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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것들
"와. 대단한데? 나를 한 단어로 잘 축약해줬어. 똑똑하네."
"칭찬 아닌데에."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 레나의 표정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호기심.
자신의 감정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여자.
"흐음. 이거 기분이 이상하네요오. 근데…. 결국 다시 보게 됐네요? 자기?"
그녀의 말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신기한 여자네? 성격도 바뀌는 느낌인데.
기억이 지워진 채 여기에서 나를 대하던 모습과 매혹에 걸렸을 때의 모습.
아무래도 후자가 원래 성격과 말투인가 보다.
그리고 지금 이 여자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거 같고.
하긴…. 이 여자는 매혹을 풀어줬을 때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지.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이 모습이 자연스러운 게 맞는 거 같네.
"왜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한거에요오?"
"난 니가 그렇게 말끝을 안 끄는 게 더 좋았어. 말한 적 있잖아? 기억 날 텐데?"
"흐응. 왜죠? 다들 이러면 레나를 좋아해 주는데?"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뭐, 그러시다면야 취향을 맞춰드려야지."
그렇게 말하고 빙긋 웃더니 다시 나를 보고 입을 여는 레나.
"다시 물어볼게요. 왜 이렇게…."
"별 이유 없어. 그냥 너희에게 매혹 유지하는 게 귀찮아졌을 뿐이야."
내가 말을 끊고 대답했지만 별로 기분 나빠하는 표정은 아니다.
여전히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
"흐음. 저는 그냥 풀어줬어도 됐을 텐데."
"형평성은 맞춰야지."
"저는 자기를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요?"
"뭘 믿고."
"아까워라. 우리 사이에 이렇게 신뢰와 믿음이 없다니."
"그거 되게 힘든 거야. 쉽게 생기기 어려운 거라고. 그리고 우리 사이가 그런 게 쌓일만한 관계는 아니었잖아? 내가 일방적으로 부려먹은 건데?"
"그렇긴 한데…. 크게 불만은 없어요. 아.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말해봐."
"쉐도우…. 아니, 엠마. 저 여자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 그게 내가 고민하고 있는 거다.
가인은…. 모르겠다. 뇌제를 죽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보면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죽인 사람이 되잖아? 거기에 대해서 반감을 품을 수는 있다.
근데 지난번의 반응을 보면 그리 상관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암튼 가인은 어떻게든 넘길 수 있어.
하지만 엠마는 다르다.
애초에 히어로의 사이드킥이었던 여자. 게다가 미스터 샤이닝은 그녀가 좋아하던 남자다.
그리고 그걸 죽인 건 나잖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 명령을 받은 레나지만.
그렇기에 저 여자는 저렇게 물어보고 있는 거겠지.
자기 손으로 직접 미스터 샤이닝을 죽였으니 엠마하고는 한자리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거니까.
"고민이네. 근데 어쩔 수 없지. 죽이는 수밖에. 쟤는 뭘 어떻게 건드릴 방법이 없어. 그리고 너도 엠마는 껄끄러울 텐데."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나는 미움받기 싫은걸. 당신이 죽이지 않겠다고 했으면 내가 죽이려고 했는 걸요?"
또 까먹을 뻔했다. 이 여자도 절대 강자의 하나였다는 걸.
사람 죽인 숫자가 절대 적지 않을 여자다. 엠마 같은 여자는 수도 없이 죽였을 수도 있지.
그렇기에 저런 식으로 쉽게 말할 수 있는 거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현실적이고 깔끔해서 맘에 드네."
"가인은요?"
"걔는 대화 한번 해보고."
"가인은 살려줬으면 좋겠는데요."
"걔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지. 근데 너 되게 웃기네?"
"왜요오?"
"너는 당연히 살 거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잖아?"
"어머? 죽일 거였으면 이미 재웠을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하네. 눈치가 빨라."
"나는 당신 손에 죽고 싶지 않아요.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요?"
"그거 대단한 희망 사항이네. 쉽지 않은 일인데."
"당신 곁에 있으면 조금 쉬워질 거 같아서."
그러면서 내게 다가온다.
적수가 있는 여자라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번개 같은 반사신경과 데미지 감소가 있기에 좀 낫다.
예전 같았으면 근처에도 못 오게 했겠지. 이정도로 풀어놔 주지도 않았을 거고.
일단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먼저 깔고 뭔가를 했을 거야.
"나는 당신이 나에게 바라는 역할을 알아요. 그러니…. 하던 대로 해요. 그편이 나에게는 더 나을 거 같으니까."
"매혹을 걸지 않고도 매혹에 걸린 것처럼 대하라고?"
"바로 그거죠."
"힘들겠는데."
"왜죠?"
"매혹이 걸리면 나에게 거짓말을 못 하지. 하지만 지금의 너는 거짓말을 할 수 있잖아?"
"어머? 저는 거짓말 안 해요. 사실을 전부 말하지 않을 뿐인걸요?"
