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5화 (5/917)

#005

1.

아멜리아 부교수의 연구동은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북동쪽 별관에 위치했다.

별관으로 향하는 회랑은 따로 없었기에 시우는 차가운 빗물을 맞으며 연구동에 발을 들였다.

아멜리아 메리골드.

일단 부교수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 연구동만 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교수도, 수석교수도 아닌 아멜리아가 5명은 족히 쓸 수 있을법한 건물 한 채를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알아서 뭐 하겠어."

대충 아멜리아가 귀족이라 그런 것이겠지.

어차피 시우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더럽게 넓은 이 연구동을 혼자서 청소할 생각에 벌써부터 한숨이 나올 뿐.

우의를 벗어 현관에 개어둔 채 창고에서 청소도구를 챙겼다.

-끼이이익!

휘양찬란한 아카데미 본관과는 다르게 별관은 검소한 목조건물이었다.

지어진 지 오래된 까닭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2층 계단을 거쳐 커다란 문을 들어서자 2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멜리아의 공방에 들어섰다.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아릿한 담배향.

넓은 공간을 빼곡히 채우는 것은.

신비한 빛을 뿜는 액체가 담긴 유리병, 마법 서적, 양피지로 만들어진 스크롤, 각종 시약이 분류되어 태그가 달린 채 나열된 선반, 창가에 커튼 대신 늘어놓은 드림캐처, 어둠이 내려앉은 연구동을 군데군데 밝히는 양초들.

예전에 유행했던 오컬트 카페에 중세 연금술사의 실험실을 섞어 놓은 듯한 분위기다.

꽤나 본격적이라 만약 홍대같은 곳에 있더라면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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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공방의 한가운데에는 아멜리아가 앉아있었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잡은 채 고민에 빠진 눈빛으로 무언가를 훑어보고 있다.

어찌나 깊게 사색에 잠겼는지 시우가 들어왔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 더럽게 예쁘긴 하네.

남에게 보여줄 거라 생각하지 않는 무방비한 표정인데도 흠잡을 구석이 없다.

시우는 괜히 청소도구를 들고 아멜리아 앞에서 기웃거렸다.

괜히 말도 없이 청소를 시작했다가 잔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화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건 완전 여담인데, 아멜리아가 피우는 담배는 럭키 스트라이크라는 현대의 제품이다.

1847년부터 발매된 오랜 브랜드인 만큼 흡연자 마녀 사이에서 애용되는 연초이기도 하다.

"아...."

시우가 괜히 알짱거리며 10걸음 앞에 왔을 때야 아멜리아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먼 곳을 바라보는 양 흐려졌던 아멜리아의 눈동자에 총명한 빛이 돌아온다.

"아멜리아 부교수님, 연구동 정리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어디부터 할까요?"

시우는 최대한 굽신거리며 물었다.

연구동 들어올 때부터 느꼈는데 이걸 사람 사는 꼴답게 청소하려면 3시간은 무슨, 12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지금은 아멜리아의 비위를 맞춰 최대한 형벌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었다.

"언제 온 거죠?"

"조금 전에 막 도착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깔보는 눈빛으로 시우를 한번 바라본 아멜리아.

잉크가 묻지 않게 소매를 걷어붙인 그녀는 가녀린 손목을 까딱이며 깃펜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마법서를 분류별로 정리하세요. 선반에 먼지는 털지 말고 젖은 걸레로 닦아내고 가죽 커버를 지닌 책들은 저쪽, 논문 파일은 순서대로 분류해서 책장에 꽂아 두세요.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은 건드리지 말구요."

"넵."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세요. 그리고 또...."

그 외에도 이것저것 지시를 늘어놓은 아멜리아는 가보라는 듯 바라보지도 않고 손바닥을 펄럭였다.

시우는 한숨을 참으며 양동이와 빗자루를 들고 연구동의 구석부터 청소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공방을 청소하던 일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더러운 건 처음 본다.

누가 일부로 어지르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한동안 공방은 아멜리아가 펜을 사각이는 소리와 시우의 청소 소리만 적적하게 울렸다.

청소하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행여 소음이라도 낼까 숨죽여야 하는 모양새란...

서러워서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다.

2.

약 한 시간 경과.

이제 막 첫 번째 책장의 정리가 끝났을 무렵,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인."

"네."

이번엔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시우는 찡그려지는 얼굴을 참고 웃는 낯으로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의중을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태연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여기로 오세요."

뜻밖의 호출에 시우는 멍하니 손가락을 가슴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네? 저, 저요?"

똑 부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아멜리아에게 시우의 행동은 영 거슬렸던 모양이다.

아멜리아의 눈썹이 조금 휘었다.

참고로 저 바디 사인은 히스테릭 게이지  25% 정도를 의미한다. 50%가 넘으면 불호령이 떨어지니 서둘러야 했다.

"이것만 마저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됐어요."

허둥지둥 양동이에 걸레를 빨려던 시우.

아멜리아는 고개를 내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시우조차 느낄 수 있는 마력의 파동이 연구동 내부를 한차례 뒤흔들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두둥실 떠오른다.

허공을 춤추듯 배회하던 물건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가야 할 곳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염동은 아주 기본적인 마법이지만 그럼에도 아멜리아의 높은 경지가 엿보인다.

수백 개의 사물을 동시에 마력으로 간섭하면서도 조금의 꼬임이나 헝클어짐이 없다.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들은 공중에서 공처럼 뭉쳐진 채 양동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청소가 끝났다.

반도체 공정을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변해버린 공방.

시우는 반쯤 허무하게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괜히 '남작'이 아니었다.

