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88화 (68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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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 누나

애초에 아키랑 야한 짓까지 할 생각은 없었기에 저번 민희처럼 욕정이 생기거나 하진 않았다.

근데…. 묘하게 아쉽긴 하다.

골대 근처까지 공을 몰고 가서 슛을 날렸는데 키퍼에게 잡힌 기분?

아니지. 따지고 보면 두 골을 넣은 거지. 어쨌든 하루카와 아키를 손에 넣은 거니까.

어쨌든 만족스러운 결과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축해도 될 거야.

짜릿함은 적당히 느꼈으니 이제는 다시 일을 할 시간.

혼자 남아있는 홋카이도에서 아까 괌에 있었던 신입 녀석을 떠올린다.

바로 녀석의 시야와 청각을 공유하게 된 나.

녀석은 아직도 텅 비어버린 괌을 조사하고 있다.

뭐…. 그런다고 나올 건 없지. 내가 싹 조져놨으니까.

게다가 한바탕 연기까지 치밀하게 해놨으니 꼬투리 잡힐 건 없다.

그럼 괌은 됐고.

스킬 숙련이나 해야지. 썬더 필드. 이것만 마스터 하면 번개같은 반사신경을 배울 수 있으니까.

패시브 덕분에 범위가 너무 커져서 아무 데서나 스킬 숙련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뭐…. 스킬 숙련할만한 장소는 널리고 널렸지. 이미 지구상에 비어있는 동네가 한둘이어야지.

어디서 할까 고민하다가 움직이는 게 좀 귀찮아졌다.

생각해보니 그냥 여기서 해도 되네? 적당히 블링크 몇 번을 쓰고 떨어져서 스킬 숙련을 한다.

근데 숙련하는 건 문제 없는데 요란한 게 흠이네.

빨리 숙련하고 치워버리든가 해야지 원.

그렇게 숙련을 하면서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해본다.

호라이즌 놈들의 정례 회의까지는 아직 일주일.

그 안에 뭔가 그랜드마스터 녀석의 실마리를 찾을 방법이 정말 없을까?

사물 기억 읽기를 배웠으니 이걸 좀 활용하면 어떻게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

문제는 너무 단편적이란 말이지. 쉽지는 않을 거야.

마땅히 뾰족한 방법은 없기에 생각은 금방 끝났다.

에휴. 스킬이나 숙련하자. 그거 말고는 할 게 없다.

그렇게 저녁까지 스킬 숙련을 하다가 오랜만에 벙커로 돌아가 본다.

어차피 파티도 줘야 하니까. 바로 파티를 해제했다가 다시 만들고 거실로 나간다.

"왔어요? 테스트 한 건 잘 됐어요?"

나를 반겨주는 승희. 그런 그녀에게 파티 초대를 한다.

"아. 오빠. 나 복권 당첨됐었어요."

파티 초대를 수락하며 말하는 그녀.

"엉? 당첨? 얼마나?"

"5백만 코인."

"엥? 5백만? 되게 미묘하네."

"근데…. 그게 고급일 때였어요. 아까워라. 마스터 한 다음에 당첨됐었으면 5천만이었을 텐데."

"아. 그런 거야?"

"네. 하급일 때 백 배. 중급일 때 천 배. 고급일 때 만 배에요. 그러니 마스터 하면 십만 배겠죠?"

"얼래? 그래? 잠깐…. 이거 말이 안 되는데?"

"왜요?"

"너 복권 마스터 했어?"

"네. 그리고 약탈 배웠어요."

"마스터 한 다음 복권 스킬 쓴 적 있어?"

"아뇨."

"당첨은 고급일 때 한번 당첨 된 건가?"

"하급이랑 중급일 때도 몇 번 당첨은 됐죠?"

"몇 번 됐는데?"

"하급일 때는 한 10번 정도? 중급일 때는 두 번? 고급일 때 한 번요."

"전에 5천 코인 뜬 적 있다며? 그건 뭐야?"

"그건 당첨은 아닌거죠. 복권에 1등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음…. 뭐가 됐든 좀 이상해."

"왜요? 뭐가 이상한데요?"

"넌 지금 복권을 6,250장 사서 수익을 본 거랑 마찬가지야."

"아?"

"복권 한번 쓸 때마다 500코인이지?"

"네."

"그럼 6,250번 쓰면 3백만 좀 넘거든?"

"네."

"근데 너는 번 게 더 많잖아?"

"어…. 그러네요? 와. 생각해보니 그렇네? 돈이 억 단위로 있으니 벌었다는 생각을 못 했네…."

"최승희 양? 아주 배가 불렀어?"

그러면서 장난삼아 배를 만진다.

근데 몸을 안 빼고 그대로 내 손을 받아주는 승희.

게다가 나를 보며 끈적끈적한 눈빛을 보낸다.

윽. 이건 뭐지? 설마…. 유혹하는 눈빛인가?