"그게 그거 아냐?"
"으으음. 달라요. 달라. 나는 당신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걸요?"
귀엽게 고개를 가로저은 그녀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내 바지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린다.
"뭐 하는 거야?"
"음…. 당신에게 하는 맹세?"
그러더니 내 자지를 꺼내는 레나.
딱히 뭘 한 것도 없는데 자지 새끼는 주책없이 빨딱 발기되어있다.
하여간. 시도 때도 없이 발정 난 새끼라니까.
자존심이라고는 좆도 없는 새끼. 얼래? 좆이 좆도 없으면 그게 뭐가 되는 거지?
"나 키쿠치 레나는 당신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더니 그녀는 그 도톰한 입술로 내 귀두에 키스한다.
"대체…. 이게 뭐냐?"
"어머? 뭐긴요? 맹세의 츄 잖아요. 제가 풀네임까지 말했는데 못 믿는 거예요?"
"아니. 맹세고 뭐고 강제력은 전혀 없잖아. 말로만 하는 거야 누군들 못하겠어."
"정말…. 의심 많은 남자야. 그래서 맘에 드는 거지만."
그러면서 그녀는 야한 입술로 내 귀두를 머금는다.
전부 입에 넣은 것도 아니다. 그저 입술과 혀로만 내 키스하듯이 귀두를 빨고 핥는 그녀.
다른 곳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귀두만 빨고 핥기에 그 감각은 몹시 자극적이다.
말랑한 입술, 그리고 요망한 혀의 움직임.
다른 건 없다. 단지 입술과 혀로만 나를 한참을 자극하는 모습.
그러면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별거 아닌 행동이지만 남자들이 미친 듯이 좋아하는 그 손동작.
정말 어이없게도 나는 금세 사정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그 감각. 고환에서부터 찌릿하고 느껴지는 신호.
그걸 느낀 레나는 그대로 내 귀두를 입으로 감싼다.
나는 그대로 입안에 잔뜩 사정해버렸고 레나는 그걸 그대로 꿀꺽 삼키더니 웃는다.
"어때요. 이제 믿을 만 한가요?"
"하아. 진짜 너는…."
"사랑스럽죠?"
할 말이 없네. 내가 여기서 뭐라고 말하겠어.
"더 원하시면 조금 더 '봉사'해드릴 수 있는데. 어때요? 그러시겠어요?"
"하아. 됐어. 이정도로 하자."
다시 내 옷을 정리하더니 의자에 앉는 레나.
진짜 신기한 여자네. 자신의 존재가치를 저런 식으로 증명하는 건가?
"더 볼일 있으세요?"
"진짜 그걸로 만족하는 거야?"
"어머. 제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기뻐라."
"됐다. 그래. 그게 니가 원하는 거면 그렇게 하자. 한 가지만 말하자면…."
"배신하지 않아요."
"눈치는 진짜 빠르네."
"말했잖아요. 지명 1위의 에이스는 외모만으로 안돼요. 이쁜 데다가 눈치도 빨라야 한다고요?"
"그래. 알겠다. 알겠어."
더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버리는 여자.
솔직히 편하긴 하다. 이렇게 잘 맞춰주는 여자가 더 있을까? 할 정도로.
다만…. 그만큼 힘들지.
저런 머리 좋고 눈치 빠른 여자가 작정하고 배신하면 그 피해는 절대 작지 않을 테니까.
아직 배신한 것도 아닌데 이런 걱정을 하는 건 내 노파심일 테지만…. 그런 상황을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게 내 성격이니까.
"엠마한테 갈 거예요?"
"보고."
잠시 생각하는 척하면서 포웰 녀석을 떠올린다.
아직도 메이드랑 좋은 시간을 보내는 녀석. 그래…. 뭐 저놈은 그렇다 치고.
다음은 제이슨 녀석의 배.
바니걸을 떠올리니 바니걸들 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다.
휴식시간인가? 근데 눈은 즐겁네. 역시 바니걸은 좋지.
플레이보이 새끼들이 역시 뭔가를 안다니까.
근데 제이슨은 없나 보네. 아쉽게.
마지막으로 레이첼을 살펴본다.
근데 레이첼은 자신이 있던 그 집이 아니다. 어? 설마?
"레나."
"네에?"
"가인이랑 엠마는 재워놨으니 놔둬. 깨진 않을 테니까 그냥 신경 안 써도 돼."
"신영 상은요?"
"걔는 이제 신경 쓰지 마."
"흐음…. 그래요. 알겠어요."
뉴욕으로 순간이동 한 다음 레이첼의 기척을 살펴본다.
그리 멀진 않은 거 같으니 바로 날아간다. 방향은…. 동쪽인가? 근데 뉴욕의 동쪽이면 바다일 텐데?
계속 날아가 보니 바로 바다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지도를 보니 롱 아일랜드라고 돼 있는 곳이네.
그렇게 길쭉한 섬 끄트머리까지 가니 기척이 점점 줄어 한적해지는 곳에 커다란 저택 한 채가 있었다.
