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6화 (6/917)

#006

1.

"그 케이크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고 있나요?"

아멜리아의 긴 속눈썹이 천천히 끔뻑인다.

그 아래 아름다운 블루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속내를 낱낱이 드러내는 듯했다.

"설마 독을...?"

오답이었다

그런 멍청한 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는 듯 아멜리아는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관리인, 제가 관리인을 죽이려고 마음먹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어요."

"그, 그건 그렇죠."

하긴 그냥 일반적인 마녀도 아닌 작위를 지닌 아멜리아가 번거롭게 독살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멜리아에겐 시우를 죽여도 충분히 보상할 돈이 있다.

그렇다면 저 말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신시우 관리인, 곧 6년 차죠?"

"그렇습니다."

"시청 소속 노예는 한 기관에 근무한 지 6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배정되죠."

시우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그거라면 아멜리아가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부연설명 없이 또 다른 말을 꺼냈다.

그녀는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

"이 케이크를 만드는 건 타로 타운의 ''키퓌시'라는 빵집이에요."

아멜리아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1338년 게헨나가 생겨난 이후 키퓌시에선 7세기 동안 이 케이크를 만들어왔어요. 대를 잇고, 레시피를 이어서."

알고 있다.

수 세기 동안, 몇 대를 넘어도 이 좁은 세상 안에서만 갇혀 살아야 하는 가련한 존재들.

"더 달콤한 초콜릿을 위해, 더 푹신한 생크림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우리 마녀에게 바치기 위해 살아온 거죠."

게헨나에서 마녀가 아닌 시민은 마녀의 편의를 위해 살아가는 기계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마녀란 그런 것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아멜리아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녀는 말하고 있다.

마녀란 떠받들어지는 존재, 게헨나의 주민은 마녀를 떠받들기 위한 존재라고.

그 특권이 당연한 것이라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고 주장을 세운다.

지극히 권위주의적이고 귀족적인 사고방식이다.

"이제 조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가 가나요?"

아멜리아는 딱딱하게 잔뜩 찌푸려진 시우의 이마를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이해?

애진즉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도시와 도시 위에 군림하는 마녀가 싫은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간다는 유명한 격언을 알고 있음에도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했네요. 마녀님들이 굉장히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이기주의자라는 말을 하려고 하신 건가요? 아니면, 더 살살 기겠다는 말이 듣고 싶은건가요?"

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그녀의 말 사고방식 그 무엇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씩씩거리며 분통을 내는 시우를 아멜리아는 차분히 바라보았다.

"제 충고를 전혀 듣지 않고 있군요."

"충고? 마녀들은 그걸 충고라고 부릅니까?"

"그럼요, 알량한 자랑을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제겐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녀가 했던 언중에 마녀는 특별한 존재이니 노예인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외에 다른 의미가 존재할까?

아멜리아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눈을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아주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멍청하긴..."

혀를 찬 아멜리아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잠깐 고민하는 기색으로 망설이더니 마지못해 말을 잇는다.

"당신에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 관리인에게 관용을 베풀어 왔어요."

"...관용?"

그게 관용이었다고?

"돌아가 봐요. 약속 시각을 맞추지 못한 벌은 여기까지 내리겠어요. 내일부터는 정상 업무로 복귀하세요."

"...알겠습니다."

시우는 청소도구를 챙겨 들고 아멜리아를 등진 채 문을 나서려 했다.

"신시우 관리인."

아까보다 한결 차분해진 음색이 시우를 멈춰 세웠다.

그 이후 들려온 아멜리아의 말은 무척이나 알쏭달쏭한 것이었다.

"만약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하는 것처럼 다음 배속지에서 행동했다간..."

속삭이듯 작은 소리였지만 똑똑히 닿았다.

"당신은 죽을 지도 몰라요."

시우는 대꾸 없이 문을 닫고 나섰다.

2.

터덜터덜 양동이를 들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멜리아가 말한 대로 1년 뒤 시우와 타카쇼는 각기 다른 근무지로 배속받는다.

