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2화 (2/917)

#002

1.

아카데미 내부에는 사용인이 몸을 씻기 위한 장소가 따로 준비되어있지 않다.

그 말인즉슨, 상하수도관이 설비된 우아한 욕실에는 발도 들이지 못한다는 소리다.

결국 우물가에 쪼그려 앉은 시우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지하수를 몸에 끼얹으며 학을 뗐다.

몸에 달라붙은 말라가는 진흙 팩이 구정물로 변할 때마다 뼈가 시려왔다.

시간만 좀 넉넉했더라도 옆의 솥으로 불을 지펴 온수를 만들었을 텐데.

이 모든 게 아멜리아의 분풀이 때문이라 생각하니 이가 갈렸다.

“개 추워, 시발!”

게헨나에 잡혀와 노예로 부려 먹힌 지 5년.

이 부조리한 도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마녀에 대한 설명을 빼놓은 수 없다.

서고에서 서책을 통해 여러 일화를 접하고 마녀와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시우는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마녀란 오만하고, 위험하며, 이기적이고, 광기에 사로잡힌 족속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마녀에 대한 시우의 감상일 뿐 실제 마녀의 정의 또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조금 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말하자면,

마녀란 ‘낙인’이 몸에 새겨져 있으며 동시에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자를 의미한다.

처음 이것을 알려주었던 것은 시우를 납치해 게헨나로 데려온 노예상인이었다.

얼굴에 굵직한 흉터가 가득했던 노예상인은 시우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건넸다.

‘목숨이라도 보전하고 싶거든 절대 마녀를 거스르지 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말이다.

멀쩡하게 자기 인생 잘 살던 와중에 납치당한 것도 모자라 팔아먹을 상대에게 받은 충고라니.

하지만 시우는 아직도 노예상인의 얼굴에 서려있던 본능에 가까운 공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노예경매에서 시청 소속 공무원에게 팔려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관리인으로 배속된 지 5년.

아멜리아의 강의를 엿 듣거나 서고의 책을 들춰보는 과정에서 시우는 그때 노예상인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녀를 향한 공포는 단지 그들이 지닌 마법에 때문이 아니었다.

마녀를 진정 두렵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목적과 그것을 성취하는 방식에 있었다.

모든 마녀는 ‘창조의 마녀’의 위대한 마법을 따라잡기 위해 살아간다.

한층 더 높은 마도(魔道)의 길을 추구하는 마녀에게 실험 윤리나 도덕 따위는 부가적인 문제이다.

실제로 시청노예가 아닌 사노예는 강제 노역에 가까운 혹독한 노동을 담당하게 되고 더러는 비밀스러운 인체 실험 도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너무 어렵게 말한 감이 있는데.

한 마디로 줄이자면 마법이라면 눈 뒤집히는 미친년들이란 소리다.

정력 식품을 찾아다니는 갱년기 중년들의 집념도 마법에 대한 마녀의 집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미친년들...”

만약 노예 경매에서 시청 공무원이 시우를 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따금 그런 가정을 떠올릴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3년 넘게 사용해 구멍이 3개나 뚫린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턴 뒤 속옷도 입지 않고 헐렁헐렁한 흰 옷을 걸쳤다.

합성섬유 따위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빳빳한 소재에 몸만 간신히 가리는 드레스 같은 디자인이다.

트리니티 아카데미 내에서 실험복이라고 칭해지는 이 의복은 옷이라기보다는 깨끗한 거적때기라는 표현이 더욱 잘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치마처럼 늘어진 옷자락을 슬쩍 들치기만 해도 국부가 훤히 보이니 말 다했지.

매번 입어도 익숙해지지 않은 실험복을 걸친 시우는 곧장 제 2교사로 향했다.

2.

레노먼드 타운에 위치한 트리니티 아카데미.

이곳에선 견습 마녀의 교육과 마녀들의 연구가 이루어진다.

동서남북에 맞춰 십자(十字)형태로 건물이 배치된 아카데미의 교사(校舍)는 17세기 바로크 양식에 게헨나만의 독자적인 건축 양식이 더해진 석조건물이다.

그중 가장 최근에 개축한 북측 제 2교사는 마치 베르사유의 궁전을 연상케 했다. 그만큼 호화롭고 요란스럽게 장식되어있는 탓이다.