"흐음. 오늘따라 유난히 오빠의 손길이 야하네?"

아니야. 나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어!

아니 뭐…. 내가 승희랑 하는 게 싫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얘 상태는 뭔가 좀 위험한 느낌이다.

그 뭐냐…. 암컷 거미? 아니 암컷 사마귀? 그런 느낌?

아니면 유부남들이 의무방어전이라고 부를 때의 느낌? 내가 그걸 겪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까?

"안 그래도 오빠랑 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어…. 맞다. 나 뭐 놓고 온 게 있다. 잠깐 좀 다녀올게."

"어허. 오빠? 동작 그만."

군대도 안 다녀온 나지만 승희의 말에 자연스럽게 몸이 굳었다.

"잠깐 거기 그대로 앉아있어요. 나 금방 요 위에 다녀올 건데 그사이 없어졌으면 정말 화낼 거야."

그러더니 벙커 위로 올라가는 승희.

정말….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갈까? 아니면 이렇게 순순히 있어야 하나?

하지만 역시 도망가는 건 바보짓이다.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선택. 그렇기에 나는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그래. 승희랑 야한 짓 하면 좋지. 내가 언제부터 승희를 피했다고.

안 그래도 미나와 세아, 안나는 상태 회귀 배우고 나서 질펀하게 안아줬는데 승희는 안 했잖아?

승희도 쌓인 게 있을 거야. 저렇게 끈적거리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오히려 무심했던 내가 반성해야 하는 게 맞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고.

"오. 어디 안 가고 잘 있었네요. 착해라."

다시 내려온 승희.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다.

"자. 그럼 갈까요?"

"어? 간다고? 어딜?"

"오빠는 그냥 따라오면 돼요. 게이트."

승희가 게이트를 열었고 들어가라는 듯 손짓한다.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순순히 게이트로 들어갔고, 게이트 너머는 나도 아주 잘 아는 곳이었다.

"얼래? 여긴 멀티 벙커잖아?"

"그쵸. 우리 스위트 홈이죠."

게이트를 넘어오며 말하는 승희.

바로 게이트가 닫혔고 그녀는 뒤에서 나를 꼭 안으며 말한다.

"오빠. 나 오빠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어…. 뭔지 일단 듣기만 하자."

"들어준다고요? 와. 기뻐라."

"아니. 듣기만 한다고. 들어준다는 소리는 안 했어."

"아…. 어쩌지!?"

갑자기 머리를 잡고 쭈그려 앉는 승희.

"뭐야? 왜? 무슨 일인데."

"처음에…. 오빠한테 잡혀 와서 당했던 장난들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가슴이 막 아프고…."

아니 이 가스나가…. 지금 와서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

이거 참…. 내가 할 말이 없게 만드네. 그때 일을 꺼내면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지.

"하…. 그래. 어지간한 거면 들어줄게. 이야…. 그걸 가지고 그렇게 써먹네."

승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어나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하. 얘가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됐지?

아…. 민희. 민희 그 여자 때문인가! 젠장. 민희를 붙여놓는 게 아니었나? 아주 안 좋은 것만 배웠어!?

"그래서. 부탁할 게 뭔데?"

"으음. 오빠는 고등학생 때 어땠어요?"

"어? 고등학생 때? 갑자기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그때는 지금보다 귀염성이 좀 있었나?"

"귀엽기는…. 까까 머리한 수컷이었지. 남자 고등학생은 사람 아냐. 수컷이지."

"그럼 난 그 수컷이 보고 싶은데요?"

"엥?"

"상태 회귀. 오빠한테 써봐요. 고등학교 시절로."

...오. 맙소사. 이 가스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어처구니없음에 승희를 보지만…. 이 여자는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다.

진심과 기대가 반반씩 섞여 있는 얼굴. 살짝…. 무서울 정도?

"어…. 어린 상대방을 좋아하는 건 남자들만 그런 거 아니었어?"

"저도 막 그런 걸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 그냥 궁금할 뿐인 거죠. 오빠의 과거 모습을."

"아니…. 뭐 볼 것도 없을 텐데. 대체 그걸 왜…."

"해봐요. 뭐 손해 보는 건 없잖아요?"

사실 뭐 그렇긴 하다. 어차피 나이 든 모습도 민희에게 보여줬으니까.

근데…. 뭔가 조금 느낌이 다르다.

민희에게 보여준 나이 든 모습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래이기에 모습을 노출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나도 약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

근데…. 과거는 다르다.

내가 겪었던 시절. 내가 겪었던 몸.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굉장히 부끄럽다. 민망하고 뻘쭘한 기분이야.

"꼭 해야 하나?"

"그럼 중학생 시절도 상관없어요. 근데 중학생은 좀 그렇겠다. 중학생이면 완전 애잖아."

"음…."

"그러니 고등학교 시절로 해봐요. 아니면…. 음. 오빠 처음 여자랑 한 게 언제에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승희의 질문.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승희가 지금 이런 일을 하려는 이유를.

