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10화 (10/917)

#010

1.

주점의 주인은 몇 번이고 근사한 안주를 내어주었다.

몹시 불행한 사실은 시우에겐 그것을 음미할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딜은 접시마다 한두 입씩 맛만 본 뒤 음식 대부분을 남겼기 때문에 식사가 끝난 뒤에도 테이블 위에는 한가득 음식이 쌓여 있었다.

"조수님, 이제 슬슬 일어날까?"

"...네."

거부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이미 오딜에게  커다란 약점을 쥐여주고 말았으니까.

백번 양보해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오딜의 말대로 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그것을 통해 탈출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할 비밀이다.

이 모든게 시우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걸린 마법 탓이다.

오딜에게 원치 않게 모든 비밀을 술술 털어놓고 난 뒤에도 시우는 한동안 헛소리를 계속했다.

"설마 이런 생각까지 말로 나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 시발! 나오잖아!"

"모처럼 잘 넘긴 줄 알았는데... 이 영악한 년!"

"아멜리아도 그렇고 왜 마녀들은 다들 이 꼬라지인지."

아무리 입을 틀어막으려 해도 모든 본심이 술술 튀어나왔다.

오딜은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웃으며 시우의 독백 쇼를 15분간이나 지켜보았다.

불경하다며 그 자리에서 불태워버리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시우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오딜 님."

오딜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재차 불렀다.

"오딜 님."

"응? 아, 미안. 나 부른 거야? 아까는 얼굴만 반지르르한 싸가지없는 쌍둥이년 이라며?"

오딜은 깔깔 웃었지만 시우의  얼굴은 단숨에 흙빛이 되었다.

속마음이 까발려진다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 일인지 일직이 알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마법이 존재하리라는 것도.

"그건, 오딜 님이 제게 몹쓸 마법을 건 게 아닙니까? 마인드 컨트롤이라던가..."

"하지만 조수님은 독백으로 '어째서 내 속마음이 고스란히 튀어나오는 거지?'라고 말했는걸?"

"그땐, 그땐...."

시우는 한숨을 푹 쉬고 포기했다.

"모르겠다. 이젠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맘대로 하시죠."

"그래? 조수님은 만찬에 오르게 된다면 미디엄인 채가 좋아 웰던인 채가 좋아?"

살벌한 농담을 뱉고는 또 한참을 웃는 오딜.

"어떤 마법을 걸었는지가 묻고 싶은거지?"

"네."

분명히 별다른 마력의 파동도, 또는 마법식도 느끼지 못했다.

비록 정식으로 마법을 배운 것이 아니기에 성취가 미천하긴 해도 설마 아무런 전조조차 느끼지 못할 줄은 몰랐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법에 대해 탐구심과 학구열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오딜은 입을 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아름다운 현악기의 선율에 가까운 음색이었다.

시우가 망연히 감탄하기에 앞서, 그녀의 곡조와 동시에  집중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미약한 마력이 꿈틀거림을 감지했다.

"감 잡았어?"

"설마...."

시우는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음식을 뒤적이던 오딜이 부르던 콧노래.

그것이 단순히 흥에 겨워 부른 것이 아니었더라면?

"정답이야, 이게 제머나이 마녀의 자성마법. 음의 높낮이와 박자, 세기와 호흡을 통해 자연스럽게 마법이 발현되지. 내가 네게 걸었던 건 '자백의 시'.

오데트가 없어서 완벽하게 부르진 못했지만 듣기 나쁘진 않았지?"

"...함정에 빠진 거군요."

"응, 맞아."

지금 오딜은 아무런 안내 없이 타로 타운의 복잡한 골목을 거침없이 누비고 있었다.

그것도 그저 방황하는 발걸음이 아니라 정확하게 목적지를 향하는 모양새로.

그 말은...

"타로 타운이 처음이라는 말도. 거짓말인 거네요."

"응, 스승님이 엄하신 건 사실이라 매주 한 번 몰래 나오는 게 전부지만."

괜한 배신감을 느꼈다.

오딜과 오데트가 좀 딱하다고 생각했던, 오딜을 새장 속의 새라고 가여이 여겼던 것이 몹시 후회됐다.

"그래서 뭘 위해 이런 짓까지 하는 겁니까? 전 고작 노예고 어지간한 일이라면 턱 끝으로도 부릴 수 있잖아요."