게헨나의 계급사회와 체제, 유래에 이르러 모든 것을 못마땅히 여기는 시우지만 이런 심미적인 건축물들은 볼 때만큼은 순수한 감탄을 뱉곤 했다.

모든 교사에 혈관처럼 뻗어있는 회랑을 거쳐 제 2교사의 홀로 들어서자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은은하게 타오르는 촛대, 마법의 묘리와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천장화가 시우를 반겨준다.

그 아래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골똘히 시선을 내리깐 아멜리아 메리골드가 서 있었다.

그녀는 이따금 저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경우가 있었다.

발끝이 뾰족한 신발인 풀레느, 몸의 실루엣을 슬쩍 내보이는 머메이드 드레스와 어깨를 감싼 망토.

전반적인 색은 검다.

견습 마녀를 대상으로 한 수업이기에 입기도 벗기도 까다로운 정복(正服)차림이었다.

아멜리아가 선대 ‘골드메리’에게 물려받은 옷가지들은 하나하나가 그녀의 몸보다 컸다.

그 덕에 제 상반신만한 책을 든 채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아멜리아는 무척 작아 보였다.

“......”

시우는 잠시 처지도 잊은 채 그녀의 옆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마녀를 무척 싫어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모든 마녀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머리를 풀어헤쳐 검은 망토위로 흐드러진 탐스러운 금발도, 금단의 과실처럼 붉은 입술도, 옷태 위로 드러나는 부드러운 굴곡도.

인간의 것이라 여길 수 없을 만큼 눈이 부신다.

아멜리아는 마치 조각상처럼 이 화사하고 사치스러운 홀의 풍경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부교수 님.”

시우의 부름에 아멜리아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연이어 5초도 지나지 않아 쌀쌀맞은 표정으로 시우를 돌아본다.

망토의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체크하는 아멜리아.

“정오부터 3분 지났어요. 제가 그렇게 한가해 보이던가요?”

“도착은 정각에 했습니다. 다만 부교수님께서 마법의 진리에 대해 깊게 사색하시는 것 같아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멀뚱히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고 있던 것이지만 이건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

“틀렸어요,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불렀어야죠. 관리인이 도착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은 약속 시각으로부터 3분 이후, 즉 지각한 시점이에요. 제가 인지하지 못한 이상 관리인이 늦었는지 아니면 시간을 맞췄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죄송합니다.”

시우의 사과는 빨랐다. 이런 생트집을 한두 번 잡혀본 것이 아니다.

언제나 잡아먹을 듯 구는 아멜리아지만 의외로 곧장 사과한다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천하디 천한 노예의 말꼬투리를 잡아가며 힐난하는 것이 제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됐어요. 당신에게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느니 실험용 생쥐에게 마법을 가르치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늘따라 아멜리아의 잔소리는 길었다.

머리를 숙인 시우의 뒤통수로 아멜리아의 따끔한 질책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제법 관리인의 실수를 눈 감아줬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뻔한 실수를 거듭하는 것은 합당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죠.”

불길하다.

“앞으로 일주일간 오후 업무를 끝내고 제 연구동을 청소하도록 하세요.”

“예?”

이건 노골적인 괴롭힘이었다.

그녀가 직접 마법을 사용하면 3분 안에 깔끔히 청소를 끝낼 수 있다. 그러나 마녀가 아닌 일개 인간에 불과한 시우가 그 복잡한 연구실을 청소하려면 족히 3시간은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멜리아는 고작 3분의 지각을 빌미로 하루 열두 시간의 업무도 모자라 3시간의 잔업을 지시한 것이다.

“약속 시간도 어긴 주제에 이마저도 듣지 않을 셈인가요?”

시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멜리아는 어떠한 반론도 불만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며 대화를 끝냈다.

커다란 책을 일방적으로 시우의 가슴팍에 던져 놓은 뒤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도를 넘어선 만행에 쌍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던 시우는 간신히 그것을 집어 삼켰다.

신장에 비해 너무 길어 바닥까지 늘어진 망토를 질질 끌며 계단을 오르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이 보인다.

콱 밟아서 뒤로 자빠지게 하고 싶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러나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다.

아까보다 배는 무거워진 어깨를 끌고 시우는 아멜리아의 뒤를 따랐다.

3.

“착석하세요.”

