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드러나는 것들
"난 이제 가인이랑 대화할 거야."
"저도 같이 있으면 모양새가 좀 안 좋긴 하네요오. 알겠어요. 저는 물러갑니다."
그렇게 말한 레나는 두 손을 배꼽에 붙이고 나를 향해 이쁘게 인사한다.
요망한 여자야. 귀엽기도 하고.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은 나는 바로 가인의 방에 들어갔다.
잠들어 있는 여자. 일단 바로 기억 복구를 썼다. 죽이든 살리든 일단 선택권은 줘야지.
레나 보다 함께한 시간이 짧기에 복구할 만한 기억은 몇 개 없는 여자.
복구는 금방 끝났고 바로 무효화를 쓴다.
이쁜 얼굴이 찡그려지고 눈을 뜨는 가인.
나는 반사만 적당히 쓰고 의자를 빼서 거기 앉아 그녀를 바라본다.
"너는 대체…."
"좀 충격적이지?"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머리를 움켜잡고 얼굴을 찡그린 채 나를 보며 물어보는 가인.
확실히 이쁘긴 이뻐.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다.
뭐…. 어지간히 이쁘지 않았으면 애초에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적어도 내가 거둔 여자들은 미모만큼은 어디서 뒤지지 않으니까.
화장을 안 했는데도 이 정도로 이쁘기는 쉽지 않잖아? 그야말로 자연미인이지.
게다가 나이로 봐선 성형한 거 같지도 않고.
아. 레나는 어떻지? 걔는 성형했나? 그랬으면 조금 실망할 거 같은데.
암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미안. 내가 아는 방식이 이런 거 밖에 없어서. 대접이 조금 거칠었지?"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인 거지?"
"뭐…. 어려울 건 없어. 나는 뇌제 녀석을 죽였고 그놈의 기억을 봤더니 니가 있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데려온 것뿐이야."
"왜?"
"이뻐서."
"하…. 너랑 농담하고 싶지 않아."
"농담이겠냐? 니 주변 사람들을 보면 감이 안 와?"
내 말에 잠시 생각하는 가인. 그러더니 정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물어본다.
"진짜 그런 이유로?"
"너도 남자를 잘 모르나 보다? 남자들에겐 그게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문젠데."
"말하면 할수록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게 한심해지네."
"나도 마찬가지야. 시간 아까우니까 간단하게 하자. 어때. 죽을래? 아니면 내 밑에 있을래?"
"뭐?"
"알아들었으면서 되묻지 마. 두번 말하기 귀찮아."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너에 대해서 조금 미묘해. 죽이자니 아깝고 거두자니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거든."
"남의 목숨을 그렇게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듯 말하지 마!"
"정신 좀 차려. 이 여자야. 너는 지금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는 판인데 왜 그렇게 뻣뻣한 거야?"
내 말에 충격받았는지 아무 말도 못 하는 가인.
"너는 이쁘고 스킬도 얼추 갖출 건 다 갖췄어. 기본기도 튼튼하고. 근데 그런 태도는 그다지 내키지 않아. 앞의 장점들을 다 덮어버릴 정도로 안 좋지. 그러니 살고 싶으면 알아서 기어. 그래야 나도 생각이 바뀌지 않겠어?"
역시 이런 건 즐겁다.
이렇게 이쁜 여자를 향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이런 상황 자체가 즐겁다.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말도 붙여보기 힘들 여자였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쩔쩔매는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잖아?
이건 제법 오싹오싹한단 말이지.
이래서 다들 권위를 가지려고 애를 쓰는 건가 봐. 이해가 간다니까?
"하나만…. 물어봐도 돼?"
고압적인 나의 태도에 주눅이 든 가인.
처음부터 자신이 없던 그녀의 기세는 아예 꺾여버렸다.
나를 향해 힘겹게 입을 여는 그녀의 모습.
"아직도 고개가 뻣뻣한 거 같긴 한데. 해봐."
"네가…. 아니. 당신이 정말 중국 공산당 녀석들을 모두 처리한 건 맞나요?"
"그게 중요해?"
"저에게는 중요해요."
내가 봤을 땐 가인은 이유를 찾고 있는 거 같다.
나에게 깔끔하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이유를.
그리고 그 이유 중에는 짱개 처단 여부가 클 거다.
아버지의 복수이자 자신의 복수, 자신이 이뤘어야 할 목표잖아?
그러니까 나에게 확인하려 드는 거고.
"짱개놈들은 다 죽었어. 그놈들의 대가리인 흑해방은 괴멸했고 수장인 장룡과 고룡, 왕룡은 내 손에 죽었지. 이 정도면 됐나?"
"확인할 방법은…."
"아. 됐어. 너 귀찮아. 그냥 죽어."
"아…. 아닙니다. 죄송해요."
"니가 원한다면 장룡 녀석이 살았던 방공호에 데려다줄게. 근데 그렇게 거길 가면 니가 뭘 알 수 있긴 있어? 거기가 장룡이 살았던 곳이란 걸 보면 알아? 뭘 보고 믿을 건데?"