마법의 위대함을 편린으로나마 이해하고 있는 시우는 묵은 감정도 잊고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시우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해진 연구동을 가로질러 아멜리아의 옆에 기립했다.

오늘 오전에 그렇고 그런 일을 당해서인지 괜히 그녀의 하얀 손이 의식된다.

안된다.

여기서 발기하면 그야말로 인간 실격이다.

시우는 그 마음가짐 하나로 꾹 불쑥 고개를 내밀려던 성욕을 억눌렀다.

"앉아요."

아멜리아가 턱짓하자 여유분의 의자가 스르륵 움직이며 자리를 내주었다.

이게 무슨 변덕인지.

평소와 접점이 조금도 없는 아멜리아의 기행에 시우는 바짝 긴장했다.

아멜리아는 담배가 담긴 팩에서 툭툭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녀가 숨을 빨아들임과 동시에 첨단에 자그마한 불꽃이 일어났다.

"후우...."

의자를 돌려 시우와 마주 보는 아멜리아.

그녀는 태연자약하게 다리를 꼬더니 시우에게 담배팩을 건넸다.

치맛자락이 젖혀지며 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허벅지 살이 조금 접히는 게 보여 시우는 황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피우죠?"

담배.

여기 게헨나에서 현대의 담배는 매우 귀한 물건이다.

적어도 노예 출신이 시우에게는 그랬다.

노예짓을 하는 와중 금연은 차마 못하겠어 가끔 타카쇼와 나눠 피우는 것이 전부였는데.

니코틴과 타르를 원하는 몸뚱이의 아우성을 시우는 간신히 무시했다.

솔직히 좀 무섭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멜리아의 친절이라니.

차라리 벤치 위에 개봉된 웰치스를 마시고 말지.

"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싫다면 어쩔 수 없고요."

아멜리아는 거듭 권하지 않았다.

담배팩을 다시 책상 위에 놓더니 아주 맛있어 보이게 연기를 빨아들인다.

어스름한 연구동에서 스탠드에 반사되는 아멜리아의 옆모습은 마치 화보를 찢고 나온 것처럼 매력적이다.

그녀는 절반쯤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저 귀한 걸 절반이나 남기다니.

숨을 최대한 깊게 쉬며 부류연으로 간접흡연을 노리던 시우는 눈을 질끔 감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된다.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요망한 마녀의 수작에 넘어가 봐야 남는 것은 비굴함 뿐이다.

왜 유명한 명언도 있지 않은가?

배부른 돼지가 되지 말고 배고픈 인간이 되라고.

그런 시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아멜리아는 교묘한 타이밍에 말을 꺼냈다.

"배고픈가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구는 시우 앞에 두둥실 접시가 날아든다.

하나는 시우의 앞에, 하나는 아멜리아의 앞에 착지한 접시.

그 위를 종처럼 덮고 있던 덮개가 벗겨지며 한 조각의 케이크가 등장했다.

체리 브랜디와 생크림, 그리고 초콜릿을 사용해 만드는 '슈바르츠밸더 키르쉬토르테', 혹은 '블랙포레스트'라고 불리는 케이크이다.

초콜릿 스펀지의 층 사이를 한가득 채운 생크림, 과육의 식감을 살린 채 설탕에 졸인 체리 필링, 마지막으로 그 위를 달콤하게 감싸는 체리 브랜디 시럽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아멜리아는 포크를 꺼내 들더니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시우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군필자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겠지만 노예생활을 하며 가장 부족한 것은 고기도 무엇도 아닌 '당'이다.

설탕도 꿀도 비싼 값에 거래되는 게헨나에서 단 음식이란 노예가 쉽게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달콤한 향기에 민감해진 후각이 케이크의 향기를 탐지하자마자 입에 침이 줄줄 고였다.

"어서 들어요."

"저,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까짓 자존심이 뭐라고 이걸 안 먹겠는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아멜리아가 했던 것처럼 포크로 케이크를 가른다.

포크 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중량감은 케이크의 달콤함을 대변하는 듯하다.

"아...."

훌륭한 맛이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황홀하게 퍼지는 체리의 향기.

혀끝을 애무하는 생크림의 촉촉함과 초콜릿의 달콤함.

오랜만에 단맛을 본 미뢰 하나하나가 일제히 일어나 환희의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진다.

"하압...!"

시우는 아멜리아가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허겁지겁 케이크를 먹었다.

손바닥만 한 케이크가 부스러기도 남지 않고 1분 만에 사라진다.

"죄, 죄송합니다."

이성이 잠깐 날아갔던 모양이다.

시우는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멜리아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아멜리아는 입술의 묻은 생크림을 날름 핥으며 시우의 접시에 제 몫을 넘겨주었다.

"부족하면 이것도 들어요."

"그래도 괜찮나요?"

아멜리아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런 건 아멜리아가 아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경계를 촉구하는 내면 의식과는 별개로 시우의 혀와 배는 달콤한 케이크를 더 원하고 있었다.

추가분의 케이크까지 모조리 먹어치운 시우는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새삼 낯 뜨거운 기분이 들었다.

아멜리아는 시우가 모든 케이크를 먹을 때까지 빤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멜리아는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5년간 괴롭힘으로 일관했음에도 넘어오지 않자 회유책으로 노선을 변경한 걸까?

고작 케이크로 그간의 서러움을 보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헛다리 짚었다.

고약한 마녀년! 실리와 이득만 챙겨 먹어주마.

타카쇼의 조언을 떠올리며 음흉한 생각을 떠올릴 무렵.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 케이크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고 있나요?"

조곤조곤한, 강의실에서 쌍둥이를 가르칠 때의 목소리로.

어쩐지 무척이나 불길한 전조가 시우의 등골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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