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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벙커가 좋은 점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푹 잘 수 있다는 거다.
빛이 들어오지 않기에 언제나 완벽한 어둠 속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잠에 민감한 나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
일어나서 시간을 보니 오후 세시다. 음…. 제법 잤네.
습관적으로 탐지를 돌린다. 잡히는 인원은 두 명.
파티의 효과로 인해 누군지 알 수 있을 거 같다. 위에 있는 건 승희와 미나네.
세아는…. 저 멀리 있고. 안나도 멀리 있네.
아. 하긴, 두 사람은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숙련 중이지. 멀리 있을 만하네.
밖으로 나가니 승희가 들개들에게 침묵을 걸고 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미나.
"개들이 놀라겠다야. 짖었는데도 소리가 안 나서."
"일어났어요? 아까 아침에 들어올 때는 얼굴이 상당히 안 좋았던데. 지금은 괜찮네요?"
"어. 한숨 잤으니까. 잠만큼 좋은 게 없지."
잠…. 그래. 잠 하니까 장룡 그 새끼가 떠오르네. 잠도 안 자고 숙련하던 새끼. 대체 뭐하던 새끼였을까?
그러고 보니 고룡 그 새끼도 수면을 안 당했지. 아…. 설마?
"맞다. 오빠. 저 화염 지대 마스터 했어요."
"어!?"
미나의 말에 생각하던 것들을 잠시 미뤘다. 그건 조금 나중에 생각해야겠네.
"진짜!? 오! 드디어!"
"찍을까요? 일부러 아직 안 찍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휴. 뭘 기다려. 찍어. 찍어야지. 츄라이. 츄라이. 승희야. 세아랑 안나 좀 불러 올래?"
"알았어요!"
"에…. 패시브 찍고, 메테오 하고…. 패시브 또 찍고…. 다음은…. 천국의 문. 찍었어요."
"아직 다음 스킬은 안 찍었지? 일단 패시브만 찍고 기다려."
"네. 와…. 7천만 코인이 순식간에 빠져나갔어…."
"이제 얼마 남았어?"
"아직 8,800만 정도요."
"으음. 아슬아슬하네. 또 잔뜩 벌어야지. 바쁘다 바빠."
잠시 기다리는데 승희가 혼자 돌아오더니 다급하게 말한다.
"오빠! 내가 갈 수가 없어!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뛰어가려니까 너무 아득한데!?"
"아. 맞다. 니가 못가는 구나. 여기 있어. 내가 금방 다녀올게. 미안. 내가 생각을 못 했네."
바로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봉인하고 블링크를 썼다.
"세아야! 미나 있는 데로 가!"
"어?"
"천국의 문 쓰러 갈 거야!"
"오!? 알았어!"
다시 블링크.
"안나! 가자! 미나 천국의 문 쓰러 갈 거야!"
"아? 그래요? 맞다. 잠시만요."
그렇게 비행을 쓰고 나에게 쓰윽 다가오는 안나. 그러더니 내 뺨을 잡고 찐하게 키스한다.
포개진 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안나의 혀. 달콤한 듯한 그 느낌에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빠지는 거 같다.
그리 길지 않은 키스. 입술을 뗀 안나가 나를 보더니 예의 그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갈까요?"
"어…. 그래."
안나 이 앙큼한 아가씨 같으니라고. 기습하는 게 나보다 솜씨가 좋네.
다시 블링크. 다들 한자리에 모였고, 나는 어디 게이트를 열지 고민한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짱개지만…. 짱개는 지금 신나게 모이는 중이다.
괜히 그놈들을 건드렸다가 모이는 계획이 취소되거나 변경되면 괜히 귀찮아져.
지금은 일단 놔둬야지.
그럼…. 어디로 가지?
미국? 거기 지금 자극하기는 좀 그렇고…. 러시아? 루블료프카? 거기 한 방 날릴까?
으음…. 그것도 마땅치 않은데.
아. 맞다. 큐슈! 후쿠오카. 거기 아직 정리 안 된 놈들이 좀 있지?
어디 보자…. 내가 큐슈 저장해 놓은 걸 아직 안 덮어씌웠지? 오. 있네. 좋아.
"가자! 다들 버프 꼭 쓰고. 게이트!"
후쿠오카 게이트가 열리고 네 여자가 모두 들어간다.
게이트를 건너가더니 아래에 펼쳐진 도시들을 바라보며 신기해한다.
"여긴 어디예요?"
"후쿠오카."
"일본? 여긴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여기 도시에 아직 니지이지구미라고 야쿠자들 남은 놈들이 있어. 그놈들에게 써보자. 찔끔 이라도 코인은 건져야지."