"그걸 알려주는 건 잠시 후의 즐거움으로 미뤄둘까? 레이디의 신발 크기까지 캐묻는 건 예의에서 어긋난다고."

레이디는 개뿔이.

한참 동안 어두컴컴한 골목을 나아가던 오딜이 우뚝 멈춰 섰다.

허름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운데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5층짜리 저택이 자리 잡아 있었다.

달동네에 서 있는 고층 빌딩만큼의 위화감이 든다.

오딜은 문을 열며 씨익 웃었다.

"미리 소개할게. 여기는 오데트와 나의 별장. 세상의 궁금한 모든 것을 알아가기 위해 만든 전초기지야."

"그러시겠죠."

시우는 모든 걸 다 포기한 표정으로 문을 닫고 오딜을 따랐다.

2.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맞이하는 집사나 하녀는 없었다.

대신 휘황찬란한 금박으로 장식된 촛대들이 일제히 불꽃을 피워 올리며 너울거렸다.

저택의 외관도 허름한 골목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부 장식을 보니 몇 술을 더 뜬다.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거리는 대리석 바닥을 신발을 신은 채로 밟아도 되는지 진심으로 고민했을 정도이다.

"오데트!"

개선을 알리는 오딜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울리자 슬리퍼가 바닥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층 계단 난간에서 오데트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아카데미 내에서와 달리 서로 머리 스타일도 장신구도 심지어 옷도 다르다.

"밖에서는 바꿔치기 놀이 안 하는 건가요?"

"응?"

"왜 가끔 교수님을 골탕 먹이지 않습니까. 오딜 님이 오데트 인 척을 하고, 오데트 님이 오딜 님인 척을 하면서요."

오딜은 입술을 동그랗게 모았다.

절대로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완전범죄가 발각된 직후 범인의 모습 같았다.

"잠깐만,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우리는 마력 파형까지 완벽하게 똑같은데?"

"그걸 누가 모릅니까. 아멜리아 교수님도 별말 안 하실 뿐이지 눈치채셨을 겁니다."

심드렁한 시우의 반응에 오딜이 뻣뻣하게 굳어있는 사이 오데트는 달리듯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시우 조수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아카데미 밖에서 뵈니 감회가 새로워요!"

계단 앞에서 급정지한 오데트는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슬쩍 펼쳐 보이며 공손히 인사했다.

그래도 오데트가 언니인 오델보다는 살짝 덜 말괄량이이다.

생글생글한 미소를 띠고 노예에게도 존대를 잊지 않는 모습이 그랬다.

라는 생각은 1초 만에 사라졌다.

"어떻게 포획 한거야? 정말로 데려왔잖아?"

보통 포획이라는 단어를 사람한테 사용하는 게 맞나?

오데트는 진귀한 동물을 발견한 학자처럼 시우의 주위를 기웃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내가 뭐랬어? 언니만 믿으면 모든 계획대로 될 거라고 했잖아. 그뿐이겠어? 우리의 실험에 협력하도록 확실하게 약점도 잡았지."

"약점?"

"사실 말이지..."

속닥속닥속닥.

실험이라는 말에 모골이 송연해진 시우.

한편 오딜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오데트의 눈에서 두 배의 반짝거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언니의 결계를 파훼했어? 문을 열 마법을 연구 중이라고? 노예인데?"

"그건 상관없잖아? 신기하긴 해도 우리랑 관련 있는 일도 아니고."

"그건 그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오데트.

"아무튼 따라오도록 해. 거부권은 없다는 거 알지?"

"죄송해요, 조수님. 하지만 너무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잠시만요."

다른 건 몰라도 이것은 확실히 해야 한다.

"만약 그 실험이라는 것에서 무사하게 살아남는다면.... 뭡니까?"

말을 꺼내는 도중 웃음소리로 합창을 시작한 쌍둥이 탓에 시우는 언짢아졌다.

이쪽은 목숨이 걸린 일일지도 몰라 살 떨려 죽겠는데.

"설마 조수님을 우리가 해코지하겠어?"

"설마 저희가 조수님을 해코지하겠어요?"

"아니라면 감사할 따름이죠."

"절대로 그런 일 없어!"

"절대로 그런 일 없어요!"

"물론 협조적으로 나올 때의 이야기지만."

