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7화 (7/917)

#07

1.

종일 고된 노동에 지친 심신.

그걸 위로하는 것은 이 숙소밖에 없다.

시우는 터덜터덜 허름한 건물의 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시우의 숙소는 굉장히 넓다.

스무 필의 말을 기르던 축사를 개조해 만든 것이니 당연했다.

10M는 족히 되는 더럽게 넓은 천장, 침대와 소파 대용으로 사용하는 건초더미.

벌어진 통나무 지붕 사이로 보이는 멋진 스카이뷰가 장점이다.

“집세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고.”

소소한 단점으로는 너무 친환경적으로 지어진 탓에 비가 오면 빗물이 흐르고, 겨울이 오면 뼈가 시리게 춥고, 여름엔 바닥에 스며든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는 점?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렷다.

귀염받는 햄스터 집만도 못한 이 축사도 5년이나 살다 보니 나름 정도 들고 편하다.

“아, 시발. 그나저나 비 엄청 왔지.”

워낙에 비가 온 탓인지 축사 전체가 빗물로 질척이고 있었다.

이런 강우 때를 대비해 파놓은 고랑을 넘어 범람한 빗물이 생활공간까지 범람해 있었으니까.

관리복을 벗고 침대 속을 채우는 건초더미 사이로 향했다.

그 안에는 조그마한 유리병 하나가 놓여있다.

예전 아멜리아가 쓰고 버린 향수병 하나를 가져온 것이어서 굉장히 고품스럽고 예쁘게 생긴 공병이었다.

“이것도 이제 거의 안 남았네.”

향수병 바닥에 찰랑이는 희푸름한 액체.

형형색색의 빛깔이 은은하게 반짝이는 이 액체는 ‘고정 연금’에 의해 액화된 마력의 정수이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모두 부유하다.

부자들이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지 않는 것처럼 마녀들도 고작 병 맨 아래 남은 몇 방울의 마력수는 버려버린다.

그 한두 방울이면 담배 몇 갑은 살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이거라도 없었으면 다 공쳤지.”

그건 시우에게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온갖 연구 폐기물을 정리하며 한두 방울씩 남은 마력수를 모을 수 있었으니까.

“쬐끔만...”

시우는 공병을 기울여 반 방울 정도의 액체를 손끝에 묻혔다.

여성과는 달리 남성은 마력을 저장할 수 없다.

그러나 신체에 맞닿은 마력의 정수 정도는 휘발하기 전에 활용할 수 있었다.

가벼운 영창.

“피어라.”

시우의 언령(言令)에 일깨어난 마력 방울이 파랗게 빛나며 빛을 분출하기 시작한다.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했기에 연구 외에 마법의 행사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푹신한 건초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정신을 집중한 시우는 오늘 아멜리아의 염동을 떠올렸다.

눈동자 뒤 검은 세계 속에 현묘한 법칙이 수 놓여간다.

마력은 뭐든지 만들 수 있는 힘.

염동은 그것을 보이지 않는 물리력으로 만들어 행사하는 마법이다.

오늘 아멜리아는 마력을 수백 개의 궤도가 다른 원으로 현현했다.

우주의 법칙이 정해준 천체의 궤도처럼, 일절 겹치거나 충돌하는 것이 없이 수백 개의 물건을 일일이 제어했다.

당장 시우에게 그 정도의 능숙한 활용은 불가능하다.

다만 질량이 가벼운 물체만을 컨트롤하는 것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시우는 아멜리아의 염동에 어레인지를 가했다.

시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꼬리에서 연기 같은 아지랑이가 일렁인다.

인체가 마력을 활용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마력반사광(魔力反射光)이다.

그의 주변에는 수천수만 방울의 물방울이 떠올라있었다.

바닥에 눌어붙고 진흙을 파고들고 짚더미를 눅눅하게 만들던 습기들을 뭉쳐낸 것이다.

달빛에 반짝이는 물방울들은 하나하나가 작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마법이란 결국 일정한 법칙에 맞춰 심상의 풍경을 구현하는 것.