"아항."
고개를 끄덕이는 승희. 그런 그녀를 보며 탐지를 돌렸다.
오. 아직 기척이 많이 있네. 어디 보자…. 야쿠자. 야쿠자. 야쿠자. 제법 있다. 여기다 쓰면 되겠네.
"자. 여기서 써보자."
"여기서 바로 쓰면 돼요?"
"어. 여기 바로 밑이 야쿠자 놈들 아지트거든. 그냥 쓰면 될 거야. 근데…. 그거 공격 스킬 맞겠지?"
"글쎄요…. 우레 폭풍, 눈보라, 메테오를 찍은 다음 배운 스킬인데 공격 스킬이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으음. 일단은 써보자. 써보면 알겠지. 다들 긴장은 하고. 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 테니까."
"네. 그럼 씁니다?"
"어. 고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미나. 그리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친다.
"천국의 문!"
그렇게 그녀가 스킬을 쓰자….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구름?"
"먹구름…. 은 아닌거 같네요? 되게 솜털같이 새하얀 구름이네요."
하늘을 꽉 채운 구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작은 눈부신 틈이 생겨났다.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미나가 있는 곳을 비추는 빛. 안 그래도 이쁜 미나는 빛을 받아 온몸이 반짝거리는 거 같다.
"이쁘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승희. 그리고 멍하니 미나를 바라본다. 그건 세아나 안나도 마찬가지.
미나의 모습은 굉장히…. 신성해 보이네.
그리고 그 하늘의 틈에서 무언가가 내려왔다.
숫자는…. 여덟. 천리안으로 살펴보니 여자다. 근데 하얀 날개를 달고 있네? 설마? 천사야?
여덟 명의 천사는 미나가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그 천사들을 본 순간 미나가 입을 바로 틀어막았다.
"언니들!? 보라야…. 리아야!?"
언니? 미나가 언니가 있나? 근데…. 승희랑 세아의 표정은 왜 이래?
"페어리나인…."
"헉…."
"엥?"
그랬다. 솔직히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름을 듣고 보니까 알 것 같다.
미나가 속해있던 걸그룹. 페어리나인.
근데…. 저들이 저렇게 천사처럼 내려왔다는 건….
"흐흐흑…."
미나 역시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래. 어느 정도는 예견된 일이긴 하지.
하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확인하는 건 느낌이 다를 거야.
미나를 안아주는 천사들. 아니 페어리나인의 맴버들.
그리고 한 여자가 미나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리고 힘내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다.
다른 맴버들 역시 말은 하지 못해도 미나를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손을 잡는다.
그러더니…. 미나를 떠나며 손을 흔들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어…. 어어!"
근데…. 이게 끝이야?
하늘에 갈라진 틈으로 사라지는 페어리나인 천사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미나, 그리고 그걸 보고 역시 울고 있는 승희, 세아, 안나.
하지만 나는 속으로 살짝 실망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래. 미련을 버리는 데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
그리고 그리웠던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것. 그래 그것도 좋을 수도 있다.
근데 이런 효과가 끝인 건 조금 황당하지! 어떻게 찍은 스킬인데?
하지만…. 내 실망은 조금 일렀다.
페어리나인 천사들이 틈으로 사라지자마자 하늘의 틈이 엄청 커지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무수하게 많은 찬사가 쏟아져 내렸으니까.
"어…?"
나와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는 다른 여자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은 다 여자는 아니었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노인…. 가릴 거 없이 모두 새하얀 옷을 입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 천사들의 머리 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 아. 저걸 뭐라고 부르더라. 아. 틸든 현상. 그래. 그랬어.
근데…. 저 천사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땅을 내려다보니…. 야쿠자들이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
발이 얼어붙은 듯 꼼짝도 못 하고 몸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부들부들 떤다.
입은 불에 닿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중 몇 명이 내려왔다.
천사의 모습을 본 야쿠자. 그리고 안 그래도 커진 눈이 찢어질 것 같이 커진다.
맨손이었던 천사는…. 어느새 손에 긴 창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웃으면서…. 야쿠자의 가슴에 창을 박아넣었다.
두번째 천사 역시 창을 박아 넣는다. 세 번째, 네 번째…. 야쿠자 하나에 수많은 천사가 창을 찔러 넣는다.
더는 찌를 곳이 없을 정도로.
근데 이상한 건…. 야쿠자들에게 몰리는 천사의 수가 다 다르다는 거다.
어떤 놈은 몇십명의 천사가 붙어서 창으로 찌르고 있고, 어떤 놈은 두셋 정도밖에 안 된다.
