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78화 (67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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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민희가 아무것도 없이 와인만 홀짝이는 거론 많이 마실 수 있지 않을 거 같다.

어떻게 하면 잔뜩 마시게 할 수 있을까?

일단 요리가 필요한데…. 무슨 요리가 와인에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와인을 마셔 봤어야 알지.

하지만 좋은 생각이 있지. 이건 뭐…. 전문가의 힘을 빌리면 되잖아?

"위시."

와인을 마시면서도 내가 뭘 하려는지 궁금한 민희는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생성한 건 책이었다. '와인과 함께 하면 좋은 음식'이라는 책.

책을 촤라락 펼치며 민희에게 물어본다.

"음…. 아스파라거스 좋아해?"

"아스파라거스요? 갑자기?"

"응."

"좋아하죠?"

"위시."

테이블 위에 놓인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

민희는 그걸 보더니 재밌다는 듯 웃는다.

"당신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수납에서 내가 포크를 꺼내서 건네자 바로 하나를 찍어서 입에 가져가는 그녀.

"혹시 원하는 거 있어?"

"아뇨. 근데 있다고 해도 지금은 당신이 뭘 내놓을지가 궁금해서 지켜볼래요."

"그래? 그럼…. 위시."

그렇게 또 위시로 생성한 물건을 바라보는 민희.

"어머…. 이건 뭐예요? 옷?"

"아. 알몸으로 계속 있는 건 조금 그래서. 입어봐."

내가 내민 건 '정민희가 입을 수 있는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다.

그걸 받아들고 펼쳐보더니 묘한 웃음을 짓는 그녀.

"입고 올게요."

그렇게 들어가서 옷을 입는 동안 나도 적당히 옷을 생성해 입는다.

정장까진 아니고 그냥 면바지와 와이셔츠. 거창하게 입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구색은 맞춰야지.

"오. 이쁜데."

드레스를 입고 나온 민희의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다.

당장 영화제 시상식에 나가도 여우주연상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모습.

"어울려요?"

"완전. 음…. 목걸이랑 귀걸이 같은 것도 해볼까?"

"아니에요. 그런 것까지 할 필요 없어요. 제발 코인 좀 아끼라고요."

"싫은데? 위시."

백만 원짜리 귀걸이를 사도 10만 코인 밖에 안된다.

지금의 나에겐 얼마 안 되는 코인.

물론…. 나아아아중에 이렇게 펑펑 코인을 쓴 걸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몇십만 코인 때문에 낭패를 볼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내 손에 들린 작은 케이스. 그걸 열자 안에는 귀걸이 한 쌍과 목걸이 하나가 들어있다.

"정말…. 못 말려."

"그치? 나도 나를 못 말려."

나도 내 모습을 잘 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짓을 기분 내키는 대로 신나게 하는 모습.

이런 걸 사본 적도 없고 선물해본 적도 없다.

사실 이런 건 널려있는 보석상에 가서 가져오는 게 훨씬 낫지.

하지만 매번 이럴 것도 아니고 딱 한 번 해보는 거니까 그냥 해본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자."

귀걸이를 건네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면서 받아드는 민희. 바로 귀에다 건다.

그렇게 귀걸이를 한 민희는…. 정말 이쁘다. 갈색 머리 사이에서 반짝이는 투명한 다이아몬드.

보기 좋네. 코인이 아깝지 않아.

"이제 목걸이 차롄데."

"걸어줘요."

그러면서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들어 올리고 내게 뒤도는 민희.

아.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 이런 걸 해봤어야 알지.

그렇게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고 목 뒤에서 목걸이의 고리를 채웠다.

그런 그녀의 목덜미가 너무 이뻐서 손등으로 한번 쓱 쓰다듬자 그녀는 움찔하면서 몸을 움츠린다.

"간지러워요."

"그러라고 한 거야. 너무 탐스러워서 말이지. 다 걸었어."

낭비니 어쩌니 해도 선물을 받아서 그런지 기쁜가 보다.

바로 호텔에 있는 화장대로 가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민희.

"고마워요."

나를 보고 온화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

별다른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어도 그 눈빛만으로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맘에 들어 한다는 것을.

"자. 그럼 분위기가 제법 된 거 같으니 계속 마셔볼까?"

아예 소파가 아닌 테이블로 옮겨서 그녀의 음주를 권한다.

내 의도까지는 못 알아챈 듯 기분 좋게 마시기 시작하는 민희.

원래 와인을 이렇게 마시는 여자는 아닌거 같지만…. 내 의도가 어느 정도는 먹혔나 보다.