시우가 떠올린 심상은 아멜리아가 먼지를 뭉치던 광경이었다.

모든 물방울이 한 곳으로 집결된다.

그리고...

“아...”

시우는 나지막한 탄식을 뱉었다.

아주 잠깐 집중이 흔들리며 계산이 꼬였다.

염동을 위해 시우가 즉흥적으로 짜낸 마법진은 하나의 연성, 하나의 변화, 하나의 전개 총 3개의 길(path)이 필요한 마법진.

그러나 연성과 전개를 담당하는 식의 일각에서 마력이 충돌하고 꼬여버렸다.

가벼운 물방울을 모으는 것에만 집중해 식을 전개하다 물방울이 뭉쳐 질량이 커지자 하나의 패스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그 결과, 물의 요정이라도 되는 양 두둥실 떠올랐던 물줄기가 일제히 바닥에 퍼져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랑 너머 웅덩이가 생겼을지언정 시우가 생활공간으로 삼는 곳에는 물이 튀지 않았다는 것.

“전환 과부하 계수 계산에 실패했네.”

역시 익숙하지 않은 마법을 부리는 것은 힘들다.

시우는 풀썩 짚더미에 몸을 던졌다.

역시 암산으로만, 그것도 즉흥으로 식을 전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아주 발전한 성과였다.

과거에는 촛불을 흔들리게 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으니까.

이거라면 이 도시에서 나갈 ‘문’을 여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제 변화부와 전개부를 잇는 곳에 전환 축을 3개 정도 추가해 전개 시 충격을 감쇄해주면...”

안 되겠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눈을 감고 방금 펼친 마법을 복기하던 시우는 금방 잠이 들었다.

2.

오전 업무가 끝나고 점심을 대충 때운 시우는 타카쇼와 함께 타로타운으로 향했다.

짐승을 부리는 소피 마녀의 말이었기 때문에 마부도 없이 달리는 마차는 날아갈 듯 빠르다.

고작 30여 분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어느새 시끄럽게 북적이는 타로 타운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전처럼 오후 10시까지 분수대 앞으로 오는 거다!”

소피아의 기쁨조가 되기 위해 오늘도 저택으로 떠나는 타카쇼를 위해 씩씩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후우.”

시우는 숨을 돌릴 겸 광장의 분수대에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타로 타운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이테크놀로지 IN 르네상스’다.

구석구석으로 뻗은 잘 닦인 가도, 석조 또는 목조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솟은 건물, 거리 곳곳을 가득 채운 인파와 시끌벅적한 활기는 현대의 대도시를 방불케 한다.

하긴 게헨나 내부는 무려 600년 넘게 바깥세상과 단절되어왔다.

전쟁도 전염병도 없이 평온하게 600년간이나 흘러온 역사에 마법이 더해지면 이 정도의 번영을 이뤄내도 이상할 것 없다.

최상위 타운인 ‘아르스 마그나 타운’나 ‘레노먼드 타운’와는 다르게 타로 타운은 평범한 2등 시민들의 생활터였다.

마녀들의 쾌적한 게헨나 생활을 위해 각종 재단사, 대장장이, 시계공, 보석세공사, 주조사, 제과사 등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수확한 사과가 상자에 단돈 5페니!”

“즐거운 공연과 음악이 흐르는 흰고래 주점으로 오세요! 시원한 맥주도 있습니다!”

“마녀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자수가 새겨진 옷이에요, 어서 오세요!”

큰소리에 놀란 말을 진정시키는 마부, 가게 앞까지 나와 행인을 붙잡는 호객꾼들, 신문을 파는 소년, 곰방대를 물고 물건값을 흥정하는 상인, 분수대 아래에서 피리를 부는 예술가까지.

중앙 광장이라는 특성상 언제나 활기차고 시끄러운 곳이다.

판타지스러운 소음이 귓가를 파고들고 시우는 마차가 다니는 가도에서 내려와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골목까지는 제대로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서 길이 조금 질척거렸다.

휴일이기 때문인지 대낮부터 손님으로 넘쳐나는 흰고래 주점을 지나 굴다리를 건너자 응달에 자리 잡은 석조건물 하나가 보였다.

