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99화 (69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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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것들

수원 벙커로 돌아온 신영이는 가냘프게 몸을 떨고 있다.

저렇게 이쁘고 여리여리한 애가 불안한 듯 몸을 떨고 있는 걸 보니 약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동정심도 들고.

근데…. 내가 그런 거잖아?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진짜 웃기네.

게다가 사실은 동정심보다 만족스러움이 더 크다.

타인을 완벽하게 손아귀에 넣고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그 즐거움이 더 커.

"여기 내부의 구조는 니가 더 잘 알지? 식량은 그대로 있을 거야. 그러니 그걸로 요리해 먹고 있어. 바깥으로 나가는 건 다시는 봐주지 않아. 하지만…. 그래. 여기 위에 비행장. 거기까지는 나가는 걸 허락해줄게. 햇빛도 쐬고 그래야지."

다정하게 말하지만, 신영이의 얼굴은 아직도 굳어있다.

하긴, 내가 다정하게 말한다고 이 여자가 화사하게 웃을 일은 없으니까.

그건 말이 안 되지. 아직은.

"그리고 요리 할 때 잘 좀 해봐. 너는 너무 불을 강하게 해서 태워 먹는 거야. 약한 불로 3분 동안 익혀야 하는 걸 강한 불로 1분 익힌다고 똑같은 건 아니거든. 그러면 겉만 타고 속은 안 익는단 말야.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너는 똑똑한 여자잖아."

그러면서 뺨을 손바닥으로 만졌다.

손이 닿자 심하게 움찔거리는 신영. 마치 뺨에 벌레라도 붙은 것 같은 반응.

"잠깐 또 나갔다 올 거니까 여기 있어. 니가 믿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아끼고 있어. 그저 개소리로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래. 너는 아직 모를 거야. 내가 너를 안 죽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물론…. 죽을 때까지 이해 못 하겠지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삑삑 하고 신영이의 뺨에 키스했다.

으. 내가 하는 짓이지만 신영이는 얼마나 소름 돋을까. 뺨에 키스는 괜히 했나?

근데 어쩔 수 없다. 나라고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다. 보고 있으니 너무나 탐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

어쨌든 그런 신영이를 놔두고 인도로 순간이동 했다.

신영이도 좋지만 내 할 일은 해야지.

걸려있는 Q&A를 해결하기 위해 탐지를 키고 인도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성별을 바꾸는 방법. 대충 예상이 된다. 제약 해제가 있는 변신이면 가능할 거 같은데.

어차피 Q&A 오피셜로 확답을 받기 위해 이러는 거니까. 빨리 1만 명이나 잡아야지.

얼음 회오리를 쓰면서 인도 사람들을 빛으로 바꾼다.

장애물을 통과 못 하는 얼음 회오리라 조금 짜증 나긴 하지만, 어차피 숙련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그저 쓰고, 쓰고, 쓸 뿐.

근데…. 역시 코인은 안 나온다. 음…. 조금 아깝네. 티끌 모아 태산인데.

그 티끌도 안 나오다니.

그렇긴 해도 아직 이렇게 모여 살고 있다니…. 그건 고마운 일이다. 그걸로 만족해야지 뭐.

한참을 사냥한 끝에 1만 명을 채웠고 답변 중 메시지가 뜬다.

그리고 뜨는 답변.

[답변 : 금제와 제약 해제를 스킬 조합한 금제 해제와 변신 스킬을 조합한 완전한 변신 스킬로 성별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옴마? 뭐야. 뭐가 이렇게 복잡해.

금제? 금제가 뭐더라. 아. 그래. 매혹과 마리오네트 스킬이 금제지.

그럼 그걸 제약 해제랑 조합해서 금제 해제 스킬을 만들고 그걸 또 변신이랑 조합하라고?

완전한 변신? 하. 이건 좀 심하네. 이렇게 꽁꽁 숨겨 놓으면 대체 어떻게 아냐고.

하여간 이 새끼들…. 지들 꼴리는 대로 만들어 놓은 거 같은데. 장난하나….

근데 조합을 두번이나 해야 한다는 건 어쨌든 코인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스킬이잖아?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돼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스킬 이름도 완전한 변신이네.

저 정도면 변신하고 스킬도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저 정도 노력은 하는 게 맞지.

하. 이거 또 할 게 늘었네. 지랄 같게.

어쨌든 일단 성별 전환은 그렇다 치고….

이제 그랜드마스터 그놈의 위치를 확인할 시간.

