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1.
시우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제 침대라도 되는 양 편히 가로누운 오딜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남자 방에 오는 건 처음인데 깔끔하게 해놓고 사네."
"......."
향처럼 피어오른 담배 연기가 뭉게뭉게 창밖으로 향한다.
시우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어떻게 해야 오딜을 아무런 위험 없이 집으로 돌려보낼까.
다소 위험부담을 지면서라도 제머나이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는 편이 나았으려나?
이렇게 머리채 잡힌 채 끌려다녀봐야 결말이 좋을 것 같지가 않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눈앞에서 뒹굴어 다니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조수님, 화나거나 삐졌어?"
"오딜 님. 용무를 먼저 말씀해주시죠. 최대한 빨리 돌려보내고 싶습니다."
여기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협박을 한다고 이 말괄량이 쌍둥이 언니가 듣겠는가?
괜히 말싸움이나 길어지다가 아멜리아에게 걸리면 그게 더 큰 일이다.
우선 시우가 안도할 수 있는 점은 12시가 넘어 아멜리아가 이 방을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
그리고 '고요함의 노래'가 발동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감 상 대충 소란을 줄여주는 마법이 아닐까?
오딜은 벌떡 일어나 시우와 마주 보고 앉았다.
초롱초롱한 자색의 눈빛이 별을 담아 반짝인다.
"조수님, 혹시 요즘 아멜리아 교수님 뭔가 변한 거 없어?"
"전혀요."
"흐음...그래?"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아무리 제머나이 백작가에 전용 포탈이 설치되어있어 아카데미까지 10초면 올 수 있다해도 아카데미의 포탈에서 아멜리아의 저택까지는 또 10분 거리이다.
이런저런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꽤 귀찮은 동선일 텐데.
"아니, 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오딜은 주섬주섬 망토에서 책을 꺼냈다.
솔직히 시우는 오딜의 뻔뻔함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오딜 님, 그럼 저도 하나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나도 예의 없이 행동했는데 조수님이 받아줬잖아."
이걸 예의 없다고 해야 하나?
"그... 오딜 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신가요?"
"뭐가?"
"저희 그날 여러 가지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오딜의 하반신 누드를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후장에 자지를 넣고 사정했다.
정신을 차린 오딜은 거의 기절할 것처럼 부끄러워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오딜을 보면 그 일을 신경쓰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아, 그거?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그걸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넘깁니까?"
"그때는 묘약의 효과가 잘못 적용되어서 그랬던 거잖아."
"그래도 분명 불미스러운 일이었잖아요."
"세상을 탐구하다 보면 이것저것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지.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해서야 어떻게 좋은 마녀가 될 수 있겠어?"
시우의 말에 오딜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 떨었다.
여기서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창백한 달빛이 비친 그녀의 뺨이 은은하게 달아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마녀의 귀감이십니다."
"고럼고럼."
시우의 반쯤 어이없어하는 칭찬에 오딜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쌍꺼풀이 진 청순한 눈망울이 위험할 정도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에 저 맑은 눈이 욕정으로 덮어씌워 졌던 순간이 기억났다.
"아무튼 오히려 잘됐지. 지금까지는 조수님을 대할 때 어느 정도 부끄러움이라는 게 있었거든."
"정말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하지만 파격적인 일을 이미 겪어버린 이상 이제 와서 꾸물적거릴 필요는 없어졌잖아."
이상하게도 오딜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상기되어갔다.
"아무튼 그래서 묻고 싶은 것!"
"......?"
"사실 내가 오늘 밤에 자위를 했거든. 그런데 영 모르겠는 점이 생겨서 확인해 보러 왔어. 조수님은 나보다 어른이잖아."
오늘 저녁으로 뭘 먹었다는 가벼운 말투였기에 시우가 오딜의 말에서 위화감을 찾아내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관능서적을 읽으면서 오데트가 했던 것처럼 거기를 만지작거렸거든. 금방 기분이 좋아졌어."
"아, 네..."
기묘한 상황이다.
오밤중에 방으로 찾아온 견습 마녀, 그 견습마녀가 자신의 자위에 대해 시시콜콜 늘어놓는 모습이란 뭔가 야릇하지 않나?
