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다들 너무 예뻐."
승희와 미나, 세아, 안나를 본 민희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듯한 말에 약간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짓는 민희.
근데 그 말과 표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승미세안 네 여자의 반응은 쭈뼛거리던 모습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자. 일단 다들 앉고."
어쨌든 나 때문에 모인 여자들이다.
만나자고 한 건 승희지만,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승희에게 떠넘길 수는 없지.
게다가 나는 왠지 마음이 편해진 데다가 나답지 않게 여유도 생겼기에 이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다들 정식으로 소개부터 할게. 나 때문에 모인 거니까 지극히 내 주관대로 하겠어. 순서는 나랑 만난 순서야. 이쪽부터 최승희. 송미나, 윤세아, 안나 스타르체바. 그리고 이 여자는 최민희."
내가 소개하자 다들 서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저기…. 혹시…."
민희가 미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아. 맞아. 페어리나인. 송미나."
"맞죠!? 깜짝 놀랐어요. 혹시나 했는데."
자신을 알아보는 민희 때문인지 살짝 부끄러워하는 미나.
역시 인기 있던 걸그룹 답네. 여자가 알아보기도 하고. 아니지. 여자들이 이런 건 더 잘 알던가?
어쨌든 나를 보더니 ‘이 남자 봐라?’라는 표정을 짓는 민희.
후후. 내가 이런 놈이야. 어떠냐?
"자. 그럼…. 서로 편하게들 이야기 나눠?"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놓고 소개까지는 패기롭게 했는데…. 그다음에는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 조금 이상해져 버렸네.
"으이그."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린 승희.
"죄송해요. 처음부터 오빠한테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괜찮아요. 대체 어떻게 하려나 궁금하긴 했어요. 근데 기대는 안했으니까요."
뭐지? 나에 대한 디스로 말문을 여는 건가?
"미나 언니랑 세아, 안나가 조금 어려 보여서 놀라셨을 거예요. 오빠가 상태 회귀 스킬을 써서…. 아. 스킬 이야기는 들으셨다고 했죠?"
"네. 들었어요. 어머. 근데 승희 씨는 상태 회귀 안 한 거였어요?"
"네? 네. 저는 안 했어요."
"아. 넷 다 한 게 아니었구나."
음…. 자연스럽게 어려 보인다고 말한 건가? 근데 승희는 애초에 젊잖아? 젊은 애한테 어리다고 하면 효과가 있나?
근데…. 있었다.
승희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 이게 먹히는구나. 좋은 걸 배웠네.
어린 여자한테도 더 어린이다고 하면 좋아한다…. 메모.
"민희 님은…. 아니, 민희 씨는…. 이것도 아니지. 되게 딱딱하게 들리네. 저…. 초면에 죄송하지만,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승희의 말에 환하게 미소 짓는 민희.
"어머. 저야 고맙죠. 꼭 그렇게 해줘요. 승희 씨는 좋은 사람이구나."
"저도 그냥 승희라고 불러줘도 돼요. 굳이 씨까지 붙일 필요 없어요. 편히 불러줘요."
그렇게 승희가 말하니 미나와 세아, 안나도 민희와 이야기 하며 서로 호칭 정리부터 한다.
그리고 가볍게 오가는 서로에 대한 좋은 말.
으음. 뭔가 별거 아닌거 같으면서도 상당히 민감한 내용을 잘 넘긴 거 같은 느낌인데?
"아. 이럴 게 아니고 일단 식사부터 해요."
미나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그러자고 하더니 밥 먹을 준비를 한다.
민희도 일어나서 도우려 했지만, 미나가 한사코 말려서 결국 다시 앉게 된 민희.
네 여자가 식사준비를 할 동안 내 옆에 앉은 그녀는 나를 보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정말 눈부시도록 이쁘고 착한 애들이네요."
"내가 눈이 조금 높아."
"높은 거 맞아요? 저렇게 이쁜 애들을 놔두고 나나 만나고 다니고?"
"왜 이래? 자기도 충분히 이쁘면서."
"흐응. 당신 아부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아부는 무슨. 니가 이쁘지 않고 매력이 없었으면 그때 그 요리사 덩치랑 같이 죽었어. 그 뭐야. 찰리였나?"
"하여간. 매번 이렇게 독하게 말한다니까. 일부러 그러는 거죠?"
나를 살짝 흘겨보는 민희.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아 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식사준비 다 됐어요!"
미나의 말에 나와 민희는 주방 옆에 있는 식탁으로 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미나가 차린 음식들을 먹기 시작한 우리.
다소 어색할 줄 알았는데 이들은 그래도 제법 잘 어울리며 밥을 먹는다.
하긴, 나 같은 놈이나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게 서투른 거지 다들 그런 건 아니니까.
