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92화 (69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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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사람들

그랜드마스터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부하라고 하기엔 이해가 안 간다.

그게 내가 저 녀석을 하루 정도 살펴보고 낸 결론이다.

녀석의 이름은 켈리 제이슨.

저놈은 상당히 바빴다. 하루를 지켜보는 동안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돌아다녔으니까.

가장 소름 돋는 건 녀석이 7인의 위원회…. 아니 이제는 6인의 위원회가 된 녀석들의 전부 기억을 읽었다는 거다.

어쩐지. 방비가 존나 허술하다 했지.

저렇게 기억을 읽는 놈이 있으니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거였어.

고작 하루만 지켜봤기에 녀석이 날마다 기억을 읽는지, 아니면 일정 주기로 기억을 읽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뭐가 됐든 소름 돋는 건 마찬가지다. 자칫 잘못하면 저놈이랑 내가 마주쳤을 수도 있었다는 거 아냐?

그리고 또 의심되는 것 하나. 녀석은 잠을 안 잤다.

고작 하루뿐이긴 하지만…. 상당히 찝찝하다. 일단 저놈은 피곤해 보이지 않으니까.

그게 녀석이 그랜드마스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상태 회복을 패시브 화 한 거라는 소리니까.

근데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냥 상태 회복을 쓰고 있기만 해도 잠은 미룰 수 있지.

꺼지지 않게 유지만 하고 있으면 되잖아?

문제는 그러다가 무효화나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맞으면 그대로 밀린 잠이 한 번에 덮친다는 게 문제지만.

그렇기에 확신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불안한 짓을 하고 싶을까?

결정적인 순간에 단순한 무효화만으로 셀프 무력화가 된다? 그건 울트라 리스크 쥐똥 리턴이잖아? 누가 그런 짓을 하려고 하겠어?

뭐…. 아직 하루밖에 지켜보지 않았으니까 속단은 금물이지.

나도 이틀씩은 안자고 다니긴 했으니까.

물론…. 불면증이라는 씹새끼의 농간 때문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건 그렇고…. 녀석을 하루 동안 지켜본 것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그게 지금 내가 이 바다 위에서 한참을 헤매고 있는 이유기도 하고.

녀석은…. 바다 위로 순간 이동했었다.

그리고 스마트 폰을 꺼내서 뭔가를 보는 것 같더니 한 지점으로 빠르게 날아갔었다.

그렇게 녀석이 간 곳. 그곳에는 거대한 크루즈 한 대가 떠 있었다.

바다 위에 저런 게 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거대한 크루즈.

거기로 간 녀석은 거기에 타있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배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여자가 있었다.

하나같이 전부 매력적이고 몸매도 좋은 여자들. 게다가 웃기게도 바니걸 옷을 입고 있었다.

가슴이 도드라진 검은 광택 재질의 바니걸 옷과 검은 망사 스타킹을 신고 있는 수많은 여자.

거의 백 명은 넘어 보일 것 같은데…. 그 여자들은 제이슨이 오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붙어서 스킬을 썼다.

'약탈'을.

내가 녀석을 지켜본 것 중에 가장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추적으로 시야를 공유하면 1인칭 시점이 되기에 그 광경은 정말…. 아찔하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가만히 자리에 앉은 제이슨의 곁으로 수많은 바니걸 여자들이 몰려와 약탈을 쓰는 모습.

여기도 가슴, 저기도 가슴,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가슴이었다.

하얀 가슴, 검은 가슴, 갈색 가슴, 상아색 가슴…. 가슴가슴가슴.

대체 뭘까? 천국 같은 장면인데…. 저 여자들이 쓰고 있는 스킬이 가장 이해가 안 갔다.

약탈이라니? 그럼 저 여자들은 제이슨의 코인을 빨아가는 거잖아?

특수 부대 같은 건가? 이런 식으로 코인을 충당해주는 거야?

여자들의 숫자는 거의 100명이 넘어 보인다. 물론…. 제이슨에게 달라붙은 여자는 열 명 정도밖에 되진 않았다.

남은 여자들은 그저 앉아서 스킬을 쓰는 여자들을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

코인을 수혈받는 인원이 정해져 있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열 명이라고 쳐도 약탈 한 번이면 마스터 했을 경우 10만 코인이다.

열 명이 동시에 쓰면 100만 코인.

게다가 여자들은 계속해서 약탈을 썼었다. 포션까지 마셔가면서.

대체…. 뭔짓을 하고 있는 건지 정말 궁금증이 미친 듯이 들었다.

제이슨 녀석은 코인이 얼마나 많고 저 여자들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여자들이길래 저렇게 코인을 가져가는 거지?

그래서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배가 있었던 바다로 직접 왔다.

멕시코만. 미국의 위치로 봤을 때는 남해 정도 되는 곳.

문제는…. 배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거?

