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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다시 스위스.
잠을 안 자도 되는 데다가 낮인 곳과 밤인 곳을 계속 왔다 갔다 하니까 하루라는 경계가 무너진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피곤이 느껴지거나 하지도 않고 뇌가 타버릴 것 같거나 하지도 않다.
근데 눈은 조금 뻑뻑하긴 하네. 눈에 안약이라도 넣어야 할까?
수납을 뒤져보니 인공 눈물도 있었다. 나 참…. 이런 건 대체 왜 들어있는 거야?
언제 넣었는지도 모르겠네. 아마 회귀 숙련할 때 쓸려 들어간 거 같은데.
어차피 없었어도 위시로 생성하면 되니까 별 상관은 없긴 하지만.
점점…. 인간의 범주를 넘었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뭐 그거야 이미 좀 오래되긴 했지만. 암튼.
언노운과 그랜드마스터. 그 두 놈을 처리하고 Q&A를 스킬 삭제했을 때 가능하다고 딱 뜨기만 한다면….
그럼 기분 좋게 쉴 수 있겠지? 느긋하게 남은 인간들을 다 정리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그런 행복한 망상을 할 때가 아니다.
그런 망상은 나중에 하는 거야. 지금은 설레발 칠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계속해서 알프스산맥을 탐색한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냥 나침반을 보면서 동쪽으로, 남쪽으로, 서쪽으로 계속해서 움직일 뿐.
성장을 쓸 때는 바닥을 찍어야 해서 조금 천천히 날았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기에 빠르게 날고 있다.
게다가 번개 파동까지 쓰고 있으니…. 누군가 만약 내 모습을 본다면 무슨 외계 생물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번개를 내뿜으면서 고속으로 날아가는 정체불명의 미확인 비행 물체잖아?
그렇게 일곱 시간 정도 비행을 했을 때 나는 그대로 멈췄다.
탐지에 걸린 네 개의 기척.
거리는 꽤 멀다. 거의 탐지 끝에 겨우 걸린 기척들.
주변은 굉장히 깎아지는 듯한 산속 한복판. 어딜 봐도 사람이 있을 곳은 아니다.
벙커 같은데…. 저런데 벙커가 왜 있지? 암튼 상당히 좋아 보이긴 하네.
역시 세상이 망하면 벙커가 최고지. 그러라고 만든 곳이니까.
탐지에 걸린 네 명의 기척을 천리안과 투시로 바라보니…. 한 남자가 세 명의 여자를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여자들의 외모와 몸매는…. 이야. 누가 봐도 미녀라고 볼 수 있는 여자들.
저대로 미스 유니버스? 그런데 참가하면 저 세 여자가 1, 2, 3등 할 거 같네.
아무리 봐도 내 감각은 저 새끼가 언노운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래. 내 감각아. 니 말이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 웃긴 건…. 저놈이 자고 있다는 거다.
벌거벗은 세 여자와 함께 알몸으로 누워 자는 녀석.
그래. 자는 걸 보니 맥이 탁 풀린다. 좆밥이라는 소리잖아?
잠도 극복 못 한 허접 새끼였어? 존나 실망이네.
뭐…. 확인해보면 되겠지. 자는 놈은 뭐 무서울 거 없어.
일단 안쪽 구조를 잘 살펴본다.
저들이 있는 벙커는 사람이 사는 용은 아닌거 같다. 아무리 봐도 금고? 그런 느낌인데.
어쨌든 사각지대가 많은 곳이라 침투하기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방주랑 비슷한 느낌.
다만 방주가 VVIP들을 위한 생활 시설이라면 저기는 거주 목적은 아닌 거로 보이네.
벙커 안쪽의 길들을 따라가 보니 산 뒤쪽에 활주로와 격납고까지 있다.
음…. 신기하네. 세상엔 참 신기한 곳들이 참 많아.
어쨌든 구조는 확인했으니 바로 가본다.
블링크, 그리고 페이즈 아웃.
산을 뚫고 들어가 목표로 했던 벙커 안쪽에 바로 침투했다.
그리고 문 몇 개를 지나 녀석들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고급스럽다기보단 그냥 깔끔한 방. 다만 저 커다란 침대만 상당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하다.
아마 원래는 없던 물품인데 이놈이 가져온 거 같네. 이것만 확 눈에 띄어.
어쨌든 침투는 완료했으니 이제 페이즈 아웃을 풀어야지.
자는 녀석들이 보이지 않는 사각으로 가서 조용히 페이즈 아웃을 해제한다.
그리고 바로 축소를 비롯한 스킬을 모두 걸고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봉인했다.
자. 이제 수면을 걸어야지?
남자 놈에게 먼저 수면을 걸었다.
이미 자고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수면은 무조건 걸린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바로 녀석의 머리 위에 뜬 수면 시간.