"너 설마…."

"맞아요. 나는 오빠의 등. 정. 을 가져가려고 이러는 건데요?"

세상에. 맙소사.

나는 처음으로 승희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 얘가 이런 애였나? 뭐…. 당돌한 기색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저도 이런 거에 별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러는 편은 아니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나도 그렇고 미나 언니나 세아, 안나도 결국 오빠가 처음을 가져간 게 됐는데, 우리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도 한번 해보려고요. 어떤 기분인지 알아보게."

문제는…. 승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거다.

저렇게 주장해버리면 나도 할 말이 없다는 것?

게다가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크게 손해 볼 건 없다. 어차피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을 거고.

그저 고등학교 시절의 어린 수컷 같았던 모습을 공개하는 게 조금 꺼려질 뿐.

"에휴. 그래. 뭐…. 해보지 뭐."

"와! 기대되네요. 빨리해봐요."

"대략 언제쯤으로?"

"음…. 조금씩 줄여보죠. 일단 고3."

"하아. 상태 회귀."

나 자신에게 상태 회귀를 쓴다.

어차피 나의 과거이기에 기억 읽기 같은 건 필요 없이 바로 스킬을 썼고 내 몸은 시간을 역행해서 고3 시절의 몸으로 돌아갔다.

"꺄! 귀여워!"

내게 다가와 짧아진 내 머리를 만지며 좋아하는 승희.

"키가 좀 줄었나? 아닌가? 기분 탓인가? 근데 머리 길이 말고는 크게 차이는 없네요? 피부도 그대로고? 나는 오빠가 막 여드름이 잔뜩 나 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아….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민망하네."

"뭐가요? 왜 민망하지? 오빠가…. 아니지. 지금 오빠는 열아홉이잖아요? 그럼 내가 누나네! 자. 누나라고 해봐요. 어서. 누. 나."

"야. 나는 고3의 몸이 된 거지 이 안에 든 건 스물여섯이라고."

"아휴. 빼지 말고 빨리해봐요. 어서."

"됐어. 안 해."

"어허. 빨리요. 어서. 제발."

"안 한다고."

"쳇. 비싸게 구네요. 암튼…. 1년 더 돌려봐요. 아니다. 고1로 가봐요."

"상태 회귀."

2년의 세월을 되돌렸다. 확실하게 키가 작아진 느낌이 훅 난다.

하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키는 엄청 컸지. 자고 일어나면 무릎이 아플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내 키는 승희보다 약간 작아지게 됐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고 승희는 완전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한다.

"귀여워! 짱 귀여워! 오빠 고등학생 때 완전 귀여웠구나!?"

"너 눈이 좀 이상한 거 아니냐? 이게 귀엽다고? 이 몰골이?"

"네! 완전! 대박! 아. 미나 언니랑 세아랑 안나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아! 아니지. 지금 오빠는 내 거야. 내가 독점해야지. 아. 완전 진짜 대박!"

그러더니 승희는 나를 침대에 앉히고 자신도 내 옆에 앉는다.

이거 무슨…. 모양새가 조금 이상한데? 아까부터 그런 느낌이었지만…. 왠지 승희에 내가 당하는 기분이야.

"후후. 성철아. 이제부터 누나가 여자가 뭔지를 알려줄게."

"너…. 진짜 이런 거 해보고 싶었구나?"

"너라니? 누나라고 불러야지. 버릇없게 누가 누나한테 그렇게 반말을 해."

"아. 이건 장단 맞춰주기가 좀 힘든데."

"계속 그럴 거니?"

그러면서 눈에 힘을 빡 주고 나를 째려보는 승희.

근데…. 솔직히 말하면 살짝 재밌어지긴 했다.

만약 승희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하기 힘들었겠지. 하지만 그야말로 그녀이기에 거부감은 거의 없다.

뭐…. 맞춰줄까? 어차피 노는 건데 뭐 어때?

"미안해요…. 누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승희의 표정이 환해진다.

아마 내가 지금껏 봐왔던 얘 표정 중에서 가장 환한 것 같은데.

"그래. 말 잘 듣네. 착해라. 그러면…. 상을 줘야지."

그러면서 승희는 내 뺨을 잡고 바로 키스했다.

그리 능숙하진 않은 키스. 하지만 웃긴 건 나도 정말 고등학생이 된 듯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는 거다.

정신은 육체에 깃든다 이건가? 이런 두근거림이라니. 허허허.

그렇게 서툰 키스가 끝나고 입술이 떨어졌다.

그리고…. 승희는 자신이 입고 있던 윗옷을 벗었다.

평소에 집에서는 브라를 안 하고 있기에 바로 드러난 가슴.

지금까지 몇백 번은 본 가슴일 텐데…. 이상하게 야하다. 게다가 심장은 또 왜 이렇게 미친 듯이 뛰는 거야?

하. 진짜…. 나 이런 거. 의외로 좋아하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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