아무 말도 못 하는 여자. 사실 뭘 말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결정해. 깔끔하고 명예롭게 지금 죽을래? 아니면 구질구질하고 험하게 구르면서 내 밑에서 살래."
이미 결정 난 일이다. 이 여자는 이미 내게 고개를 숙인 것과 다름없다.
내 말을 들은 가인은 주춤거리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크…. 이 짜릿함. 등줄기가 시큰한 느낌이야. 오싹오싹한다고.
"좋아. 받아줄게. 이제 일어나."
고분고분한 모습.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없다.
자기 입으로 복종을 말했으니까.
물론 그런 말에는 강제력 따위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이 여자는 실력으로 찍어누를 수 있으니까.
어차피 방심 같은 건 할 생각도 없고.
"이리와."
앉아있는 내가 부르자 그녀는 내게 순순히 다가온다.
내 앞에 선 가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키스했다.
찍어누르는 듯한 키스.
배려심 따위는 없는 내 행동에 그녀는 거부감을 보이기보단 순응하기를 선택했다.
어떻게든 나의 키스에 반응해서 맞춰주는 그녀.
키스가 끝나고 나는 그런 가인을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말했다.
"너는 내 소유야. 니가 나의 말에 복종하고 충성을 다하면, 나는 그걸 몇 배로 보답해줄 거야. 알겠어?"
"네…. 마스터."
나를 마스터라고 부르는 가인. 아마 복구된 기억 속에서 나에 대한 호칭을 찾았겠지.
이로써 그녀는 확실히 노선을 정했다. 뭐…. 현명한 거지.
사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외통수였긴 했지만.
"좋아. 그럼 따라와."
내가 밖으로 나가자 내 뒤에서 바로 쫓아오는 가인.
음. 맘에 드네. 수행비서 같은 느낌이야. 그래. 비서 좋네. 미인 비서는 좋지.
제이슨이 바니걸이고 포웰 그놈이 메이드라고? 그럼 난 비서다. 모던하게 가야지. 모던하게.
"레나!"
내가 소리치자 레나는 바로 자신의 방에서 나와 내 쪽으로 온다.
"너도 따라와."
별말 없이 내 뒤에 서는 레나.
나는 그렇게 레나와 가인을 데리고 엠마를 눕혀 놓은 소파로 갔다.
"가인."
"네."
"얘 죽여."
"네?"
"하아. 그래. 처음부터 착착 잘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 레나?"
"네."
"너 아직 파티 걸려있나?"
"아니요."
"가인이랑 파티해."
"네."
바로 파티를 만들고 가인에게 초대하는 그녀.
"했습니다."
"얘 죽여. 코인은 바로 먹고."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레나의 손이 붉게 물들더니 그대로 자고 있는 엠마의 심장을 찔렀다.
그대로 빛이 되어버린 여자.
쯧. 나름 키워보려고 투자도 했는데. 결국, 이렇게 내 손으로 처리하게 되네.
"가인."
"네…."
"두번은 없어. 의심하지 말고 의문을 가지지도 마. 시키는 건 그냥 해. 알겠어?"
"네."
"오늘부터 너희 둘은 여기에서 머물면서 내가 시키는 일을 해. 지금은 시킬 일이 없으니 알아서 스킬 숙련하고. 특히 가인 너는 티어14 찍는 걸 목표로 쉬지 말고 해."
"네. 알겠습니다."
"질문?"
내가 물어봤지만 아무런 대답 없는 두 사람.
"됐어. 가. 이제."
후. 이제야 위치스의 처리가 끝났다.
물론 하나는 죽고 하나는 망가지기 직전인 데다가 남은 둘도 그리 확신이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됐지. 더는 복잡하게 생각 안 해도 될 거야.
이제…. 진짜 중요한 일을 해야지.
호라이즌. 그리고 세 명의 그랜드마스터.
아니. 근데 다시 생각해봐도 존나 웃기네. 뭔 그랜드마스터가 셋이야.
차라리 그러면 트로이카라던가 뭐 그럴듯한 이름으로 부르지.
왜 그랜드마스터가 셋이냐고. 셋 다 그랜드면 혹시 또 그 위에 누가 있는 거 아냐?
그럴 확률은 없다시피 하지만 어쨌든 신경 써야 할 녀석들이 셋이란 건 존나 귀찮다.
셋을 거의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소리잖아?
누구 하나라도 놓치면 대응하기가 몇 배는 힘들어진다.
게다가 그 밑에 있는 6명 남은 위원회 놈들도 마찬가지.
물론 그놈들은 좆밥들이라 걸려있는 추적 하나 풀지 못하는 잉여들이니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언제든지 가서 쳐죽일 수 있는 놈들.
미국 대통령이 끼어있긴 하지만, 이미 뻥뻥 뚫려있는 보안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쓱싹 할 수 있어.
결론은 그 셋이다. 포웰, 제이슨, 레이첼.
