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70화 (670/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마흔세 번째 스킬

언노운까지 해결했기에 이제 남은 건 오로지 호라이즌. 그놈들만 남았다.

근데 아직 모르지…. 내 눈으로 확인 안 한 곳이 있으니까.

아프리카와 중동, 호주가 남았잖아?

근데 호주는 뭐…. 있을 거 같진 않다. 애초에 거긴 사람 자체가 별로 없지.

하지만 아프리카와 중동은 약간 의심스럽긴 하다. 인구가 제법 많은 곳.

게다가 거기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도 인종 차별이야. 얼마든지 대단한 놈이 나올 수 있어.

그런데도 크게 걱정되지 않는 건, 거기는 대도시가 없다는 것?

코인을 안정적으로 획득하려면 밀집된 인구는 필수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래.

근데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고…. 직접 가서 확인하는 건 더 힘들다.

중동이야 어떻게 돌아볼 수는 있겠지만, 아프리카는…. 어휴. 너무 커.

호라이즌의 그랜드마스터를 딱 처리했는데 Q&A가 안 지워지면…. 그것도 참 짜증 날 거야.

그렇게 된다면 중동의 왕 압둘라라던가 아프리카의 왕 음바야 같은 녀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니까.

으. 생각만 해도 지겹네. 부디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지금 눈앞에 있는 적은 호라이즌 밖에 없으니 녀석들에게 집중한다.

뭐 집중이라고 해봐야 미라지 오션의 회장 놈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지.

녀석들의 정례회의는 아직도 멀었다.

오늘이 7월 4일. 정례회의는 15일.

아직도 열흘 넘게 남은 날짜.

그래도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추적을 걸어놓은 회장 놈의 시야와 대화를 엿보고 엿들으면서 스킬 숙련을 한다.

별다른 일 없이 소소하게 흘러가는 시간.

특별한 일도 없고 회장 녀석 역시 봐도 뭔지 모르는 회사 일만 잔뜩 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망했는데도 저렇게 회사 일에 열심히라니.

게다가 저놈들의 계획대로라면 저런 일들이 별 의미도 없을 텐데.

신기한 놈이네.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기하겠다는 건가? 완전 사기꾼 새끼네.

그렇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에서 보호막으로 감싼 번개 파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던 나는 결국 스킬을 마스터했다.

후. 이렇게 또 하나 스킬이 늘었네.

바로 나오는 패시브들. 바로 찍는다. 조금 더 늘어난 스킬 범위와 지속 시간.

다른 건 몰라도 범위는 무조건 넓혀야 해. 그래야 숨어있는 놈들을 찾아내는 게 쉬워지지.

스킬 최대 수치 증가와 한계 돌파도 역시 마찬가지다.

저장 위치와 비행 속도 만으로도 이 두 개는 찍을 가치가 있어.

그럼…. 이건 이제 됐고.

히든 스킬, 일렉트릭 에리어.

역시 바로 배운다. 이걸 보니 뇌제 녀석이 생각나네.

불쌍한 녀석. 컨셉에 충실한 녀석이었는데. 상대가 나빴지. 운이 안 좋았어.

어쨌든 배웠으니 바로 써봐야지. 바로 인도로 순간이동 한다.

스킬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곳은 역시 인도가 최고지.

"일렉트릭 에리어."

뇌제 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넓은 범위.

이 범위 안에 들어오는 놈들은…. 그냥 죽는다고 봐야 한다.

장애물에 가로막히거나 보호막이 있으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라면 닿는 순간 전기구이가 되는 거니까.

그렇게 일렉트릭 에리어를 켜놓은 상태로 비행을 써서 빠르게 날아가 본다.

탐지에 느껴지는 기척.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자 그야말로 순식간에 기척들이 사라진다.

그저 농사를 짓고 있던 이들이었다.

단지 내가 근처에 온 것만으로 그대로 빛이 되어 사라지는 사람들.

이렇게 될 걸 예상은 했지만, 참 허무하네. 뭐에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어버리다니.

가장 웃긴 건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도 덤덤한 나 자신이다.

하긴…. 마체테를 휘둘러서 사람을 죽일 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는데, 지금은 더 감흥 없지.

오히려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하는 걸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게 더 웃기네.

어쨌든 됐다. 자주 쓸 스킬은 아냐.

이렇게 요란하게 내 위치를 특정시켜주는 스킬은 내 취향이 아니다.

어차피 번개 같은 반사신경을 찍기 위한 과정일 뿐이니 배우는 거지.

아무튼, 이제는 다음 스킬을 찍어야 할 시간.

이제 배울 스킬은 번개. 근데 문제는…. 이건 숙련하는 게 너무 요란하다는 건데.

어쨌든 번개는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스킬이라는 게 문제다.

한자리에서 숙련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내가 여기 있는 걸 알 거야.

적어도 뉴욕 한복판에서는 숙련할 수 없다는 소리.

