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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번째 스킬
일단 여기 하와이에서 저 치프놈 보다 뭔가를 더 알고 있는 놈은 없다.
그러니 여기 계속 있을 필요가 없어졌어. 적어도 이놈들에게는 더 얻을 게 없다는 소리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아까 중년남은 이곳에 자주 방문한다는 거다.
적어도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소리. 그럼 됐지. 됐고.
대체 뭐 하는 놈들인데 이렇게 꼭꼭 숨기는지 모르겠다.
물론 보안이 중요한 건 맞다. 그건 누구나 인정하는 거지.
중요한 계획을 개나 소나 전부 다 알려주면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거다.
사공이 많아지면 배는 산으로 가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놈들은 좀 심하다. 역시 FBI랑 CIA를 가지고 있던 나라답네.
정보 통제에 진심인 놈들이야.
어쨌든 일단 기억에서 뽑아낸 것만 이라도 알아보긴 해야할텐데.
여기 놈들은 더 알아볼 게 없으니 됐고. 시간을 살펴본다. 음. 지금 방주로 가면 저녁 먹을 시간쯤 되겠네.
바로 순간 이동해서 방주의 내 방으로 갔다.
그리고…. 어디보자. 정 부장님을 부르려면….
인터폰을 들고 생산실이라고 적혀있는 버튼을 눌러본다.
[생산실입니다.]
"정 부장님 바꿔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건너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정중하다. 아마 인터폰이 어디서 왔는지 아니까 두말하지 않고 바꿔주는 거겠지?
[성철 씨? 방주에 왔습니까?]
"네. 그러니까 이렇게 인터폰을 하죠."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정 부장도 내 웃음소리가 들렸는지 껄껄 웃으며 말한다.
[그쪽으로 갈까요?]
"네. 그래 주세요. 아. 기왕이면 승규 형도요. 그리고…. 뭐 많이 알만한 사람 있나요? 지식이 많거나 잡학 다식하거나.]
[어…. 최 박사요?]
"아. 그분요. 그래요. 그럼 그분도 함께 와주세요."
[알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앉아서 보호막 숙련을 하고 있다 보니 정 부장과 승규 형, 그리고 최 박사가 들어왔다.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소파에 앉고 안부를 나눈 다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다름이 아니고요. ROF 라고 들으면 뭐가 생각나나요?"
"ROF요? 영어?"
"네."
정 부장은 확인하듯이 물었고 내 대답을 듣더니 곰곰이 생각한다.
"뭐 더 다른 건 없는 거야? 설명이라던가."
"아. 그게요. 지난번 융해랑 노화. 그거에 연결된 거 같은데요…."
승규 형의 질문에 적당히 설명을 더 해줬다.
하와이의 상황과 거길 관리하는 치프 놈, 중년남. 그놈들의 머리에서 나온 정보라는 것을.
"으음…. ROF라."
정 부장이 턱을 감싸 쥐고 중얼거린다.
"왜 매번 이렇게 어려운 것만 물어보냐. 좀 쉬운 거로 가져오면 안 돼?"
웃으면서 타박을 주는 승규 형.
"저도 그러고 싶네요."
근데 최 박사는 아까부터 스마트 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살펴본다.
그러다가 나를 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쩝. 마땅히 그럴 듯한 건 나오지 않네요. 다들 이상한 것만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스마트 폰을 쓱 내민다. 뭔가 해서 바라보니…. 사전 같은 거다. 얼래? 이게 뭐야?
"사전이에요? 인터넷 안 되잖아요?"
"오프라인 사전이란 것도 있습니다."
"아…그러네."
"요즘은 생소할 만하겠죠. 저희야 사전은 책으로 된 게 더 익숙했으니까요."
최 박사의 말에 정 부장이랑 승규 형이 웃는다.
아. 세대 차이라는 게 이렇게 나는 건가? 이런 아저씨들 같으니라고.
"Royal Ordnance Factory? 영국 군수 공장? 이건 별로 상관없는 거 같고."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갑자기 웬 영국 군수 공장? 논영. 또 너야?
"Radia over Fiber 광-무선. 이건 조금 그럴 듯하지 않나요?"
옆에 와서 스마트 폰을 들여다본 승규 형이 말했다.
"으음. 통신이 안되는 세상이니 광-무선을 활용해 보는 건…. 글쎄요. 할 수 있다 치더라도 그걸로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텐데요."
다시 볼을 긁적이는 사람들.
결국, 그렇게 다들 생각해보지만, 딱히 뭔가 떠오르진 않는다.
하. 이거 답답하네. 거지 같아. 진짜.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별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하네요."
정 부장의 말에 나는 손을 저으며 말한다.
"아니에요. 제가 자꾸 이상한 걸 물어보는 거죠. 뭐. 암튼 감사합니다. 혹시 생각나는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고요."
그렇게 다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방에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나.