"그래서 뒤로도 손가락을 넣어봤는데. 하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어. 오히려 아팠지. 나는 그게 왜인지가 너무 궁금해."
돌려보내자.
몇 번 동안 쌍둥이와 얽혔던 시우는 이 흐름이 절대 좋지 않은 것임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아마 이대로 오딜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히거나 핑곗거리들로 인해 골때리는 상황이 생겨날 것이다.
"대답해 드릴 테니 나가셔야 합니다. 원래 뒷구멍은 쾌락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에요. 자위를 한다고 해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죠."
"그치만 나도 전에... 기분... 좋았는데?"
갑자기 시우의 이불을 끌어안은 오딜은 그걸로 얼굴을 폭 가리며 중얼거렸다.
이불에 가린 오뚝한 콧날 위로 눈치 보는 강아지처럼 뜬 오딜의 흰자위가 보인다.
"네...?"
"에로스의 묘약을 먹고 나서 시우님이랑 뒤로 할 때 기분이 좋았다고. 어때? 이상하잖아?"
시우는 확신했다.
오딜이 겉으로는 부끄러움을 이겨냈다, 별로 신경 쓸 일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녀는 굉장히 쑥스러워하고 있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성적호기심을 느끼는 상태다.
"그래서 내가 결론을 내린 게 뭐냐면 두 사람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는 거야."
그야 당연한 일이다.
시우만 해도 혼자 딸칠 때보다 대딸을 받았을 때가 훨씬 기분 좋았다.
"결론까지 내리셨으면서 제게 물어볼 게 남으신 겁니까?"
눈앞에 견습마녀가 '나 혼자 애널자위하는 건 별로였는데 너랑 애널섹스 했던 건 쩔더라!'라고 하는데.
이 뻘쭘한 상황에서 뭘 어쩌면 좋을지 그저 난감했다.
"사실 물어볼 거는 이미 끝났고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안 해요, 안됩니다, 돌아가세요."
칼같이 잘라냈다.
그러자 오딜이 이불을 침대 위로 던지더니 허리에 손을 얹는다.
"노예 주제에 나 오딜 제머나이의 명령을 거부하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으름장을 놓는 오딜.
예전이라면 몰랐어도 쌍둥이의 성향을 알게 된 지금은 그다지 무섭지도 않다.
"네, 거절할래요."
"힝."
한껏 치켜세웠던 어깨가 쭉 내려감과 동시에 오딜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솔직히 이 이상 시우에게 강요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부탁이라고는 생각 중이다.
애초에 그는 스승님을 직접 찾아가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엄하신 스승님이 쌍둥이의 일탈을 알게 되었을 때 떨어질 처벌은 생각만 해도 무섭다.
그렇다고 그를 협박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반쯤 장난으로 약점을 잡았을 때면 몰라도 지금처럼 완고하게 거절 중인데 탈출마법을 연구 중인 것을 까발리겠다고 협박을 했다간 완전히 관계가 무너질 것이다.
그를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있어도 지금처럼 재미있는 관계는 아니겠지.
"그럼, 이렇게 하자."
오딜은 손가락을 하나 쏙 세우며 말했다.
하는 짓이 꼭 아멜리아를 따라 하는 것 같다.
"손가락 하나만 넣어줘. 내 이론을 확인해 봐야겠어."
그때 뜨겁고 쫀득하게 자지를 받아들이던 오딜의 청결후장에 손가락을 넣는다?
남성이라면 혹할 수밖에 없는 제안에 흠칫하긴 했어도 시우의 생각은 확고했다.
입을 일자로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오딜은 휙 팔짱을 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저는 안 할 겁니다. 제에발 돌아가 주세요 오딜 님."
"아니야 들어봐. 이번에는 조수님도 관심이 생길 게 분명해."
오딜은 아까 벗어두었던 망토에 손을 넣어 주섬주섬 무엇인가 더듬었다.
사실 오딜은 시우의 극렬한 거부도 예상하였다.
거기에 대한 대책이 순전히 사탕발림일 리 없지.
