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90화 (6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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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판단력

승희와 함께 씻고 나와서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이러고 있으니 눈앞에 있는 두 개의 가슴이 전등 불빛에 역광으로 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기가 막힌 경치야. 이게 절경이고 장관이지.

그렇게 누워서 느긋하게 스킬 생각을 한다.

승희가 배운 복권 스킬에 대해서.

당첨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게 아쉽네.

승희가 당첨된 횟수가 있긴 하지만 표본이 적으니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고급 숙련 5천 번을 쓰면서 한번 당첨됐다고 확률이 0.0002퍼센트는 아니니까.

다섯 번을 썼는데 당첨될 수도 있고 5십만 번을 썼는데도 당첨이 안 될 수 있잖아?

확률이란 그런 거니까.

게다가 마스터시 5천만 코인이라고 하더라도 별 메리트가 없다.

물론…. 들인 코인에 비해 수익을 얻을 수는 있겠지.

사람 하나 안 죽이고 코인을 벌 수도 있을 거다.

당첨이 당첨을 부르고 코인이 코인을 부르게 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실현 불가능 한 일이다.

스킬은 체력을 쓰니까. 그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하긴 할 텐데.

한번 사용에 500코인, 마스터 했을 경우 당첨됐을 때 5천만 코인.

10만 배. 즉…. 10만 번의 기회가 생긴다는 거다. 10만 번 중에 한 번만 더 당첨되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스킬 10만 번. 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지금 나도 무리 없이 스킬을 쓰면 하루에 거의 3천 번 정도 스킬을 쓰는 거 같은데…. 10만 번이면 33일이다.

아무런 스킬 숙련도 안 하고 온종일 복권만 쓴다고?

물론….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려면 성장은 포기해야 한다.

체력을 전부 복권 스킬에 몰빵해야 한다는 소리니까.

게다가 체력 회복 포션까지 생각하면 수익이 나긴 쉽지 않을 거야.

나긴 하겠지만…. 그래도 결국 스킬 숙련할 시간이 없어지는 건 치명적이다.

아마…. 모든 적이 될만한 놈들을 전부 치우고 인간들도 다 죽이고 스킬도 더는 배울 게 없을 때.

그때는 쓸만하겠지. 어차피 그때는 숙련할 필요가 없어서 체력이 남아돌 테니까.

"승희야."

"네."

승희가 몸을 살짝 숙이자 경치는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

아. 가슴. 아름다운 가슴. 빨고 싶네.

하지만 대화를 해야 하니 그럴 수는 없어서 손으로만 만진다.

"너 약탈 배웠다고 했지?"

"네."

"코인 뺏는 거지? 근데 그거 숙련은 어떻게 하냐? 미나랑 세아, 안나한테 쓰나?"

"네. 어차피 뺏어오는 게 적어서 크게 상관없어요."

"얼마나 되는데?"

"하급일 때 백, 중급일 때 천, 고급일 때 만 코인요."

"하. 그래? 진짜 엉망이네. 짱개들도 포기할만한 스킬답다."

"네?"

"아. 예전에 전멸시켰던 연구소. 그 짱개들이 스킬 테스트하던 곳."

"아…. 그 구덩이요?"

"어."

"근데 포기했다고요? 연구를?"

"응. '연구할 가치가 없는 스킬' 이라고 하면서 아예 연구도 안 했더라고."

"히익. 그 정도예요? 나 스킬 낭비한 거예요?"

"글쎄. 근데 조금 의심스럽긴 해. 정말 연구할 가치가 없어서 안 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안 시킨 것인지."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글쎄. 나도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으니 뭐라고 할 수는 없어. 근데…. 일단 티어16에 잭팟이 있는 이상 이 스킬들은 쓰레기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거든."

"음…."

"아무리 봐도 잭팟은 당첨 확률을 높이는 스킬 같지 않냐?"

"그쵸? 보통은 그런 뜻이니."

"아무래도 코인 관련이라서 함부로 연구를 못 하게 한 거 같기도 하고."

"왜요? 그러면 오히려 더 연구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지. 통제되지 않는 코인이 밑에 놈에게 흘러 들어가는 걸 반기는 윗대가리 놈들은 없어."

"아…."

"암튼…. 고급일 때 만 코인. 그럼 마스터 해도 10만 코인인가…. 1억 코인을 빼내려면 천 번을 써야 한다고?"

"쉽지 않죠. 사실 저도 잭팟이 궁금해서 배우고 있는 거니까요."

"그래. 난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줄 수밖에 없네."

말하는 도중 계속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던 승희.

그렇게 대화가 끊겼지만, 여전히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아까 짧아졌던 머리를 봐서 그런가? 왜 머리카락을 만지는 거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요?"

