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40화 (62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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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회귀

미나의 손을 잡고 기억을 읽는다.

세상이 망하기 직전. 콘서트를 하는 모습.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환하게 웃는 미나는 정말 반짝반짝한 모습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에게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던 여자.

지금도 내 눈엔 과분할 정도로 이쁘지만 저 때의 모습은 그녀가 왜 그렇게 인기를 얻었는지 잠깐 보기만 해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빛나는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콘서트. 아마 맴버 각자가 솔로로 나오는 스테이지 인거 같다.

앞선 차례에서 환호하던 팬들은 조명 어두워지자 흥분하고 환호하던 걸 잠시 진정시킨다.

켜지는 스포트라이트. 무대 중앙에서 의자에 앉아 모습을 드러낸 미나.

그리고 잔잔한 반주와 조용하게 시작되는 미나의 노래.

차분한 시작. 평온한 노래 가사와 멜로디. 사람들은 그런 미나의 노래에 조금씩 빨려 들어간다.

미나의 기억이기에 어두워진 관객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의 시선은 똑똑하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느껴지긴 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천, 수만 명의 시선이라니.

으.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이 더 떨리네.

저 시선을 대체 어떻게 버티지? 그렇게 생각하면 미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여자라니까.

점점 고조되는 노래. 야광봉을 흔들고 있는 팬들.

노래는 점점 높아지고 어두웠던 무대는 천천히 조명이 켜지며 형형색색의 영상이 켜진다.

완전히 밝아진 무대.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노래.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에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미나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뻔했다.

이런 무대라면 직접 봤으면 좋았을걸. 노래하는 미나를 맨 앞자리 특등석에서 봤으면 더 좋았을 거야.

그렇게 미나의 노래는 끝났다. 박수와 환호, 그리고 감동한 표정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바라보고 나 역시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기억 읽기를 종료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미나. 이제는 그녀를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 차례.

그녀의 손을 놓고 약간 뒤로 물러났다.

"상태 회귀."

바로 내 입에서 스킬 이름이 튀어나왔고 미나의 몸이 과거로 회귀한다.

"어…? 되고 있는 거야?"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세아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린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고 있기에 미나의 몸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가 끝났을 때는 지금과 그렇게 달라지진 않았다.

키도 별 변화가 없어 보이고 몸매도 마찬가지다. 그저 얼굴에서 조금 앳된 모습이 보이는 정도?

"끝이에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미나.

"그런 거 같아. 뭔가 엄청 변한 건 아닌거 같네."

거울로 쪼르르 달려가 자신을 살펴보는 미나. 이리저리 몸을 살피더니 환한 표정이 된다.

"진짜 돌아왔어!"

그러면서 나에게 뛰어와 와락 안기는 미나.

어우. 열일곱의 미나는 기운이 넘쳤구나. 되게 스포티하네. 머리도 조금 짧아졌고.

나를 끌어안은 그녀는 예상했던 대로 울기 시작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아는 안나가 다가와 나를 안고 있는 미나를 안았고 미나 역시 안나를 끌어안는다.

서로 그렇게 끌어안고 울기 시작하는 두 여자.

그 모습을 보고 뭉클하게 바라보는 승희와 마음이 다급해진 것처럼 보이는 세아.

"나…. 나도!"

평소엔 과거에 대해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던 그녀지만 지금은 아니다.

역시, 그게 상처가 안됐을 리가 없지. 여자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번엔 자리에 앉아서 세아를 바라보며 내 무릎을 탁탁 쳤다.

투덜거림 없이 냉큼 와서 무릎 위에 앉는 그녀.

"넌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데?"

"3년 전. 2월."

"그렇게 시기로는 찾기가 힘든데. 그때 무슨 특별한 사건 같은 거 없었어?"

"사건?"

잠시 말을 잊는 세아.

"아니. 미안. 그런 안 좋은 기억 말고 그 당시를 특정할 수 있는 기억 같은 거."

"아…. 아아. 이해했어. 그거 기억 읽기가 키워드로 검색하는 것처럼 된다고 했지?"

"어. 맞아."

"그럼…. 고공동 냉동육 창고라고 기억을 읽어 봐. 그거면 되겠네."

그걸 들은 나는 세아를 끌어안으며 짧게 기억 읽기라고 중얼거렸다.

고공동 냉동육 창고라고? 이건 그 말만 들어도 무슨 상황인지 상당히 궁금해지네.

근데 3년 전이라….

세아는 나를 만나기 1년 전쯤에 백화점 놈들에게 탈출했다고 했다.

