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3화 (13/917)

#14

1.

시우의 현자타임은 굉장히 오래갔다.

그날, 타로 타운의 일탈로부터 이틀이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으니.

"시발, 내가 왜 그랬지?"

물론 오딜과 오데트가 먼저 잘못한 것이다.

시우는 두 견습 마녀의 호흡에 맞춰준 것밖에는 잘못이 없다.

달리 도덕적 결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쌍둥이를 속여 먹어 쾌감을 느낀 것에 대해 자책을 느낀다면 당연 거짓말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다만 시우가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중반부터 시우는 쌍둥이를 적극적으로 속이며 둘의 행동에 동조했다.

문제는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이것이 굉장히 리스크가 큰 일이라는 것이다.

훗날 이 일탈이 들통나게 되었을 때 '전 그냥 묶여서 당하기만 했어요!'라고 변호하는 것과 '하다 보니 얼큰한 입싸가 마려워서 자지를 입에 물라고 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도 아마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 사형 확정이다.

시우가 마녀라도 자식이나 다름없는 견습마녀를 가지고 논 파렴치한은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지."

멍하니 그날 있던 일을 떠올렸다.

아찔한 사정 말랑한 쌍둥이의 혀와 뜨거운 구강점막.

종종 아직도 그 감각이 환통처럼 되살아날 정도다.

꿈틀꿈틀 자라나려는 고추를 툭 때린 시우는 빗자루를 들고 마저 숙소를 청소했다.

오늘은 수업도 없고 아멜리아의 자질구레한 업무 지시(를 빙자한 괴롭힘)도 없었기에 해가 질 무렵에 할 일이 끝났다.

근 5년간 몸에 밴 부지런함으로 축사를 청소 중이었는데.

"뭐가 기분이 좋았는데?"

"끄악!"

"요란스럽기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에 시우는 펄쩍 뛰었다.

"안녕? 잘 지냈지?"

"안녕하세요."

뜬금없이 찾아온 손님은 오딜과 오데트였다.

그날 이후로 수업에 들어간 적이 없기에 이틀만이다.

아멜리아와 쌍둥이를 보면서 느낀건데 정말로 화사한 사람은 주변의 분위기까지 바꾸어 버린다.

허름한 축사가 무도회장으로 변했다고 착각해 버렸다.

완전히 똑같은 외모, 번 형식으로 올려 묶은 똑같은 헤어코디와 똑같은 장식, 똑같은 드레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두 소녀의 아리따운 자태가 너무나도 쏙 빼닮았기에 묘한 부조화가 느껴졌다.

오늘도 아멜리아를 헷갈리게 하려고 온 힘을 쓴 모습이었다.

성공 여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 여긴 어쩐 일이시죠?"

빗자루를 비스듬하게 들어 경계하는 시우.

찔리는 것이 있는지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보다 여기로 덜컥 찾아오시면 어떡합니까? 여긴 사용인 숙소라고요! 누가 의심하면 어쩌려고요!"

이제껏 시우에게 사적으로 접촉이 없던 쌍둥이가 갑자기 숙소로 찾아간다면 누군가는 수상하게 여길 가능성이 있다.

시우가 기겁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의심? 우리가 나쁜 짓 했던가?"

"이런 허름한 곳에서 사시는 건가요...? 아 죄송해요..."

비교적 태연한 오딜과 다르게 오데트는 동물 우리 같은 숙소에 문화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혼란스러워한다.

각기 다른 반응이고 뭐고 시우는 어서 자매를 내보내고 싶었다.

그나마 아멜리아에 비해 융통성 있을진 몰라도 남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들은 지극히 마녀스러웠다.

"너무 무례한걸? 이래 봬도 선물이 있어서 온 건데."

"선물?"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 시우에게 오데트는 우아하게 고급스러운 나무함을 건넸다.

평민들이 보석함으로 쓸 정도로 적당히 고급스럽지만 오딜이 쓰기엔 너무 수수한 정도의 물건이었다.

"이게 뭡니까?"

"일전에 상점 주인이 조수님한테 보낸 배상금이야."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더랬지.

시우는 상자를 열어보았다.

