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36화 (62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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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나를 바라보는 신영.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금의 상황에 몹시 분개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몸 안에 들어있는 내 자지를 꺼내자 주르륵하며 정액이 흘렀고 그런 그녀를 땅에 내려놓자 눈을 질끈 감는다.

"자. 이쁘게 츄 해줘야지?"

눈을 감고 있기에 내가 싱글거리는 모습은 못 보고 있는 그녀.

하지만 결심한 듯 바로 눈을 떴고 한숨을 푹하고 내쉬더니 내 앞으로 한걸음 다가온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신영.

"뭐해? 안 할 거야? 그럼 다시 섹스하고."

"한다고! 보채지 마!"

몸을 가늘게 떨면서 다시 한숨을 쉬더니 다시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온 신영.

그러더니 눈을 또 질끈 감고 내 입에 자신의 입술을 댔다가 바로 몸을 뒤로 뺀다.

"뭐 하는 거야?"

"하라는 대로 했잖아!"

"이래서 처녀는…."

"뭐!?"

"그게 키스냐? 입맞춤도 이렇게는 안 하겠다."

"으…."

"똑바로 해. 이건 니가 선택한 거야. 대충하고 말 거면 그만두고."

복잡한 표정으로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내색을 팍팍 하는 여자.

내가 그녀의 오빠와 벙커 안에 있던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말. 그걸 하지 않았으면 상황이 조금 달랐을까?

모르겠다. 그럼 이 정도로 표독스럽진 않았겠지.

맘에 안 드는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것과 진심으로 키스하는 것.

어느 게 더 끔찍할까? 그것도 모르겠다.

강간이 최악이고 키스하는 게 차악이니 키스를 골랐겠지?

우물쭈물하며 다시 다가오는 신영.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절대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 키스가 아니다.

보는 것만 해도 끔찍한 영장류 비슷한 무언가에 그저 입술을 대는 모습.

제 딴에는 됐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입술을 떼고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더럽고 아니꼽지만 어쨌든 해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

"신영아."

"왜! 또 뭐!"

무효화와 매혹을 걸었다. 그러자 나를 보고 화사하게 웃는 그녀.

"나한테 키스해줄래? 사랑스럽게?"

그러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다가와 나에게 키스한다.

입술과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고 그녀의 혀가 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서로 얽히는 혀와 느껴지는 타액의 맛.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 몸에 기대고 내 온몸을 쓰다듬는다.

한참을 그렇게 쪽쪽 거리고 떨어진 나와 신영.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말했다.

"그래 신영아. 이게 키스야. 다음부터 내가 말하는 키스라고 하면 이런 걸 말하는 거야. 알겠지?"

"네. 마스터."

대답은 매혹 걸린 신영이가 했지만, 내가 말한 건 매혹 걸리지 않은 신영에게 한 거다.

다음번에 매혹이 풀리면 그렇게 하라는 말.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우웅…."

신영이에게 썼던 무효화 때문에 수면에서 깨어난 엠마.

그런 그녀에게도 매혹을 리필했다. 그리고 두 여자에게 말한다.

"나 좀 씻겨라."

"네. 마스터."

두 여자와 함께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벗은 몸을 보고 있자니 내 자지는 아직도 발기돼서 풀릴 생각을 안 한다.

하. 정말. 돌았네. 대체 언제까지 서 있을 셈이야?

그렇게 씻고 옷을 입은 뒤 두 여자에게 방을 정리하라고 지시한 다음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바깥 소파에 앉아있던 가인이 나를 바라보더니 흠칫 놀랐고, 의아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뭐야? 왜 놀라?"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딱 봐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묘하게 붉어진 얼굴. 수줍어하는 모습, 약간 어정쩡한 자세.

"뭐했어? 솔직하게 말해."

"자위…. 했습니다."

대단하다. 매혹은 정말 대단해. 그 누구보다 얌전해 보이는 아가씨가 옆방에서 섹스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위나 하고.

레나가 오려면 멀었나? 스무명 잡아 오는 게 그리 금방 걸리진 않을 텐데.

한 김에 가인이기도 해볼까? 아니지. 뭐 그렇게 서두를 건 없지.

"함부로 자위한 벌이야. 넌 다음에 하자."

울상을 짓는 가인. 아주 난리네 난리야.

매혹은 정말 끔찍하다니까. 사람을 상식개변 수준으로 만들잖아.

그렇게 소파에 앉아 레나를 기다린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30분만 기다려보고 안 오면 그냥 가야지.

그 시간 동안 나는 스킬 숙련을 하고 있으면 되니까.

그렇게 상태 회복 숙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쭉쭉 올라가는 숙련도. 적절하게 포션을 섞어 마시면서 숙련한다.

그렇게 25분이 지났을 때 마침 돌아온 레나.

"돌아왔어요! 마스터!"

"몇 명이야."

"스무명이요!"