함께 산 지도 거의 1년이 됐으니…. 그런 거기서 1년 정도 잡혀있었던 건가.

근데 세아는 예전 모습이 어땠으려나. 부디 지금이랑 크게 차이가 없으면 좋겠는데.

세아의 기억을 살핀다.

고공동. 냉동육 창고. 생각보다 기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밤. 건물 옥상에서 커다란 창고 하나를 지켜보는 세아.

그렇게 새벽이 될 때까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녀는 조용하게 내려가 창고 자물쇠를 열었다.

그 창고 안에 있던 건 꽁꽁 얼어있는 고기.

그걸 본 세아의 표정이 환해졌고, 낑낑거리며 얼어붙은 고기 한 덩이를 챙긴 그녀는 그대로 나가 다시 자물쇠를 채우고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벗어난다.

한 가정집 같은 곳으로 온 세아는 그 고기를 해동하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멀쩡한 고기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그걸로 신나게 요리를 해 먹는 세아.

그리고 세아는 다음날 수도 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단순 배탈만으로 끝난 거면 그나마 다행이네. 웃겨 정말.

기억 읽기를 종료하자 세아는 내 무릎 위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랑 지금이랑 크게 차이는 없네."

"시끄러! 빨리해줘!"

무릎에서 세아를 내려놓고 바로 상태 회귀를 쓴다.

정말 뭐가 변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의 세아.

하지만 세아는 달라진걸 느꼈나 보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기쁨.

미나와 안나가 다가와 세아를 안아줬고 아까는 울던 그녀들은 이번엔 좋다고 웃는다.

"어…. 끝난 거죠?"

승희의 말에 다들 승희를 바라본다.

"그럼…. 이제 여기에서 가장 언니는 저네요?"

그 말에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게 그렇게 되나?

"신체 나이는 가장 언니 맞네."

내가 말하자 다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약간 당황해하는 모습.

"기억은 그대로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미나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무래도 언니라는 포지션을 놓치고 싶진 않은가 봐.

걸그룹 할 때 막내였어서 그런가? 약간 집착하는 느낌?

"근데 나는 씅희에게 언니라고 부를 수 있어. 씅희 언니!"

안나가 그렇게 부르자 승희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안나를 끌어안았다.

그래. 지금 안나는 확실히 귀여워진 구석이 있지.

"근데…. 나이가 어려지게 만드는 게 된다면 키가 커지게는 안 되는 거야?"

전혀 변한 걸 느낄 수 없는 세아가 투덜거리며 말한다.

"글쎄. 성장이랑 상태 회복을 조합하면 될까? 성장이랑 회귀? 음…. 노화랑 상태 회복을 섞으면 나이가 많아지게는 될거 같은데. 근데 나이 먹은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는데. 스킬이 써지나?"

"그래도 다들 원래 나이까지의 모습은 알고 있잖아요. 그만큼 까지는 늘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네. 거기까지는 가능하겠어. 근데 노화면 회귀가 아니니까 그냥 쓰면 나이를 먹을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우연히 조합해낸 스킬 때문에 벙커 안의 평균연령이 대폭 낮아지게 됐다.

참나. 이런 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근데 오빠."

"응?"

나를 바라보는 승희. 쟤 눈을 왜 저렇게 뜨냐. 뭔가 음흉한 속셈이 있는 느낌인데.

"그 스킬. 스스로도 쓸 수 있어요?"

"어?"

승희의 질문에 다들 나를 휙 하고 바라본다.

뭐…. 뭐야? 얘들 눈초리 왜 저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된 오빠도 보고 싶은데."

가볍게 던진 승희의 말이지만, 미나와 세아, 안나는 그걸 듣고 기묘한 욕망 같은 게 생긴 거 같은 모습이다.

특히 세아랑 안나. 나를 보는 눈이 상당히 음흉해졌다. 어…. 이거 약간 위험한 거 아냐?

"나…. 난. 싫어."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안나는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세아는 확실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거 같다.

이녀석은 분명히 자기보다 작아진 나를 어떻게 해보고 싶은 게 틀림없어. 저 눈 봐라.

저거 분명히 그런 생각 하고 있다니까.

"오빠. 음. 나 소원이 하나 있는데."

세아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는다. 너무나 의도가 뻔한데?

"안 해."

"뭘 말할지 알고 안 한다는 거야?"

"내가 너보다 작아지려면 거의 초등학교로 돌아가야 할걸?"

그 말에 상처받은듯한 표정을 짓는 세아.

"큭…. 젠장. 어떻게 눈치챘지?"