상당히 지능적이다. 배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면 위치를 특정할 수 없잖아?

게다가 게이트나 순간 이동도 안 먹힌다.

두 스킬은 공간 좌표를 기억하는 거지 움직이는 배 위를 고정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 이 망망대해에서 직접 찾을 수밖에 없다는 말.

귀찮네. 존나 귀찮아.

녀석의 위치를 찾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어.

녀석이 배에 한 10분만 더 있었어도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을 텐데.

근데 귀찮음보다 호기심이 더 크다.

뭐 하는 여자들인지 내 눈으로 직접 살펴보고 기억을 읽어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

그렇기에 어두컴컴한 밤바다를 헤매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시간이 새벽이란 것?

작은 불빛도 상당히 먼 곳에서 관측할 수 있으니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거다.

게다가 그 배는 상당히 컸잖아? 불빛을 한두 개 켜놓지는 않았을 거야.

알프스산맥에서 언노운 새끼를 찾아낸 나다.

이런 바다에서 크루즈 찾는 건 뭐…. 일도 아니지. 그냥 노가다 조금 하면 되는 거니까.

비행 속도가 거지 같았으면 엄두를 못 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마 세상 그 누구보다 빨리 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내 비행 속도는 거의 마하3에 육박하고 있으니까…. 솔직히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이없지만.

그렇게…. 노가다가 시작됐다.

다행히 멕시코만은 모양이 이뻐서 구역을 나누기가 편하니까.

그렇게 북쪽의 해안가부터 시작해서 이리저리 훑어내듯이 바다를 훑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바다에 떠 있는 배가 없다는 것?

GPS가 작동하지 않는 이상 배를 띄우는 건 미친 짓이니까.

아마 그 크루즈도 목적지 없이 계속 움직이는 거니 가능한 짓이겠지.

그렇게 내 몸에 조금씩 상처를 내고 힐을 하면서 바다를 돌아다닌다.

문제는…. 아침이 되도록 멕시코만을 다 돌았는데도 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거다. 씨발.

나도 모르게 욕이 울컥 나왔다. 분명 돌아볼 곳은 다 돌아봤는데…. 왜 없지?

여러가지 가설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일단…. 무작정 돌아다니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아무리 기름 생성이 무제한이라 기름 보급 같은 게 없어도 무한하게 배를 운용할 수 있긴 할 거다.

그래도 GPS 없이 계속 배를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불안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항구 같은 곳을 전전할 수 있을 거야. 어차피 멕시코 아래쪽은 아무도 없으니까.

비어있는 항구 근처에서 정박해있을 수 있겠지. 근데…. 멕시코만 안쪽에 있는 해안선들은 다 살펴봤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로 내가 못 찾은 것일 수도 있지.

멕시코만 말고 그 바깥도 나갈 수 있다는 것?

멕시코만 밑의 카리브해. 여기도 있잖아?

게다가 쿠바와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그 외의 많은 섬.

이쪽에 있을 수도 있다. 바다는 넓고 섬은 많으니까.

녀석들의 목적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거라면 크루즈의 운용 범위를 넓히는 게 맞겠지.

귀찮네. 씨발. 생각보다 범위가 커졌어.

근데 또 저쪽까지 나가서 탐색하는 것도 좀 자신이 없다.

내 추측이잖아? 크루즈가 멕시코만에 있었던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 나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괜히 내 추측으로 엄한 곳까지 뒤지는 건 시간 낭비가 될 확률이 높지.

그리고 크루즈는 그렇게 빠르지 않다. 아마 멕시코만을 빠져나가진 않았을 거야.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멕시코만을 다시 한번 탐색하는 것.

어차피 지금은 마땅히 할 일도 없잖아? 아직 호라이즌 녀석들의 정례 회의는 닷새나 남았으니까.

이 일을 하면서 스킬 숙련을 못 하는 것도 아니니 다시 처음부터 탐색하기로 한다.

아. 그전에 제이슨 녀석이 뭘 하는지만 한 번 더 보고.

녀석은 여자 하나와 스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붉은 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백인 여자. 진저인가? 딱 보니까 알겠네.

나이는 이십 대 중반 정도? 근데 확실하진 않다. 서양 여자의 나이는 추측하기가 힘드니까.

하지만 주근깨가 있는 거치고는 굉장히 이쁘다. 뭐라고 해야 하나…. 생기가 넘치는 느낌?

여자의 행동,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다. 뭔가 신기한 여자네. 특이해.

그리고 그 둘의 이야기는 스킬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뭔가 철학적인 내용이 많이 섞여 있다.

근데...씨발. 나는 여기서 이렇게 뺑이치고 있는데 저놈은 여자랑 시시덕거리고 있는 거야?

이거 약간 꼴 받네. 짜증 나게.

어쨌든 제이슨은 여자를 보고 레이첼이라 불렀다.