지금은 추적이 걸려있지 않은 제이슨. 그리고 언제 추적이 풀릴지 모르는 포웰과 레이첼.
셋을 모두 파악한 상태에서 시간차가 없도록 빠르게 해치워야 해. 그게 귀찮고 복잡하지.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들을 잡아서 기억을 읽니 어쩌니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어차피 Q&A가 있는 이상 궁금한 건 그냥 물어보면 되니까.
그랜드마스터 셋을 잡고 위원회 녀석들을 전부 죽이면 게임은 끝이다.
그다음에는 유유히 녀석들이 남긴 전리품을 획득하면 그만이야.
에휴. 말은 쉽지. 그게 쉬웠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도 안 했을 거고.
어찌 됐던 일단 제이슨 녀석의 행방을 찾는 게 우선이다.
아. 진짜. 추적이 꺼지는 건 생각 못 했는데. 일이 귀찮아지네.
일단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기다리는 일이다.
제이슨 녀석이 바니걸 크루즈에 가거나 위원회 녀석들의 기억을 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리고 밤이 되면 레이첼의 저택을 확인해 봐야 하고.
그사이 스킬 숙련이나 하면서 틈틈이 추적 걸린 녀석들을 엿보는 수밖에 없겠네.
그럼…. 일단 스킬을 숙련하러 가야겠어.
아. 가기 전에 신영이나 한 번 더 보고 가야지.
수원으로 순간이동 했다.
신영과 성연이 미국으로 간 이후 한참 비어있던 벙커가 다시 자신의 주인을 되찾았다.
자신의 방에 있는 신영. 이번엔 도망 안 갔네. 기특하게.
근데 도망 인간 이유를 알 거 같다. 그녀는 자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네. 잘 시간이라서 자고 있는 건가?
하긴 어제 그렇게 나랑 해댔으니 힘들만 하겠지. 아니다. 상태 회귀 걸어줬는데?
아. 정신적 피로가 더 크겠구나. 뭐…. 그건 내가 할 말이 없긴 하지.
신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신영이는 그 문소리를 듣고 화들짝 깨어났다.
"어…. 어…."
마치 악몽을 꾸는 것처럼 나를 보면서 어버버 거리는 그녀.
어휴. 이거 진짜 망가지겠네. 그러면 안 되지.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그러니 다시 누워."
내 말을 순순히 들을 리가 없다.
그냥 수면을 걸까? 그게 가장 편하고 빠르긴 한데.
하지만 마냥 스킬에 의존할 수는 없다.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으니까.
나는 신영이의 침대로 가서 그 옆에 앉았다.
나를 피해서 침대 구석으로 피하는 그녀.
쩝.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쓰럽네.
윽박이라도 질러야 하나? 차라리 지금은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조용하게 타이르듯 말할 뿐이다.
"너를 안는 건 나중이야. 지금은 안 할 테니까 다시 누워."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하긴. 내가 말을 병신같이 하긴 했네.
"누워. 신영아. 자꾸 그러면 지금부터 또 섹스할 거야."
부드럽고 조용하게 타이르듯 말한다는 건 고작 30초 만에 날아가 버렸다.
바로 협박이 나와버리네. 어휴.
하지만 이게 효과는 더 좋다. 주춤거리면서 침대 구석에서 쪼그리고 눕는 신영.
"거기에서 그래 봐야 어차피 내 팔이 닿는 건 똑같아. 그러니 편히 누워."
하지만 그것까진 안됐다. 그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에휴. 미안하다. 너랑은 이렇게 안 만났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신영이가 듣든 말든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인다.
"모르겠다. 좋은 상황에서 너를 구해주는 식으로 만났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 너처럼 이쁘고 착한 애를 어쩌다 이렇게 꼬인 채로 만나서…. 내 맘대로 주변을 망가뜨리고, 너도 괴롭히고, 그걸 수습하려고 했지만 결국 더 망치기만 하고. 너만 고생하네."
그러면서 슬쩍 신영이를 바라봤다.
그래도 내 이야기는 듣고 있었는지 나를 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니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그녀.
"이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너와의 관계를 되돌릴 수는 없어. 다시 시작할 수도 없고. 그게 슬프다. 이런 식으로밖에 될 수 없는 관계가."
그러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또 화들짝 놀라는 여자. 그런 그녀를 보고 다시 말한다.
"미안하다. 실컷 괴로운 짓을 잔뜩 해놓고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도 너에겐 역겨운 일이겠지. 너 자는 데 방해되니 가줄게. 그러니 내 신경 쓰지 말고 자라."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찬 말들이지만, 그래도 내 진심이다.
하지만 신영이에겐 개소리나 다름없으니 이건 내 독백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하는 변명. 현 상황에 대한 핑계. 지독한 자기합리화.
말을 더 늘어놔 봐야 저 여자에겐 구역질 거리만 늘려주는 거니 이만하고 떠나야겠다.
스킬 숙련이나 해야지. 음침하게 추적 걸린 녀석들이나 훔쳐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