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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 서른다섯, 서른여섯, 서른일곱 번째 스킬
"뭐야? 방금 뭐였어? 반사를 썼는데 수면이 들어가?"
세아는 내가 한 짓을 눈치채고 바로 물어본다. 역시 센스가 있어.
"이건 나도 테스트를 더 한 다음 말해줄게. 암튼…. 난 다시 테스트하러!"
그렇게 말한 나는 뉴욕으로 순간이동 했다.
좀 조용한 곳이 필요해. 이제부터는 중요한 일을 할 테니까.
아. 그전에…. 위시 부터 한번 써봐야지.
중요한 건 마지막에 해야 하니까.
"위시."
[원하는 물건을 말하세요.]
이야. 마지막 스킬들이라 그런지 이건 좀 스킬들이 알기 쉽네.
그럼…. 어디 보자. 내가 원하는 물건? 아. 그걸 생각 안 해봤네.
내가 원하는 물건이라…. 없는데? 딱히 필요한 게 없어. 뭐가 있지?
아. 하나 있네.
"GPS가 작동되는 지도."
[적합성 확인 중.]
어? 설마 되는 거야? 에이. 설마?
[해당 물건은 거부되었습니다.]
역시. 될 리가 없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이 일찌감치 막아 놓은 것들이니까.
아. 그럼 뭐로 하지. 졸라 귀찮네.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원하는 물건을 말하세요.]
"최면 어플."
[적합성 확인 중.]
"아냐 아냐. 헛소리였어. 그런 거에 일일이 반응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미 접수가 됐나 보다. 그러더니 다시 메시지가 뜬다.
[해당 물건은 거부되었습니다.]
그래. 씨발. 어차피 매혹이 있는데 최면 어플이 무슨 소용이야. 그냥 해본 소리란 말야.
아. 정말. 내가 이렇게 물욕이 없는 사람이었나? 이 정도로 생각이 안 날줄은 몰랐네.
"쿼터 파운드 치즈버거 세트."
[적합성 확인 중.]
되는대로 그냥 말해봤다. 이건 되겠지? 안될 이유가 없는데.
[해당 물건의 대가는 880코인입니다. 지불 하시겠습니까?]
얼래? 고작 그거밖에 안 된다고? 미쳤네? 그럼 안 먹을 이유가 없지.
"어."
[지급 중.]
그런 메시지가 뜨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 허공에 코인 주머니 같은 게 생겨났다.
그걸 만지자 특유의 갈색 봉지가 나타났고 나는 그걸 집어 들었다.
"이야…."
햄버거, 감자, 그리고 콜라. 미쳤네. 그리고 가격이 더 미쳤어. 880코인이라니.
어떻게 보면 존나 싼데…. 인간이 처음에 기본으로 가지고 있던 코인이 500코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또 애매해진다.
근데 내가 알 바 아니지. 어차피 나는 270억이나 있거든.
앞으로 평생 햄버거만 먹고 살아도 굶어 죽을 필요는 없겠어.
어쨌든 됐어. 위시는 잘 작동하니까 놔두자.
나중에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그때 또 쓰도록 하고….
이제는 진짜 가장 중요한 스킬. Q&A의 차례.
"Q&A."
햄버거를 우물우물 씹으며 중얼거리자 또다시 메시지가 나온다.
[원하는 질문을 말하세요.]
이야…. 드디어 떴다. 드디어 세상을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한마디 할 수 있게 됐어.
"개 씨발 새끼들아! 대체 왜 스킬 설명을 안 넣어놓은 거야!?"
[적합성 확인 중.]
이런 질문이 먹힐 리가 없다. 적합성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저 햄버거와 감자를 내 입에 마저 쑤셔 넣는다.
아. 존나 맛있네. 씨발. 왜 이렇게 맛있어.
[해당 질문은 거부되었습니다.]
역시,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거부당했다. 어쨌든 모든 대답을 해주진 않는다는 소리지.
[원하는 질문을 말하세요.]
"내가 Q&A를 찍은 몇 번째 사람이지?"
[적합성 확인 중.]
이것도 대답이 나올까? 상당히 우회한 질문이긴 하다.
내가 세상에서 몇 번째로 강해요? 이런 질문은 당연히 대답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강함의 척도를 어떻게 측정할지도 모르는 데다가 그런 걸 넙죽넙죽 알려줄 리도 없어.
[해당 질문은 거부되었습니다.]
에이 씨발. 역시 안되네.
대체 되는 질문이 뭐야? 병신 같네.
[원하는 질문을 말하세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한 사람이 되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지?"
이건 고룡 그놈도 했던 질문이다. 그리고 대답을 듣지 못했지.
역시 거부된 질문. 그래. 그렇다면.
"임신할 수 있는 방법은?"
[적합성 확인 중.]
과연. 이것도 대답해 줄 수 있을까?
이 질문 역시 녀석들의 의도와는 완벽하게 상충한다.