게다가 야쿠자 말고 다른 민간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평범해 보이는 남자에게는 한 여자 천사가 창을 찔러 넣었고, 한 여자에게는 아이처럼 보이는 천사가 창을 찔러 넣는다.
그리고 천사가 공격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한 여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광경을 보며 벌벌 떨고 있지만, 그녀는 야쿠자들처럼 못 움직이거나 하진 않는 거 같다.
몸을 떨지도 않고 있고 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 천사가 다가간다.
눈이 커지는 여자. 그러더니 천사에게 와락 안긴다.
남자를 보면서 펑펑 울기 시작하는 여자. 그리고 천사는 말없이 그런 그녀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린다.
"하하…. 씨발…. 진짜 잔인한 스킬이네."
"왜….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미나가 눈물을 닦으며 물어봤고, 나는 내가 본 것들을 말해줬다.
"대체…. 그러면…."
"많은 걸 유추할 수 있지. 일단…. 미나야?"
"네?"
"혹시 평소에 너 맴버들 생각을 많이 했니?"
"아…. 네. 많이 했죠. 다들 정말로 친했으니까요."
"음…. 그럼 부모님은?"
"부모님이요? 그건 왜요?"
"뭐 좀 확인하려고."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생각하기도 싫고요."
"아. 그래? 사정이 있나 보구나. 그럼 굳이 물어보지 않을게. 어느 정도 대답이 됐으니까."
"네?"
잠시 생각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울어서 촉촉해진 눈을 닦으며 나를 바라보는 네 여자.
"천국의 문은 두 가지 효과가 있는 거 같아. 하나는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거."
"아마…. 죽은 거겠죠?"
"그런 거 같아. 안타깝게도."
"후우. 네에. 그렇겠죠. 보라랑 리아는 죽은 걸 제 눈으로 봤으니까. 민주랑 피니도."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미나. 그런 미나를 잠시 기다려준다.
"그리고요?"
"조건은 정확하게 모르겠어. 근데 대충 맞을 거라고 생각해. 야쿠자들이 유난히 천사가 많이 붙었으니까. 아마…. 자기가 죽인 사람들이 하늘에서 천사가 돼서 내려와 복수 하는 게 아닐까 싶네."
"헉…."
그러면서 불안한 표정이 되는 미나.
"저도…. 많이 죽였는데…."
"아마 시전자니까 괜찮은 거 같아. 나랑 승희랑 세아, 안나에게는 천사가 안 내려왔지 않아? 우리는 파티라서 공격의 대상이 안 된 거겠지."
"아…."
"만약 나도 파티가 아니었다면…. 천사가 엄청 붙었겠지. 난 저 정도 수준은 아니었을걸? 저만큼 밖에 없을 리가 없지."
"으음…. 그런데요."
"응?"
"그런 거 치고는 천사가 너무 적지 않나요? 야쿠자에게 붙은 천사는 그리 많은 건 아니었다면서요."
"어. 그건 생각나는 게 있어. 이 스킬 이름이 천국의 문이잖아. 아마….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사람만 천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
미나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다른 여자들도 그럴듯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조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 보여. 실제로 저 밑에 공격을 안 받은 민간인들도 많으니까. 음…. 잠깐만. 뭐 하나만 확인하고 올게."
나는 아까 천사가 안아줬던 여자에게 블링크 했다.
이미 사라져버린 천사들. 빛나던 틈도 이미 사라졌고 구름도 걷혔다.
하지만 아직 자리에서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 여자.
무효화와 수면을 걸고 기억 읽기를 한다.
조건이라. 뻔하지. 아마도 사람을 죽였냐 안 죽였냐가 아닐까?
이 빌어먹을 세상이 원하는 건 그거니까.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것.
역시 맞는 거 같다. 여자의 기억을 읽었지만, 여자의 기억에서 살인의 기억은 없다.
다시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블링크하고 내가 확인한 것들을 알려준다.
"되게…. 복잡한 스킬이네요."
"응. 근데 잘 모르겠네. 단지 그것만이라고 하면…. 효과가 너무 약해. 도망을 못가나? 보니까 못가는 더 같긴 했던 거 같은데."
움직일 수도 없었을뿐더러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했다. 입으로는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만약 이동 불가인 데다가 비명을 지르느라 스킬 사용 불가라고 한다면…. 엄청난 스킬이긴 하다.
범위 안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그냥 죽는다는 이야기니까.
물론, 죄가 있다면 말이지.
"그럼…. 더 확인해보자. 연속으로 쓸 수 있는지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