계속해서 와인을 들이키는 여자. 거의 반병 정도를 마시고는 내게 헤실헤실 웃으면서 말한다.

"그거 알아요? 내 배에 5천만 원어치 와인이 들어있데요."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는 너무나 해맑아 보인다. 근데 진짜 웃기긴 하네.

어떻게 와인 반병을 마셨는데 중형차 한 대 가격이냐. 어이가 없네.

결국, 그렇게 민희는 로마네 콩티 한 병을 거의 혼자 다 마셨다.

문제는 그녀가 별로 취한 거 같지 않다는 것?

내 실책은 그녀의 주량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거네.

하긴 와인 한 병에 취하기는 조금 무리였나?

하지만…. 그녀는 와인이 아닌 분위기에 취한 거 같다.

어려진 몸, 기분 좋은 섹스, 평소에 입어보지 않았던 옷들, 선물, 음식, 비싼 와인.

그녀는 확실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 증거로 그녀는 내 맞은편이 아닌 내 무릎 위에 다시 앉아 있잖아?

부드러운 드레스의 감촉과 와인의 묘한 향기, 그리고 발그레해진 민희의 얼굴. 웃음.

그런 그녀는 내 무릎 위에서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성철 씨. 성철 씨는 말이죠.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나쁜 사람인 거 아는데. 나한테는 좋은 사람이에요. 웃기죠? 나는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지만 나에게는 좋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요."

내 손을 잡은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당신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거. 이미 알고 있었어요. 물론…. 저렇게 이쁠 줄은 몰랐지. 나쁜 사람. 어느 정도 못난 여자들이었으면 심술을 부리려고 했는데. 세상에. 그렇게 그렇게 이쁘고 착한 애들이 있을 줄이야. 있잖아요. 정말 당신은 나빠요. 그 애들은 너무 착해. 나는 그 애들을 질투할 수도 없어."

취한 건지 취한 척하면서 본심을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지금 입 다물고 듣는 수 밖에 없다. 그정도는 알지.

"방주에 있는 당신이랑 연관된 여자들.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자신있다고 말했었죠? 맞아요. 나는 자신 있었어요. 근데 그 애들한테는 자신이 없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당신은 왜 그런 애들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 나에게 눈길을 줘요?"

그녀의 표정은...조금 물기가 어려있다.

톡하고 건들면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은 표정.

캐슬에서 컴퍼니의 놈들에게 안좋은 일을 당했을 때도 이런 표정은 아니었는데.

"그 여자들 만큼 너도 소중하니까."

내가 한 대답에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의 촉촉했던 표정에 다시 미소가 돌아온다.

"나쁜 남자. 이럴때만이라도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해도 되는데."

그렇게 말하지만...그녀는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다.

나도 사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둔한 나라도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건 내게 역효과가 된다는 것 쯤은 안다.

감정에 휘둘려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지. 그게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라도 거짓은 거짓이다.

나는 민희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승희나 미나, 세아나 안나보다 더 사랑해줄 수는 없다. 그럴 방법도 모르고.

"당신...그 네명과 나로도 만족 못하죠?"

"글쎄. 지금 니가 말하는 만족이 어느 범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적인 만족도라면 너희가 끝이야."

"아닌거 같은데요."

다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하라는 듯한 눈빛.

그래. 좋은 기회니까 미리 다 이야기 해놓는 게 좋겠지. 어차피 이 여자는 당분간은 계속해서 방주에 있을테니까.

"방주에 관심이 있는 여자가 더 있는 건 맞아. 하지만 그건 그저 관심일 뿐이야. 사랑은 더더욱 아니지. 친밀한 관계는 될 수 있어도 너나 승희, 미나, 세아, 안나와는 달라. 이런게 무슨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 진정한 만족은 너희 다섯이 다지."

"역시 나쁜 남자라니까.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그런 놈이니까. 그리고 너는 이런 나를 계속 사랑할 수 밖에 없을걸?"

으...내가 말했지만 정말...재수없는 말이네.

하지만 민희는 납득했다.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인 그녀.

"그게 문제에요. 그게."

"걱정마. 니 눈앞에서 당당하게 바람피지는 않을테니까."

"세상에. 말하는 것 좀 봐. 진짜 나쁜 사람이라니까. 어쩜 이런 남자가 다있을까."

그러면서 내 젖꼭지를 잡고 꼬집는다. 살짝 아픔을 느낀 나는 민희를 바라보고 씨익 웃었다.

"후후. 내 차례야."

"살살 부드럽게 해줘요."

그러면서 오히려 피하지 않는 여자. 아예 가슴을 당당하게 내민다.

어휴. 이러면 못할줄 알고?