손을 멈춘 승희가 나에게 말한다.

"음…. 그럴까?"

그러자 승희는 상체를 구부리더니 내 입술에 키스한다.

그리고 빙긋 웃는 그녀.

"가요."

승희의 허벅지를 베고 있던 머리를 들고 몸을 일으킨다.

"아 참."

"음?"

"아까 그거요."

"뭐?"

"어려진 거요."

"어."

"세아한테도 해주면 좋아할걸요?"

"세아? 왜? 아아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걔는 키에 대해 묘하게 컴플렉스가 있으니까.

게다가 힘으로 나를 제압하고 싶어하기도 했지. 물론…. 번번이 무산됐지만.

"하면 안 되겠네."

그렇게 말하자 승희는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음…. 쟤 표정 왠지 불안한데? 뭔가를 꾸밀 거 같은 표정이야.

게이트를 열어 승희와 함께 벙커로 돌아갔고 내 방에 도착한 나는 잠깐 내 침대를 바라봤다.

내가 잠과 결별하게 되면서 덩달아 주인을 잃어버린 침대.

게다가 집에서 섹스도 잘 안 하니 거의 소박맞은 꼴이나 마찬가지다.

음…. 좀 많이 써줘야 하는데 말이지. 침대에 먼지 앉겠네.

잡생각은 적당히 하고 거실로 나가니 다들 거실에 있었다.

근데 나와 승희를 바라보는 미나와 세아, 안나의 표정은 뭔가 흐뭇해 보인다.

우리가 뭘 하고 왔는지 다 알고 있는 듯한 표정.

"뭐야. 너희 표정 너무 음흉해."

내가 한마디 했지만 세 여자의 표정은 그대로다.

하여간…. 다들 능글거리기는.

"근데 세아랑 안나는 뭐하냐?"

두 여자는 양동이 같은 걸 하나씩 놓고 거기에 뭔가를 생성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약간 점도 있는 맑은 액체다. 이건…. 기름?

"기름 생성하고 있지. 보면 몰라?"

"기름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식용유."

세아와 안나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런 둘을 약간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둘 다 기름 생성 배운 거야?"

"어. 나는 담배 생성 마스터 했고 기름 생성 찍었어."

"전 이제 기름 생성 거의 마스터 직전이에요."

"그냥 식용유 완제품 같은 거 생성해서 수납에 넣으면 되잖아?"

"어!?"

"아!"

내 말을 듣더니 세아는 바로 게이트를 열더니 양동이째로 게이트 너머에 집어 던진다.

안나 역시 마찬가지. 그러더니 둘은 바로 식용유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이런 건 진작 말하지!"

"이런 건 알아서 생각해 내야지."

"으. 진짜. 괜히 번거롭게 숙련했네."

나는 그런 둘을 보면서 피식 웃은 다음 미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바라보자 나를 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미나.

"얼음 회오리는 잘 돼가?"

"후후. 이미 마스터 했지요."

"어? 정말? 하긴. 초인의 체력 찍었으니 너도 이틀 컷이겠구나. 그래서? 패시브 뭐 나왔어?"

"궁금해요?"

"어. 당연하지. 이건 짱개들도 모르고 있던 히든 패시브라고."

"알고 싶으면 키스해줘요. 그럼 알려줄게요."

나는 망설이지 않고 미나에게 다가가 그녀를 일으켰고 바로 허리에 팔을 두르고 찐하게 키스했다.

"우와…. 상남자네."

"으이그. 좀 은밀한 곳에 가서 분위기 있게 하지."

"부럽다."

승희와 세아, 안나의 반응이 제각각인 게 웃긴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들의 반응이 중요한 게 아냐. 미나가 배운 패시브가 중요하지.

"합격."

입술을 뗀 미나가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그러더니 나를 자신의 옆에 앉히고 자신도 앉은 뒤 입을 연다.

"얼음 회오리를 마스터 하고 나온 스킬은 '냉철한 판단력' 이에요."

"냉철한 판단력? 번개는 반사신경이더니 얼음은 판단력인가? 뭔가 말이 되는 거 같기도 하고…. 근데 효과는?"

"그거 스킬 사기야!"

미나가 아닌 세아가 소리 지르듯이 대답한다.

엥? 왜 갑자기 세아가?"

"왜? 뭐 때문에?"

"그건 직접 보는 게 나을 거야. 언니! 나가자! 이 오빠도 직접 보는 게 더 이해하는 게 빠르겠지."

"그럴까?"

미나는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이끌려서 나간 바깥. 그러더니 나에게 말한다.

"파티 초대 주세요. 대련하려면 파티가 있어야 하니까."