음식 맛을 칭찬하는 민희. 뿌듯해하는 미나. 민희고 뭐고 돼지 갈비에 집중하는 세아. 민희를 바라보며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안나.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살피면서 분위기를 확인하는 승희.
승희는 민희가 맘에 들었나 보다.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단지 아까 어려 보인다는 소리 때문만은 아닌거 같다.
이유가 뭘까? 잘 모르겠네. 여자들의 마음은 너무 어려워. 남자들은 그나마 알기 쉬운데 말이지.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다들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언니는 이 오빠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었어요?"
승희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는 나도 약간 귀가 솔깃해졌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이참에 들을 수 있으려나?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런 걸 대답하기엔 조금 부끄러운데."
민희가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승희가 그건 그렇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오빠?"
"어?"
"밥은 먹었으니까 이제 나가요."
"엥?"
"뭐가 엥? 이에요. 처음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지난번처럼 하루 동안 나갔다 와요. 빨리."
"와…. 또?"
"오빠가 있으면 우리끼리 편하게 이야기를 못 해. 그러니까 빨리 나가요."
"쳇. 너희 다 복수할 거야."
"흥. 안 무섭네요."
웃긴 건 민희 역시 나를 보며 장난스럽게 잘 가라는 듯 손을 흔들고 있다는 거다.
하. 이거 정말…. 사람을 이렇게 쫓아내다니.
"근데, 하루? 민희는 내일도 방주에 가야 하는 거 아냐?"
"잠깐 가서 말하고 오는 게 뭐 어렵겠어요. 그러니 빨리 승희 말대로 해요."
"이야…. 그래. 알겠어. 다들 내 험담 열심히 하라고."
뭐…. 근데 승희가 말하는 것도 이해한다.
내가 껴있는 것보다 없는 게 여자들끼리 친해지기는 더 쉽겠지.
걸즈 토크란 그런 거잖아. 한번 효과도 봤고.
바로 순간 이동을 썼다. 목적지는 라스베이거스.
내가 나타나자 우르르 다가오는 위치스 네 여자.
레나, 신영, 가인, 엠마.
그녀들을 보자 아까 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눈이 높다는 말.
사실…. 맞는 말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내 눈은 정말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갔지.
승희, 미나, 세아, 안나, 민희. 전부 다 어지간한 미모들이 아니다.
여기 있는 이 네 여자도 마찬가지. 각자 다들 어디 내놔도 절대 꿀리지 않을 여자들.
사실은 또 나 빼놓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는 승희의 말에 반발심으로 질펀하게 섹스나 하러 왔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번거로워졌다.
특히 신영이. 자꾸 괴롭히자니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든다.
음…. 내가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나 봐. 나답지 않게 인제 와서 미안함이라니.
그래서 결국은 매혹만 리필하고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하와이로 순간 이동했다.
쩝. 내가 왜 이러냐. 독기가 빠지는 건가?
승미세안민 다섯여 자 때문에 마음이 여려진 느낌이야.
독기 충전 좀 해야 하나?
저녁이 된 하와이. 하지만 크라켄 녀석들이 있는 호텔은 찬란하게 불이 밝혀져 있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 된 이곳은 다들 식사를 하고 각자의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근데…. 대충 예상하긴 했지만, 다들 너무 심하네.
밤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섹스 파티인 거야?
아니…. 물론 낮에도 신나게 한 놈들이니 밤이면 한술 더 뜨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냐?
한 반 이상은 남녀가 엉켜있는 거 같은데.
술과 마약이 자유로운 곳이라 그런지 다들 굉장히 하드한 분위기다.
그냥 발정 난 개들 같네. 어우 징그러.
확실히 서양 여자들은…. 내 취향이 아니야. 일단 골격이 너무 커. 품에 쏙 안기는 맛이 없어.
근데…. 섹스하는 녀석들을 보고 있어서 그런가? 욕정이 끓는 느낌이다. 갑자기 막 하고 싶어지네.
으음…. 그냥 신영이를 가서 덮칠까? 지금은 딱 신영이 같은 여자가 좋은데.
근데 걔는 됐어. 다시 가기도 좀 그렇고.
고성연? 음…. 조금 땡기긴 하는데…. 에휴. 걔도 그냥 두자.
마구 해대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여자가 필요해.
근데 그런 여자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여자야 많지만 내 눈에 차는 여자가 별로 없지.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어찌할지 모르고 있는 내가 웃긴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잘 모르겠네.
은근히 벙커에서 다섯 여자가 내 이야기를 하는 거에 신경 쓰고 있는 건가?
음…. 가서 페이즈 아웃으로 숨어서 들을까? 무슨 이야기 하는지 궁금하긴 한데.
근데 또 별로네. 썩 내키진 않아.
입으로는 보호막 숙련을 하면서 그런 잡생각들을 계속한다.