녀석들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하지만 임신할 수 있다면? 아이가 계속 나온다면?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 그렇기에 녀석들은 처음부터 임신을 막은 거야.
[해당 질문의 대가는 인간 천명의 목숨과 천만 코인입니다. 지불 하시겠습니까?]
얼래? 뭐야? 떴어?
대답이 있다고? 방법이 있어?
미쳤네? 미쳤어? 말이 안 되는데?
바로 예를 눌렀다.
그러자 가진 코인 중 천만 코인이 날아갔고, 스킬 창의 Q&A 옆에 0/1,000이라는 글자가 떴다.
그럼…. 천명을 죽이라는 소리잖아? 천명이라. 금방 하지. 어려울 거 없어.
바로 뉴욕 한복판에서 카타스트로피를 쓰려다가 관뒀다.
여긴 고성연 그 여자가 있잖아? 그 아들이랑.
사실 별 미련은 없지만…. 그래도 좀 그래. 내가 이런 걸 따지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걔들은 좀 놔두자.
바로 벵갈루루로 순간이동 했다.
거기라면 인간이 아직 꽤 남았겠지. 고작 천명 정도야 금방 죽일 수 있어.
한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자 인기척들이 제법 느껴진다.
역시 많네. 인도만 한 곳이 없지.
바로 카타스트로피를 날린다. 한 열 번 정도.
데스 윈드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나도 이젠 빨리 공격 스킬을 얻어야 하는데 말이지.
금방 몰아치는 재난들. 뭐가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다.
일단 지진과 한파, 산불, 산사태는 확실하다. 게다가 쥐도 나온 거 같은데…. 오히려 쥐들은 힘을 별로 못 쓰네. 다른 재난 때문에.
0/1,000이었던 숫자는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카타스트로피로 죽인 것도 카운팅이 되나 보네. 간접 살인이라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숫자는 거의 백 단위로 올라갔고, 카타스트로피가 끝나기도 전에 1,000/1,000이 되었다.
그러자 뜨는 메시지.
[답변 중.]
두근두근하는 마음.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근데 답변이 된다고? 와씨. 세아가 이걸 들으면 엄청 좋아하겠는데?
[답변 : 없습니다.]
어?
어이가 없어서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뭐라고?
허…. 정말. 하. 이게.
"야이 미친 씨발 좆같은 개새끼들아! 으아아악! 장난하냐! 이런 개 호로 잡놈 새끼들이! 씨발! 개새끼들아! 니들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야이 씨발! 야! 재밌냐!? 재밌어!? 이 개 같은! 아오! 이 씨발!"
정말. 미친 사람처럼 한참을 길길이 날뛰었다.
잠깐이라도 기대한 내가 병신같고, 고작 이딴 대답을 들으려고 천명의 목숨과 천만 코인을 날린 게 어이가 없다.
놀림당했다는 느낌과 방법이 없다는 확답을 들어버린 것에 대한 짜증.
그리고 이런 나를 보면서 혹여나 낄낄거리고 있을 녀석들을 생각하니 더욱더 화가 치민다.
"하아. 하아. 하아. 씨발."
분이 안 풀리네. 개새끼들.
머리에 몰린 피가 어느 정도 빠지고 기분도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린 나는 다시 심호흡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Q&A."
[원하는 질문을 말하세요.]
"최후의 한 사람만 남는 거 말고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을 끝낼 방법."
[적합성 확인 중.]
씨발. 그놈의 확인. 뭔 확인이 이렇게 길어?
[해당 질문의 대가는 인간 천명의 목숨과 천만 코인입니다. 지불 하시겠습니까?]
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 천 명과 천만 코인인 걸 보고 싸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고룡 녀석이 답변을 들었을 때는 만 명과 일억 코인이었다.
하다못해 장룡 녀석의 아지트를 알아내는 데도 천오백 명이랑 천오백만이었고.
씨발…. 이걸 확인해야 해? 말아야 해?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해본다.
예를 누르자 천만 코인이 차감됐고, 또 0/1,000이떴다.
조금 이동해서 다시 한번 카타스트로피를 썼고 천명은 금방 채워진다.
[답변 중.]
기대는 안 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뜬 메시지.
[답변 : 없습니다.]
씹새끼들. 복붙이냐? 매크로야?
아. 씹…. 진짜. 이거 답변한 녀석 면상을 아스팔트에 갈아버리고 싶네.
그래도 어떻게 보면 편법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천명의 목숨과 천만 코인을 요구하면 그건 없다는 뜻이랑 같다는 거?
물론 겨우 두번 확인한 거라 표본이 부족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답변이 간단하고 짧을수록 요구하는 게 적은 느낌이야.
근데. 그건 그렇다고 치고….
무기력해지는 느낌이다.
