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13화 (64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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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방주

집으로 돌아가 개운하게 한 잠 때리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아직 돌아갈 수는 없다.

아직 처리 안 한 게 세 개나 있네. 어휴.

장룡의 아지트, 장룡의 메인 연구소, 싱가포르.

귀찮네. 드럽게 귀찮아. 그래도 지금마저 다 해야 한다.

그런 놈들이 전부 다 도망가버리면 나중에 몇 배는 귀찮아져.

지금의 한 시간이 나중에 몇 년, 몇 달이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일단 싱가포르부터 갔다.

장룡이랑 그 지랄을 했지만, 이놈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모습.

차이나타운 한가운데서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쓰고 카타스트로피를 써봤다.

음…. 써진건가? 이건 효과가 바로 안 나와서 잘 모르겠네.

잠깐 기다려보니 스킬이 제대로 써진 걸 알 수 있었다.

해안가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해일이 밀려오는 모습.

저것만으로도 타격이 극심하겠지만, 그래도 쐐기를 박는다.

카타스트로피를 두어번 더 쓰자 이번엔 한파와 지진이 일어난다.

아. 됐네. 이거면 뭐…. 답이 없지.

스킬도 못 쓰는데 해일에 지진에 한파라고? 그럼 죽어야지. 어쩌겠어.

여기를 더 지켜볼 필요는 없다. 코인을 회수해야겠지만…. 그건 내가 할 필요 없지.

일단은 놔둔다. 놔두고…. 아까 발견했던 장룡의 연구소 쪽으로 순간 이동한다.

조용한 연구소. 여기는 아까 음식과 음료를 전부 보내놓은 거로 자신들의 역할이 끝이었나보다.

탐지를 돌려보니 연구소 쪽에는 아직 움직이는 기척이 남아있긴 하는데….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럼 여길 어떻게 처리해볼까.

연구 자료가 있겠지만, 원트의 스킬 조합이나 패시브 화에 대한 자료는 없을 거다.

장룡 녀석이 그걸 남겨놨을 리가 없지. 머리에 총 맞은 게 아니라면.

히든 스킬에 대한 정보가 더 있긴 할까? 모르겠네. 일단 그것부터 알아봐야겠어.

연구소의 소장인 듯한 놈을 찾아보고 바로 날아갔다.

블링크, 페이즈 아웃, 해제, 무효화와 수면.

잠든 소장 녀석을 확인하고 축소를 비롯한 모든 버프를 건 뒤 기억 읽기를 한다.

간단하게 읽어보니 전에 있던 연구소 소장들보다는 아는 게 조금 더 많은 거 같긴 하다.

근데 연구 자료로 다 있나 보네? 그럼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지.

녀석의 연구 자료가 있는 비밀 금고 속의 자료들을 꺼내 한번 슬쩍 보고 전부 수납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소장 놈은 수납으로 먹어치운다.

이제 여기는 더 볼 일이 없어. 그러면…. 레츠 쇼타임.

유리를 깨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건물들 딱 정중앙 지점에서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쓴다.

그 뒤를 잇는 카타스트로피 삼 연타.

과연 이번엔 뭐가 나올까요? 두구두구두구.

"으악!"

나는 나도 모르게 하늘로 블링크 했다. 그리고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천리안과 투시에 잡힌 것들.

벌레. 그것도 보기만 해도 욕이 울컥 나오는 벌레들.

딱 봐도 알록달록하고 혐오스러운 게…. 독충들이다. 그리고 그런 독충들이 정말…. 바글바글하게 생겨나고 있었다.

게다가…. 점점 더워지는 거 같다. 급격하게 더워지는 공기. 설마 이건 폭염? 그런 건가?

하긴, 한파가 있으면 폭염도 있겠지. 어우 됐어. 이것만으로도 여긴 극혐 지대네.

마지막 한 가지 재앙을 확인 못 했지만, 더는 있고 싶지 않다.

탐지에 느껴지는 기척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걸 보면서 순간 이동을 썼다.

마지막 종착점은 역시 장룡의 아지트.

맘에 드는 곳이야. 주변은 험한 산지고, 어지간한 탐지 거리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라면 안쪽의 기척도 못 느낄 거다.

게다가 크고 시설도 다양하며 자체적으로 식량 생산도 된다.

적어도 내가 봐 온 바로는 특수 파견대 300명 정도는 우습게 부양할 수 있었어.

생존만을 위한 수원 벙커와 다르게 여기는 아예 자체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한 벙커.

아니…. 이걸 벙커라고 불러도 되나 모르겠네. 그러기엔 사이즈가 너무 커.

암튼, 이건 소중한 전리품이다. 그러니 안에 있는 놈들을 마저 정리해야지.

아…. 아니다. 여기는 지금 정리하면 안 되나? 생각해보니 그렇네.

여기 놈들은 장룡이 잠시 안 들어온다고 도망가거나 할 놈들은 아니다.

게다가 생산 시설이 있으니 지금 다 죽여버리면 중간에 공백이 생기잖아?