"내 두 가지 제안을 수락하면 이걸 줄게."
그녀의 손에는 손바닥만 한 오르골이 들려있었다.
놋쇠로 만들어진 정교하고 작은 기계 장치는 유리덮개에 소중하게 덮여있다.
"이게 뭐죠?"
마녀 도시의 노예 짬밥이 5년이다.
얼핏 보기엔 어린애들 장난감에나 쓰일법해 보이는 오르골이지만 심상찮은 느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조수님, 마녀의 도시를 탈출할 계획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하는 시우.
설마 저걸로 협박하려는 걸까?
"그냥 탈출하면 만사형통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추격을 피할 마법진도 같이 연구 중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로는 힘들 거야. 누군가 작정하고 추격하면 금방 잡히고 말걸?"
오딜의 말대로 게헨나를 탈출한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시우는 현대에서 한번 잡혀 왔던 몸이 아닌가?
그게 두 번 세 번이 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따라서 시우는 미리 추격을 따돌릴 방법에 관해 연구해두고 있었다.
아직은 탈출 마법진 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조수님을 위해 준비한 거래 재료야."
오딜은 시우의 눈앞에서 오르골을 흔들었다.
자세히 보니 오르골의 태엽은 아주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바로 '고요함의 노래'를 반영구적으로 연주하는 오르골. 볼래?"
한번 목을 가다듬은 오딜이 입을 벌리고 크게 외쳤다.
"나 오딜 제머나이는 게헨나 최고의 마녀다아아아!!!"
결코 작은 소리가 아니었다.
아멜리아의 방 뿐 아니라 저택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랗고 시끄러운 외침.
시우는 소름이 쭈뼛 돋는 것을 느끼며 다급하게 오딜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 뭐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웁, 우웁..."
시우의 품에서 버둥거리던 오딜은 간신히 그의 손바닥을 떼냈다.
"아이참, 기다려 보라니까."
그렇게 10초가 지나고 20초가 지나고 30초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멜리아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창 밖에 나무에서 꾸벅꾸벅 졸던 새들도 잠잠하다.
"오데트와 내가 어떻게 매번 타로 타운으로 빠져나오겠어? 바로 이 오르골 덕분이지."
"아티팩트로군요."
"응, 그것도 자성 마법이 담겨있는 최상급. 아마 이 저택 정도는 우습게 살걸?"
마법이 담겨있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물건.
개중에서 아멜리아의 향수처럼 일회성이 아닌 물품은 아티팩트라고 불리는데 그 희소성과 유용성 탓에 부르는 게 값인 희귀한 것이었다.
오딜은 어떻게든 시우를 꼬시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오르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오르골로 말할 것 같으면 잠입 및 은신에 최적화된 아주 비싼 아티팩트야.
우선 이걸 들고 있는 것만으로 사용자의 소리는 5M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아.
마력의 기척도 완전히 지워주고 주변인의 인식에서도 멀어지지.
게다가 발자국도 남지 않는다니까? 아마 이걸 들고 도둑질을 하면 세계 최고의 괴도가 될 수 있을걸?"
추가로 이어진 오딜의 설명에 따르면 시우가 언뜻 듣기에도 말이 안 될 정도로 고성능의 아티팩트였다.
카메라, 녹음기, 감시카메라 등의 기록에서도 본인의 모습을 지워준다.
소형 자가 발전기가 탑재되어있어 태엽만 돌려주면 24시간 365일 내내 작동한다.
또한 측면에 조정 기어를 조절하면 작용 범위와 시간 효과까지 상세한 설정이 가능하다고 하니 이것만 있으면 탈출 이후의 대책도 완벽하게 해결될 듯 싶었다.
"즉, 이걸 지니고만 있어도 탈출 이후에 완벽한 은둔 생활이 가능해지는 거지."
이 정도면 손해 볼 것이 없다.
시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런 귀한 걸 거래대상으로 놓으셔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스승님이 오데트에게 하나, 나한테 하나 주셨거든. 하나 정도는 없어도 뭐, 용돈 필요해서 팔았다고 하지."
시우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듯하자 오딜도 그제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거래할 마음이 들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