작은 가죽 주머니가 빵빵해지도록 담긴 은화,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전마지 한 다발. 그리고 액체가 찰랑이는 조그마한 병이다.

덤으로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시우 군 일전의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사소한 이익에 취해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신뢰를 잊고 있었으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네. 괜찮다면 다시 가게를 찾아주지 않겠나? 생명의 은인인 자네에게 한 끼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군]

구구절절 많은 말이 적혀 있진 않았지만 충분히 진심이 묻어나오는 편지였다.

전에는 경황이 없어 깨닫지 못했을 뿐 가게 주인도 생각해보니 깨달았던 것이다.

시우는 죽을 위기에 처한 사기꾼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마녀와 맞섰다는 사실을.

"그래도 일말의 염치는 있던 사람인가 봐. 나한테 온 편지도 있었는데 따로 빼놨어."

동화책에 나올 법한 미담의 주인공이 되다니 뭔가 뿌듯했다.

"이건 마력수군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에메랄드 타블렛 학회'의 공동 공방에서 만든 물건이에요. 굉장히 구하기 힘든거 라구요."

오데트의 상세한 설명.

시우는 전마지 다발 사이에 끼워 넣어 깨지지 않도록 포장된 병을 들어 올렸다.

종이 라벨 위에 개봉되지 않았음과 정품임을 증명하는 실링 왁스가 박혀있다.

그 내용물은 깨끗하고 밝은 푸른 빛.

마녀들이 연구에 사용할 정도로 높은 순도를 지닌 마력수다.

시우는 활짝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물었다.

"제가 전부 가져도 되는 겁니까?"

오딜은 괘념치 말라는 듯 손을 휘적였다.

"됐어, 나한텐 하잘것없는 것들이고. 이 김에 그 돈으로 이 볼품없는 집이라도 고치는 거 어때?"

"정말 감사합니다."

시우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건 정말로 큰 소득이었다.

마침 보충이 필요하던 전마지를 받은 것도 모자라 가장 큰 연금학회'에메랄드 타블렛'에서 만든 마력수라니.

안그래도 마법진을 완성한 이후 마력수를 모을 길이 막막했는데.

이 정도 마력수에 농축된 마력이라면 시우가 만드는 술식을 발동하고도 남을 것이다.

"뭐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보시다시피 여긴 축사라서요. 물건 전달해 주신 건 잘 쓰겠습니다. 그럼 이만 배웅해드리죠."

"잠깐."

이제 수확도 얻었겠다 오딜과 오데트를 내보내려던 시우는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

설마 이번엔 여기서 그 성교육같지도 않은 성교육을 하려 드는 건가.

결단코 거부하고 쫓아낼 것이다.

"네가 만들고 있다던 문을 여는 마법. 조금 봐줄 수 있어."

"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갑자기 이게 뭐지.

확실히 명색이 백작의 견습 마녀인 오딜이 이론 첨삭을 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우는 별안간의 친절이 낯설었다.

게다가 무슨 꿍꿍이인지 모를 오딜의 친절이어서야...

"너도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잖아? 네 탈출을 도와줄게. 오데트와 협의가 끝난 사항이야."

"제가 해야 하는 건요?"

시우는 주저 없이 계약 조건을 물었다.

답답하지 않아 좋다는 듯 오딜은 대담하게 웃는다.

"네 예상대로야. 앞으로 주말마다 타로 타운의 아지트로 와."

그럼 그렇지.

맨입으로 저런 일을 해줄 리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손해인 것도 아니다.

오딜이 마음을 먹는다면 어차피 시우에겐 거부권이 없다.

협의점을 이끄는 시늉만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지푸라기를 들춰 아래 숨겨둔 궤짝을 열었다.

A4용지 정도 크기의 종이 228장으로 이뤄진 마법 이론서다.

여기엔 시우가 마법진을 구축하기 위한 계산식, 마법진의 청사진과 사고 실험을 통한 예상값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여깄습니다."

마치 깜지처럼 앞뒤에 글자와 수식이 가득한 종이를 받아든 오딜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2.

