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1.
어지러운 상황이다.
눈앞에는 솟구친 불의 장벽이 넘실거리고 그 너머로는 표도르 혹은 라리사가 권총을 겨누고 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시우의 집중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든 의식을 한 곳으로 모으는 순간 주변의 모든 소란이 가라앉는다.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은 것처럼 동요도 소란도 먹먹한 무의식의 물소리에 잠겨갈 뿐.
시우가 빠르게 계산해 본 바로는 그저 자위로 마력을 발생시키기에는 그 양이 모자라다.
따라서 선택한 방법은 아멜리아를 흥분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
발기로 인해 발생하는 마력의 양은 성적 흥분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아멜리아는 아름답다.
봄바람에 살랑이는 커튼보다도 풍성한 금발,
여름의 장대비가 적시고 지나간 듯 촉촉한 입술, 가을의 하늘을 담은 것처럼 새파란 눈동자,
겨울의 눈밭을 깔아 놓은 것처럼 하얀 피부.
게헨나의 그 어떤 화공을 다녀와도 그녀를 제대로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신이 내린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느낄 뿐이겠지.
그런 아멜리아의 알몸이라면 충분히 시우를 흥분시킬 수 있다.
이 불의 장벽이 시야를 가려주는 동안 빛의 속도로 아멜리아의 몸을 탐한다.
아멜리아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이게 모두 두 사람 살자고 하는 일이다.
"와...."
드레스의 치맛자락을 잡고 위로 젖힌 시우의 눈에 아멜리아의 세미 누드가 드러난다.
우선 하반신.
설원보다 하얗게 펼쳐진 아멜리아의 하복부에는 분홍빛으로 새겨진 문신이 있다.
이것이 자궁 위에 새겨지는 마녀의 낙인.
오늘 봤다시피 아멜리아의 팬티는 보지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정도였다.
따라서 하트 모양으로 아름답게 그려진 낙인이 팬티 밖으로 빼꼼 나와 있다.
이 위치에 아멜리아의 아가방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 급박한 상황에 팬티나 벗기고 있을 순 없다.
애초에 한쪽 팔로 그녀를 지탱하듯 안고 있었기에 이 이상을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소요된다.
시우의 눈이 아멜리아의 말랑말랑한 배를 타고 쭉 기어 올라갔다.
여리여리한 허리 중앙에 놓인 앙증맞은 배꼽을 지나 도착한 상반신.
조그맣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아멜리아의 가슴이 어른스러운 검정 속옷에 소중하게 감싸여있다.
시우의 손으로 덮으면 알맞게 들어올 것 같은 말랑한 가슴.
다른 남자에게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아멜리아의 몸을 샅샅이 훑어본다는 것에서 정복감마저 느껴진다.
"!"
무언갈 발견한 뒤 저도 모르게 왼쪽 가슴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아까 넘어지면서 브래지어의 위치가 틀어진 걸까?
애초에 유륜만 겨우 가릴 정도로 옷감이 부족하던 브래지어의 한쪽이 내려가면서 아멜리아의 젖꼭지가 빼꼼 튀어나와 있었다.
말랑말랑한 젖꼭지가 브래지어 컵에 슬쩍 얹혀있는 모습이란...
그것도 그 젖꼭지의 주인이 아멜리아라는 사실이 시우의 흥분을 가속한다.
몽글몽글한 아멜리아의 맘마통 위에 벛꽃을 짓이겨 놓은 것처럼 옅게 번진 분홍색 유륜, 그리고 조금 더 짙은 색의 유두.
이 정도면 됐을까?
발생한 마력의 양을 체크했지만 목표량에는 한없이 미달이다.
애초에 발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마력은 썩 효율이 좋지 않다.
그렇다면 차선책.
흥분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멜리아의 가슴에 입을 대고 빨아들인다.
코가 가슴에 파묻힌다.
사람의 피부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한편, 혀 위에서 데구르르 구르는 젖꼭지.
혀가 닿을 때마다 이리저리 이지러지는 젖꼭지의 움직임은 평소 아멜리아의 모습보다도 요망하고 음란했다.
전염병, 전쟁, 자연재해.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류의 미래를 견인해 온 단 하나의 본능.
