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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각자 먹고 싶은 거 말해봐."
엠마에게 죽인다니 어쩌니 해놓고 이런 말을 하니 다들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본다.
뭐, 이런 시선은 익숙하니 상관없다. 오히려 즐기고 있을지도.
어쨌든 설명은 해야 하는데 주절주절 설명하기가 너무 귀찮다.
이럴 땐 좋은 게 있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잖아? 직접 보여주면 되는 거야.
"위시."
스킬을 쓴 내 앞에는 쿼터파운드 치즈버거 세트가 생겨났다.
그걸 보고 눈이 커지는 여자들. 역시 보여주는 게 빠르지. 뭘 설명을 해.
"봤지? 그러니 빨리 말해."
"아무거나…. 다 나올 수 있는 건가요?"
레나의 조심스러운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다시 말한다.
"코우난의 쇼유라멘. 이런것도 되나요?"
"위시."
바로 스킬을 쓴 내 앞에 역시 빛이 번쩍이고 주머니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그걸 만지자 그릇 하나가 나타난다.
맛있어 보이는 국물과 잔뜩 들어있는 고기, 그리고 면. 아마 이게 저 여자가 말한 라멘인거 같은데.
"어머…."
그릇을 전달해주자 레나의 표정이 감탄으로 가득 찬다.
말은 했지만, 진짜 나올지는 몰랐던 거지. 그리고 그걸 보더니 신영이도 바로 말한다.
"햄 치즈 토스트."
"엥? 조금 더 좋은 거 먹어도 되는데?"
"햄 치즈 토스트."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 신영이가 말한 토스트를 위시로 생성했다.
그걸 받아들더니 조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신영.
나 참…. 진짜 신기한 애네. 의외로 소탈해? 근데 햄 치즈 토스트는 못 참긴 하지.
존나 맛있긴 하잖아.
"샤오롱바오요."
나를 보고 담담하게 말하는 가인. 음….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시켜줬다.
나무로 만들어진 만두 찜기 같은 게 생겨났고 그걸 받아든 가인이 뚜껑을 열자 안에는 만두같이 생긴 게 열 개쯤 들어있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걸 보더니 살짝 미소짓는다. 다들 의외로 먹는 거에 솔직하네?
하긴 그동안 먹고 싶었는데 못 먹었던 거를 다시 마주하게 되면 기쁠 수밖에 없지.
"넌?"
엠마를 바라보고 물어보자 그녀는 굉장히 갈등하는 표정이다.
한번 뻗댔던 게 민망한 건가? 아니면 뭘 먹을지 고민하는 건가?
"미안."
아까 뻗댔던 거 때문이구나. 그래도 바로 사과하네.
"됐고, 음식이나 말해."
"나도…. 치즈버거 세트."
다들 참 소박하다. 좀 더 거창한 걸 먹어도 될 텐데 말이지.
그렇게 각자 음식을 받은 우리는 바로 먹기 시작했다.
다들 몇 년 동안 못 먹었던 음식이라 그런지 먹으면서도 굉장히 기뻐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
회귀 때부터 느낀 거지만 역시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
사람은 의외로 식탐에 약하거든.
게다가 포기하고 있던 게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면 흔들릴 수밖에 없어.
그렇게 각자 주어졌던 음식을 모두 다 먹고 가만히 앉아 나를 바라본다.
상당히 만족도 높아 보이는 표정들. 역시 먹을 거로 길들이는 게 가장 좋긴 하지.
근데…. 막상 이 여자들 앞에 있으니 할 말은 없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 여자들에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는 잡일 담당이었잖아? 게다가 매혹으로 통제하고 있었기에 그리 꼼꼼하게 계획을 한 것도 없었고.
그렇기에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뭔가를 시킬 계획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케어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호감도를 쌓아서 원할 때마다 안을 수만 있으면 딱 그걸로 만족하는데…. 지금 당장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런 건 나중에 바쁜 일들이 다 지나고 느긋하게 하는 거지. 지금은 아냐.
"여기서 지내는 건 그리 불편한 건 없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죠?"
내 질문에 바로 질문으로 대답하는 레나.
역시 다들 그게 궁금한지 나를 바라보며 답변을 기다린다.
"왜? 갈 곳이라도 있나?"
"그런 건 아니지만…. 궁금해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우리는 당신이 누군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레나의 말에 조금 생각하는 척을 했다.
추적을 걸어놨으니 이 여자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도 크게 상관은 없다.
아니. 오히려 흩어져있는 게 더 공략하기 쉬울 수도 있다. 괜히 뭉쳐 있으면 눈치 보이니까.
으음. 어떻게 할까.