여자들에게도 바로 걸었다. 그렇게 넷 다 허무하게 잠들어버린 녀석들.
너무 시시한 결말이잖아? 정말 너무 허술한 거 아냐?
물론…. 이런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벙커에 누군가가 찾아올 거라는 생각을 못 하긴 했겠지.
여기는 우연히라도 오기 힘든 곳이긴 하잖아?
내가 있는 벙커와 여기를 비교해보면 정말 미친 게 아니고서야 여기를 찾아낼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는 미친놈이지. 후후.
흥겨운 마음으로 남자 놈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시선은 여자들에게 꽂힐 수밖에 없다. 이야…. 존나 이쁘긴 하네.
내가 동양파만 아니었다면 존나 횡재했다고 생각했을 텐데.
어쨌든 뭐…. 이쁘긴 하니까. 전리품으로 일단 남겨 놓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한 남자와 세 여자.
남자의 몸에 손가락 하나를 대고 기억 읽기를 시작한다.
과연…. 이놈은 언노운일까? 비록 잠은 극복 못 했지만 대단한 놈일까?
기억을 읽을 게 많았기에 기억을 다 읽고 나니 시간이 상당히 지나있었다.
한 다섯 시간 지났나? 그런 거 같은데.
이놈은 언노운이 맞았다.
물론 이놈은 자기가 그렇게 불리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맞다.
기억을 다 읽었으니 이놈은 이제 필요 없다. 죽여도 되는 놈이야.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이 옆에 있는 여자들을 깨우는 것.
무효화를 쓰고 언노운 녀석만 다시 재웠다.
그런 다음 여자들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한다.
하나씩 일어나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나와 잠들어 있는 언노운을 보다가 나체로 있는 자신의 몸을 가리기 바뿐 모습.
세 여자를 전부 깨우고 나서 세상 친절한 목소리로 여자들을 향해 말한다.
"어. 고생 많았어. 그동안 이놈에게 사로잡혀서 몹쓸 짓을 많이 당했지?"
비슷한 레퍼토리. 비슷한 상황.
하여간, 남자 놈들은 전 세계를 막론하고 하는 짓이 다 비슷하다니까.
하긴…. 매혹이라는 존나 쉽고 편한 스킬이 있는데 뭐하러 여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비위를 맞추냐고.
그냥 매혹만 유지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부릴 수 있는데.
이렇게 똥배 나온 털북숭이 남자도 이런 쌔끈한 양녀들을 거느리고 살 수 있잖아? 그게 바로 매혹의 좋은 점이지.
자신들의 상황을 쉽게 이해 못 하는 여자들.
하지만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건 금방이다. 매혹에 걸려있다고 기억이 남지 않는 건 아니니까.
"너희의 가족, 남편, 남자친구를 죽인 놈이야. 그치?"
세 여자는 뭔가 말하고 싶지만 쉽게 말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매혹 걸린 기간이 너무 길었어. 아마 제정신이 아니겠지.
"어…. 그러니까. 니가 루이즈지?"
"으…. 맞아. 그러는 당신은?"
"음. 그냥 마스터라고 불러라."
"마스터?"
"어. 이름을 별로 밝히지 않고 싶어서. 암튼 너는 그렇고…. 너는 엘라? 맞지?"
자신의 이름을 불린 엘라는 불안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나를 향해 물어보는 루이즈.
"대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지?"
"뭐, 이놈에게 볼일이 있는 사람이지. 겸사겸사 불쌍하게 사로잡혀 있는 너희도 구해주고. 너는 디아나겠고."
마지막 여자는 대답 없이 고개만 작게 끄덕거린다. 뭐….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어쨌든, 너희는 억울하게 붙잡혀 왔기에 죄가 없어 보여서 죽이지 않을 거야. 너희가 이뻐서 그렇기도 하지만. 고마운 줄 알아. 내가 얼굴을 상당히 밝힌다는 걸."
내 말에 세 외국인 여자는 불안한 눈빛이 된다.
하긴, 언노운 이놈에게 지금껏 성 착취를 당했는데 나에게 똑같이 당할 수도 있는 거니까.
이 여자들에겐 지금 상황이 그렇게 희망찬 상황은 아니겠지.
그나마 자신들에게 걸어놨던 매혹을 풀어줬기에 그나마 순순히 내 말을 듣고 있는 거긴 하겠지만.
"이놈을 그냥 죽여도 되긴 하는데, 너희들은 이놈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거 같아서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는 거야. 혹시 이놈을 진짜 사랑하고 있거나 그런 사람은 없지?"
내 말에 세 여자는 농담하지 말라는 눈초리가 된다.
나는 그런 그녀들을 보고 어깨를 으쓱한 다음 다시 물어본다.
"두 가지 옵션이 있어. 하나는 이놈을 잔인하게 죽이는 거고 또 하나는 그냥 깔끔하게 죽이는 거야. 둘 중의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뭐로 할래?"
