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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번째 스킬
얼음 회오리를 숙련한다. 근데 재미없다.
하면 할수록 익숙해져야 할 텐데 그저 지겹고 지루하기만 할 뿐.
그래도 해야지. 게으름 피울 수는 없다.
물 위에 떠 있는 백조 같은 거잖아?
물 밑에서 존나게 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가라앉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저녁이 될 무렵 드디어 얼음 회오리를 마스터했다.
아. 기쁘다. 정말 기쁘다. 이야. 너무 신난다. 우와 좋아 뒤지겠네.
후우. 예전만큼 성취감은 없다. 나도 점점 타성에 젖어가나봐.
기계적으로 패시브를 찍고 차감되는 코인을 본다. 어휴. 많이도 빠져나가네.
그리고 얼음 회오리의 히든 스킬인 절대 영도도 배웠다. 그래 이건 제법 유용하지.
빙결이잖아? 물리적으로 단 몇 초 만이라도 움직임을 멈출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물론….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익숙하게 쓸 수 있게는 해야 해.
이제 얼음 화살을 배울 차례.
바로 배운다. 얼음 회오리를 시작한 이상 냉철한 판단력까지는 바로 달려야지.
"얼음 화살!"
심플한 공격. 하급이라 그런지 정말 끔찍한 수준의 스킬이다.
그래도 패시브 빨이 적용되긴 해서 그런지 오래전에 봤었던 그런 형편 없는 얼음 화살 수준은 아니다.
그때 봤던 얼음 화살은 정말…. 이게 스킬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그냥 얼음을 쪼개서 던지는 게 훨씬 위력이 세 보일 수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얼음 화살을 좀 더 숙련하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안 되겠다.
뭐라도 먹어야지. 근데…. 왠지 혼자 먹기 싫네.
벙커 가서 밥 먹어야지. 아. 삼겹살 구워 먹고 싶다.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내가 고기가 없어? 아니면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서 거실문을 벌컥 열고 모여있는 승미세안에게 대뜸 외쳤다.
"고기 구워 먹자!"
그렇게 말하고 여자들을 보는데, 얼래? 민희도 와있네?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민희.
"오빠. 마침 잘 왔어요. 빨리 앉아봐요. 지금 고기가 문제가 아니에요."
"엥?"
미나의 약간 다급한 목소리. 그러고 보니 다들 뭔가 살짝 텐션이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왜?"
내가 앉자 미나가 바로 입을 연다.
"저 발화 마스터 했거든요?"
"오. 그래? 그럼 히든 스킬 나왔겠네? 뭐 나왔어?"
"새로 나온 히든 스킬은 '오버 클럭' 이에요. 근데…."
"오버 클럭? 웃기네. 무슨 컴퓨터야? 근데…. 아. 대충 알겠네. 대충 컴퓨터에 사람을 대입하면…. 기존 신체 능력보다 더 높은 효과를 내게 하는 건가? 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엥?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네. 저는 히든 스킬 세 개를 다 배웠잖아요? 번개 같은 반사신경하고 냉철한 판단력하고 오버 클럭."
"어. 근데?"
"히든 스킬이 하나 더 나왔어요."
"뭐? 진짜? 아아…. 천국의 문 같은 건가? 뭔데?"
"단기 예지요."
"엑? 예지?"
"네. 테스트해보니까 1초 정도의 미래를 볼 수 있어요."
"...미쳤네. 아예 막장으로 치닫는구나."
1초 뒤의 미래를 본다니. 이건 뭐…. 말도 안 되는 능력이잖아?
저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당할 수가 없다. 블링크를 쓰는데 1초도 안 걸리잖아?
미쳤네…. 미쳤어. 그야말로 개씹사기 스킬인데.
1초라는 시간이 존나 애매하긴 하지만...약간의 빈틈과 잠깐의 방심에도 바로 골로 갈 수 있는 세상이란 걸 감안하면 1초는 어마어마한거지.
"근데 아무 때나 발동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결과가 결정되어있는 사건에만 보이더라고요?"
"그건 무슨 소리야? 결과가 결정되어있는 사건?"
"어…. 그러니까 그런 거죠. 날아오는 돌멩이 같은 거? 그런 거는 이미 던져진 거잖아요? 궤도가 정해졌고 날아갈 위치가 확정됐죠? 그런 건 볼 수 있어요."
"아…."
"근데 이런 건 안돼요. 제가 문 앞에서 서서 밖으로 나갈지 안으로 들어갈지 같은 거."
"아아. 이해했어. 이야. 미나 설명 잘하네? 되게 똑똑해 보여?"
"제가 똑똑한 게 아니고 다 같이 모여서 정리한 거니까요."
쑥스러워하는 미나. 아. 귀엽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할 정도야.
암튼…. 미나가 이쁜 건 당연한 거니 그렇다 치고.
단기 예지.
설명만 들어도 대충 알 거 같다.
그러니까 이건 예지라는 이름을 쓰긴 했지만, 예측이 맞을 거야.