아름다운 여성에게 씨를 뿌리고자 하는 그 본능의 이름은.
성욕.
시우의 몸은 그 오랜 본능의 부름에 응답한다.
피가 몰린다.
허기진 짐승처럼 가파르게 변하는 숨이 불길보다 뜨겁게 온몸을 달아오르게 만든다.
아플 정도로 딱딱하게 발기한 물건의 기세는 발기탱천.
그와 동시에 시우는 여태껏 느껴본 적 없던 강렬한 마력의 발생을 느꼈다.
"피어라!"
시우는 영원히 코 박고 싶은 아멜리아의 가슴에서 입을 떼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바닥을 펼쳤다.
-핑!
하늘로 빠르게 쏘아져 나간 마력의 파동이 너울거린다.
이후 재빨리 아멜리아의 드레스를 원상복구 시키자 주위를 에워싸며 벽 역할을 해주던 장식불이 꺼졌다.
그리고 정적이 흐른다.
아래층에서 사람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시우를 대신해 아멜리아를 옮길 게헨나의 무고한 시민이겠지.
"크하하하, 노예 새끼가 마법을 써봤자지."
당장에라도 잡아 삼킬 듯 타오르던 불길이 사라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표도르는 용기를 되찾았다.
"이 새끼는 이제 필요 없어."
"기다려 봐!"
마침내 라리사에게 권총을 뺏어 든 표도르는 정확하게 시우의 머리를 겨눈 채 총을 당겼다.
-탕!
먹먹한 굉음과 함께 음속보다 빠르게 날아간 납탄이 시우의 이마와 부딪힌다.
무엇인가 이마를 강하게 때렸다.
흩날리는 핏방울.
시우의 몸이 천천히 뒤로 쓰러진다.
이게 죽음이라는 거구나.
머리를 헤집은 총알이 뇌를 관통하기까지 주마등이나 관람하는 건가?
본능적으로 아멜리아를 감싼 채 바닥에 쓰러진 시우는 이상함을 느꼈다.
"응?"
시우는 살아 있었다.
그것도 아주 멀쩡히.
"뭐, 뭐야?"
하지만 그보다 당황한 것은 표도르였다.
아무리 권총이라도 이 거리에서 빗나가기는 쉽지 않다.
권총탄을 머리로 받아냈는데 멀쩡히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쁜 아이들이네."
느긋한 목소리가 울린다.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이 침대에 걸쳐 앉은 마녀는 시우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소피아 아베느가 수석교수.
시우가 아멜리아의 가슴을 빨아가며 발동한 마법은 하늘에 문자를 새기는 '스카이보드'.
마녀끼리 원거리에서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원시적인 방법이다.
지금은 보안 문제와 마력 효율이 나쁘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긴급한 구조 요청에 곧장 달려와 준 마녀가 있었으니.
"시발! 시발! 시발!"
-탕! 탕! 탕탕!
표도르는 별안간 생겨난 마녀를 향해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최대한 저항을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시우는 어떻게 자신이 살아남았는지를 깨달았다.
납탄이 총구에서 발사됨과 동시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느려진다.
그렇게 느려진 총알은 소피아의 피부에 닿을 때쯤엔 눈송이로 바뀌어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눈송이로.
"시우 관리인, 힘써줬어. 덕분에 위치를 한 번에 찾았거든."
이것이 마녀다.
권총을 무차별적으로 쏘아 냈는데도 상처는커녕 최소한의 위기감조차 느끼지 않는 상대.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아베느가 수석 교수님."
"그나저나 아이디어가 정말 좋은걸? 거기서 룬'을 사용하다니."
애석하게도 스카이보드의 마력 효율이 지나치게 나쁜 관계로 시우가 발생시킨 마력으로 하늘에 그릴 수 있는 것은 단 한 글자였다.
'도와주세요'를 칠 수도 없고, 'HELP'를 칠 수도 심지어 만국의 공용 약어 'SOS'를 쓸 수도 없는 상황.
따라서 시우가 선택한 것은 '율(ᛇ)이었다'.
아무리 단순한 회로라도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문자이다.