"잔인하게!"
세 여자가 동시에 외쳤다. 이야. 걸그룹 인사도 이보다 타이밍이 맞진 않을 거 같네.
하긴, 그간 당한 일을 얼핏 기억으로 봤으니까…. 고생이 심하긴 했었지.
게다가 이 여자들은 이미 이놈에게 누군가를 잃었다. 가족, 남편, 남자친구를.
"좋아. 그럼…. 조금 잔인할 거야. 못 보겠으면 눈을 감아. 그럴 거 같지는 않지만. 철근 생성."
가느다란 철근이 생성되면서 녀석의 양쪽 팔과 다리를 꿰뚫었다.
크게 움찔하는 녀석. 그러더니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깬다.
"으아아악!"
"아휴. 시끄러워. 침묵."
녀석의 입이 막히자 고통에 뇌가 타버릴 것 같은 상황일 텐데도 고개를 들어서 나와 여자들을 살펴본다.
분명 비명은 계속 지르고 있는 거 같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 상황.
이 새끼는 웃긴 새끼다.
스킬은 스물여섯 개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안에 들어있을 때 쓸 수 있는 스킬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렇게 당당하게 철근 질을 할 수 있는 거겠지.
하다못해 폴터가이스트 하나라도 있으면 이런 짓은 못하니까.
녀석의 몸에 철근이 하나씩 늘어난다.
피가 철철 흐르면서도 비명 하나 들을 수 없는 녀석.
"비명 들을래?"
내 말에 세 여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는 건 좋지만 굳이 비명까지 듣고 싶지는 않겠지.
저런 돼지 멱따는 소리라면 더더욱.
녀석의 몸에 최대한 많은 철근을 박아 넣었고, 녀석은 이제 축 늘어졌다.
흘러나오는 피가 침대 시트를 잔뜩 적셔 피비린내가 진동하게 된 방안.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인상을 찌푸리는 세 여자.
"이제 됐어? 그만 죽일까?"
"그래도 될 거 같아."
루이즈가 말했고 엘라와 디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얼마든지."
정확하게 심장을 노리고 철근이 생성 됐다.
그리고 그대로 빛이 되어버리는 녀석.
녀석이 죽자 방 안에 있던 피비린내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나를 반기는 코인 주머니 하나.
하지만 큰 기대는 안 한다. 이 새끼가 거지인 건 알고 있었으니까.
800만 코인이 들어왔다는 메시지.
어휴. 정말…. 이놈은 기대 이하다.
짱개 삼룡이 급까지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어.
"자. 쓰레기는 치웠고, 너희들 차례인데."
내 말에 여자들이 확 긴장한다.
하긴, 철저하게 약자인 이 여자들은 지금 이 상황에서 뭔가를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지.
"그렇게 긴장하지 마. 나는 매혹이 있긴 하지만, 너희들을 매혹해서 성노예로 쓰거나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직 안심하진 못하는 모습.
"너희들 갈 곳은 있냐? 아. 참고로…. 유럽은 이베리아반도 기준으로 그 북쪽은 사람 하나 안 살고 있어. 도와줄 사람이라거나 알고 있는 지인, 뭐 그런 사람은 없다고 봐도 돼."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남김없이 죽었다는 소리지."
"오. 맙소사…."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기 있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싫어!"
이 루이즈라는 프랑스 여자. 상당히 당찬 성격이다.
어느 정도 복잡한 머리가 정리됐는지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하는 모습.
"그럼? 방법 있나?"
"구해준 사람에게 이런 부탁 하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나를 우리 집에 데려다줄 수 있어?"
"집? 뭐, 안될 건 없지? 근데 거기 가면 뭐가 있어? 아까 말했다시피 지금 유럽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집이 어딘데?"
"보르도."
"그렇게 말하면 나는 몰라. 어느 나란데? 프랑스?"
"맞아."
"뭐, 어려울 건 없지. 근데 가도 아무도 없을 텐데 괜찮겠어? 나야 데려다주는 건 상관없는데…. 가면 뭐 먹고 살 방법이라도 있냐 이 말이지."
"그건…. 가봐야 알지."
"그래. 뭐 그거야 니 자유니까. 좋아. 그럼 그렇다 치고, 너희는?"
남은 두 여자를 바라보고 물었지만, 그녀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다.
아니, 일단 지금 나와 루이즈의 대화도 전부 이해 못 한 듯한 표정.
아. 이 둘은 불어를 모르나 보네?
"거기 두 사람. 갈 곳 없으면 나랑 가자."
루이즈가 말했지만, 두 여자는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는 모습.
"얘가 갈 곳 없으면 같이 가자는데?"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음. 얘들은 좀 상태가 안 좋네. 이거 쉽지 않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