강의실에 들어선 아멜리아가 인사도 없이 꺼낸 말이었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도 바래지 않고 우아한 기품을 풍기는 강의실은 넓은 칠판을 중심으로 책상이 놓인 계단식 구조이다.

대형 강의에 어울릴 법한 구조에 비해 정작 넓이는 20명만 들어차면 가득 찰 정도로 작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었다.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견습 마녀는 고작 두 명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찰싹 달라붙어있던 두 소녀는 시우를 보고 히죽 웃으며 테이블에 앉았다.

방금까지 수다라도 떨고 있던 것인지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했다.

시우는 무거운 책을 교탁에 내려놓고 아멜리아의 옆에 기립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자색의 눈동자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복사+붙여놓기 한 듯한 일란성 쌍둥이는 아멜리아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우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오데트와 오딜.

2년 전부터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유일한 견습 마녀다.

새카만 흑발에 영롱하게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

세상물정 모르는 듯이 천진하게 앉아있지만 시우는 알고 있었다.

천진하다는 것이 언제나 선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개미를 눌러 죽인다.

단언컨대 이 쌍둥이가 지닌 천진함은 그런 순수한 흉포함에 가까웠다.

“아멜리아 교수님! 오늘은 신시우 조수와 함께하는 수업시간인가요?”

“아멜리아 교수님! 오늘 수업은 조수와 함께 인가요?”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맑고 높은 목소리로 거의 동시에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어찌나 목소리마저 쏙 빼닮았는지 입모양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가 말하는지도 분간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요.”

벌써부터 피곤하다는 듯 몰래 한숨을 쉬는 아멜리아와 그와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며 키득이는 오딜과 오데트. 그 모습마저 거울을 맞대어 놓은 듯 똑같아 불쾌한 골짜기가 생길 정도이다.

““오늘은 어떤 실험인가요?””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부교수임과 동시에 22패스(path)라는 높은 경지를 이룩한 15대 메리골드 아멜리아.

그녀는 마녀 사회에서도 극히 드문 귀족인 ‘남작’에 속한다.

원래라면 견습 마녀에 불과한 쌍둥이가 재잘재잘 입을 놀릴 만한 배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멜리아가 그런 꼴을 보고 인내하는 성인군자인건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남성의 체액과...”

“꺄아아! 너무 망측해요.”

“꺄아아! 어찌 이리 남사스러울 수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들갑 떠는 오딜과 오데트.

아멜리아가 입술을 꾹 깨무는 것을 본 시우는 간만에 통쾌함을 느꼈다.

아멜리아가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일은 거의 이 쌍둥이를 상대할 때뿐이었다.

견습 마녀라는 햇병아리에 불과한 오딜과 오데트가 어떻게 저런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인지 시우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천하의 아멜리아가 쩔쩔 매는 진귀한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다.

“....남성의 상호 관계입니다.”

“벗겨서 보는 건가요?”

“이번에도 벗기는 것 맞죠?”

“맞아요.”

통쾌함은 잠시다.

아멜리아가 대하기 난처해하는 상대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시우가 어떤 행동을 하던 신중해야 하는 상대라는 의미이다.

그런 쌍둥이 앞에서 수치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이 빌어먹을 도시를 탈출하기 전까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실험에 앞서 오데트 양과 오딜 양이 얼마나 잘 수업을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해야겠어요.”

“하지만 이론은 재미없는 걸요?”

“맞아요, 맞아요. 제머나이 마녀님은 실천하지 않은 마법의 이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아멜리아가 언제나 쌍둥이에게 휘둘리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아멜리아에겐 부교수로서의 위엄이 있었고 그녀가 분위기를 잡기 시작하면 쌍둥이 역시 곧잘 지시를 따랐다.

아멜리아는 툴툴거리는 쌍둥이들의 투정을 완벽하게 무시한 채 교탁을 탁탁 내리쳤다.

“저번 수업에 내주었던 과제 제출하도록 하세요.”

“네!”

“네! 교수님.”

쌍둥이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어 종이묶음을 제출했다.

역시 어리숙하고 철없어 보인다고해도 견습 마녀.

얼핏 보아도 복잡한 마법식과 수식이 휘갈겨있는 과제는 족히 수십 장 분량은 되는 것 같았다.

관심이 생겨 과제의 내용을 훑어보려던 시우는 흠칫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두 소녀의 시선이 그에게 못박혀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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