하아. 정말 뭐가 풀리는 게 하나도 없네.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뭘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 잡아 죽여버릴까? 하와이에 있는 놈들, 크라켄 본사, 영국 버킹엄에 있는 놈들.
싸그리 다 잡아 죽이면 어떻게 되지?
음….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 거 같다.
추적이랑 마킹을 배운 다음 지금 치프 같은 놈들에게 걸어놓고 나머지는 다 죽인 다음 그놈들만 살려놓으면 결국 윗선에 있는 놈들과 접촉하지 않을까?
새로 뭔가를 꾸미려면 윗선의 지시를 받아야 할 테니까 어떻게든 접촉을 할 거다.
그럼 그걸 기회로 더 위를 캐내는….
아니지. 오히려 더 은밀하게 잠적할지도 몰라.
적어도 나라면 그럴 거다. 한번 당해놓고 허술하게 다시 일을 벌이진 않을 테지.
게다가 그렇게 숨어버리면 다시는 쉽게 찾지 못할 수도 있어.
결국, 지금 믿을 건 하와이에 다시 올 중년남. 그놈밖에 없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내가 존나 병신같다는 걸 깨달았다.
맞아. Q&A가 있었지. 그걸로 물어볼까?
대답을 해줄지 안 해줄지는 모르겠다.
아니…. 내 생각엔 안 해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이 새끼들은 지들 꼴리는 것만 답변해주잖아? 그러니 기대를 할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확인 안 해볼 수도 없다. 가능성이 있으면 해보는 거지.
그럼 일단은 지금 걸려있는 질문을 해결해야 해.
히어로 협회의 본부 위치에 대한 답변. 그걸 들어야지.
사람만 천오백 명만 죽이면 되잖아? 그럼 바로 하러 가자. 이건 뭐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니까.
또다시 벵갈루루.
아마 인도 사람들은 내가 짱개만큼이나 싫을 거야. 한번 나타났다 하면 대참사가 벌어지니까.
어쨌든 여기 만큼 사람 숫자 채우기 좋은 곳은 없지. 짱개놈들이 다 못 죽인 게 다행일 정도.
카타스트로피가 작열하고 천오백 명의 목숨은 금방 채울 수 있었다.
답변 중이라는 메시지가 뜨고 조금 있다가 바로 또 메시지가 뜬다.
[답변 : 파이오니어 우즈. 윌로 스프링스, 일리노이, 미국.]
여긴 또 어디야. 일단 적어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질문을 한다.
"Q&A."
[원하는 질문을 말하세요.]
"미국에 있는 크라켄이란 단체에서 말하는 ROF PROJECT 가 뭔지 알려줘."
[적합성 확인 중.]
과연 답변할까? 이런 걸 이렇게 쉽게 알려줄 리가 없긴 한데.
[해당 질문은 거부되었습니다.]
역시 까이네.
에휴. 그럼…. 일단 질문은 걸어둬야 하니까 다시 써야지.
근데…. 뭘 질문하지?
아까 그 중년남의 이름이라도 알면 녀석의 위치라도 알 수 있을 텐데.
하와이에 있는 크라켄 치프 놈 역시 녀석의 이름조차 모른다. 웃기는 놈들.
하여간 비밀은 존나 많아.
"Q&A."
[원하는 질문을 말하세요.]
"크라켄이라는 단체의 가장 핵심적인 본부 위치를 알려줘."
이런 질문이 될지 모르겠다. 적합성 판정이 나고…. 금방 나온 메시지.
[해당 질문은 거부되었습니다.]
음. 안되네. 뭐가 문제지? 핵심적인 본부라는 게 너무 추상적인가?
하아. 진짜 질문 하나 하기도 이렇게 쉽지 않아서야 원….
또 인구가 얼마 남았나 물어보려다가 그건 좀 낭비인 거 같아서 관뒀다.
일단 생각나는 질문을 이것저것 더 해봤지만 역시나 적합성에서 다 떨어진다.
내가 좀 엉뚱한 것들을 물어보긴 했지만 그래도 존나 짜증 나긴 하네.
알고 있으면 그냥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뭐 이렇게 따지는 게 많아.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법은 있나?"
[적합성 심사 중.]
이런 질문이면 되겠지. 아마 분명 천명과 천만 골드를 원할 거야. 분명해.
[해당 질문의 대가는 인간 천명의 목숨과 천만 코인입니다. 지불 하시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지. 그리고 분명 나중에 없다고 할 거야. 뻔한 놈들.
일단 예를 눌렀다. 됐어. 이러면 Q&A는 됐고.
생각해보니 여기 인도에 코인들을 안 주워놨네. 지난번에 여기 죽였던 것도 그대로인 거 같은데.
이 위치를 벵갈루루 위치에 덮어씌우고 바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레나에게 게이트를 열어준 다음 위치를 저장하라고 말한 뒤 사람을 모아서 여기 코인을 주우라고 시켜놓는다.
뭐…. 코인 탐지 같은 것도 없으니 힘들겠지만, 그거야 알아서 하겠지.