"물론 협조적으로 나올 때의 이야기지만요!"

오딜과 오데트의 환상적인 호흡.

마지막의 요를 빼면 거의 똑같은 타이밍에 시작해 똑같은 타이밍에 끝나는 기묘한 쌍둥이 화법을 듣고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몸에 해로울 만한 실험도 아니고 협조만 한다면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이니까.

"그럼 제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랑 탈출을 준비한다는 것도..."

""비밀로 할게!"요!"

"...믿겠습니다."

어째 긴장감이 좀 빠진다.

걱정보다 별일 아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둥이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안락해 보이는 침실.

베개가 두 개 놓여있고 커다란 침대 하나밖에 없는 걸 봐서는 아마 둘이 같이 잠을 자는 침대인 것 같았다.

시우는 당황했다.

실험 운운하길래 마법 시약이 가득한 공방을 예상했는데 난데없이 침실이라니?

어째 등줄기가 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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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

"네?"

"실험을 도와준다며? 벗어야지."

시우는 그제야 직감했다.

조수라는 명목하에 사정에 의한 마력생성유도니 뭐니 하는 수치플을 당할 때 오딜과 오데트는 굉장한 집중력을 보였다.

그건 분명 오롯이 마법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 집중력의 9할을 차지한 것은 아마도 남성의 신체에 대한 호기심.

"오늘 시우님이 도와주실 실험의 참고서적은 이거예요."

오데트는 얼굴에 홍조를 그윽이 채운 채 얇은 책 한 권을 가져왔다.

책의 제목은 ' 숙녀를 위한 첫날 밤 지침서'.

"시녀들이 모여서 읽고 있는 것을 빼앗아왔어요. 진정한 숙녀가 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책이라나 봐요."

생글생글 웃는 오데트.

"빨리 벗어!"

"자, 자, 잠시만요."

"지금 안 벗으면 당장 아멜리아 교수님께 알릴 거야."

"협조해 주시기로 했잖아요? 부탁드릴게요."

양옆에서 튀어나온 쌍둥이가 시우의 옷깃을 잡고 늘어졌다.

금방이라도 벗겨내고 싶어하는 눈치였기에 시우는 옷을 꽁꽁 싸맸다.

"안 돼요! 안됩니다!"

시우도 고자인 건 아니다.

오딜과 오데트, 지구상에서 봤던 그 어떤 모델보다 아리따운 자매 덮밥을 시식할 수 있는 것은 남자라면 당연히 혹할 유혹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절대로! 견습 마녀와 성관계를 해선 안 된다.

마녀의 낙인이 새겨지는 곳은 자궁이 위치한 아랫배.

그렇게 새겨진 낙인이 마력을 담는 곳이 여성의 자궁이다.

이것이 남자가 마녀가 될 수 없는 궁극적인 이유.

아직 자궁이 무르익지 않은 견습마녀가 남자가 사정(또는 발기시)시 발생하는 마력을 받아들이게 되면 영원히 낙인을 짊어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애지중지 길러왔던 견습마녀가 왠 놈팽이랑 눈이 맞아 낙인을 이어 받을 수 없게 됐다?

과연 마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렇게 침실에서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아마 쌍둥이의 스승인 제머나이는 시우를 불태워 죽일 것이다.

"안 되겠네. 오데트."

"알겠어! 언니."

쌍둥이는 동시에 노래를 시작했다.

얽히고설킨 선율.

비록 각각 낙인의 10% 정도를 물려받은 쌍둥이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시우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을 정도의 까마득한 경지의 마법이 펼쳐졌다.

"아, 진짜 안된다니까요! 내가 문제가 아니라 너희도 좆돼요 진짜로!"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아?"요?"

옷이 저절로 벗겨져 나가 팬티차림이 된 시우가 침대 위에 떨어졌다.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부조리할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었다.

"그냥 조금 호기심을 채울 뿐이야. 얌전히 있어야 해?"

"----! -----!"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오데트 올라와."

"....어? 응, 언니."

막노동과 강제 식단 조절로 단련된 튼실한 체구.

언제나 아멜리아의 수업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남성의 신체를 가까이서 보게 된 오데트는 입가를 가리며 조신하게 침대에 앉았다.

"1장부터 차근차근해보는 거야."

오딜이 슬쩍 입술을 핥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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