"지난번에 말했잖아? 나는 당신들이 남았으면 한다고 했지만, 떠난다고 해도 그걸 잡을 권리는 없어. 그러니 떠나도 상관없는데?"
"그 남았으면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아. 그거. 으음.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척하자 네 여자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깊어진다.
"별 도움은 안 될 수 있지만, 나는 당신들이 내가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남으라고 한 거였거든?"
"도와달라고 할 거면서 별 도움이 안될 거라는 말을 먼저 해버려도 되는 거예요?"
레나가 살짝 웃으며 말한다.
저 여자는 역시 좀 다르네.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그런가? 어느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어.
"뭐, 그게 사실이니까. 당신들이 스킬이 몇 개든…. 큰 도움은 안 되는 건 맞아. 상대가 상대니까."
일단 긁는다. 일단 타겟은 레나.
어차피 레나를 긁으면 나머지들은 알아서 따라 긁히니까.
"그 정도로 무능하진 않아요."
"그건 그쪽의 생각이고."
"당신에게 제압당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요."
"알았어. 그렇다고 하자."
"당신이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왜 말을 그렇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좀 복잡하네? 그럼 뭐 하나만 물어보자. 내가 당신들을 부하 다루듯이 뭔가를 시키면 할 생각은 있어?"
내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네 여자.
"물론 당신들의 능력은 어떻게든 쓸 수 있겠지. 근데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야. 그러니 그게 아니라면 내가 뭔가를 시키거나 도움을 요청할 일은 없을 거야."
"꼭 수직 관계로만 움직여야 하나요? 협조 같은 건 아예 신경을 안 쓰는 말투인데요?"
"말했다시피 그럴 능력들이 안 되잖아."
이번에는 적당히 타격이 들어갔는지 레나가 살짝 울컥했다.
게다가 스플레쉬 데미지로 가인이까지 데미지가 들어갔나 보다.
이런 취급 받는 게 기분 나쁘다는 걸 숨기지 않는 두 여자.
신영이와 엠마는 오히려 조용하다. 아니. 단지 내색을 안 하는 건가?
"그래서 고민이야.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당신들의 능력보다는 외모에 더 신경이 쓰이니까."
칭찬 같아 보이지만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일 여자는 없을 거다.
그정도로 바보 같은 여자는 여기 없지. 애초에 그런 여자들은 나도 관심이 없고.
"저는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에요."
살짝 가시가 돋친 말투의 레나. 표정도 살짝 굳어있어서 그런지 제법 보기 좋다.
역시 이쁘단 말이지. 이쁜 여자는 저런 표정을 해도 이쁘단 말야.
"알아. 안다고. 내가 뭔가 말실수한 거 같은데, 뭐가 됐든 당신들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니까 그렇게 화내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해놓고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니…. 당신 말재주가 형편없군요?"
"미안해. 근데 어쩔 수 없어. 나는 나 때문에 당신들을 개죽음당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당신들 같은 여자라면 곱게 죽지는 않는다고."
"왜 당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우리도 거기 잡혀있었다면서요. 그럼 우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연히 알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레나의 말에서 가장 관심있게 들리는 단어는 역시 '우리'라는 단어다.
내가 없는 사이에 뭔가 이야기가 되긴 한 거 같은데? 근데 그런 거 치곤 사이가 그리 말랑말랑 한 건 아니고.
아무튼…. 지금은 이 여자들이랑 이렇게 왈가왈부 할 때가 아니야. 기억 복구에 대해서 테스트 해야 하니 적당히 끝내야지.
"알았어. 어쨌든…. 당신들에 대해서는 신경 쓸게.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선심 쓰듯이 이야기하지 말라고요."
"되게 까다롭네. 뭘 얼마나 맞춰 줘야 하는 거야?"
그렇게 투덜거리자 레나가 살짝 표정이 굳는다.
어쨌든 됐어. 매달리는 건 이 여자들이 나에게 매달려야지.
내가 뭘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럴 여자는 승미세안하고 민희 정도로 충분해.
그렇게 내가 자리를 일어서자 다들 약간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깐만."
신영이가 나를 불렀고 나는 시큰둥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말할 게 있는데."
"해."
"개인적인 일이라서."
그렇게 말하자 다들 흩어지는 여자들. 생각보다 협조적이네? 서로 지킬 건 지켜주는 건가?
"다 갔네. 말해봐."
"당신 한국 사람이라고 했지?"
"어."
"잠깐 시간 돼?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같이 가 줄 수 있어?"
"갈 곳이 있었나?"
내가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신영.
뭐지? 그럴 리가 없는데?
"말해. 원하는 데서 열어줄 테니."
"어느 곳이든 다 돼?"
"아니. 말해주면 거기 가서 열어주면 되지."
"아…."
"싫으면 말고. 적당히 한국에만 보내주면 되는 건가?"