Q&A를 써서 스티븐 포웰의 현 위치를 물어본다.

위치라 그런지 역시 천오백 명과 천오백만을 요구하는 Q&A.

바로 사냥을 하러 간다. 천오백 명 정도야 뭐…. 만 명에 비하면 수월하지. 금방 할 수 있어.

그렇게 천오백 명의 목숨을 거두자 바로 답변 중 메시지가 떴다.

어디냐. 빨리 나와라.

녀석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면 위치가 뜨자마자 바로 가야 한다.

안 그러면 천오백 명의 목숨과 천오백만 코인이 그대로 헛수고가 될테니까.

[답변 : 밀워키 동쪽 80킬로미터. 미시간 호수 위.]

엥??? 미시간 호수 위? 미시간 호수면…. 그거잖아? 오대호?

지도를 켜서 빠르게 확인한다. 미시간 호수. 밀워키…. 아. 여기네.

근데 호수 위? 뭐 수상 도시라도 만들어 놨나?

아. 아니지. 크루즈! 그래. 이놈도 크루즈가 있나 보네?

어쨌든 위치를 알았으니 빨리 가봐야지.

일단 뉴욕으로 순간이동하고 지도를 보며 방향을 가늠한 뒤 빠르게 날기 시작했다.

거리상으로는 1,100킬로미터. 급하니까 블링크를 섞는다.

대략 15분 만에 도착은 하긴 했는데…. 문제는 지금부터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빨리 수상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제이슨 녀석의 배보다는 아담하지만 역시나 어마어마한 크기의 크루즈.

그런 배가 호수를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거네. 아무리 봐도 저거야. 그러니까 저기 안에 포웰놈이 있다는 말이지?

바로 배 근처로 날아가 천리안과 투시를 쓰고 안쪽을 살펴본다.

그리고 발견한 포웰. 생각보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많은 메이드가 모여있는 곳. 거기에 있었으니까.

하. 진짜. 한 놈은 바니걸이고 한 놈은 메이드야?

정말 취향 진짜…. 바람직하네.

새끼들. 뭔가를 아는 놈들이야.

역시 바니걸과 메이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의 로망이 맞지.

근데 포웰 녀석은 제이슨보다 정력이 왕성한가 보다.

제이슨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바니걸들이 쓰는 약탈을 받아주기만 했는데.

이놈은 아예 섹스를 하고 있네. 그것도 메이드 셋이랑.

알몸으로 가만히 누워서 메이드의 봉사를 받는 녀석. 스티븐 포웰.

녀석의 몸 위에 올라탄 메이드 하나가 열심히 자신의 몸을 흔들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가슴을 까고 있는 메이드 하나가 입에 시가를 물려준다.

맛있게 한 모금 빤 녀석은 또 다른 메이드가 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주변에서 녀석에게 스킬을 쓰고 있는 메이드들.

아마 반사가 걸린 녀석에게 약탈을 쓰고 있는 거겠지.

이야…. 행복해보이네.

그래. 저 정도는 하고 있어야 딱 성공한 놈 같지. 제이슨 그 녀석은 너무 신사적이었어.

어쨌든 녀석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 같으니 바로 추적을 걸러 배 안으로 침투한다.

메이드들이 많아서 걸릴 염려는 없겠네. 이 사이에 숨는 건 일도 아니니까.

포웰과 메이드 몇 명에게 무난하게 추적을 걸었다.

좋아. 이제 됐어.

제이슨 그 녀석의 종적은 놓쳤지만 어쨌든 전부 파악은 했다.

아. 아니지. 분명 레이첼 그 여자도 이런 크루즈 같은 게 있을 거야.

거기까지 파악은 해놔야지. 그래야 그 여자가 또 상태 회귀를 써도 다시 추적을 걸지.

일단은 LA로 순간이동 한다.

이제 레이첼을 감시하면서 그 여자의 작업장만 확인해 놓으면 돼.

근데 생각해보면 굳이 그 여자를 지켜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지금은 추적이 걸려있잖아? 어차피 순간이동 같은 걸 해버리면 LA에서 그 여자를 지켜볼 이유는 없지.

그럼 이제 할 일은…. 그래. 남은 위치스 애들도 정리해야지.

슬슬 신영이가 어디로 갔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됐어.

LA의 저택으로 향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여기는 오전 열 시다. 마침 다들 일어나 있을 시간이네.

저택에 도착하니 엠마는 체력 훈련을 하고 있다.

