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1.
"재밌는 일이 생겼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오딜의 조막만한 얼굴에 걸린 수상쩍은 미소.
언뜻 보기에 천진하고 철없는 소녀의 모습을 한 오딜이지만 어찌됐건 그녀의 본질은 마녀이다.
오딜과 오데트는 언제나 시우에게 조수님 조수님 거리며 높임말을 사용했다.
그건 시우를 존중하기 때문이 아니었으며 하물며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아멜리아가 수업에서 시우를 조수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카데미의 바깥, 수업 중이 아닌 곳에서의 시우는 일개 노예에 불과하다.
그런 생각이 오딜의 태도와 말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안 그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벡터를 지니던 오딜이 더욱 큰 위험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조수님이 산 거 보여줘 봐."
마도구점에서 마법 용품을 구매한 노예.
아무리 바보라도 수상쩍은 상황임을 눈치챌 것이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들키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연구하고 기록하던 마법 문서를 전부 몰수당하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마녀들에게만 허용된 마법을 하찮은 노예가 사용했다는 말이 돌면 시청 노예 자격을 박탈당하고 사노예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시우의 예상이었지만.
칼날이 목 밑을 받치고 있는 기분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전마지 다발을 건넸다.
"전마지네?"
돈다발을 세는 것처럼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는 오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이 상황을 어떻게 무마해야 할지 고민한다.
아멜리아의 심부름이라며 이름을 팔아야 할까? 마법용품인줄 모르고 샀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까?
"주인아저씨, 너무한 거 아니야?"
가볍게 종이를 훑어보던 오딜이 말을 건 상대는 뜻밖에 상점 주인이었다.
시우는 쓱 시선을 돌렸다.
땅을 쳐다본 채 불안한 기색으로 안경을 만지작거리던 가게 주인은 황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 무슨 말씀입니까?"
"시치미 떼긴."
다시 시우에게 몸을 돌린 오딜은 전마지를 부채처럼 펄럭이며 물었다.
"조수님, 이거 얼마에 샀다고?"
"12페니, 그러니까 1실링에 3장을 샀고 지금까지는 2장을 샀습니다."
오딜은 시건방진 미소를 지었다.
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이가 천장의 기름 등 조명에 반짝인다.
"이런 싸구려가 3장에 은화 하나?"
"네?"
"아무리 상대가 노예라고 해도 이렇게 거하게 등쳐먹는 건 아니지."
시우는 깜짝 놀라 가게 주인을 보았다.
이제야 보였다.
마도구상점의 주인인 이상 마녀들이야 자주 만났을 것이다.
그저 마녀를 만났다고 해서 폭포수처럼 식은땀을 흘리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조수님,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살아온 거 아니야? 상점에서 거래할 때 상품 상태와 시세 정도는 알아봐야지."
"마, 마녀님, 오해십니다. 여기 '제머나이 사(社)'에서 받은 품질보증서가..."
"아니 아니, 그건 볼 필요도 없어."
오딜은 전마지 한 장을 꺼내 엄지와 검지로 쓱쓱 문질렀다.
하나처럼 달라붙어 있던 얇은 종이가 세 겹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두 종이 사이에는 반대편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은 은박(銀箔)이 끼어 있었다.
알루미늄 따위가 아니라 연금에 의해 제련된 아주아주 얇은 순은이다.
"이거 봐! 은박 상태가 아주 엉망이잖아? 이러면 노이즈 발생이 심해져서 마법진을 짤 때 안정화를 위한 획이 낭비돼."
오딜은 구깃 종이를 구겨버렸다.
"이런 불량품을 돈 받고 파는 것도 모자라서 3장에 은화 한 장이라니. 사람 좋게 생겨서 아주아주 심보가 고약하네."
시우는 뒤늦게 배신감을 느끼며 가게 주인을 노려보았다.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고객으로 대해주는 태도에 감동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처맞고 있을 줄이야.
"그 품질 인증서라는 것도 한 번 볼까? 정말 이딴 불량품을 팔고 있다면 우리 제지소의 관리자들을 문책해야 하거든. "
"우리 제지소...?"
가게 주인은 경악한 듯 입을 벌리더니 부릅뜬 눈으로 오딜을 보았다.
"서...설마..."
"그래, 내가 그 제머나이 야."
'제머나이 사'는 게헨나에 7명 밖에 없는 '백작'이 소유한 마도구 기업이다.