"그럼…. 수원도 가능?"
"수원?"
아. 신영이의 말을 들으니 알 것 같다. 얘는 수원의 벙커에 가고 싶은 거구나?
"수원이라. 한 5분이면 되지. 지금?"
"응."
"그래. 마침 한가하니까. 기다려. 그럼."
바로 수원으로 순간이동 했다.
사실 5초면 되지만…. 수원 벙커에 와보고 싶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내가 여기서 왔다 갔다 한 게 있으니 뒷정리는 해야 하잖아?
벙커 안에 도착하자 나는 바로 상태 회귀를 썼다.
다행히 벙커는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그대로 있기에 바로 그때 모습으로 돌아갔다.
잠깐 살펴보니 내가 막아놨던 엘리베이터 같은 것들도 모두 정상이 되어버린 모습.
이정도면 됐어. 깔끔하네.
벙커 바깥으로 나와서 수원 시내 쪽으로 순간이동 했다.
아무런 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고 바로 게이트를 연 뒤 LA의 공중에서 저택으로 내려갔다.
"열었어."
"고마워. 근데…. 어디에?"
"저기 하늘."
비행을 쓰는 신영.
그간의 기억을 다 지워놨기에 그녀는 자신이 비행이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하지만 여기 저택에 며칠 있는 동안 자기 스킬에 대해 파악을 했는지 제법 자연스럽게 비행을 쓴다.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 게이트를 넘어가는 여자.
그런 그녀를 따라 넘어가니 신영은 하늘에 떠서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한다.
"얼마나 걸리지?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
"음…. 아니. 같이 가지?"
"그래도 돼?"
"뭐 숨길 일이라고."
그러더니 한쪽으로 날아간다.
얼래? 저 방향은 비행장 방향이 아닌데? 벙커로 가는 게 아닌가?
그녀가 향한 곳은 대호 디지털미디어시티 D동. 그렇게 도착한 신영은 지하로 내려가 비밀통로로 향한다.
아. 이 여자는 벙커로 가는 길을 이렇게밖에 모르나? 웃기네?
그렇게 통로를 날아 결국 벙커 안으로 들어왔다.
나에게도 엄청 익숙한 곳이 됐지만 모른 척하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처음 봤으면 신기할 만하지. 이정도 벙커면.
"여기서 살았나?"
"응."
"좋은 데서 살았네. 너 정체가 뭐야?"
내 질문에 그저 옅게 미소를 짓는 신영.
재밌네. 이 여자에게 방주 한번 보여주고 싶다. 겨우 이정도로 우쭐대고 있네?
최하층 자신이 거주하던 곳으로 내려간 그녀의 표정은 조금 더 의기양양해진다.
오히려 나는 그런 신영이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다.
나 참 뭐 이런 거로 저러냐. 웃기네.
근데 이 여자는 대체 여기 왜 온거지?
물론 그 뒤의 기억을 싹 지웠으니 신영에게는 여기서 살던 일이 고작 며칠 전이 될 거다.
그 뒤로 몇 달이나 지났다는 게 이해가 안 가겠지. 그래서 보러 온 건가? 아니면 뭔가를 가지러?
"변한 건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여자.
나는 그녀의 방인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는 듯 다시 밖으로 나갔고 신영은 나를 보더니 피식 웃는다.
"들어와도 상관없는데? 뭐 볼 거 있다고."
"됐어."
그러면서 밖에 있는다. 어차피 투시를 쓰면 방안에서 뭘 하는지 다 지켜볼 수 있으니까.
자신의 서랍들을 뒤져보는 그녀. 그러더니 노트 하나를 꺼내서 살펴본다.
어? 저 노트는? 설마? 저기 또 뭐가 적혀있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 안 된다. 나는 이 벙커에 상태 회귀를 썼어.
이 벙커는 최 회장과 이 벙커에 살던 사람들이 죽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나에 대한 기록 같은 게 남아있을 리는 없어. 쫄지 말자.
근데 갑자기 머리를 움켜잡고 무릎 꿇는 신영.
투시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들어가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탄로 날 텐데. 그냥 놔둬야 하나? 어쩌지?
"아윽..."
마침 그녀가 낸 이를 악문 신음이 들렸고 나는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어!? 왜그래? 무슨 일 있어?"
고통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신영. 그러더니 다시 자신의 머리를 꽉 움켜잡고 비명 지른다.
“아악!”
"자라."
일단 재웠다. 아이 씨발. 진짜…. 또 뭐가 잘못 된 거야? 분명 기억은 다 지웠을 텐데?
이거 아무래도 나때문인 거 같지?
하. 존나 귀찮네. 진짜. 뭐가 이렇게 복잡한거야? 거지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