"그럼 저 방으로 가서 전에 내가 했던 대로 해. 방법은 알지? 두 번이나 해봤으니 알 거 아냐."

"네에…. 근데 마스터는요?"

"난 갈 거야."

그러면서 레나에게 무효화와 매혹을 건다. 가인이도.

아까 이걸 해 놨으면 그냥 갔어도 됐는데.

그걸 안 해놔서 멍청하게 기다렸네. 어휴.

"벌써 가세요오?"

"말 끌지 마."

"네."

"제약 해제 때문에 파티 해제는 안 풀릴 거야. 신영, 가인, 엠마는 항상 파티에 넣어놔. 그리고 서민준 저놈도."

"네. 알겠습니다."

"다른 놈들은 다 죽여도 서민준 저놈은 죽이지 말고 매혹 리필 항상 해놔. 그리고 파티 마스터 하면 저놈 혼자 내보내서 틈틈이 사냥하라고 해."

"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뭔가 말하려는 게 하나 더 있었는데.

"아. 맞다. 너 지금 매혹 인원 몇 명이지?"

"아직 여덟 명요."

"아. 코인 없지? 그래서 패시브 다 못 찍은 건가?"

"네."

"그래 그럼 됐어. 나는 갈 테니까 쟤들 숙련 잘 봐줘. 엠마!"

"네! 마스터!"

엠마가 방에서 튀어나왔고 그런 그녀에게 말한다.

"레나 지시에 맞춰서 광역 스킬 무효화 마스터 찍어. 그리고…. 매혹보단 반사부터 스킬 배워."

"네. 알겠습니다."

"난 간다. 이틀 뒤에 보자."

그렇게 말하고 벙커로 돌아왔다.

위치스는 편리하긴 하지만, 번거롭다.

방주는 번거롭진 않지만 막대할 수 없고.

역시 사람과의 관계가 많아질수록 나 자신의 한계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스킬이나 세계 정복 같은 건 그런걸 못 느끼겠는데.

역시 인간이 가장 무서워. 어렵고.

"오빠 왔어요?"

바로 방으로 들어오는 승희.

방금까지 밖에 있더니 바로 내려왔네. 순간 이동이 있다 이거지?

"응. 안 잤어? 아. 아니지. 여기는 아직 잘 시간이 아니구나."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데 시간이 헷갈려요."

"미국."

"미국? 아메리카?"

"어. 시차가 완전 반대라서 정신없네."

"피곤하겠다. 바로 잘 거예요?"

"음…. 자긴 해야지?"

"으음. 그래요? 그럼 자고 일어난 다음에 말해야겠네."

"뭘? 지금 말해도 돼. 바로 잠들 건 아니니까."

"아아. 순간 이동 마스터 했다고요."

"오. 열심히 숙련하고 있네. 그럼 게이트 찍겠네?"

"아. 그것 때문에요."

"음?"

"게이트 말고 다른 거 배워야 할 거는 없어요?"

"아아. 글쎄. 딱히 없지? 원트를 목표로 할 게 아니라면 모를까."

"흐음. 그래요? 그럼 그냥 게이트로 해야 하나."

"순간 이동까지 찍었는데 게이트까지는 바로 찍는 게 낫지."

"그래요. 그럼 게이트 배우죠. 뭐. 아. 그리고."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승희는 웃으면서 말한다.

"나도 밖에 돌아다녀 봐도 돼요?"

"아아. 난 또 뭐라고. 당연하지. 세아처럼 하고 싶은 거지?"

"네. 이젠 순간 이동도 있어서 밖에 나가도 될 거 같아서요."

"그래. 그렇게 해. 솔직히 지금 세상에서 너희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테니까. 대신…. 조심해야 해. 방심은 절대 안 되고."

"알았어요.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죠."

"근데…. 어딜 가고 싶은데?"

"아. 저도 일본요. 한 번도 안 가봐서…."

"가도 이젠 뭐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요.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 그렇게 해."

"고마워요. 걱정 안 시키고 잘 다닐게요."

그러면서 다가와 입 맞추고는 순간 이동으로 휙 떠나는 승희.

귀엽다니까. 하는 짓이 참 귀여워.

그런데 그런 승희와의 키스로 아까 했던 신영이와의 키스를 생각하는 건…. 내가 너무 쓰레기 같지?

하긴, 내가 뭐 세상이 망한 이후로 쓰레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겠느냐마는….

침대에 누웠지만, 신영이에 대한 생각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참…. 많은 일을 당한 여자다.

특히 기억에 관해서 너무 많이 당했어. 그렇게 너덜너덜하게 당해놓고도 지금 멀쩡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

아니지. 매혹을 풀면 정상은 아니니 멀쩡하다고는 할 수 없네.

기껏 기억 조작을 제법 그럴듯하게 해 놨는데…. 미나의 말 때문에 충동적으로 다시 돌려놨었지.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고.

근데…. 이렇게 매혹을 계속 걸어놓고 있으면 그건 기억 조작해놓은 거랑 크게 다를 게 없잖아?