큰일이네. 이젠 잠도 못 자는데. 꼬박 하루를 어디서 뭘 하지.
역시 얌전히 숨어서 이놈들이나 훔쳐보며 숙련하는 수밖에 없나?
그렇게 호텔 안에 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근데…. 아까 크라켄 본사에서 뉴비들을 데려왔던 치프 녀석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남자. 나이는 제법 있어 보인다. 딱 봐도 뭔가 한자리하고 있을 것 같이 생긴 중년 남자.
이쪽 하와이의 치프인 놈이 녀석에게 굽신거리고 있잖아? 그렇다면 적어도 저놈보다는 높은 놈이라는 거지.
혹시…. 저놈이 Q&A를 쓸 수 있는 놈이 아닐까?
이런 곳을 관리할만한 놈이 굽신거린다면 적어도 시시한 놈은 아닐 거 같은데.
고민이네. 재우고 기억을 읽어 봐? 근데 또 함부로 재울 수가 없잖아. 뒷감당이 안 되는데.
혼자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저 치프 놈은 어차피 여기서 잠들 테니 기억을 읽을 기회는 많을 거야.
하지만 저놈은 아니지. 지금이라도 순간 이동을 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 추적을 배울걸. 이렇다니까. 꼭 항상 결정해놓고 후회하지.
근데 추적부터 배웠으면 '보호막이랑 데미지 감소부터 배울걸' 하고 후회하는 일이 있겠지.
원래 일이란 게 그런 거니까.
재우지 않고 기억을 읽는 건? 힘들까? 문제는 기억을 읽으려면 맨살에 닿아야 한다.
나노화를 쓴 내가 손가락 하나를 맨살에 가져다 대면 그걸 느낄 수 있을까?
예민한 사람이면 느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고민하는데…. 중년남은 치프와 악수를 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아. 씨발. 갔네. 아. 고민하다가 놓쳤어. 젠장.
쓰읍…. 짜증나네. 아오 빡쳐.
뭐 되는 게 없냐. 으…. 짜증나.
아. 만사가 다 귀찮네. 그냥 밤까지 시간이나 보내자.
어쩔 수 없지. 저놈 기억이나 읽는 수밖에.
별수 없이 다시 퍼질러 앉아 스킬 숙련이나 한다.
보호막. 보호막. 보호막. 보호막.
그래도 다행인 건 오늘 안에 보호막 마스터가 가능하다는 것.
어차피 이제는 잠도 안 자니 숙련할 시간은 많다.
느긋하게. 짜증 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하자.
천천히 완급을 조절하며 포션을 마신다.
시간이 지나가고 지루함이 나를 괴롭히지만 뭐….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야. 치프 놈을 지켜보면서 연놈들의 짐승 같은 섹스도 볼 수 있고 말이지.
와. 근데 확실히 흑인이 대물이긴 한가 봐. 어우 사이즈 봐. 장난 아니네.
저런 게 여자의 보지에 들어간다고? 와. 씹. 진짜 괜찮나? 안 늘어나?
남자 새끼의 성기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지만…. 저건 약간 경이에 가까운 영역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보고 있었다.
어우. 그만 봐야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네.
다행히도 치프 녀석은 중년남이 간 이후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근데 왜 저놈은 혼자 술 먹느냐? 별로 인기가 없나?
어쨌든 나야 고맙다.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니까.
그렇게 술을 마시던 녀석은 얼마 있지 않아 술병을 정리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아직 여기 시간으로 열 신에? 최고 책임자가 저렇게 일찍 잠들어도 되는 거야?
뭐…. 녀석이 잠들려고 누웠으니 나야 망설일 필요가 없다.
바로 날아가 블링크 이후 페이즈 아웃. 방 안으로 들어가 해제, 버프, 그리고 수면.
머리에 뜨는 시간. 잠든 게 확실한 녀석.
바로 기억을 읽는다. 근데…. 역시 이놈도 건질 건 별로 없다.
그나마 건진 건 고작 몇 개뿐.
일단 이놈의 역할은 이 섬에 온 '사도'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
사도라니…. 무슨 존나 사이비 같네.
그러고 보니 이놈들 회사 이름이 크라켄이잖아? 그럼 무슨 크툴루라도 믿나? 존나 웃기네?
크툴루…. 융해. 노화. 이게 뭐 연관이 있나? 아오씹. 존나 모르겠네.
게다가 또 뭔가가 하나 더 있었다. 녀석의 기억에서 읽은 것. ROF PROJECT.
이건 또 뭐야. KOF는 아는데.
ROF? 이건 뭐지? 음…. 로얄…. 랭킹? 랭킹 오브 파이트?
로즈 오브 플라워? 로맨틱? 됐다. 무슨 로맨틱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 검색 사이트 없어진 게 존나 아쉽네. 이걸 어디에서 알아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