의외인 것은 아멜리아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카데미의 어지간한 비품보다 못한 시우의 배속 예정을 말이다.

그리고 답잖은 친절과 전혀 충고 같지 않은 충고.

조금 전에는 머리에 피가 몰려 그저 아멜리아가 심술을 부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아니면 그녀의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기 위해 겁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우가 문을 열고 나올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대사.

그건 분명히 걱정의 말이었다.

그저 착각일지 몰라도 분명 평소의 아멜리아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설마, 내가 미쳤지."

아무래도 타카쇼의 말을 너무 신경 쓴 탓에 지나치게 아멜리아를 의식해 버린 듯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특권 의식으로 똘똘 뭉친 아멜리아가 고작 노예의 안위에 신경 쓸 리 없지.

정 그렇게 걱정되면 전속 노예로 삼으면 그만이다.

시우는 생각을 정리했다.

"역시 썅년 맞아."

어느새 맑게 갠 하늘.

숙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시우는 우연히 타카쇼와 만났다.

그는 목덜미에 키스마크가 가득한 채로 기 빨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제, 아직까지 잔업 했어?"

"3분 늦었다고 연구동 청소시키더라."

시들시들했던 타카쇼는 연구동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꽤 흥미진진한 소재였나보다.

"설마, 공방에? 단둘이서?"

"어, 그거 관해서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했냐?"

시우는 타카쇼의 뒤통수를 쳤다.

그리고 자초지종 연구동에서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음...."

"왜 진지한 척이야. 안 어울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타카쇼는 말을 듣자마자 굉장히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타카쇼인만큼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팔짱을 낀 채 입가를 어루만지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괜히 말했나 싶다.

"내가 봤을 때 이건 100%야."

"뭐가?"

"아멜리아 부교수는 아카데미 관리인 신시우에게 반했다."

"매일 하던 말이잖아."

타카쇼는 시우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가 느끼는 답답함이 악력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아니, 지금까지는 반쯤 농담이었거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마녀가 노예를 좋아하나 싶어서. 근데 이건 진짜 확실해. 아멜리아는 너한테 푹 빠진 거야."

"남 일이라고 막말하네."

"하아, 끝까지 답답한 친구네. 귀 좀 대봐."

방금까지 아멜리아를 막 불러대던 타카쇼는 시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나 예뻐하시는 마녀님 있지?"

"소피아 수석교수?"

"그래, 나도 최근에 소피 님께 들은거야. 나보단 아니어도 너도 꽤 반반하게 생겼잖아?"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는데.

"몇몇 마녀들은 좀 잘생겼다 싶으면 일단 침소에 부르는 거 알지? 그런데 12명이나 되는 트리니티의 교수들이 왜 너한테 러브콜 하나 안 보냈는지 알아?"

"뭔 소리야?"

"교수 사이에 소문이 벌써 쫙 돌았대. 아멜리아 부교수가 널 눈여겨보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시우의 옆에서 알짱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마녀는 오직 아멜리아뿐이었다.

그저 천한 관리인과 말을 섞기 싫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건가?

"근데 그건 큰 의미 없지 않아?"

"그게 아니라니까! 아멜리아가 너한테 밤시중 제안한 건 나랑 너 그리고 아멜리아밖에 몰라."

"그래서 그게 뭐?"

"아멜리아가 얼마나 티를 냈으면 다른 마녀들이 눈치채고 알아서 사렸겠냐는 이 말이지."

그러나 아멜리아에게 당한 것이 많은 시우는 타카쇼의 흥분 어린 망상에 공감할 수 없었다.

기껏 드는 감흥이라야 꿈보다 해몽이 낫다, 뭐 이 정도.

"너 그건 아냐? 아멜리아는 지금까지 누구도 침소에 들인 적 없대."

"뭐?"

"내가 오늘 은근슬쩍 교수한테 떠본건데. 아멜리아는 쑥맥에 마법밖에 모르는 정통파 마녀래. 벨로벳 창관도 안가고 레바나 대욕장에서도 혼자 몸만 씻고 나온다더라. 아직도 모르겠어? 진짜로? 여기까지 말해줬는데?"

