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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 여자들을 챙겨줄 이유는 전혀 없다.
여자는 이미 넘치잖아?
게다가 이 여자들이 암만 이쁘다 해도 안나에는 못 미친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 여자들을 챙기는 건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다람쥐가 입안 가득 도토리를 넣고 여기저기에 묻어놓는 거랑 마찬가지랄까?
혹시 알아? 마흔 정도 됐을 때 갑자기 서양 여자 쪽으로 취향이 생길지도?
그때 가서 후회하기는 싫으니까. 미리미리 쟁여놓는 느낌?
사실 방주에 데리고 가는 게 가장 속 편하긴 하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비상금은 숨겨 놔야지. 모두가 왔다 갔다 하는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 그건 비상금이 아니야.
"보르도라고? 이거 보고 위치를 찍어봐."
스마트폰 지도를 켜서 루이즈에게 건네주니 지도를 확대해서 한 위치를 찍어 준다.
"여기야?"
"응."
"여기에서 너희 집이 어딘데?"
"여기 나온 게 다 우리 집이야."
"엥?"
지도에 찍힌 곳은 제법 큰 지역인데…. 뭐지?
"암튼 여기라고? 알겠으니까 잠깐 있어 봐."
대충 보니까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거리가 가장 가깝다.
바로 이곳을 저장한 다음 발렌시아로 순간 이동했다.
600킬로미터 안되는 거리. 15분 컷이지 뭐.
아침 햇살을 받으며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러면서 아까 죽은 언노운에 대해 생각한다.
그 새끼는…. 딱 나 같은 놈이다. 다만 양산형? 아니…. 아류? 뭐 그런 느낌.
아. 그래. 짭성철. 그렇게 말하면 되겠네. 딱 그거다. 짭성철.
아마 내가 승희나 미나, 세아, 안나와 진실한 관계가 되지 못하고 그저 성처리용으로 썼다면 저런 꼴이 났을 거 같다.
그랬다면 세아가 히든 스킬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고 나는 좆대로 스킬을 찍으면서 짱박혀 살았겠지.
그럼 딱 저런 모습이 됐을 거야.
언노운은 그런 녀석이다. 어찌 보면 드럽게 운 나쁜 녀석.
그래도 나는 저런 배불뚝이에 털북숭이는 아니니까. 그걸로 위안으로 삼자.
녀석이 살고 있던 벙커는 스위스의 한 은행 금고였다.
그런거 보면 스위스 놈들은 참 대단해. 보관료 받고 은행 돌리는 놈들다워.
저런 알프스 한복판에다가 저런 걸 만들 생각을 하다니 말이지.
아. 은행이 만든 건 아니구나.
은행은 그저 2차 세계 대전 때 만들어졌던 벙커를 개조했을 뿐이니까.
어쨌든 사람이 살기엔 썩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벙커를 하나 또 손에 넣었다.
이야…. 무슨 벙커 수집가야? 이미 가지고 있는 벙커가 몇 개야? 대체.
누가 보면 무슨 벙커 성애자인 줄 알겠네.
어쨌든 녀석은 정말 볼 게 없었다.
기억 읽기를 고작 다섯 시간 만에 끝낸 이유가 있어.
녀석은 스킬이 그만큼 있었지만, 패시브도 제대로 다 못 찍은 녀석이었다. 한심한 녀석이지.
스멜리 코퍼레이션이랑 마찬가지인 녀석이야. 그저 운이 좋아서 아직 살아있던 놈일 뿐.
영국에 있던 크라켄 녀석들을 잡고 그 치프 녀석에게 마리오네트를 쓴 언노운.
그렇게 샌 안토니오에 있는 크라켄 본부까지 간 녀석은 거기의 사람들을 다 잡아 죽였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더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런거 보면 능력이 없는 놈은 아닌데 말이지.
어쨌든 이제 녀석은 죽어버렸다. 결국, 별 볼 일 없는 놈이었어.
그저 나처럼 은밀하게 다니는 걸 좋아했기에 정보가 없었을 뿐이었지,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니었어.
결국, 남은 건 호라이즌의 그랜드마스터. 그놈뿐이네.
녀석은 뭔가 좀 다르겠지. 어쨌든 Q&A를 쓰고 있는 놈이니까.
역시 이래서 정보가 가장 중요한 거야.
스킬의 개수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아니 중요하긴 중요하지.
하지만 거기에 걸맞은 정보. 그리고 그걸 가공할 줄 아는 능력.
취합하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방법. 그게 있어야 해. 그게 중요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상당히 불리해진다.
어쨌든 녀석들은 단체. 그것도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딥 스테이트의 수장이다.
모든 걸 다 혼자 해야 하는 나와는 큰 차이가 있어.
그나마 다행인 건 가장 중요한 정보는 거기에서도 그랜드마스터 혼자 처리할 거라는 거?
적어도 7인의 위원회 그놈들은 원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크게 불리한 건 아니네.
나랑 그 그랜드마스터 놈의 일대일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보르도에 도착했다.
대충 지도를 보니 이 근처인 거 같은데….