어차피 사람 없는 곳은 많으니 상관은 없는데…. 그래. 한 이틀 쉰다고 생각하고 숙련하자.

근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번개 구체랑 썬더 필드도 마찬가지네.

음…. 이걸 어쩐다?

어쩔 수 없네. 그냥 조용한 곳에서 짱박혀서 스킬 숙련하는 수밖에.

스킬 세 개를 마스터 하는데 대략 6일. 그동안 빡쎄게 달렸으니 휴가라고 생각하고 좀 쉬어야겠어.

어차피 15일까지는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간만에 집에도 붙어있고 말이지.

아. 근데…. 그전에 일단 민희부터 봐야겠구나.

스킬도 스킬이지만…. 민희가 더 급하지.

방주로 순간이동 했다. 그리고 바로 보안실을 살펴본다.

아직 거기에 있는 민희. 일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보기 좋다.

보고 있기만 해도 아랫도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느낌이야.

이건 뭐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저 여자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놨어. 정민희. 무서운 여자.

보안실로 인터폰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민희가 순간이동을 해서 내 방으로 왔다.

"왔어요? 정말 신출귀몰하네요.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나를 보면 언제나 바로 안아주는 그녀.

이런 스킨쉽이 좋은 거야. 친근감과 애정이 바로 느껴지는 스킨쉽. 이게 이 여자의 매력이지.

"음. 알프스를 조금 구경하고 왔지."

"알프스요? 갑자기?"

"그럴 일이 있었어."

"참 바쁜 남자네요. 당신은."

그러면서 내 손을 잡고 소파로 간다. 소파에 나를 앉힌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허벅지 위에 앉았다.

이 여자는 이게 기본자세인가 봐. 고맙게.

"조금 있으면 벙커로 갔을 텐데, 왜 불렀어요?"

"음…. 데이트 신청을 하려 했지?"

"데이트요? 벙커에 그렇게 이쁜 아가씨들을 두고 나에게?"

그러면서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 민희.

"왜 이래. 속으로는 좋으면서."

그러면서 내 손은 그녀의 가슴을 감싼다.

브라 때문에 가슴 특유의 감촉은 못 느끼지만, 그저 손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좋아진다.

"물론…. 나야 좋죠. 근데 오늘은 안 되는데."

"왜?"

"오늘도 쇼핑가기로 약속했거든요."

"어휴. 무슨 쇼핑을 그렇게 날마다 가는 거야. 질리지도 않나 봐."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쇼핑은 질릴 수가 없어요. 더군다나 이렇게 돈 걱정도 안 해도 되는 세상이면 더 그렇죠."

"그래. 그렇긴 하지만…. 뭐야. 그럼 오늘은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미리미리 약속했어야죠. 저는 인기 있는 사람이라고요?"

장난스럽게 웃는 민희. 하. 이것 참. 사람 애타게 만드네.

민희를 데리고 이것저것 할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있던 나인데, 이렇게 튕겨버리니 오히려 내가 안달이 안다.

역시 이 여자는 요물이야. 쉽지 않다 이거지?

"음….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수납에서 루이즈에게 받은 와인을 꺼냈다.

내 수납에서 와인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못 한 민희는 얼떨결에 그걸 받더니 깜짝 놀란다.

"사토 오브리옹? 이걸 어디서?"

"그렇게 놀라는 거 보니 좋은 와인이 맞나 보네."

"당연하죠! 세상에. 당신 손에서 이런 와인이 나올 줄."

"그만큼 좋은 거야? 난 와인 같은 거 잘 몰라서."

"그럼요! 오브리옹이면 보르도 지방 1등급 5대 와인 중 하나에요. 어떻게 이런 걸 구했어요? 게다가 이건…. 82빈? 맙소사. 이런 건 지금 세상에서 구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래? 그렇구나. 근데 82빈은 뭐야?"

"1982년 빈티지요. 간단하게 말하면 1982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졌다는 거죠."

"아…. 그렇구나. 오래됐네. 좋은 거구나?"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게 아니라고요…. 세상에."

"근데, 프랑스 사람들은 와인 생산 스킬이 있지 않을까? 그럼 원하는 와인을 마음껏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내 말에 민희는 잠깐 굳었다. 마치 세상의 진리를 알아챈 거 같은 표정.

"그럴…. 까요?"

"음. 근데 프랑스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없는데. 이거 아쉽네."

"네?? 그게 무슨…?"

"아. 유럽은 지금 이베리아반도 북쪽 지역에는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무인지대가 되었거든."

"네에?"

나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별로 놀라지 않을 그녀도 약간 충격적이라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하긴, 그 넓은 유럽 땅에 아무도 없다고 하면 다들 쉽게 못 믿겠지.

"으음…. 그건 참…. 안타깝네요."

"뭐, 그래도 회귀가 있으니까. 와인이 남아있으면 이건 무제한 마실 수 있다는 거지."