번개 같은 반사신경과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오버 클럭.
이 세 가지 스킬들을 보면 그게 맞지.
원래의 능력보다 훨씬 더 향상된 몸으로 극도로 예리해진 감각과 군더더기 없는 판단력을 이용해 결과가 정해진 일을 예측하는 것.
그게 아마 단기 예지라는 이름으로 스킬화 된 거겠지.
근데 왜 스킬 이름이 예지야. 잊고 있던 이름인데. 기억나게 하네.
"좋네. 말도 안 되는 스킬이야. 그 패시브가 있으면…. 적어도 투사체 같은 거에 맞을 일은 없겠네."
"근데 공간이 좁으면 1초 뒤를 알아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건 그렇지. 아무튼, 그럼 그것도 배운 거지?"
"네. 그거 배우고 반사 배우고 있죠."
조합 스킬이 없는 사람 중에서 미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봐도 없을 거 같은데? 애초에 건드리는 것 자체가 무리니까.
저 패시브들은 그만큼 사기다. 그러니 나도 빨리 배워야겠네.
앞으로 스킬 여섯 개만 마스터 하면 나도 배울 수 있다는 소리니까.
"기본 스킬들, 천국의 문 스킬 트리, 원트 트리. 딱 이렇게 스킬을 찍는 게 정석이겠구나. 적어도 그러면 남에게 살해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안 그래도 우리끼리 그 이야기도 했는데 꼭 그건 아닌거 같아."
세아의 말에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왜?"
"오빠가 왜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해. 그건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아? 단지 전투를 위한 스킬만 잔뜩 있다고 좋은 건 아닌 거 알면서."
"음. 그렇긴 하네. 틀린 말은 아니지."
확실히 이 스킬들은 뭐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개인의 성격, 취향, 선호도에 따라서 효과가 확연히 차이 나긴 하지.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상상력이다.
이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스킬을 가지고도 낼 수 있는 효과는 엄청 다르잖아?
"이야기 끝난 거죠? 내 이야기 해도 돼요?"
승희의 말에 그녀를 바라봤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
"나 잭팟 찍었어요."
"오. 그래? 어때?"
"이거 패시브던데요?"
"엑? 정말? 그럼 효과는 정확하게 모르겠네."
"그게…. 조금 확실하진 않은데 그거 같긴 해요. 운 좋아지는 거."
"엥? 그럼 제일 사기잖아?"
"그정도로 사기까진 아닌거 같고요."
"뭐든 패시브라는 게 좋네. 상시 적용이라는 거니까. 잭팟 찍고 복권 써봤어?"
"쓰긴 써봤는데 당첨은 안 되던데요."
"그럼 운이 좋아지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동전 던지기로요. 가위바위보랑."
"아…. 간단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확인했네."
"그쵸. 헤헤."
"그럼 이제 뭐 찍나?"
"저도 원트 하려고 생성 스킬 찍고 있어요. 기름 생성."
"아. 그래? 뭐…. 좋지. 괜찮은 생각이야."
어쨌든 잭팟이 패시브라는 건 몰랐네. 이 스킬은 짱개놈들 연구에도 없던 스킬이긴 했었지.
근데 패시브라…. 뭐든 패시브면 좋다. 상시 적용이 된다는 건 무조건 좋을 수밖에 없어.
적어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근데 그러면…. 왜 제이슨의 바니걸들은 잭팟까지 안 찍었지?
이유를 알고 싶네. 스킬 다섯 개를 아무거나 배우게 하면 잭팟까지 찍는 건 일도 아니잖아?
아. 티어13을 넘기기 싫은 건가? 히든 스킬 때문에?
아니면 지금도 코인은 충분히 충당되니 굳이 더 욕심 안 내는 것일 수도 있겠네.
게다가 내가 티어16을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살아남은 사람 중에 티어16 이상 찍은 사람은 정말 몇 안 될 테니까. 결코, 쉽게 오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세아랑 안나는 별일 없지? 담배 생성은 마스터 했나?"
"어. 지금은 소주 생성."
"저도요."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도 참고 배워. 그럼 위시랑 원트 배우는 순간 다 보답 받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이제 민희를 바라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무리에 끼어있는 민희.
참…. 기적같은 일이긴 하다. 여자 다섯을 모아놨는데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낸다는 것.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지. 게다가 우리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더욱.
"민희 너는…. 잠금 해제하고 있나 보네."
"네. 보시다시피요."
그녀의 손에 들려진 자물쇠. 이 벙커의 여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가지고 스킬 숙련을 한 물건.
민희가 티어12 던가? 아직 멀었네. 승미세안에 비하면 완전 늅늅이야.
"암튼 저녁이나 먹자. 난 밥 먹으러 왔다고."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고기 구워 먹자고 말했었죠?"
승희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걸 본 미나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그럼 준비할게요. 밖에서 먹을 거죠?"