농작물 같은 거야 잠깐 공백 생긴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동물이나 물고기 같은 건 어찌 될지 몰라.

여긴 내일 하자. 날 밝은 다음에 해도 되겠지. 가서 잠이나 자자. 진짜로.

또 꿈을 꿨다.

이번엔 코인 주머니에 깔리는 꿈.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코인 주머니들.

그리고 그것들이 파도처럼 나를 휩쓸었고 나는 거기에 치이면서도 좋다고 웃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파도를 타고 승희와 미나, 세아와 안나가 비키니를 입고 서핑보드를 탄 채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 손을 잡더니 쑥 꺼내준 승희. 어느새 나 역시 보드에 올라 파도를 탄다.

그렇게 가다가 결국 끝에 가서 다 같이 휩쓸린 우리는 몰디브 해안가까지 밀려갔다.

모래 위에 쓰러져 누운 나는 네 여자를 끌어안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히익! 깜짝이야…."

자다가 갑자기 웃어버린 나는 내 웃음소리에 깼다.

그리고 나 때문에 다 같이 일어난 네 여자.

어…. 근데 얘들은 또 언제 내 침대에 와있었냐.

"왜 자다가 웃고 그래!?"

"아…. 미안. 이상한 꿈을 꿔서."

"으. 진짜. 별일이 다 있네."

투덜거리는 세아. 아직 잠에 완전히 깨지 않았는지 다시 눈을 감고 눕는 모습.

키득 하고 웃는 승희도 다시 침대에 눕고 안나도 푸흐흐 하고 웃더니 눕는다.

미나만 싱긋 웃더니 다시 눕지 않고 입을 가리면서 나를 바라본다.

"미나 너도 다시 자."

"으음…. 안 그래도 일어나려고 했어요. 일어날 시간은 지났으니까요."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뭐야. 한 12시는 된 줄 알았는데.

"더 자도 되겠구먼."

내 말이 그저 빙긋 웃는 미나. 그러더니 머리를 한데 모아 손목에 있던 머리끈으로 질끈 묶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말없이 따라 나간 나는 미나의 목덜미를 바라봤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미나의 목. 솜털이 살짝 나 있는 매끈한 곡선.

뒤에서 보니 정말 예술이다.

포니테일에 새하얀 목덜미, 어깨로 떨어지는 곡선, 그리고 헐렁한 티와 그 안에서 얼핏 보이는 몸의 윤곽.

부엌으로 가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별로 놀라지 않고 내 얼굴에 머리를 기대는 미나.

"데이트. 어디로 갈지 정했지?"

"네. 정했죠."

"그럼 나 어제 있었던 일 벌여놓은 것만 다 마무리하고 바로 가자. 뒷정리는 해야 하니까."

"네. 그래요."

그러면서 미나는 몸을 돌려 나를 끌어안는다.

가녀린 몸이지만, 그녀의 체온은 나에게 충분하게 전해진다.

잠깐 그렇게 안고 있다가 가볍게 키스를 하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럼 마무리하고 올게."

"어머. 뭐 안 먹고 가려고요?"

"응. 괜찮아. 지금은 별로 배도 안 고프고."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와요."

미나와 인사하고 바로 장룡의 아지트로 순간 이동했다.

일할 시간이야 일.

이제 이것만 해놓으면 당분간은 좀 느긋하고 편안하게 스킬 숙련에만 몰두할 수 있어.

장룡의 아지트를 정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의 다 비전투원인 녀석들. 그런 데다가 스킬마저 못 쓰니…. 뭐 그냥 무저항이나 마찬가지다.

하나씩 하나씩 수납으로 삼키고, 결국 마지막 남은 건 장룡의 여자 여섯.

외모나 몸매 같은 걸 보면…. 살짝 아까운 느낌이 들 정도다.

아마 장룡 그놈이 가려 뽑은 여자들이겠지. 그 정도 능력이 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됐다. 짱개는 짱개지. 전부 다 수납으로 먹어치운다.

이제는 아무런 기척이 없어진 아지트. 역시 기척에 아무것도 안 느껴지면 기분이 좋단 말이지.

깔끔한 게 최고야. 깔끔한 게.

바로 의정부로 순간 이동했다.

내가 나타나자 집무를 보고 있던 민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한다.

"민희야. 바뻐?"

"네. 바쁘긴 한데…. 당신이 왔으니 조금 미뤄둬도 상관없어요."

"뭐가 그렇게 바빠?"

"시설 확충이랑…. 주민들 불편한 점들이랑…. 뭐 그런 거죠?"

"시설 확충이라. 그건 이제 필요 없겠네."

"네?"

"나랑 갈 곳이 있어. 가자."

"어…. 멀리 가요? 아니, 오래 비워야 해요?"

"멀리는 멀리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텐데?"

"그럼 무전 좀 하고 갈게요. 자리 비우면 걱정하니까."

"아. 무전할거면 이렇게도 전해. 이사갈 준비 하라고."

"네에? 또요?"

"걱정마. 이게 마지막일테니까."