결국, 이 세상은 망한 거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이 남아있긴 했지만…. 이제는 그게 확실하게 끝나버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이렇게 망해버린 세상에서 더는 후손을 보지 못하고 살다가 빛이 되어 죽는 것만 남은 거야.
처참하네. 이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처참해.
"Q&A."
[원하는 질문을 말하세요.]
"세상에 남아있는 인간의 숫자는?"
[적합성 확인 중.]
이건 답변을 해주려나?
지금까지 내가 물어본 것들은 전부 녀석들의 뜻에 반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어쨌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되려면 세상에 몇 명이 남아있는지는 알아야지.
[해당 질문의 대가는 인간 만 명의 목숨과 일억 코인입니다. 지불 하시겠습니까?]
"오…."
떴다. 만 명의 목숨과 일억 코인.
적어도 이건 제대로 된 답변을 준다는 소리겠지?
바로 예를 누르고 일억 코인이 빠지는 걸 지켜본다. 아 씹…. 이건 좀 아깝네.
스킬 옆에 0/10,000 이 떴고 나는 바로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카타스트로피. 카타스트로피. 카타스트로피.
기척이 느껴지는 곳마다 재앙을 뿌리고 다녔고, 숫자는 금방 촤르륵 올라간다.
고작 질문의 답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도 참…. 정상은 아니네.
근데 어차피 정상의 개념이 사라진 곳이잖아? 인제 와서 이런 생각 하는 것도 웃기고.
만 명의 목숨은 생각보다 금방 채워졌고 이제는 익숙해진 메시지가 뜬다.
[답변 중.]
씹새끼들. 만 명에 일억까지 바쳤는데 개소리를 찍찍하진 않겠지?
애초에 알려주기 싫었다면 거부했거나 천명에 천만을 요구했을 거야.
[답변 : 답변 시간 기준 402,782,521명입니다.]
뭐야. 몇 명이야? 일, 십, 백, 천, 만…. 4억?
'아직 4억이나 남았어?'라는 생각과, '겨우 4억밖에 안 남았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웃기네. 정반대의 생각이 동시에 나다니.
지금 세상에 남은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해봐야 미국밖에 없다.
중동, 아프리카, 호주를 제대로 가보진 않았지만, 그쪽은 애초에 인구가 별로 없지.
물론 아직 인도도 전부 다 죽은 게 아니고 그 옆에 나라들도 남았을 테고…. 인도네시아도 아직 다 안 죽었을 거고.
어쨌든 수치를 알게 되니 조금 현실성이 와닿는다.
4억이라. 그걸 다 죽여야 한다고?
하루에 백만 명씩 죽여도 400일이 걸리는 숫자.
물론 내가 다 죽일 필요는 없다. 알아서 죽는 이들도 많겠지.
내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남의 손에 죽기 힘든 녀석들을 직접 죽여주는 것만 하면 되니까.
그래도 역시 아까와 같은 생각이 든다.
4억밖에 안 남았어?
4억이나 남았어?
얼추 알고 싶은 건 다 알았다. 어차피 궁금한 건 언제든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럼…. 누군가가 삭제하지 못하게 나도 질문을 하나 걸어두긴 해야겠네.
뭘 물어볼까? 질문이 뭐가 있지?
이것저것 질문을 해본다.
'유럽의 언노운이라는 자의 신원을 알 수 있나?'
'얼음 회오리와 얼음 화살, 소규모 동결, 서리 폭발, 눈보라를 배우면 나오는 히든 스킬의 이름과 효과는 뭐냐?'
'스킬의 정확한 효과를 알 수 있냐?'
'히든 스킬의 개수는 총 몇 개인가?'
'미국의 크라켄이라는 곳의 가장 높은 놈은 누구인가?'
'원트로 조합 할 수 있는 조합 표 같은 걸 얻을 수 있나?'
등등….
그런 질문들을 해봤지만 다 씹혔다. 거부. 거부. 거부의 향연.
씨발. 뭐 대답해 줄 생각은 있는 거야? 내가 뭘 너무 많이 요구하는 건가?
분명 고룡 그 새끼는 장룡의 아지트를 알아낼 수 있었는데.
장소 정도만 가능한 건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걸 알려달라고 하는 건 안 되나?
그럼 그건 고맙긴 하지. 내가 모르는 만큼 다른 누군가도 나의 정보를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이니까.
"미국의 히어로 협회 본부 위치는?"
[적합성 확인 중.]
이 정도 질문은 답변이 되지 않을까? 고룡 녀석의 질문이랑 크게 다를 게 없는데.
[해당 질문의 대가는 인간 천오백 명의 목숨과 천오백만 코인입니다. 지불 하시겠습니까?]
오! 떴다. 이 정도 질문은 가능한가 보구나. 그럼 다행이네.
일단 예를 눌렀고, 코인이 빠져나갔다.
그럼 일단 이건 급한 게 아니니까 일단 이렇게 놓자. 이래놓으면 진행 중이라고 삭제는 못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