그렇게 찾다가 결국 지도와 비슷한 지역을 찾았고 루이즈가 찍어 준 곳으로 향했다.
이야…. 아까 그 여자. 제법 잘 살았나 보다?
지도를 보고 그 근처가 다 자기네 집이라고 한 게 이해가 됐다.
고풍스러운 거대한 저택과 그 주변으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밭?
밭인가? 아니네. 자세히 보니 나무다. 저건 설마 포도나무인가? 그런 거 같은데?
어쨌든 집 앞으로 도착해서 게이트를 열었다.
스위스의 벙커. 거기로 넘어가니 루이즈가 엘라와 디아나를 다독이고 있다.
말도 안 통하는 데 저게 되나? 암튼 뭐 알아서 하겠지.
"가자."
"어? 벌써 다녀왔다고?"
"여기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 일단 가봐."
루이즈는 엘라와 디아나를 한번 토닥이고 게이트 앞에 서서 약간 주저하다가 그대로 넘어간다.
"맙소사!"
그러더니 다시 게이트를 넘어와서 나를 보고 흥분하며 말한다.
"진짜 갔다 온 거야!? 아니, 미리 알고 있었던 거 아냐!?"
"무슨 소리야? 내가 저길 어떻게 알아?"
"그러네. 그건 말이 안 되지. 근데…. 아무튼 대단해!"
그러더니 두 여자를 일으키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신기한 성격이네. 책임감이 강한 타입인가?
내가 또 책임감 있는 사람은 좋아하지.
이 험한 세상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선호하는 성향이랄까?
그런 루이즈를 따라 게이트를 넘어간 다음 바로 닫았다.
그 사이에 이미 저택 쪽으로 걸어가는 루이즈와 그녀를 따르는 두 여자.
근데….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저택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일단 대저택이긴 한데…. 입구의 문이 박살 나 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니 집안 상태도 뭐 말이 아니다.
근데 여기 들어와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 거 같다.
아까 언노운 그놈의 기억에서 봤었던 곳이네.
루이즈의 가족을 죽인 곳이야.
가족들은 전부 죽이고 저 여자에게는 매혹을 썼지. 바로 여기에서.
"제길…."
루이즈 역시 그게 기억이 나는지 인상을 잔뜩 쓰며 중얼거린다.
음…. 아픈 기억일 텐데. 욕지기 한 번으로 참아내네. 나름 대단한데?
"후우. 이래서야 손볼 곳이 너무 많네. 어쩔 수 없지. 고생 좀 하겠네."
"여기서 지낼 셈이야? 이런 꼴인데?"
"괜히 알지도 못하는 곳에 가서 고생하는 것보단 아는 곳이 낫겠지. 조금 엉망이긴 하지만 그거야 어떻게든 해보지 뭐."
음. 성격 참 맘에 드네. 되게 긍정적이야.
게다가 엘라와 디아나는 그런 루이즈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한다.
대충 들어보니 자신들도 돕겠다는 듯한 말투다.
쟤들도 자신의 집이 있을 텐데. 그러기보단 여기 같이 있으려는 생각인가 보네.
하긴, 여자 혼자서 살기는 쉽지 않지. 힘들어도 함께 사는 게 그나마 나을 거야.
"정말 여기서 살게?"
내 말에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루이즈.
"응. 당신…. 마스터라고 했나? 당신에겐 큰 빚을 졌어. 이렇게 도와준 거 항상 감사하고 있을게.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도울 테니."
그렇게 말하는 루이즈는 이쁘고 여리여리한 외모에도 상당히 듬직해 보인다.
신기한 여자네. 게다가 지금 말한 어투에는 약간의 야한 뜻도 섞여 있는 것 같다.
대놓고 내색은 안 했지만, 말투가 그런 기색이야.
"음. 그럼 기왕 도와준 김에 조금 더 도와 줘볼까?"
"응?"
"잠깐 나와봐. 밖으로."
그렇게 말하고 집 밖으로 나가자 세 여자는 나를 따라 나온다.
내가 또 이런 건 전문이 됐잖아? 스킬을 만들어내고 참 알차게 잘 쓰네. 안나에게 고마워해야겠어.
"잠깐 이리 와봐."
"나?"
"어. 너. 미안한데 손 좀 잠시 잡아도 될까?"
루이즈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민다.
살짝 차가운 그녀의 손을 잡으니 기분이 조금 묘하다. 음…. 나 오늘부터 오로지 동양파였던걸 철회해도 될지도?
아니지, 이미 안나를 받아들인 이후부터 이미 그건 의미 없어진 거였구나.
"이 집은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멀쩡했나?"
"그렇지?"
"기억 좀 읽을 게."
그러면서 그녀의 기억을 읽었다. 한 6년 전으로 할까? 이 저택의 멀쩡한 모습을 보기만 하면 되는 거니 기억 읽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금방 모습을 확인하고 그녀의 손을 놓자 살짝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음. 구해준 게 효과가 컸나? 손잡은 걸 놨다고 아쉬워할 정도야?
"뒤로 좀 물러나. 상태 회귀!"