아니. 저걸 저택이라고 할 수 있나? 건물이 엄청 많은데?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레이첼의 기척.
천리안과 투시를 써서 살펴본다. 우아하게 의자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레이첼.
근데 그녀는…. 알몸이었다.
그 사이 옷을 벗은 건가? 아마도 그런 거 같다. 아까는 옷을 입고 있었어.
그리고 그 옆에 눈에 안대를 쓰고 있는 한 남자. 근육질에 자지도 큰 녀석.
눈을 가리고 있어도 녀석이 잘생기고 젊은 남자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여기는 레이첼의 공장이 맞나 보네. 근데 왜 이 여자는 크루즈를 안 했지?
지상에 이런 걸 해놓으면 불안하지 않나?
어쨌든 와인잔을 모두 비운 그녀는 침대에 가서 누웠다.
그리고 뭐라고 입을 열었고 안대를 쓴 남자가 조심조심 침대 쪽으로 걸어간다.
침대에 발이 닿은 남자는 손으로 침대를 짚으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갔고 그런 남자를 보며 레이첼은 무심한 듯 표정을 짓는다.
마치 이런 상황이 그리 즐겁지는 않다는 듯.
결국, 안대남의 손이 레이첼의 다리에 닿았다. 그러자 황급히 그대로 무릎을 꿇는 남자.
레이첼이 뭐라고 시큰둥하게 말했고 다리를 벌린다.
그러자 안대남은 다시 손을 뻗어 레이첼의 몸에 손을 댔다.
그다음부터는 뭐…. 평범한 섹스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은 레이첼이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안대남은 정말 온 힘을 다해 박았다는 것?
그렇게 한참을 레이첼의 다리 사이에서 몸을 움직이던 남자는 결국 몸을 움찔거리더니 몸을 뒤로 빼고 아까처럼 무릎 꿇는다.
단순하게 섹스 한번 했을 뿐인데 상당히 지친 듯한 녀석.
레이첼은 뭔가 또 말했고 안대남은 아까 침대에 올라왔던 것의 역순으로 하며 방 바깥으로 나갔다.
그렇게 나가자마자 이번엔 또 다른 안대남이 들어온다.
방금 나간 놈이랑 크게 다를 게 없는 녀석.
설마. 이걸 반복하는 건가? 한번이 아니었어?
내 예상은 맞았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만 해도 네 명의 남자가 한 명씩 들어와서 레이첼에게 사정을 하고 나갔으니까.
아…. 이게 그 체력 흡수인가? 대화에서 나왔던 그건 거 같은데.
사정한 남자들이 하나같이 진이 몽땅 빠진 모습으로 나가는 거 보면 그게 맞는 거 같다.
남자의 체력을 가져오는 건가? 그럼 지금 스킬 숙련 중인가?
암튼 이걸 계속 지켜볼 필요는 없잖아? 어쨌든 레이첼의 근거지를 알아냈으니까.
근데 이 여자는 약탈 반사를 안 쓰나? 분명 있을 텐데?
따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이는 게 아닌 이상 있는 게 분명하다.
집 근처로 가까이 가서 탐지를 돌리자 내 의문은 금방 풀렸다.
집은 눈에 보이는 부분이 다가 아니었어. 존나 크네.
포웰과 제이스가 바니걸과 메이드로 이루어진 지극히 남자다운 자신의 세력을 꾸렸다면 레이첼은 조금 달랐다.
평범한 가족들로 보이는 남녀와 아이들이 잔뜩 있었다.
물론 이 사람들이 복권을 쓰는 사람들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그냥 저렇게 함께 살 이유는 없을 거 같네.
뭐, 가서 확인해보면 되지. 기억 읽기는 폼이 아니니까.
문제는 자는 놈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 아직 뉴욕은 오후 두 시 정도밖에 안 돼서 그런 거 같다.
아. 이놈들은 낮잠도 안 자나. 마. 시에스타 모르나? 시에스타?
일단 위치는 알아뒀으니 이따 밤에 다시 와봐야겠네.
아. 혹시 모르니 밖에서 알짱거리는 몇 명에게 추적은 걸어놓는다.
어차피 배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니 걸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래도 건다. 혹시 모르니까.
그럼 일단 여기는 됐고.
다시 LA로 순간이동.
내가 돌아오자 얼마 있지 않아 레나는 내가 있는 쪽으로 나온다.
"뭐야. 추적 걸지 말라고 했을 텐데."
"추적 안 걸었는데요? 탐지로 보고 나온 거에요."
"아. 그래?"
생각해보니 내가 반사를 푼 적이 없네. 이 여자는 반사가 걸려있으면 추적을 못 걸지?
"의심하지 말라니까요. 나는 당신에게 미움받을 짓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서 내게 슬쩍 붙어서 팔짱을 끼는 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는 민희랑 비슷한 거 같아.
둘이 붙여놓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