그 역할은 마력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합선되었을 때 마력의 작용을 무효화 하는 일종의 비상차단 장치이다.
상황이 꼬였고 비상인 상황이니 도와달라.
이것을 룬문자 하나로만 축약해 주위의 마녀에게 전한 것이다.
"시발, 으아아아!"
권총을 모두 난사한 표도르는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이프를 꺼내 들고 고함을 내지르며 소피아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따른 소피아의 대응은 단순했다.
"귀엽게."
그저 손을 앞으로 뻗고 한 마디의 영창을 외운 것.
그것만으로 표도르는 생선이 되었다.
참고로 어종은 고등어다.
-퍼덕 퍼덕 퍼덕
아무런 특색도 없는 고등어, 아니 고등어가 된 표도르는 바닥에서 펄떡펄떡 뛰었다.
힘차게 내려친 꼬리자 마룻바닥을 때리긴 했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히 우리 아멜리아에게 해코지했으니. 천천히 숨이 막혀 죽어가렴."
1초 만에 사람을 생선으로 만들어버린 소피아는 열심히 바닥에서 튀어 다니는 표도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느긋하게 팔을 라리사에게 겨눴다.
라리사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을 꾹 감고 자신의 최후를 기다렸다.
소피아가 마법을 사용하면 라리사도 표도르처럼 생선이 되어버리는걸까?
"수석 교수님!"
"왜? 귀염둥이?"
시우는 반사적으로 소피아를 붙들었다.
소피아는 화려한 보랏빛 머리칼을 휙 휘날리며 하던 일을 멈추고 시우를 돌아보았다.
역시 마녀들은 죄다 경국지색이다.
아멜리아가 어딘가의 황녀 같은 고아한 아름다움이라면 소피아에게는 여신에게서 느껴질 법한 풍요롭고 따스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탁?"
"네, 수석교수님이 아멜리아 님을 아끼시는 걸 압니다."
"맞지."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합니다."
"아멜리아를 구해낸 걸 칭찬받고 싶다고? 알았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원 없이 해줄게."
소피아는 걱정 말라는 듯이 가슴을 펴고 말한다.
"일단 이건 끝내고..."
"지금 당장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소피아가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신시우가 단순한 속물이라면 마녀의 밤시중을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보상을 받고 싶다는 타이밍을 생각해보자면...
"설마, 살려달라고?"
시우는 소피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네."
죽음을 각오했던 라리사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한다.
스스로도 어이없는 행동이라는 건 안다.
목숨을 위협했던 사람을 살려달라고 부탁하다니.
사기꾼을 용서해주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라리사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그녀가 잘못된 방법으로 자유를 쟁취하려 했을지언정 원인을 따져보면 그것은 이 도시를 만든 마녀에게 있다.
여기서 소피아가 라리사를 죽이게 하는 것은 이 도시의 비틀림을 답습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라리사는 마지막까지 시우를 살리려 하지 않았던가?
생각보다 순순히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신기한 걸 다 봤다는 듯이 만연의 미소까지 머금고 말이다.
호의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좋아, 더 원하는 게 있으면 상세히 말해봐."
시우는 원하는 바를 말했다.
"그녀가 한 행동을 생각하면 처벌은 마땅합니다. 하지만 목숨을 빼앗는 건 아니었으면 합니다."
"접수했어, 하지만 남작으로서 이런 일을 묵과할 순 없으니 시청에 넘길 거야."
"시청에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네가 원하는 것 같으니 사형 판결은 받지 않도록 할게. 그래도 재산을 몰수당하고 노예가 되겠지? 저 여자는 그래도 이쁘장하니까 창관으로 팔려 가겠네."
"그렇군요."
노예가 되는 게 좋은 일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참 독특한 아이네. 더 원하는 건 없어?"
"먼저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조금 정신없긴 하네."
소피아는 아가미를 펄떡이며 숨이 끓어져 가는 고등어에게도 손을 향했다.
"얘도 죽이지 마?"
아무리 시우라도 그건 아니었다.
"아뇨, 걘 그대로 두세요."
소피아는 고등어의 꼬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집으로 가면 고양이들 간식으로 줘야겠다."
섬뜩한 말이었지만 억지로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