스타르체바 저택, 잇텐 료칸에 이어 루이즈의 집이 과거로 회귀한다.
언제 봐도 참 신기한 광경이다. 건물이 시간을 거슬러 회귀하는 모습은.
세 번째 보는 내가 이 정도인데 루이즈와 엘라, 디아나는 말할 것도 없다.
입을 떡 벌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여자들.
그렇게 저택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루이즈는 바로 후다닥 달려가 멀쩡해진 저택의 문을 연다.
"세상에! 맙소사!"
언제봐도 즐겁다니까. 이 놀라는 광경은.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걸 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이 쾌감, 이 짜릿함. 중독되는 느낌이야. 진짜로.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저택 안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집을 살펴본다.
그런 그녀를 쫓아다니는 다른 두 여자.
나도 느긋하게 그런 그녀를 따라간다.
저택은 생각보다 컸다. 1층과 2층, 그리고 다락.
게다가 지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지하에는…. 정말 멋진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야…. 이거 와인인가?"
"맞아. 마스터. 당신은…. 이 집을 세상이 망하기 전으로 돌려놓은 건가?"
"어. 한 6년 전으로."
"그래서 이 와인들이 무사히 그대로 있구나. 정말 감격스럽네."
와인을 하나씩 꺼내서 살펴보는 루이즈.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문뜩 민희 생각이 났다.
민희가 프랑스 와인을 좋아한다고 했던거 같은데?
"프랑스 와인이 최고지?"
"당연하지! 프랑스의 와인은 세계 최고야. 특히 우리 집의 와인은 그 중에도 손에 꼽힐 정도지. 내 입으로 말하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말이지."
"그래? 그거 좋네. 혹시 나 몇 병만 줄 수 있어?"
"물론이지! 당신 덕분에 이렇게 다 원래대로 될 수 있었는데 설마 못 주겠어? 전부 다 가져가도 괜찮을 정도인데."
"전부까지는 괜찮고. 지금은 몇 병만 가져갈게."
"그래? 자. 그럼 내가 골라줄게. 근데…. 와인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닌거 같은데?"
"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선물하려고."
"그래? 그럼 아무거나 줄 순 없지. 기다려봐."
그러면서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병 몇 개를 가지고 나왔다.
"자. 이거랑 이거. 이것도. 이거랑…."
"신났네."
"당연하지! 양조장 딸은 어쩔 수 없다고. 날 때부터 보고 자란 게 이런 거니까."
어쨌든 보기 좋다. 아픈 기억에 매몰돼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보단 백만 배는 낫지.
그렇게 루이즈가 준 와인들을 모두 수납에 넣었다. 좋아. 이러면 민희가 좋아하겠지?
그렇게 와인 저장고를 나온 루이즈는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저장고로 향했다.
거기에는 제법 많은 식량이 비축되어있었고 그녀는 그걸 보면서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마망. 고마워요."
"식량이 제법 되네? 이정도면 당분간은 살 수 있겠어?"
"응. 문제는 그 이후인데."
"이정도면 한 달은 살 수 있으려나?"
"그렇지 않을까? 아껴 먹으면 더 오래 먹을 수 있을지도."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먹어. 식량 걱정 같은 건 하지 말고."
"뭐?"
"모자라면 가져다줄게. 식량 정도야 뭐…."
"이봐 마스터."
"응?"
"왜 이렇게 우리에게 잘해주는 거야?"
진지한 눈빛의 그녀. 엘라와 디아나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를 바라본다.
"글쎄. 너희가 이뻐서? 별다른 뜻은 없어. 남자라면 다 그렇지. 이쁜 여자에겐 친절하게 돼 있어."
"근데 보통 그런 친절은 결국 목적이 하나로 귀결되는데."
"맞아. 내 목적도 그럴 수는 있겠지. 지금 당장은 별생각 없지만."
"왜? 내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러면서 내 양쪽 어깨를 잡는 루이즈. 이야. 불란서 여자는 이렇게 화끈하구나?
"물론 매력적이지. 근데 이제 막 위기에서 벗어났으니 조금 안정을 취하면 더 매력적으로 되지 않을까?"
내 말에 피식하고 웃는 여자.
"그래. 알겠어. 고마워."
그러면서 내 양쪽 뺨에 키스해준다.
역시, 이런 선진 문물은 바로바로 받아들였어야지. 흥선대원군 이 병신 새끼!
"그래. 아마 너희를 위협할 놈들은 없을 거야. 그러니 맘 편하게 지내.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 암튼, 나는 이제 갈게. 잘 지내라고."
"자주 들러줘. 부디."
"그래. 그러자."
그러면서 루이즈와 엘라, 디아나에게 추적을 걸었다.
이러면 뭐…. 만약 무슨 일이 있어도 문제없겠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만약 이 여자들이 누군가에게 발각당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죽임당하진 않을 거다.
미모는 강력한 생존 수단이니까.
죽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물론 그사이 험한 일을 당할 수 있겠지만…. 그건 뭐 영 안 되면 기억을 지우면 되겠지.
게다가 상태 회귀도 있으니까.
죽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