"그렇죠. 그건 다행이네요. 다행이긴 한데…."

영 아쉽다는 듯한 표정의 민희. 음…. 루이즈가 그럼 마지막 남은 프랑스 사람인가?

이거…. 와인 생성 한번 배워보게 해봐야겠네. 민희를 위해서라도.

"아무튼, 그거 말고도 몇 개 더 있어."

수납에서 루이즈가 줬던 와인들을 전부 꺼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 민희.

구해온 보람이 있네. 뿌듯한데?

"어떻게 이런 걸 구해온 거예요?"

"음…. 길 가다가 주웠어."

나를 보며 눈을 흘기는 민희. 그러면서도 입은 웃고 있다. 어휴. 그렇게 좋을까?

"내가 와인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게다가 프랑스 와인을 가장 좋아하는데."

"나랑 만난 처음 그날 기억나나? 그때 민희 니가 그 요리사 놈에게 투덜거렸어. 프랑스 와인 가져오라고."

"나는 기억도 안 나는데. 내가 그랬어요?"

"어. 그랬지."

"어쩜…. 그런 것도 기억하고 있고. 이거 감격스러운데요? 어쩜 이렇게 이쁜 짓을 할까?"

그러면서 민희는 내 뺨을 잡고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와인 몇 병에 이 정도 반응이라니. 이거 가성비 나쁘지 않은데?

"아!"

"네?"

"잠깐. 아…. 나 멍청했네. 완전 멍청해. 민희야. 혹시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와인이라던가. 아니면 진짜 비싼 와인이라던가. 그런 거 있어?"

"어…. 갑자기요?"

"응."

"음…. 로마네 콩티? 아니면 샤토 슈발 블랑?"

"로마네 콩티는 나도 들어본 거 같다. 근데 이건 그 만들어진 년도 없어?"

"있죠. 있어요. 아마…. 가장 비싼 게 1945년 산일 텐데…."

"로마네 콩티 1945년산? 좋아. 기다려봐. 위시!"

위시를 쓴 나는…. 얼마 뒤에 손에 와인 한 병을 들고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본 민희는 그녀답지 않게 정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놀라는 표정은 또 처음 보네.

"세…. 세상에."

"이거 한 병에 천만 코인이네."

"네!?"

"참고로 쿼터파운드 치즈버거 세트가 880코인이였어."

내가 든 와인을 보고 잠시 말을 잊은 민희.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이거 환불 되요?"

아. 귀엽네. 천하에 둘도 없이 도도한 민희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구나.

"뭘 천만 정도로. 어차피 이것도 회귀는 될 테니까. 평생 마실 거라고 생각하면 그냥 먹는 게 이득이지."

"아니…. 그래도. 가격이…."

"괜찮아. 별걱정을 다하네. 겨우 천만 코인 가지고."

이야.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참…. 배부른 부르주아 돼지들 같은 소리네.

참 좋은 세상이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진짜 웃기네.

아무튼 민희는…. 와인을 받아들더니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살펴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러면 굳이 루이즈에게 와인 생성을 배우게 할 필요는 없겠네. 아닌가? 코인이 나가니까 위시보단 나으려나?

근데 와인 생성이 이런 오래된 와인도 생성 가능하려나? 그럼, 말이 안되는데.

언제 한번 확인은 해봐야겠네. 암튼 그건 그렇다 치고.

잠깐. 그냥 평범한 와인을 만든 다음 노화를 걸면?

그럼 오래 숙성된 기가 막힌 와인이 나오는 거 아니야?

음…. 이건 한번 물어보긴 해야겠네. 나중에 정 부장에게 한번 물어봐야겠어.

"자. 어때. 이러면 나랑 데이트할 마음이 생기지?"

데이트 신청치고는 대가가 엄청 크긴 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으니 그냥 넘어간다.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민희.

"당연히 나도 당신이랑 데이트 하고 싶어요. 둘이 분위기 좋게 와인도 마시고 싶고요. 근데…. 승희랑 미나, 세아, 안나랑 한 약속을 함부로 깨고 당신이랑 데이트하면 그 즐거움이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을 거 같아요. 성철 씨. 나를 위해서 하루만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우리 내일 데이트해요. 기분 좋게."

내 목에 팔을 감고 내가 기분 나쁘지 않게끔 사근사근 말하는 민희.

오히려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이 맘에 들었다.

나만큼 승미세안을 챙겨주는 그녀의 마음이 맘에 들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말하면 또 내가 거절하지 못하지. 알겠어. 대신 내가 바라는 거 하나는 해줘야겠어."

"그래요. 너무 이상한 것만 시키지 않으면야. 난 상관없죠."

그러면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더니 키스해준다.

부드러운 입술과 정신을 빼놓는 것 같은 혀 놀림.

아아. 진짜. 이 여자는 여우가 맞아. 정말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