"아. 맞다. 그래. 다들 파티 초대 줄게."

대련이라는 말에 하루카와 아키가 잠시 생각났지만 빠르게 머리에서 지웠다.

물론 걔들도 좋긴 하지만 이 네 여자랑 같이 있을 때는 다른 여자 생각은 안 하는 게 맞지.

그렇게 파티를 전부 받자 미나와 세아는 서로 마주 봤다.

그리고 다짜고짜 미나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세아.

"오우."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올 정도의 움직임이다.

비행을 쓴 세아의 주먹은 그야말로 엄청난 빠르기였지만…. 더 놀라운 건 미나의 반응이다.

그걸 그저 몸을 살짝 튼 것만으로 피해버렸으니까.

그래. 저건 아마 번개 같은 반사신경 덕분이겠지. 저건 이미 알고 있어.

근데…. 냉철한 판단력은 뭐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새 안나까지 끼어들었다.

세아가 주먹을 날리는 것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면서 안나의 바람 칼날은 그 즉시 보호막으로 막는다.

그런 보호막을 번개 주먹으로 내리치려 하자 바로 보호막을 거두고 블링크를 써서 짧게 뒤로 빠진 미나.

다시 날아드는 세아의 주먹. 이번에는 보호막으로 그 주먹을 막는다.

강화 주먹이었으면 보호막이 깨졌을 텐데, 강화 주먹은 아니었는지 세아의 주먹은 보호막에 막혔다.

다시 휘둘러지는 세아의 주먹. 이번에는 보호막으로 막지 않고 몸을 피한다.

뒤이은 안나의 바람 칼날.

빠르게 움직이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보이지 않는 공격을 날리지만, 미나는 보호막으로 그걸 전부 막아냈다.

그제야 냉철한 판단력이 뭔지 알게 됐다. 이야…. 저것도 완전 씹사기 스킬이네.

"이제 그만해도 될 거 같아!"

내가 말하자 세 여자는 대련하던 걸 멈췄고 내 쪽으로 다가온다.

"전투 중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바로 떠오르는 거야?"

"음…. 약간 비슷해요. 그러니까…. 자동으로 계산이 되는 느낌이에요. '아. 이 각도에서 날아오는 바람 칼날은 이정도 보호막이면 충분히 막겠구나' 라는 게."

"이야…."

"그리고 번개 같은 반사신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게 거의 반사적으로 나가요."

"사기라니까!? 미나 언니가 그거 패시브 두 개를 배운 다음부터는 나랑 승희랑 안나가 셋 다 덤벼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물론 아직 반사는 안 배워서 타겟 스킬을 막을 수는 없지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사기다.

날아오는 공격을 보고 바로 계산이 된다고? 적절한 대응책이? 게다가 그걸 척수반사 수준으로 반응해?

미쳤네. 미쳤어. 정말 말이 안될 정도네.

"미나 너…. 지금 발화 배웠니?"

"네. 발화 마스터 하고 반사 배우려고요."

"와…. 번개랑 얼음의 히든 스킬 두 개만 배워도 이정도인데…. 거기에 불도 추가된다고? 정말 맙소사네."

"나도 원트 배우지 말고 저것부터 배울걸!"

세아가 아쉽다는 듯 투덜거린다. 하긴, 생각해보면 저 스킬들은 세아에게 훨씬 더 유리하긴 하지.

"빨리 원트 배우고 너도 저것들 배우면 되겠네."

"그러려고!"

"근데 그거 배울 때쯤이면 이미 써먹을 일이 없어질지도?"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닌가? 하긴, 어정쩡한 잡놈들은 아직 많이 있을 테니까."

어쨌든 패시브의 효과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스킬 다섯 개를 배워야 나오는 패시브 답네. 히든 스킬 중에 히든 스킬이라고 해야 할까?

원트는 스킬의 활용도와 효과를 극대화 시켜주는 소프트 웨어 강화.

번개 같은 반사신경과 냉철한 판단력은 그런 스킬을 쓰는 인간 자체를 강하게 만드는 하드 웨어 강화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한쪽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네. 둘 다 엄청 좋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원트 쪽이 더 효과는 좋다고 볼 수 있다.

일단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겠지.

"아. 근데…. 그럼 미나 너도 일렉트릭 에리어 찍었지? 절대 영도도 찍었나?"

"네. 찍었어요."

"미나는 거의 걸어 다니는 핵미사일 같은 느낌인데? 원트 없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강한 거 아닐까?"

그렇게 말하자 세아는 살짝 분한 표정을 짓는다.

아. 쟤도 웃기네. 왜 그런 거에 경쟁심을 가지는 거야? 하여간 쟤도 진짜 웃긴 애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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