시우가 귀중한 주말 시간을 쓰며 이곳까지 향한 것은 저 건물 반지하에 있는 마도구상점에 들르기 위해서다.

“안녕하십니까.”

문이 굉장히 낮았기 때문에 허리를 숙이고 계단을 내려간 시우.

은은한 유황 냄새가 독특한 10평 남짓한 작은 가게다.

사실 10평이면 그렇게 좁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워낙에 가구와 판매 물품들이 쌓여있어서 특히 좁아 보인다.

매대 뒤쪽 선반으로는 형형색색의 시료들이 가득 차 있고 천장에는 정체불명의 말라비틀어진 동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오, 총각 왔는가? 요새 통 얼굴이 안 보여서 걱정했지 뭔가.”

동그란 외눈 안경을 쓰고 있는 가게 주인은 시우를 반갑게 반겼다.

그는 신문을 접고 일어났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뭘 사러 왔나?”

“전마지(傳魔紙) 들어왔나요?”

“어디 보자.”

재고표를 쓱 훑어본 가게 주인은 서랍에서 새끼줄로 묶인 종이 뭉텅이를 꺼냈다.

“마침 하나 들어온 게 있구먼. 이번에도 낱장으로 살 텐가?”

“네, 부탁드립니다. 얼마죠?”

시우는 가슴 한가운데 소중하게 품고 있던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안에는 엄지손톱만 한 동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시우가 주급으로 받는 5 페니를 3개월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모은 것이다.

동과 은이 섞인 페니 12개가 모여야 은화 한 장개의 값을 지니니, 이 안에 있는 것은 정확히 은화 5개의 값어치라 할 수 있겠다.

어차피 이걸 사려고 아껴놨던 건데도 막상 돈을 쓰려니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은화 한 닢에 세 장 주겠네.”

“네? 그렇게 많이요? 저번엔 두 장이었잖아요.”

“요새는 이걸 찾는 것도 자네 정도밖에 없어서 말이지. 싸게 줄 테니까 있는 대로 가져가.”

“가,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횡재람.

원래는 한 푼 정도는 남겨서 간만에 외식을 즐길 생각이었는데.

이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우는 은화를 몽땅 털어 주인에게 넘겼다.

“그나저나 노예인 자네가 전마지를 쓸 일이 있나?”

“그, 여러 사정이 있답니다.”

“뭐, 나는 물건만 파면 그만이니. 다음에도 또 찾아주게.”

만족스러운 거래 이후 만연의 미소를 지은 채 뒤를 돌아본 시우는 우뚝 굳어버렸다.

“안녕? 조수님.”

호기심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색의 눈동자를 반짝거리는 마녀.

아멜리아에게 수업을 듣는 쌍둥이 중 언니 쪽.

즉, 오딜이다.

“호오, 이런 허름한 곳에서도 마도구를 파는구나? 우와! 이건 뭐지? 미라 같아!”

천장에 걸려있는 이상한 뼈다귀(대충 말라비틀어진 도롱뇽 같은 것)를 만지작거리는 오딜을 보고도 주인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드레스, 턱에 리본을 둘러쓴 하프 보닛,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구두.

아니 그 모든 걸 떠나 오딜은 사치스럽게 꾸며진 인형처럼 태생적인 화려함과 고귀함을 뽐내고 있다.

누가 봐도 고위 마녀인 그녀에게 진열된 상품을 만지지 말라고 할 담력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왜 오딜이 이곳에 있는 거지?

시우는 머리가 차게 식는 것을 느꼈다.

마법을 사용하고 이해할 줄 안다는 것은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다.

그를 이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활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개 노예인 조수님이 왜 타로타운의 마도구 상점까지 온 걸까?”

오딜은 키득거리며 시우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시우는 손에 들린 전마지 뭉치를 감추기 위해 노력했으나 어차피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대답 못 하겠어?”

최악의 장소에서 최악의 상대를 만나버렸다.

“재밌는 일이 생겼네.”

아카데미에서와는 달리 화려한 외출복을 차려입은 오딜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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