근데 미나와 안나의 표정은 더 수상해졌다. 그리고 둘이 뭐라고 속삭이더니 거기에 승희와 세아도 낀다.

뭔가를 깊이 있게 토론하는 듯한 모습. 이건…. 뭔가 불안한데.

"다들 뭔가 착각하는데. 나는 지금보다 작아지고 싶은 생각 조금도 없어. 만약 한다고 해도 그건 다시 원래 나이로 돌아오는 스킬을 배우고 난 다음이야."

"그럼 그건 뭘 배워야 하죠? 성장?"

"나도 모르지. 그게 될 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어. 게다가 성장은 아직 배울 계획이 전혀 없고."

다시 모여서 수군거리는 여자들. 이거 살짝 불안한 느낌인데.

"난…. 나간다."

"어어!? 어디 가요! 가지 마요!"

나를 붙잡는 승희. 그리고 다른 세 여자도 나를 붙잡는다.

"난 아직 배울 스킬이 많다고. 보호막도 마스터 해야하고 그다음엔 데미지 감소야. 그리고 추적도 배워야 하고 그다음엔 번개 같은 반사신경에…."

"오빠. 성장은 꼭 필요한 스킬이야. 만약 우리가 더 식량을 못 구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우리가 키워야 하잖아."

"그럼 너희가 배우면 되잖아."

"아…. 맞네."

바로 꼬리를 내리는 세아.

"그리고 너희가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내 어렸을 적 모습은 그렇게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보기 좋은 모습은 아냐. 지금이라고 다를 거 없지만."

"오빠면 무슨 모습을 하고 있어도 좋아요."

"맞아. 썽철이라면 그렇지."

무슨 광신도 같은 미나와 안나의 반응. 이거 살짝 무서워해도 되는 거지?

"근데…. 나는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오빠도 좋을 거 같아. 중년 정도?"

세아의 말에 갑자기 승희와 미나가 눈을 빛낸다.

이것들 아주…. 평소의 망상력을 죄다 드러내는 거 같은데.

"아무튼, 당분간은 성장 배울 일이 없어. 게다가 그게 확실하게 그런 스킬로 조합된다는 보장도 없고."

"우리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오빠 스킬 배우는 데 이틀이면 된다면서요. 서로 원하는 게 있으면 거래를 해야 하는 게 맞죠. 그러니 말해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들어줄게요. 대신 오빠도 성장 배워요."

당당한 말투의 승희. 그래도 얘는 자세가 됐어.

원하는 게 있으면 조르는 게 아니라 합당한 거래를 제안한다니. 정말 합리적이라니까.

"하. 그래. 그럼…. 일단 내가 보호막 마스터 할때까지는 생각해볼게. 아니. 데미지 감소 숙달할 때까지는 생각해볼게."

"나흘 정도인가요?"

"어."

"음…. 알겠어요. 그 정도야 뭐….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죠."

어쨌든 이야기가 상당히 이상하게 변해버렸지만, 어쨌든 잘 마무리됐다.

문제는 미나와 세아가 나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건데.

"아참. 오빠."

"응?"

나를 부르는 미나.

"나. 침묵 마스터 했어요."

얼래? 야한 생각 하는 게 아니었나? 스킬 생각을 하는 데 저런 눈빛이라고?

"오. 잘했네. 그럼 이제 패시브 다 찍고 봉인 찍으면 되겠어. 이로써 우리 모두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서 면역이 됐네."

아마 세상 사람들을 강한 순서로 줄을 세우면 이 넷은 스무명 안쪽에 들어가지 않을까?

잘하면 열 손가락 안에도 들어갈 수 있을 거다.

봉인과 스킬 사용 불가 지대는 그만큼 압도적인 능력이니까.

"나도 봉인 마스터 했는데."

"그래? 잘했네. 그럼 넌 이제 뭐 찍을래?"

이번엔 세아의 말. 스킬 선택에서 자유로워진 그녀는 이제 알아서 자신의 진로를 정하면 된다.

"나. 그거 원트 찍을래."

"아. 그럴래?"

"어. 아무래도 그게 훨씬 좋아 보이네. 그걸 배우는 게 맞는 거 같아."

"잘 생각했어. 그럼 너도 생산, 제조 스킬부터 찍어야겠네."

"결국, 그건가."

원트를 배운다고? 그럼 얘들에게도 전부 알려줄 때가 됐네.

다행히 상태 회귀로 신체 나이를 어려지게 만드는 방법도 알아냈으니 타이밍도 딱 좋고.

그래. 더 미룰 수는 없지. 얘들도 알건 알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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