말인즉슨 눈앞의 마녀가 게헨나의 최상위 의결기관 '세피포트의 나무'의 일익이라는 의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백작의 견습마녀지만.
"거래에선 아무리 당하는 놈이 바보라지만 그럴 거면 걸리지 않게 철저히 했어야지."
"제...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가게 주인은 바닥에 오체투지를 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오딜은 그를 내려보지도 않고 손톱 끝을 매만졌다.
"제가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저것들은 어디서 놨어?"
"제지소의 딕이라는 친구에게 폐기장에 들어가는 물품을 조금만 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정말, 정말 두 번 다시 이런 짓 하지 않을 테니..."
순식간에 친구의 이름까지 줄줄 불며 용서를 구하는 주인장의 모습은 볼썽사납고 꼴사나웠다.
그래.
마치 목숨이라도 걸려있는 것처럼.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애처로운 간원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오딜의 입에서 영창이 흘러나왔다.
"노래해라."
발랄한 목소리가 커다란 파장과 함께 마도구점을 가득 채운다.
낙인의 10%도 물려받지 않은 견습마녀라해도 마녀는 마녀다.
마력의 파동은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솜털을 삐죽 세울 정도로 거세게 치달렸다.
마법이다.
"주인장은 허가도 없이 노예에게 마도구를 팔았어. 게다가 불량품을 공수해 와서 보증서까지 위조했지? 자칫하면 우리 회사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 행동이야. 그걸 이 ' 오딜 제머나이'가 용서할 거라고 생각해?"
"컥...커어억..."
가게 주인은 갑자기 목을 움켜쥐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입을 뻐끔거리며 게거품을 물고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시우는 반사적으로 마력의 흐름과 규칙을 가늠했다.
지금 오딜이 펼치는 마법은 5개의 원소를 활용하는 연금 응용술과 결계술.
룬어에 기반한, 공간을 장악하는 결계가 보이지 않게끔 펼쳐져 있었다.
범위는 주인장이 고통스럽게 뒹굴고 있는 마룻바닥.
오딜은 결계로 차단된 내부 공간을 저산소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숨을 쉬려 노력해도 차츰 질식해가는 것이다.
"오딜 님!"
"끼어들지마."
시우는 오딜을 말리려했다.
돌아오는 것은 차디차고 오만한 마녀의 목소리.
일개 노예의 진언 따위는 오딜의 분노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우리 회사상품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릴 뻔한 사기꾼을 얌전히 놔둘 것 같아?"
이대로라면 죽는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것이다.
시우는 잠깐 눈을 감고 망설였다.
엄밀히 말하면 시우가 나설 필요도 없다.
가게 주인은 시우의 처지를 알고 이용한 사기꾼에 불과하다.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그럴리 없지."
"뭐하는거야?"
오딜은 갑작스레 선반에 있던 마력수 병을 움켜쥐는 시우의 모습을 의아해했다.
"피어라!"
손바닥에 마력수를 콸콸 쏟아낸 뒤 그 마력을 일제히 플라즈마화시켜 운용하기 시작했다.
-슈와아악!
앞머리를 휘날리며 폭발적으로 상승하던 마력이 순식간에 신체 내부에서 휘몰아친다.
시우는 그것을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획으로 만들었다.
제각기 길이와 두께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용도는 일정하다.
전개된 마법진의 구동을 멈추는 간섭 장치.
일명 '디스펠 핀'.
"그걸로는 못막을 텐데."
하지만 오딜은 디스펠 핀을 보고도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노예가 재롱을 부리는 것은 신기하지만 심각히 여기지 않는 눈치이다.
당연했다.
디스펠 핀 자체는 모든 마법 기초서적의 첫 장에 들어갈 정도로 간단한 마법이다.
복잡한 식과 계산이 필요하지 않은 마력의 송곳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 핀을 사용해 디스펠을 해내는 것은 전혀 다른의 문제다.
디스펠을 위해선 마법진 위에 사용된 마력의 획과 문자 의미를 전부 이해하고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한 장소에 정확히 올바른 순서로 핀을 꽂아 마력을 차단해야 한다.
실제로 디스펠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다행히 오딜이 전개한 식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두 개의 핀을 최 우변에 존재한 삼각꼴 모양의 돌출부에 박아넣는다.