그리고 제이슨과 레이첼이 나누는 이야기는 대충 이런 거였다.

천국의 문 스킬과 지옥 스킬을 원트로 조합 하면 어떤 스킬이 나올 것인가?

일단…. 빡친 상태인 나도 상당히 귀가 솔깃한 이야기이긴 하다.

게다가…. 일단 둘 다 원트에 대해서 안다는 것에 놀랐다.

제이슨은 그랜드마스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으니 원트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이상하진 않지.

근데…. 저 레이첼이란 여자가 의외다.

저 여자도 원트가 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제이슨이 저렇게 허물없이 이야기한다는 것만으로도 저 여자는 뭔가가 있는 거다.

일단 추적을 걸어놔야 해. 혹시 알아? 저 여자가 진짜 그랜드마스터 일지도?

저 둘은 어디쯤 있나 확인하려고 저장된 미국의 도시들을 순간 이동하며 제이슨의 위치를 확인한다.

다행히 녀석은 뉴욕에 있는 녀석.

레이놀드의 미라지 오션 근처에 있는 건물 근처다.

이거 날아가는 수고를 덜었네. 그럼…. 바로 가본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센트럴 파크가 한눈에 보이는 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였다.

간단하게 브런치를 하고 있는 두 사람.

전망 좋은 집에서 이러고 있는 걸 보니 팔자가 제법 좋은가보다.

집을 보니 저 여자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이거…. 어지간히 좋은 곳이네.

집이 크고 넓기에 침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언제나 유용한 페이즈 아웃. 잠입에 있어서는 최고의 스킬이잖아?

그렇게 집안의 구석으로 들어가 바로 축소와 버프들을 걸고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렇게 두 사람이 보였고 바로 여자에게 추적을 걸었다.

됐어. 그럼 여기 계속 있을 필요는 없지.

바로 순간 이동을 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에 온 나는 자리에 앉은 다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천국과 지옥을 조합하면 지금 이 세상이 나오지 않을까?]

[글쎄. 지금 세상은 지옥 아냐?]

[음…. 아닐걸? 누군가에겐 천국일 텐데?]

[레이첼. 왜 나를 바라보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그렇게 말한 레이첼은 피식 웃더니 포크로 방울토마토를 찍으며 말한다.

[천국의 문을 배우려면 스킬이 13개. 지옥을 배우려면 스킬이 5개.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조합을 시도하려고 스킬을 18개나 배워야 한다니. 쉽지 않네.]

[그래도 궁금하잖아? 18개 정도야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고.]

[뭐가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거야? 두 달은 걸리겠는데.]

[아니지. 그 정도까지는 안 걸려.]

[그건 제이슨 당신이나 가능한 거고.]

[오. 레이첼. 농담도.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 정말 재밌네.]

[물론…. 나는 이제 포션을 먹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그래도 체력 흡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기분이 이상하단 말야.]

[그래. 기분은 남자들이 좋겠지. 근데 당신도 좋은 거 아냐? 이상하다고?]

[제이슨. 그거 성희롱이야.]

[뭐? 내가 뭘? 나는 그저 순수한 의문을 표시한 거라고. 내가 언제 성희롱을 했다는 거야?]

[뻔히 알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성희롱이 맞아.]

[에이. 그건 아니지. 레이첼. 성희롱은 이런 게 성희롱이라고.]

그러면서 제이슨의 시선이 높아진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레이첼의 뒤로 가서 어깨에 두 손을 올려놓고 귓가에 얼굴을 가져간다.

[매력적인걸? 데이트 하러 가나?]

[푸하. 웃겼어. 제이슨. 당신의 농담은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다시 앉아. 하던 식사는 마저 해야지.]

[아니. 나는 다 먹었어. 지금은 다른 걸 채우고 싶은데.]

[제이슨. 농담이 지나쳐. 지금은 그럴 마음 없으니 다시 앉았으면 좋겠는데.]

레이첼의 말에 제이슨은 아쉽다는 듯 레이첼의 어깨를 만지고 있던 손을 거두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당신한테라면 내 체력은 얼마든지 넘길 수 있는데.]

[오늘따라 왜 그래? 당신에겐 크루즈의 바니들이 있잖아? 괜히 나같이 나이 많은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지 말라고. 이런 겉모습이 그렇게 좋은 거야?]

[실례되는 말을…. 나는 당신의 외모에 혹해서 이러는 게 아냐. 당신의 내면이 좋은 거라고.]

더 듣고 싶었지만, 자꾸 끈적거리는 대화로 넘어가길래 그냥 엿듣는 걸 관뒀다.

망할 연놈들. 스킬 이야기나 계속하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그렇긴 하지만…. 저 간단한 대화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 저 여자도 심상치 않잖아? 이거…. 지켜볼 사람이 많아지네? 고맙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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