그렇게 우르르 나가서 고기 구워 먹을 준비를 한다.
밖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열리고 각자의 수납에서 각종 집기를 꺼낸다.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기에 금방 고기 구울 준비가 끝났고 본격적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근데. 미나가 마그마 샷 같은 거 써서 여기 바닥에 용암을 만들어 놓으면 용암 구이 같은 것도 되지 않을까?"
"아? 그 3초 삼겹살 그런 것처럼요?"
내 말에 승희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저건 꼭 해보고 싶어 하는 눈빛인데.
"어. 되지 않을까? 어쨌든 익히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몸에 안 좋은 성분 같은 게 나오지 않을까요? 마그마가 그리 깨끗한 건 아닐 거 같은데…."
걱정되는지 별로 내키지 않아 보이는 미나.
"근데 그건 자연상태의 용암이나 그렇지…. 스킬로 나오는 마그마는 다르지 않을까? 근데 뭐…. 먹고 문제가 생겨도 질병 해제 선에서 해결 될 거 같은데. 그걸로 해결 안 되면 상태 회귀로 돌려버리던가."
"그냥 이렇게 구워요."
"별로인가 보네."
"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진지한 표정의 미나. 더는 밀어붙이기도 좀 그렇네.
하긴 미나는 먹는거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니까.
전직 아이돌이었어서 그런가? 뭔가를 먹는 행위 자체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없이 못먹었어서 그런건가? 다이어트 때문에?
"술 같은 건 안마시죠?"
그렇게 머릿속에서 마그마 구이에 대한 생각을 지울 때 민희가 물봤고 다들 묘한 표정이 된다.
지난번에 술 먹었을 때 생각이 나서 그런가?
근데 사실 별일 없었잖아? 다들 주사도 없이 그냥 엎드려 잤으면서.
"너네는 1억짜리 와인 먹고 싶지 않냐?"
내 말에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삼겹살에 1억짜리 와인은 조금 오바 같지만…. 알게 뭐야. 어차피 무한으로 마실 수 있는데.
"먹어볼래요!"
용감한 승희를 뒤따라 다들 너도나도 마시겠다고 말한다.
수납에서 꺼낸 로마네 콩티. 민희는 와인잔을 꺼냈고 지난번처럼 멋지게 잔에 따른다.
그렇게 삼겹살을 먹으면서 와인을 먹는 여자들.
반응들은…. 뭐 그리 요란하진 않았다.
딱 봐도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네. 근데 비싸다고 하니 계속 먹는다.
어차피 잔뜩 먹어도 회귀 한방이면 술도 숙취도 리셋이니까.
저렇게 꿀꺽꿀꺽 먹을 수 있는 거겠지.
"아. 미나야."
"네?"
볼이 발그레해진 미나. 새하얀 얼굴에 붉은색이 섞이니 제법 보기 좋다.
살짝 풀린 눈도 그렇고…. 평소의 이미지랑 조금 다른 분위기잖아?
"그 스킬 말인데. 오버 클럭."
"이런 상황에서도 스킬 이야기에요? 역시 오빠답네요. 헤헤. 근데 왜요?"
장난기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 어휴 귀여워.
이대로 납치해서 훌렁훌렁 옷을 벗겨버리고 싶네.
"번개 같은 반사신경이랑 냉철한 판단력은 스킬 효과를 어느 정도 확인했잖아? 오버 클럭은 어때? 정확하게 알겠어?"
"음…. 몸이 더 좋아진 느낌이죠. 힘도 세진 거 같고 유연성도 좋아진 거 같고, 민첩성이나 그런 것도 다 좋아진 거 같아요."
"근데 그게 불이랑 무슨 상관이지?"
"사실 번개 같은 반사신경도 진짜 번개랑은 상관없잖아요. 냉철한 판단력도 얼음이랑은 상관없고."
"그렇긴 하네. 근데 발열이 심해진다고 오버 클럭은 조금 웃겨서. 혹시 평소보다 몸에 열이 많이 나고 그런 건 아니지?"
"네. 그런 건 없는 거 같아요."
"거기! 둘이서 속닥거리지 말고 다 같이 이야기하죠? 반칙인데?"
승희가 짓궂게 웃으면서 말하자 다들 비슷한 표정으로 나와 미나를 바라본다.
안 그래도 붉은 미나의 얼굴이 더 빨개지는 거 같네. 귀엽게.
그렇게 계속 고기를 구워 먹으며 비싼 와인과 다른 술까지 꺼내 마신다.
유독 민희가 평소보다 좋아하는 거 같다.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서 어울리는 건 쟤도 오랜 만이니 그런가 보다.
앞으로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긴 해야겠어.
아. 이미 나 빼고는 자주 하고 있는 건가? 생각해보니 그렇네.
앞으로 이런 자리를 자주 참가하긴 해야겠어.
근데 그놈의 쇼핑 때문에…. 얘들 다섯이 모두 모여있는 건 조금 무서워.
언제 끌려갈지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