가장 먼저 오딜이 부여한 불가시의 속성이 해제되며 결계의 모양이 드러났다.
"뭐...?"
오딜의 당혹성에도 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목표는 원에 내접한 삼각형, 그 꼭지점에 위치한 안정화 장치.
결계가 외부 마력에 간섭을 받을 때 정상화해주는 일종의 방화벽이다.
이걸 제거하지 않고 결계에 간섭한다면 결계의 항상성에 의해 핀이 곧장 사라져버린다.
"큭!"
머리가 터질 듯한 두통이 느껴지지만 시우는 계속 지휘자처럼 손을 휘적이며 핀을 조종한다.
차례대로 핀이 꽂혀 들어가자 결계를 둘러싼 커다란 원이 유리처럼 깨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마지막 목표는 결계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는 기둥.
결계의 천장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에 12개의 핀을 꽂아 넣자 완전히 구동을 정지했다.
"됐다!"
일시적으로 정지시킨 안정화 장치가 다시 작동하기 전에 결계의 해제에 성공했다.
"허억...허억...감사, 감사합니다..."
호흡이 돌아온 가게 주인은 오딜의 구두에 입을 맞추며 살아남았음에 감사며 요란스레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오딜은 그곳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커다랗게 뜬 눈으로 시우만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공부했던 마법이 헛것이 아니었다.
고위 마녀의 견습마녀인 오딜의 결계를 혼자만의 힘으로 디스펠 해냈다.
가쁜 숨 속에서 피어나는 성취감이 전기처럼 심장을 찌릿거리게 만들었다.
"호오..."
그리고 그 성취감은 오딜의 눈빛을 알아차리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두려울 정도로 과한 호기심의 시선이 가슴을 콕콕 찔러댔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시우는 가게 주인처럼 오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천한 몸이 감히 위대하신 마녀님의 마법을 방해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마법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녀들이 광적으로 마법을 밝힌다는 것을 생각해 은근슬쩍 변명에 끼워 넣었다.
오딜은 지그시 시우를 내려보았다.
"조수님, 우선 한 가지 정정할 부분이 있어.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어."
"네?"
"따끔한 훈계로 교훈을 주려 했을 뿐이야. 마녀의 물건으로 장난을 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말이지."
그렇다면 괜히 나선 셈인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앞에서 죽어가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어차피 오딜은 호기심이 왕성한 견습마녀이고 시우가 전마지를 산 이유를 아주 집요하게 따져물었을 것이다.
"조수님은 그냥 잘생긴 노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오딜은 날아갈 듯 사뿐사뿐 걸어 시우를 일으켰다.
시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오딜을 올려보았다.
"재밌네, 재밌네, 재밌어. 내 결계의 구성을 한 눈에 이해했다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디스펠은 불가하다.
"그건 정말 죄송..."
"아니, 사과할 필요 없어. 난 방금 조수님한테 갑자기 엄청난 호의가 생겨났거든."
오딜의 손끝이 테이블을 두들기자 원목에 패이며 선연한 글자가 떠올랐다.
68.29.121라는 일련번호.
저런 일련의 숫자는 게헨나에서 계좌처럼 활용되는 금고의 번호였다.
"아저씨, 지금까지 우리 조수님에게 등쳐먹은 은화는 모두 금고에 넣어두길 바랄게."
"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위로금과 사죄의 표시도 넉넉하게 넣어둘 거라고 믿어. 시청에 신고는 봐줄 테니 성의를 보이라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숨을 건진 것도 모자라 시청의 단속까지 피하게 됐으니 가게 주인의 얼굴엔 안도의 기색이 가득했다.
발등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연신 허리를 꾸벅이는 가게 주인을 뒤로하고 시우와 오딜은 1층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몸을 빙글 돌린 오딜이 묻는다.
"조수님 시간 비어?"
솔직히 오딜과 같이 있는 것은 불편했다.
사람의 생각을 모조리 간파하려 드는 자색의 눈동자도 언제나 꿍꿍이가 있는 듯한 음흉함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오늘은 조금 바빠서요."
"그래? 그럼 아멜리아 교수님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밖에 없겠네. 교수님의 조수가 실은 어마어마한 재능을 지닌 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시간 아주 널널합니다."
"그래야지."
오딜은 그제야 만족스레 웃었다.
이런 점까지 포함해서 시우는 마녀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