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55화 (65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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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텐 료칸

"아 깜짝이야."

거실로 나오던 세아가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자신의 가슴을 짚는다.

"뭘 놀라. 파티 돼 있잖아."

"못 봤어!"

"야. 내가 만약 적이었으면 어쩌려고."

"그럼 오빠가 알아서 물리쳤겠지."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잔 마신 세아는 다시 거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잠깐 멈춰서 나를 바라보더니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

"왜?"

"뭐?"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고."

그렇게 말했지만 대꾸가 없다. 쟨 또 왜 저래? 웃기는 애야.

"그래도 화장은 지웠네? 아까워서 몇 날 며칠은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좀 조용히 해봐! 생각 좀 하자."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아악! 진짜!"

"무슨 소리야? 왜 갑자기 애국가를 불러요?"

방에서 승희가 눈을 비비며 나온다.

나를 보더니 자연스럽게 볼에 키스해주는 승희.

아. 좋네. 이뻐.

그리고 그런 나와 승희를 보자마자 세아는 결심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승희에게 말한다.

"나 오빠랑 좀 나갔다 올게."

"응? 아아. 그래. 다녀와."

흔쾌히 대답하는 승희.

"야. 나랑 나간다면서 왜 승희에게 물어보냐? 당사자한테 먼저 승낙을 받아야 하는 거 야냐?"

"됐고. 빨리 비행 써."

"왜?"

"쓰라면 써."

"싫은데. 이유를 말해줘야지."

"게이트."

세아가 내 발밑에 게이트를 썼다.

나는 그대로 게이트에 빠져버렸고 그대로 하늘에서 나타나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뭐해! 왜 비행 안 쓰냐고!"

"어…. 비행을 어떻게 쓰더라?"

떨어지고 있으면서도 비행을 안 쓰고 태연한 자세로 있자 오히려 세아가 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그러다가 뭔가가 내 몸을 감쌌고 나는 공중에 떠 있게 됐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세아는 나를 보고 화를 낸다.

"뭐 하는 거야!"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뭐?"

"바닥에 게이트를 쓰면 어마 무서워라! 하면서 비행을 쓸 줄 알았어?"

"내가 먼저 미리 쓰라고 했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지. 나한테 어디 가자고 말도 안 했잖아. 왜 그걸 승희한테 허락받는데?"

아무말도 못하는 세아. 그러다가 나를 보며 다시 말한다.

"자기는 맨날 자기 맘대로 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래!?"

"그래서? 불만?"

"와. 진짜 뻔뻔하네."

"그리고 내가 내 맘대로 한 게 뭐가 있는데? 난 너를 충분히 배려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어…."

뭔가 생각해보려 하지만 마땅히 생각 나는 게 없는 듯한 세아.

"매혹 걸었잖아!"

"한참 만에 결국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그건 이미 끝난 일이잖아? 그 일을 계속해서 끄집어낼 셈이야?"

너무나 당당한 내 말과 태도에 세아는 아무 말도 못 한다.

"방법이 틀렸잖아. 방법이. 그리고 너도 성인이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을 해야지. 계속 우길 셈이야?"

논리적인 나의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세아.

과연 세아는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여기서 한 번 더 뻗대면 진짜로 화를 내야 하는데.

"하아. 미안해."

다행히 세아는 상식이 있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여자다.

뭐….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상식을 주입 시켰겠지만.

"비행."

내가 비행을 쓰자 세아는 자신의 폴터가이스트를 거둔다.

공중에서 그런 그녀 앞에 선 나는 세아를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제대로 이야기도 안 하고…. 함부로 군거."

"그래. 알았으면 됐어. 자. 이제 그럼 말해봐. 정식으로."

나를 보며 잠깐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여는 세아.

"나랑 같이 가줬으면 하는 곳이 있어."

"어딘데?"

"저기."

세아가 아래를 가리켰고, 그 밑은 지난번에 왔던 곳이었다.

료칸. 세아가 발견한 그곳.

"난 또 어디라고. 근데 저긴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이…. 그게 아니고…."

왜 쑥스러워하는 거야? 아. 혹시 그건가?

"안아달라고?"

"으…. 진짜. 분위기 없기는."

"왜. 아니야?"

"진짜…. 맞아! 맞다고!"

세아를 안자 그녀는 내게 쏙 안긴다.

원래도 키가 작은 녀석이었지만, 몸이 어려지니 이상하게 더 작다고 느껴지는 것 같네.

"저기 료칸에 같이 가고 싶었어?"

"어…."

"그래. 그럼 가자."

세아의 손을 잡고 느긋하게 온천으로 내려간다.

입구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인사하는 세아.