타카쇼는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가슴을 탕탕쳤다.

"나야 여기저기 불려 다니긴 해도 엄밀히 따지면 말 잘 듣는 딸랑이 정도야. 끽해야 애완견이지. 근데 너는 아니라니까? 육식녀만 득실거리는 마녀 사이에서 아멜리아는 사슴 같은 순정파라고!"

"너 말대로 아멜리아가 사슴이라 해도 인육을 뜯어먹는 사슴일걸?"

"아니라니까! 원래 얼굴 예쁜 사람은 마음도 고와."

타카쇼는 반쯤 흐느끼며 시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럽다 신시우, 네가 미치도록 부럽다... 진짜 잘만하면 아멜리아 교수한테 교배 프레스 팡팡 찍으면서 '마법은 일류지만 뷰지는 삼류에요옷'라는 대사도 들을 수 있다는 거 아니야. "

"내 생각엔 니 뇌가 삼류인 것 같은데."

아멜리아의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실감나게 상황을 전단하는 타카쇼.

시우는 질겁했다.

이 불경한 대화가 누군가에게 들린다면 잔업을 받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잘 되면 나도 좀 부탁한다. 일본으로 돌아가는 건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노예 말고 2등 시민권이라도 어떻게 좀 해줘. 미래의 기둥서방!"

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흥분한 타카쇼는 시우의 등을 때리며 제 숙소로 향했다.

"...한 절반쯤 걸러 듣자."

그 아멜리아가 일개 노예에 불과한 자신을 좋아한다?

행복회로 풀가동에도 정도가 있다.

저렇게 말로만 들으면 그럴듯해도 지금까지 아멜리아의 행적이나 이미지를 떠올리면 전혀 매칭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곰곰히 떠올려보았다.

짝사랑에 빠진 아멜리아.

포르말린에 절여져 어째서인지 자지만 우뚝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우는 몸을 떨었다.

도리어 무섭다.

그때 저 멀리 제 숙소로 향하던 타카쇼가 다시 어기적어기적 돌아왔다.

"아 깜빡했네. 내일 '타로 타운'으로 가거든. 너도 갈 거지?"

그러고 보니 내일은 일요일.

즉, 오전 업무만 있는 날로 관리인에게 주어지는 거의 유일한 개인시간이다.

배급되는 생필품은 아주아주 싸구려였기에 사제물품 구입은 필수 불가결이다.

아카데미가 위치한 '레노먼드 타운'은 고위 마녀가 많이 모이는 상위타운이기에 생필품이 비싸고 고급스럽다.

관리인의 연봉으로는 도저히 그 가격을 감당할 수 없기에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타로 타운에서 쇼핑을 해야 한다.

문제는 레노먼드 타운에서 타로 타운까지 걸어서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는 것이다.

소피아의 예쁨을 듬뿍 받는 타카쇼가 없었더라면.

"마침 살 게 있었는데. 번번이 고맙다."

"낯간지럽게 왜 이래? 미리 잘 보여놔야 나도 콩고물 좀 얻어먹지."

다행스럽게도 주말마다 소피아 수석 교수의 저택으로 불려가는 타카쇼 덕에 타로 타운까지 마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마침 마법진을 그릴 전마지가 떨어진 참이었다.

"그런데 넌 뭘 자꾸 사러 타로 타운까지 가냐? 사실 창관에 가는 거 아니야?"

"거긴 남자밖에 없잖아."

"무슨 소리 민달팽이 같은 백합을 즐기는 마녀도 많다고?"

타카쇼는 좋은 친구지만 그래도 시우가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비밀로 해야 한다.

어디에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을지 몰랐다.

그래도 탈출의 순간에는 꼭 그를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타카쇼라면 제 발로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일도 잘 부탁할게."

"여느 때처럼 1시까지 분수대 앞으로 와."

"알았어."

대충 말을 돌린 시우는 피로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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