일정 이상의 복잡도를 가지고 있는 마법진을 짜는 것은 한 곡의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웅장한 교향곡이 현악기, 타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건반악기 등등.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선율을 하나의 하모니로 만드는 것처럼 마법은 각종 수식과 문자 그리고 마력을 엮어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야 한다.

제아무리 천재 음악가라도 눈을 감고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처럼 탁월한 두뇌를 지닌 마녀라도 일정 규모의 이상의 마법진을 모조리 암산으로  만들 수는 없다.

세세하게 작성한 마법진의 형태를 계산 및 완성해놓고 머릿속에서 암기한 뒤 발동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법을 발동하는 것은 지휘와 비슷한 셈이다.

지휘자가 그저 곡을 외우고 있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는 것처럼 마녀 역시 성공적인 마법을 위해서는 훌륭한 지휘와 보정이 필요하니까.

아무튼 시우가 3년이란 시간을 투자해 열심히 종이에 써 내려 간 것은 문을 열 마법진의 초안이다.

여기서 모든 계산과 분할 실험 그리고 구상이 끝나면 전마지를 하나로 이어붙여 거대한 술식을 완성시킬 생각이었다.

오딜과 오데트는 나란히 앉아 진중한 표정으로 시우의 마법진 초안을 넘겨 보았다.

약 3분 정도 지났을까?

제대로 읽는 게 맞나? 싶을 속도로 종이를 넘겨가던 오딜의 손이 멈췄다.

""말도 안 돼....""

오딜과 오데트가 동시에 외쳤다.

열심히 혼자 만들던 마법진이 실은 조잡한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시우는 고개를 숙여 쌍둥이가 보던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막 개요 작성이 끝나고 낙인이 없는 상태에서 마법진을 발동하기 위해 마력수를 정합한 양의 마력으로 분배하는 계산식 부분이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입을 꾹 다물고 눈썹을 찡그린 오딜 대신 오데트가 답했다.

"이거 정말 시우 조교님이 작성하신 게 맞나요?"

"그런데요."

"누구의 도움이나 첨삭도 받지 않고?"

"네."

"아무도 마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혼자서?"

"그렇습니다."

문답이 오가고 오데트는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영문도 모르는 시우를 두고 쌍둥이는 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기 그렇게까지 엉망입니까?"

시우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우가 최종적으로 고안한 '문'을 여는 마법진은 6개의 연성, n개의 변화(각종 변수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한다), 1개의 전개로 이루어진 가변마법식이다.

34 종류의 룬 문자 540개가 마력 소자로 이용되었으며 약 258개의 '가지'로 마법진 사이사이를 이어 높은 안정화와 변수에 대한 탄력적인 적응을 꾀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대규모 마법진을 계속 실험해보며 작성할 수는 없으니 88개의 파트로 나누어 전마지에 작성, 분할 발동시키는 식으로 오류를 검증해갔다.

그때는 잘 됐는데.

하나로 합쳐질 때 커다란 문제가 생긴 걸까?

어쩌면 3년간의 노력이 근본적으로 헛짓거리였다는 대답을 듣게 될까 봐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이런 식이 나오는 거야? 계산 과정을 3개는 건너뛴 것 같은데..."

"저기...실례가 아니라면 뭐가 문제인지부터 여쭐 수 있을까요?"

오딜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시우를 올려보았다.

"문제?"

시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남자인 조수님이 낙인도 없이 자성마법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거?"

"네?"

난데없이 자성 마법이라고?

"독자적이고 참신해. 기존의 체계를 탈피한 접근 방식이야. 솔직하게 말해줄까? 나로선 절반도 이해할 수 없어. 오데트도 마찬가지고."

"아닌데? 난 55% 정도는 이해했어."

옆에서 발끈하는 오데트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조적으로는 완벽해. 룬 문자의 배치도 올발라. 그래, 뭐가 문제냐고 물었었지? 가장 큰 문제는 이걸 계산해서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왜냐하면 네가 처음으로 만든 너만의 자성 마법이니까."

지극히 혼란스럽다는 듯,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오딜이 단언했다.

"조수님은 천재야. 어이없을 만큼."

"저희보다는 아닐 테지만요."

오데트가 덧붙였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