그동안 어지간히 자주 왔나 보네? 되게 익숙해 보이는데?

세아와 이야기 하던 여주인은 내 쪽을 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나 역시 고개를 까딱해줬고 여주인은 빙긋 웃으며 안쪽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

세아가 와서 나에게 말했고, 나는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료칸은 뭐라고 해야 하나. 역사와 전통이 있어 보였다.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 제법 연륜 있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주변의 풍경…. 다 괜찮아 보인다.

내부도 마찬가지.

다다미방, 장지문, 문을 여니 보이는 노천탕…. 딱 생각했던 그대로의 료칸.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건, 관리가 완벽하진 않다는 것.

여주인과 딸 둘이서 겨우 살아남아 이곳에 남아있었을 뿐이지 객실이나 시설들을 전부 보수한 건 아니니까.

그나마 이 방과 온천만 겨우 복구해놓은 것 같다.

그것도 세아가 이들에게 식량을 주고 요청해놓은 거겠지.

오랫동안 관리해온 게 아니라 급하게 복구해놓은 티가 난다.

"멋지지? 그래도 조금 아쉽긴 하지만."

세아는 아마 나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다.

그 방법이 서툴렀을 뿐이지.

그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고맙지. 내가 지나가듯 말한 걸 이렇게 까지 해놓은 거니까.

"세아야."

"엉?"

"여주인 좀 불러올래?"

"왜? 뭐 문제 있어?"

"아니. 불러와 봐."

세아는 금방 가서 여주인을 불러왔다.

여주인과 딸이 조금만 더 이뻤다면 모녀 덮밥이 될 뻔했던 이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이 료칸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언제입니까?"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살짝 당황한 듯한 여주인. 하지만 자신의 료칸에 대한 일이라 그런지 바로 대답한다.

"저희 잇텐 료칸은 매 순간순간이 아름다웠지요. 비록 그 역사는 300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처음 지어질 때부터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있었을 최근까지는 그 아름다움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결국, 지금 이 모양이 된 건 제대로 영업을 못 해서라는 이야기겠지.

"만약, 이 료칸을 지금으로부터 5년 전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실 건가요?"

내 말에 눈이 커지는 여주인.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지요."

"잠시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손바닥 좀 펴주시겠어요?"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는 모르지만, 이 여주인은 세아를 믿나 보다.

세아를 한번 보더니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미는 여주인.

그런 여주인의 손바닥에 손가락 하나를 대고 그녀의 기억을 읽는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뭐…. 굳이 5년 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세상이 망하기 전, 가장 아름다웠던 이 료칸의 모습을 보기만 하면 되니까.

"됐습니다. 세아야. 이분과 함께 가서 짐 정리를 하는 걸 도와드려. 5년 전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물건들만 챙기면 돼. 어지간한 건 필요 없어. 다 구할 수 있으니까. 꼭 필요한 것만 챙겨."

"응!"

세아는 내가 무슨 일을 할지 눈치챘는지 여주인을 데리고 바로 그녀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들을 기다리며 잠시 료칸을 바라봤다.

여자들만 있으면 보수하기가 쉽진 않겠지. 그래. 그건 당연한 일이야.

얼마 뒤 료칸 바깥으로 나온 세아, 여주인, 그녀의 딸.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모습. 그리고 세아는 그런 그녀들을 안심시킨다.

료칸의 입구. 그곳에 선 나는 여주인의 기억에서 본 료칸의 모습을 생각하며 짧게 중얼거렸다.

"상태 회귀."

내 말에…. 료칸의 시간이 되감아 지기 시작했다.

스타르체바 저택에서 한번 봤지만, 내가 봐도 정말 놀라운 광경이긴 하다.

떨어진 기와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벗겨진 회벽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부러진 나무, 망가진 창틀, 깨져서 임시로 막아 놓은 유리창.

그 모든 것들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을 보면서…. 여주인은 그 자리에 무릎 꿇으며 눈물을 흘렸다.

"아…. 아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료칸.

그리고 감격에 겨운 여주인은 딸의 손을 잡고 료칸 안으로 들어간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간 건물과 내외부를 보면서 끊임없이 기쁨의 눈물을 보이는 모습.

"아직 끝이 아닌데요."

"흑…. 네에?"

"요리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만?"

"요리…. 요리요? 가이세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걸 그렇게 부르나요? 이름은 잘 몰라서. 어쨌든 이런 료칸에 오면 그럴듯하게 나오는 식사요."

"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재료가…."

"필요한 재료를 말해보세요."

"네?"

"필요한 재료요. 아 잠깐만요."

음식이 됐으니 음식 재료가 안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본다.