민희는 무전을 했고, 그걸 마치자 바로 게이트를 열어 장룡의 아지트로 이동했다.

아지트에 도착한 민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주변을 살핀다.

하긴. 여기는 좀 눈이 돌아갈 만하지.

"세상에. 여기는 대체…."

"앞으로 너희가 살 곳이야. 축하해. 방주의 지도자님."

"네? 방주요???"

"어. 여기 이름이야. 내가 방금 지었어."

"진짜…. 당신은 정말 제멋대로인 남자네요. 지금껏 살면서 당신만큼 제멋대로인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잖아?"

"당연하죠. 좋으니까 이렇게 말하지."

"아. 그리고…."

"또 뭘 말하려고요. 기대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러네요."

"아쉽게도 지도자는 민희 너 혼자가 아니야."

"휴. 난 또 뭐라고. 그건 나에게도 희소식이네요. 드디어 어깨에 잔뜩 짊어진 걸 조금 내려놓을 수 있으려나?"

"아닐걸? 더 잔뜩 짊어질걸?"

"네에?"

"일단 여기 저장해. 그리고 캐슬로 돌아가서 이사 준비 하고 있어. 이따가 데리러 갈테니까."

"알겠어요. 하하…. 나도 정말 웃긴 거 있죠? 이제는 당신이 이렇게 막 마음대로 하는 것도 익숙해졌다니까."

"좋은 현상이네. 나중엔 니 몸도 내 맘대로 다뤄도 되지?”

“어머나. 아프지는 않게 부탁해요.”

그렇게 말하고 나랑 민희는 킥킥 하고 웃는다. 어휴. 나랑 이 여자도 정상이 아냐.

“혼자 돌아갈 수 있지?”

"물론이죠. 그럼…. 이따 봐요."

"그래."

민희는 순간 이동으로 돌아갔다. 좋아. 일단 민희는 됐고.

아차. 동두천엘 가려면 민희 쪽에서 가는 게 빠르지.

내가 다시 민희의 집무실로 가자 민희가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뭐 말 안 한 거 있어요?"

"아니. 이쪽에서 갈 곳이 있어서. 진짜 이따 봐!"

그렇게 밖으로 나가서 동두천으로 향한다.

동두천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건, 매번 타임 레코드를 찍는다는 것?

이제는 순수 비행만으로도 얼마 안 걸린다. 참나. 강해지는 걸 이런 식으로 느끼다니.

"짜잔!"

"오. 성철 씨!"

유난히 나를 반기는 정 부장. 늘 그렇듯 소파로 나를 인도하는 모습.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평양 공략을 완료했으니까요."

"이야…. 축하드려요. 피해는 없었고요?"

"네. 전혀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예상치보단 훨씬 낮았죠. 이 정도면 대성공이라고 봐도 될 거 같아요. 성철 씨의 그녀들도 다들 무사합니다."

이 아저씨…. 아직도 그렇게 부르네.

하긴, 내가 그렇게 부정하거나 한 건 아니니까. 게다가…. 이제는 뭐 어느 정도 신경 써줄 겨를도 있고.

"그럼, 그런 정 부장님에게 선물을 드려야겠네."

"선물요? 이거…. 조금 불안한데요."

"뭐가 불안해요. 선물이라니까. 지금 바로 자리 비울 수 있어요?"

"오래 걸립니까?"

역시 관리자들의 반응은 다들 비슷하네.

하긴, 최고 관리자의 부재는 그대로 혼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오래 안 걸려요. 지금은."

"지금은?"

"일단 가죠.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가시던가."

정 부장은 바로 인터폰을 하더니 누군가에게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말한다.

여기는 인터폰도 쓰네. 하긴, 내부망이면 어떻게 쓸 수는 있으려나.

정 부장을 데리고 장룡의 아지트로 갔다.

역시나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모습.

"허…. 이건."

"이사 준비 하세요."

"어억…."

"자세한 건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말해드릴테니, 일단 돌아가셔서 이사 준비부터 하세요."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에헤이. 불안할 거 없어요. 여기는 그 어느 곳보다 쓸만한 곳이에요. 짱개놈들 중에 가장 높은 놈이 쓰던 곳이니까."

"에엑?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니. 그런 이야기를 먼저 하라고요!"

"물론 해드릴 거에요. 근데 여러 번 말하기 힘들어서 다들 한자리에 놓고 이야기할 생각이니 일단 다시 데리러 갈 때까지 이사 준비부터 하세요."

"허허…. 정말…. 알겠습니다. 성철 씨가 말하는 거면 따르는 게 맞죠."

아직 열려있는 게이트로 다시 넘어왔고, 나는 일단 이곳도 저장했다.

어차피 나중에 게이트 열려면 저장해 놔야지. 어차피 저장 목록도 널널해졌으니.

"그럼 이따 봐요. 저는 한군데 더 갈 곳이 있어서."

그렇게 펜스를 나선 나는 이번엔 청평으로 날아간다.

그동안 방치해 두다시피 한 청평.

기껏 자리 잡은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내 맘대로 휘둘려줘야겠어.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그들도 이해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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