래서 시우 관리인과 친해지고 싶은데 어렵다?'

'그게 왜 그런 식으로 해석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멜리아의 불평에도 소피아는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

'일단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옆에 자주 있는 게 중요하지.'

'그와 친밀도를 높이고 싶은 건 아니지만 들어는 보죠.'

그렇게 시작된 소피아의 조언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우선 그저 같이 있다고 친밀도가 올라가는 건 아니야.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 긍정적인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게 중요해.'

'긍정적인 경험?'

'그래, 예를 들면 네가 좋아하는 것들 있지? 아, 마법 연구는 빼고. 맛있는 걸 먹는다던가, 쇼핑을 함께 한다던가, 아니면 그저 산책을 같이한다는 것도 괜찮겠네.'

두 번째.

'그다음엔 뭐가 있을까? 선물도 좋겠네. 아멜리아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내가 여러가지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잖아.'

'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베느가.'

'그렇다치고 그래도 선물을 받을 땐 기뻤잖아?'

'....그렇네요.'

세 번째.

'상냥하게 대해줘. 짜증 내거나 혼내기만 하지 말고.'

'........'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타인에게 보여지는 건 속내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네 행동이야. 시우 관리인도 네가 조금만 부드럽게 대해주면 금방 네 매력에 빠질걸?'

'왜 자꾸 관리인을 이야기하는 거죠? 분명 그와는 관계없다고 말했을 텐데요.'

소피아가 끝까지 관리인을 들먹여 조금 짜증은 났지만 그래도 꽤 유용한 조언이었다고는 생각 중이다.

실제로 그는 전속 노예가 되라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요즘엔 먼 발치에서 아멜리아의 모습을 보고 후다닥 도망가지도 않는다.

"제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복잡해지기만 한 머릿속.

아멜리아는 담배를 꺼내 들며 한숨을 쉬었다.

감정에 대한 불확실은 옅은 자괴감을 불러왔다.

고작해야 노예에 불과하다.

아멜리아가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존재이다.

그저 가만히 놔두는 것만으로도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 사라질 덧없는 인생.

게헨나에서 받은 두 번째 삶을 끝내고 먼지처럼 흩어질 기계장치.

그뿐일 터인데.

왜 이제와서 그에게 접근하는 걸까?

설마 예전 소피아의 말대로 그에게 호감을 지니게 된 걸까?

"그럴리가."

아멜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진심으로 그의 호의를 사고 싶어서 함께 쇼핑을 제안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전속이 된 노예에게 귀족의 긍휼을 배풀려 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으며 오랜만에 잠자리에 누웠다.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다.

어차피 그는 이제 자신의 전속 노예이니까.

3.

아멜리아가 나가고 난 이후.

시우는 그녀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슬그머니 파자마를 들고 침실로 들었다.

"오딜 님, 이제 괜찮습니다."

침대 밑에서 조그마한 대답이 들려왔다.

"정말?"

"네, 방으로 들어가셨어요."

땅강아지가 집을 나오는 것처럼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오딜.

그나마 오딜의 체구가 작아서 다행이지 시우가 숨을 상황이었더라면 침대 아래로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쾅!

"윽!"

오딜조차 침대 프레임에 머리를 박고 나서야 완벽하게 나올 수 있었으니까.

침대 밑은 먼지투성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이 방의 위생 상태는 시우의 생각보다 깔끔했던 모양이다.

조금 먼지가 붙었을 뿐 오딜의 하얀 속옷 겸 잠옷은 여전히 깨끗했다.

"아으.... 깜짝 놀랐네. 원래 이렇게 불쑥불쑥 들어오셔?"

"아니요, 이 시간에 온 건 처음이신데... 정말 다행이네요."

오딜은 머리에 달라붙어 있던 조그마한 먼지를 툭툭 털어내더니 침대에 앉았다.

"하아... 순간 스승님의 화난 얼굴이 보였어. 살았다."

"그래도 좋게 넘어가서 다행입니다."