일본이니까 일본 식재료를 생성해 봐야지?

"위시."

스킬을 썼고 얼마 뒤 내 손에는 참치 대뱃살이 손에 들려있었다.

통 참치가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네.

얼마든지 원하는 부위만 뽑아내는 것도 가능한 게 다행이야.

"맙소사!?"

참치 대뱃살을 보고 눈이 커지는 여주인.

"자. 보셨죠? 무슨 재료든 상관없어요.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해봐요. 소금 한 톨까지."

참치 대뱃살과 나를 바라본 여주인의 눈빛에서 잊고 있었던 열의가 불타오르는 게 보인다.

지난 5년 동안 요리는커녕 먹고 살기도 힘들었겠지. 하지만 지금 다시 기회가 온 거다.

잠깐 생각을 하던 그녀는 메뉴를 정했는지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젠사이에는…. 생굴하고요…."

"위시."

"두부."

"위시."

"계란."

"위시…."

그렇게 여주인이 말하는 재료를 바로바로 생성해낸다.

오리고기, 닭고기, 소고기, 새우, 방어, 도미, 광어, 낙지, 산천어…. 하여간 그런 주재료부터 버섯이나 채소 등등의 부재료까지.

전부 다 부르는 대로 적어도 10인분씩은 준비하자 여주인과 딸은 정신없이 나온 재료들을 전부 옮긴다.

"이정도면…. 된 거 같습니다."

"오늘 점심과 저녁까지 먹고 갈 거니까 준비해주세요.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요청하고요. 보셨다시피 만들어 낼 수 없는 건 없어요. 그러니 민폐라고 생각하지 말고 요청하세요. 저는 최고의 요리를 대접받고 싶으니까."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인.

"안에 들어가도 되겠죠?"

"아!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안 그래도 공손했던 여주인의 태도가 극진해졌고, 우리는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됐다.

그렇게 여주인이 나가고 세아가 나를 보며 말한다.

"역시 배워야겠어. 그 스킬."

"그치? 사기라니까. 근데 너 제작 스킬 뭐 배웠냐?"

"어. 일단 좋아 보여서 환영 제작 배웠는데."

"환영 제작이라. 그래. 좋긴 좋지. 근데 스킬 이야기 같은 건 나중에 하고…. 이제 온천을 즐겨봐야지?"

방문을 열자 호젓한 노천탕이 보인다.

자갈과 바위로 탕이 만들어져있고 마치 그림처럼 온천수가 졸졸 흐르는 곳.

내가 옷을 벗자 세아는 약간 망설인다.

"왜?"

"아니…."

"빨리 벗어. 뭘 인제 와서 새삼스럽게."

"으…. 진짜 분위기 없어. 분위기."

나는 바로 알몸이 돼서 탕으로 들어갔다.

"으아…."

진짜 기가 막히네. 역시 한국 사람은 뜨거운 물에 몸을 지져야지.

목까지 몸을 물에 담그자 몸 안에 남아있던 피로가 싹 날아가는 게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태 회귀를 생각해 낸 건 정말 잘한 짓이야. 가장 쓸모 있는 스킬이 아닐까?

그렇게 물 안에서 방 쪽을 바라보니 세아가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리고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아…. 범죄네. 범죄야.

나는 지금 당장 잡혀가도 할 말이 없어.

누가 쟤를 보고 스무 살이 넘는다고 하겠어?

아마 세아가 여주인이랑 안면을 터놓지 않았다면 나는 요리고 나발이고 패도 새끼로 몰려서 경멸당했겠지.

"세아야."

"어?"

"수건 치워."

"아…. 왜?"

"치우라면 치워. 매너가 없냐. 매너가."

"어…. 수건으로 가리는 게 매너 아냐?"

"아냐. 그런 거 없어. 암튼 수건 치우고 빨리 와."

결국, 수건을 내려놓고 알몸으로 온천에 들어오는 세아.

물을 가르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세아를 보니…. 어우. 장난 아니네.

나에게 다가온 세아는 내 옆으로 와서 몸을 담그려고 했지만, 내가 그녀를 안아서 내 몸 위로 올렸다.

"아이…. 누가 보면 어쩌려고."

"설마 진짜 누가 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으…. 여주인 있잖아! 딸이랑!"

"그 사람들 요리하느라 바쁠걸? 그리고 뭐 보면 어때. 앞으로 종종 올 건데."

그렇게 말하면서 세아의 가슴에 손을 댄다.

뜨끈한 온천수, 최고급 시설, 츤데레로리거유, 준비되고 있는 요리.

아. 이보다 좋을 수가 없네. 스킬 만세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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