V자로 파인 드레스 앞섶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감싸고 만졌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꼭지를 살짝 꼬집자 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쁜 사람. 애들한테 다 일러줄거야."

"못할걸?"

"왜요?"

"그냥. 너라면 그럴테니까."

민희는 그럴 성격이 아니다. 그렇게 쪼잔하고 질투 많은 여자도 아니고.

물론 내가 이 여자의 본모습을 전부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예상할 수 있잖아?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런 대화가 시작도 안됐겠지.

"내가 아쉬움 느끼지 않게만 해줘요."

"물론, 할건 다하고 바람 피워야지."

"으...정말. 자꾸 당당하게 바람피운다고 말하지 말라고요."

"피울거니까 미리 말하는 거야."

"진짜 나빴어. 정말. 정 민희야. 너는 어쩌다가 이런 남자에게 빠졌니."

그렇게 중얼거린 민희는 눈을 감더니 나에게 말한다.

"나좀 눕혀줄래요?"

"침대에?"

"네."

"물론이죠. 여왕님."

민희를 안아들자 그녀는 내 목을 꼭 끌어 안는다.

테이블에서 침대까지 별로 멀지 않은 거리. 그렇게 걸어가는 데 이제야 취기가 올라오는지 살짝 인상을 쓰는 그녀.

"머리 아파? 와인에 회귀 써줄까? 그럼 바로 멀쩡해질 텐데."

"그러지마요. 나는 지금 이 상태을 즐기고 있어요."

"그래? 머리 아픈 거 아냐?"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침대에 그녀를 눕혀주자 민희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한다.

"왜?"

"옷...벗겨줘야죠. 이러고 잘 수는 없는데."

"아. 그러네."

드레스를 벗기자 그걸 받아든 민희는 자신의 수납에 이쁘게 집어넣으려다 넣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옆의 탁자에 잘 올려놓는다.

귀걸이와 목걸이도 마찬가지.

잘 풀어서 드레스 위에 놓은 그녀는 나를 보며 옆에 누우라는 듯 침대를 탁탁 친다.

불을 끄고 옷을 벗고 그녀의 옆에 눕자 알몸의 그녀는 내게 바짝 밀착하며 몸을 붙였다.

"나 잘거에요."

그렇게 선언하듯 말한 그녀는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고르게 변한다.

신기하네. 정말 부러워. 잘거라고 말하고 바로 자버리다니.

어떻게 저런게 가능하지? 아무리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도 불면증이었던 나는 정말 부러운 광경이다.

게다가 이제는 잠과 결별해버린 나는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나를 꼭 끌어안고 있는 민희덕분에 살짝 빠져나가기도 애매하다.

꼼짝없이 이러고 아침까지 있어야하는 건가?

스킬 숙련이라도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번개는 실내에서 쓸 수 없다.

이것 참...길고 긴 밤이 되겠네.

가만히 누워서 술에 취해 잠든 민희의 말을 곱씹어본다.

역시 방주의 여자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 그녀.

하지만 나는 아예 당당하게 밝혔다. 말도 안되게 뻔뻔한 짓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받아들였고.

참...말도 안되는 일들인데. 세상이 망하니 이런 망발에 가까운 말도 넘어가게 되는 구나.

술 때문에 몸이 뜨거운 듯한 민희. 그녀가 바짝 붙어있어서 그런지 나도 제법 덥다.

하긴, 이제 7월인데 더울만 하지. 에어컨이라도 틀어야겠네. 이럴땐 이불 푹 덮고 에어컨 트는 게 최고지.

예전 같았으면 리모컨을 가지러 일어나기가 곤혹스러웠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에겐 염력이 있잖아.

적당히 에어컨을 틀고 시원해지는 실내 공기를 느낀다. 자...이제 이건 됐고.

정말 이렇게 밤새 자고 있는 민희를 지켜봐야하나? 뭐...할 수는 있지만 솔직히 조금 난감하긴 하네.

실내에서 번개를 쓰는 방법. 없을까? 아. 아니지. 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했네.

어차피 여기서 써도 번개가 떨어지는 곳만 실외면 되잖아?

창밖을 바라보고 강 건너에 빌딩 하나가 보이는 것을 확인 한다.

저기까지 거리가 되겠지? 스킬 반경 증가36이니...저정도는 될거야.

"번개."

빌딩 옥상에 있는 피뢰침을 타겟으로 잡고 번개를 썼다. 그리고 내리치는 번개.

오우. 됐네. 이러면 됐지. 밤새 스킬 숙련이나 하면 되겠다. 아침이 될 쯤이면 번개를 마스터 할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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