참 열심이네. 저런 거 암만해도 번개 같은 반사신경 하나면 끝인데.

일단 재웠다. 그렇게 잠든 엠마를 대충 소파에 눕혀 놓고 가인에게 향한다.

"어?"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방을 나서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가인.

역시 재우고 그녀의 방에 있는 침대에 올려놨다.

이제 레나 차례. 자신의 방에 있는 여자.

똑똑

"들어오세요."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레나는 창가에서 의자에 앉아 손가락에 담배를 하나 낀 채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쉬는 걸 방해했나?"

"아니요. 괜찮아요. 근데 피우고 있는 건 마저 피워도 되나요?"

"물론."

이 여자에겐 약간 민희의 향기가 난다.

뭐….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 느낌이 다르긴 하다.

민희가 밝은 보라색이라면 이 여자는 짙은 보라색?

어쨌든 매력적인 느낌이 있어.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그녀는 담배를 서둘러 끄거나 하지는 않았다.

천천히 음미하듯이 담배 연기를 들이켜고 다시 뱉어내는 여자.

민희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담배를 저렇게 매력적으로 피우는 여자만 있다면 흡연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 그게 문제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재떨이에 다 핀 담배꽁초를 눌러 끈 여자.

원래대로라면 일단 재우고 나서 기억 복구를 써줄 생각이었는데 레나를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레나."

"음? 너무 친근하게 부르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면 착각하잖아요. 나한테 호감 있는 거로."

그러면서 씨익 웃는 여자.

이야. 역시 여유 있는 거 봐라. 게다가 원래 성격도 저런 면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호스티스 에이스도 했을 거고.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

"말해보세요."

"내가 너를 속이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 거 같아?"

내 질문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자.

그러더니 다시 씨익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럼 '역시'라고 생각하겠죠."

"그런가. 눈치챈 거였어?"

"뭐…. 사소한 거 몇 가지요? 그렇게 티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떤 거에서 의심한 거야?"

"어머. 이런 걸 전부 말해도 되는 거예요? 보통은 대답할 리가 없잖아요?"

"어차피 나는 너의 기억을 읽을 수 있으니까. 매혹도 있고."

"불공평하네요. 자신은 안 걸리면서 나에게는 건다고요?"

"원래 세상이 그렇지."

"힘이 부족한 게 아쉽네요. 당신의 그 당당한 모습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은데."

"그건 좀 힘들겠네.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죠. 말할 수밖에 없네."

내가 별 대답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있자 레나는 그런 내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연다.

"수납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빼놨어야죠."

"계속해봐."

"제 수납 안에 도쿄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몇 개 있더라고요. 적어도 이세탄 백화점 쇼핑백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 어쨌든…. 그건 제가 도쿄에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조금 이상하잖아요?"

"음. 겨우 그런 거로 의심한 건가?"

"의심까지는 아니고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죠. 말이 안 되니까."

"역시 내가 허술했네. 여자들은 이상 한데서 예리하단 말이지. 속이기가 쉽지 않아. 근데 신영이도 수납은 있었는데?"

"신영 상은 그냥 다 같은 일본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준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던데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은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몰라서. 아. 같이 나갔었던 거 같은데. 왜 혼자 왔죠?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됐죠? 설마 죽인 건가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레나가 이미 신영이랑 가인, 엠마에게 추적을 걸어놨다는 걸 알았다.

신영이에겐 내가 상태 회귀를 걸었으니 추적이 사라졌을 거다.

그러니 아마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

"설마. 내가 신영이를 왜 죽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레나.

그녀의 눈빛엔 살짝 의심이 섞여 있다. 하긴, 그녀는 추적을 푸는 방법을 모르니 오해할 만하겠지.

뭐…. 합리적인 의심이야.

"그래서.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속이고 있다는 걸 고백하는 이유가 뭐예요?"

"음. 궁금해서?"

"뭐가요?"

"너의 반응이."

그렇게 말하고 레나를 재웠다.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푹 숙이는 여자.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여자의 몸은 참 신기하단 말이지. 어떻게 그냥 손만 대고 있어도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암튼 그런 잡생각은 적당히 치우고 바로 기억 복구를 써줬다.

레나의 기억을 지운 건 그리 많지가 않기에 간단하게 복구를 마쳤고 다시 의자에 앉아 그런 그녀에게 무효화를 써줬다.

그대로 눈을 뜨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레나.

그리고 도톰한 입술을 열며 나에게 말한다.

"당신…. 상당히 음흉한 사람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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