약 30초 정도 안도와 위안의 시간을 가진 둘.

그때 문득 침대에 걸터 앉은 오딜의 모습이 보였다.

더 정확하게는 애액에 축축해져 그녀의 아랫도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드로어즈가 정면에서 보인다.

노모자이크에 쌩으로도 한 번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저런 식으로 옷이 달라붙자 또 다른 관능을 생성해낸다.

눈을 돌리고 말해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수님, 어딜 그렇게 빤히 봐? 어?"

그리고 오딜도 자신의 치태를 알아챈 모양이다.

희고 얇은 드로어즈의 천이 도톰한 오딜의 둔덕과 살색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오딜은 다리를 황급하게 닫으며 작게 주문을 읊조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옷에 거뭇거뭇하게 묻어있던 먼지가 깔끔하게 사라진다.

몸과 옷을 청결한 상태로 유지해주는 간단하고 편리한 마법이다.

"아니,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어찌 말씀드릴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재깍재깍 말해야지!"

오딜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툴툴거리다가 이내 입가를 가리며 아가씨처럼 웃었다.

웃음 포인트를 알 수 없었던 시우는 당황했다.

"생각해보니까 이런 거로 화내는 것도 웃기네. 우리 이미 거의 다 본 사이인데."

"그, 그렇죠."

그래도 그전까지는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갔는데 갑자기 흐름이 뚝 끊긴다.

분명 아멜리아가 훼방을 놓기 전까지는 질펀한 애널섹스를 즐길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오딜도 시우도 그걸 다시 입에 담을 정도로 흥분한 상태가 아니다.

"엄... 아무튼 조수님. 내 궁금증은 해결된 것 같아."

"그런가요?"

"확실히 둘이서 하는 게 기분이 좋네. 궁금증 해결이야."

"...그렇군요."

한동안의 침묵.

산불처럼 번지던 열기가 사라지니 느껴지는 것은 메케한 탄내 같은 머쓱함 뿐이다.

오딜은 폴짝 자리에서 뛰어내려 망토를 걸쳤다.

"음... 조수님 내일 약속 잊지 마. 7시까지 마중 나올게."

"네, 알겠습니다."

돌아갈 채비를 끝낸 오딜은 창문을 열었다.

들어왔던 대로 창문으로 빠져나갈 생각인가 보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기색이던 오딜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수님."

"네?"

"오늘 있던 일은 오데트에게는 비밀이야."

"이미 눈치채시지 않았을까요?"

"그럴 일은 없어 오데트는 잠을 자면 얼굴에 낙서를 해도 모르거든."

"...해보셨군요."

"한 서른 번?"

굳이 해야하는지 모르겠을 실없는 대화.

이제는 정말 가겠지 싶어 슬슬 인사할 멘트도 준비했는데 여전히 오딜은 창문을 붙잡고만 있다.

"저기 조수님."

"네, 오딜 님."

"나 진짜 간다?"

"가겠다고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누가 뭐래? 진짜 갈 거다."

오딜은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변하더니 휙하고 뛰어내렸다.

상태가 썩 좋은 것 같지 않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두둥실 착지한 오딜은 시우를 향해 팔짝팔짝 뛰며 손을 크게 내젓더니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저건 '물도마뱀 걸음'이라는 마법인데 발을 내딛는 순간에 마력으로 만든 발판을 깔아 굉장히 빨리 달릴 수 있는 기동 마법이다.

순식간에 언덕 저편을 지나쳐 아카데미로 사라진 오딜을 보며 시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창문을 닫았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후우...."

아무일 없이 지나갔긴 했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오늘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떠올리던 시우는 문득 좀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딜의 풋풋하고 귀엽던 모습과 그녀의 쫀득했던 구멍까지.

괴로워하기만 하다 결국 정액 한발 못 싼 자지가 다시 부풀기 시작한다.

아마 이 기억은 죽어도 못 잊겠지.

시우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오늘 밤은 오딜을 기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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