매혹으로 사람 잔뜩 매혹해서 걔들보고 주우라고 하면 되니까.
어쨌든 됐고…. 그래도 히어로 협회 본부 위치는 알아냈네. 저기부터 가볼까?
아니다. 일단 보호막을 마스터 하고 가자.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잠을 안 자도 되는 몸이 됐기에 시간은 넘쳐나잖아?
게다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니 낮과 밤을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 이건 뭐 남들보다 인생을 1.5배로 사는 느낌이네.
다시 방주로 돌아가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묻고 보호막 숙련을 한다.
그렇게 포션을 먹어가면서 두어 시간 바짝 한 결과 드디어 보호막을 마스터 할 수 있었다.
이야. 티어39. 점점 나도 괴물이 되어가는구나.
마스터한 스킬이 38개나 된다는 소린데…. 아직도 못 찍은 스킬이 많다.
징그럽네. 징그러워.
정말 인간의 욕심과 딱 맞물리는 시스템이야. 지독한 새끼들.
스킬 반경 증가33. 스킬 지속시간 증가33, 스킬 최대 수치 증가27, 스킬 한계 돌파27.
6천만 코인이 날아갔지만, 뭐 그냥 무덤덤하다. 사실 티도 안나긴 하지.
스킬 배우는 코인은 더 그렇다. 이건 뭐 그냥 무료로 배우는 거랑 크게 다를 게 없어.
바로 데미지 감소 스킬을 배운다.
드디어 나도 물렁 몸에서 벗어나는 거지. 이 좋은 스킬을 이제야 찍게 됐어. 어휴. 아직 살아있는 게 용해.
이 스킬이 있으면 나도 생존 확률이 확 올라가긴 할 거다.
지금까지는 스치기만 해도 죽어버리는 개복치 같은 인생이었는데.
데미지 감소를 마스터 하고 그걸 패시브 화 시키면 이젠 조금 대범한 짓도 가능하겠지?
물론 그렇다고 내가 대놓고 포지션을 내놓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스킬을 찍었으니 됐다.
데미지 감소를 빨리 마스터 하고, 생겨난 패시브들을 찍고, 추적을 배워야지. 그다음엔 번개 같은 반사신경이고.
시계를 보니 저녁 9시.
승희가 말한 하루는…. 아직 반도 안 지났다.
어휴. 지겨워. 뭐 하고 있나 궁금하긴 한데. 에휴. 됐다. 신경 쓰지 말자.
일이나 해야지.
아까 Q&A에서 답변받은 주소를 확인한다.
파이오니어 우즈. 윌로 스프링스. 일리노이, 미국.
스마트 폰을 꺼내서 바로 검색한다.
파이오니어 우즈. 바로 나오는 지도. 얼래? 근데 여긴 시카고 아냐?
바로 시카고에 붙어있는 곳.
근데 주소는 왜 시카고가 아니고 일리노이야? 일리노이면 일리노이주 아닌가?
뭐…. 모르겠다. 붙어있긴 하지만 여기는 주소가 다른가 보지.
시차를 계산해보니 대충 여기는 이제 아침이 될 시간이다.
딱 좋네. 한번 가보자. 뭐, 금방 가겠지. 그리 먼 곳도 아니니까.
어…. 아니네. 가장 가까운 뉴욕에서도 천 킬로미터가 넘는 곳이잖아?
근데 비행 속도가 빨라진 이후로는 이제 천 킬로미터 정도는 우습긴 하다.
계산해보면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가는데 40분이면 간다는 소리니까.
징그럽네. 징그러워.
바로 뉴욕으로 순간 이동 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
기왕 온 김에 고성연 그 여자는 어떻게 지내나 한번 살펴본다.
자기 아들과 아침을 먹고 있는 여자. 음…. 뭐 행복해 보이긴 하네. 근데 저 여자 음식은 있나?
뭐…. 알아서 잘 살겠지?
음…. 언제 밤에 한 번 찾아가긴 해야겠네. 물론 나를 반길 리는 없겠지만.
어휴. 이렇게 신경 쓸 거면 차라리 적당히 기억 조작한 다음 방주에 데려다 놓는 게 낫겠네.
그냥 가자. 가서 일이나 하자.
시카고까지 정말 40분도 안 걸려서 도착했고 나는 나무가 우거진 숲의 상공에 떠 있게 됐다.
이야. 히어로 협회는 참 희한한 곳에 있네.
이런 숲속에 지하 시설이 있다니. 여긴 또 뭐 때문에 만들어 놓은 곳이지? 대피 시설 같은 걸까?
어쨌든, 지하에서 느껴지는 기척들. 제대로 찾아온 거 같긴 하다.
이미 관심이 없어진 히어로랑 빌런들이지만, 그래도 뭔가 있긴 있겠지.
바로 천리안과 투시를 쓰고 지하를 살펴본다. 어디…. 뭐가 있는지 한번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