차라리 그냥 한 번만 더 기억을 건드려 놓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그런다고 내가 그녀의 오빠를 죽인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신영이와 고성연. 그 두 여자 말고는.

그 두 사람의 기억에서만 그걸 다시 지워버리면…. 상관없지 않을까?

어차피 내 양심 같은건 이미 닳고 닳아서 별로 의미도 없고.

미련. 아무래도 나는 그 여자한테 미련이 남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랫동안 신경을 쓸 이유가 없지.

모르겠다. 그건 조금 천천히 생각하자.

사실 주기적으로 매혹을 리필하러 가는 것도 귀찮아지긴 했어.

한 번만 삐끗해서 타이밍이 늦어지거나 내가 무슨 일을 당해서 당장 리필을 못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나게 된다.

뿔뿔이 흩어져버리면 답이 없어. Q&A를 쓰면 되긴 하겠지만…. 효율이 너무 안 좋아.

이건 한번 손을 볼 필요가 있긴 해. 너무 불안해.

기억 조작이라는 좋은 스킬을 놔두고 계속 매혹을 쓸 필요는 없지.

단기적으로 소모품처럼 쓰려 했을 때야 그게 나았지만…. 길게 볼 생각이라면 차라리 기억을 조작하는 게 나아.

에휴. 그래. 걔들 생각은 그만하고 일단 잠이나 자자.

이렇게 생각하다간 한도 끝도 없잖아?

게다가 어쩌면 오늘이 내가 잘 수 있는 마지막 잠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잠에도 신경을 쓰자.

근데 웃기네. 마지막 잠이라니.

상태 회복을 마스터 하고 패시브 화 해버리면 다시는 잠을 잘 수 없을 테니 마지막 잠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표현이 웃기네.

다시 찬찬히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갑자기 훅 다가오는 이상한 기분.

잠을 포기한다는 것. 잠을 극복한다는 것.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다르다. 애증의 관계.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관계.

그런 잠과 결별하기 전날 밤인 거다. 오늘은.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선택일까?

일단 장룡 그 새끼를 지켜본 바로는 크게 문제는 없는 거 같았다.

근데 해봐야 고작 한두 달이잖아. 잠을 안 자고 오래 있으면 뭐가 문제가 되긴 할 거 같은데.

피할 수 없는 수면. 이 스킬이 상태 회복을 패시브 화 해놓은걸 뚫고 수면을 걸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안 된다. 무효화와 수면의 조합인 스킬.

상대에게 걸려있는 버프를 지우거나 우회해서 수면을 거는 스킬이다.

그걸 제대로 확인 안 해봤네. 반사나 상태 회복이 지워지고 수면이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버프는 남아있는데 스킬이 들어간 것인지.

아. 나한테 확인하면 되겠구나? 바보네. 바보야.

어차피 불면증 때문에 한 번에 잠들진 않을 테니 바로 확인해보자.

먼저 나에게 상태 회복을 걸었다. 그리고 머리속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수면을 생각한다.

"수면."

아. 버프가 지워지네. 그럼 피할 수 없는 스킬 시리즈는 상태 회복이나 반사를 지우고 들어가는 스킬인가 보네.

단일 무효화와 스킬이 따닥 하고 들어가는 시스템 인 거구나.

그렇다면 상태 회복이 패시브로 돼버리면 피할 수 없는 수면으로도 잘 수는 없는 거였네.

에이…. 뭐가 피할 수 없는 수면이야. 잘만 피해가잖아. 씨발.

이름으로 사기 치고 있네. 하여간, 이놈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쩝…. 그러면 역시 잠하고는 안녕이구나. 결국은 그렇게 되네.

그렇게 잡생각을 마치고 드디어 잠을 잘 준비를 했다.

왠지 좀 웃기네. 세상에 이런 고민을 하는 놈이 나 말고 있을까?

웃기네. 진짜 웃겨. 내일 당장 뒤지는 사형수도 아닌데 마지막 잠이라니.

정말로 이제 잡생각은 모두 끝내고 가만히 누워 나에게 수면을 건다.

"수면."

역시 한 번에 잘 수 있을 리는 없지.

"수면."

그래. 두 번 만에 잠든 적도 손에 꼽긴 해.

"수면."

에휴. 마지막까지 쉽게 잘 수는 없구나.

"수면."

에이. 씨발. 지랄하네. 좀 자자!

"수면."

그리고 나는 드디어 마지막 잠이 들 수 있었다.

눈을 떴을 때는 약간 센치한 감정이 들었다.

흑. 내 마지막 잠이 떠났어. 녀석이 가버렸어. 씨발 새끼.

생각해보면 이것도 참 웃기는 주접이다.

분명 스킬을 어떻게 조합해보면 다시 잠을 잘 방법도 있을 텐데.

적당히 하자. 적당히. 뭐든 과하면 꼴 보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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