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27화 (61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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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켄

루프 코퍼레이션.

서민준의 기억에서 끄집어낸 정보를 되새겨보면, 이전에는 무역상사였던 곳이다.

세상이 망하고 타국과의 무역 교류가 끊긴 지금은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회사는 바쁘다.

이유가 뭔지 궁금하기에 기억을 읽을 만한 놈을 찾아본다.

프레드 왓슨. 루프 코퍼레이션의 시니어 디렉터.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회사 안에만 있으면 천리안이랑 투시로 다 찾아볼 수 있으니까.

여기가 세상이 망하기 전에 뭘 했었고, 지금은 뭘 하는 곳이든 간에 그건 상관없다.

녀석들이 숨어서 하는 일. 그게 궁금할 뿐이니까.

알맹이가 중요한 거지 껍데기는 상관없지.

녀석들이 회사라는 타이들을 달고 있는 이상 퇴근이란 걸 하겠지? 그러니 지켜본다.

자. 프레드. 어서 집으로 가. 기억을 읽어줄게.

지속 회복 포션 제작 숙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의 회사와는 다르게 이곳은 칼퇴근이 당연한 곳.

이곳 시간으로 오후 다섯 시가 되자 사람들이 퇴근할 준비를 한다.

프레드 역시 여유 있는 모습으로 차 키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주차장으로 갔고, 바로 자신의 차에 오른다.

그렇게 운전하기 시작한 프레드는 한 20분을 달려 자신의 집인듯한 곳으로 도착했다.

주택가. 비슷한 집이 길을 따라 잔뜩 세워진 곳.

참…. 이런거 보면 우리나라랑은 참 느낌이 다르단 말이지.

단층으로 된 목조 주택, 차를 세운 곳 옆에는 잘 가꿔진 잔디가 있고 뒤뜰에는 차고처럼 생긴 건물이 있는 전형적인 미국식 건물.

어쨌든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자 부인인 듯한 여자가 반긴다.

자식은 없나? 독립했으려나? 뭐,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고.

이제 막 퇴근했으니 녀석이 잠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겠지? 그것까지 기다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위치를 알았으면 됐지. 나도 가서 한숨 자고 와야지.

어차피 기억이야 새벽에 읽으면 되니까. 녀석이 밤사이에 어디 가진 않을 테고.

시계를 보니 한국 시각으로는 아침이 될 시간이다. 정말…. 이놈의 시차. 정신없네.

하늘 높은 곳에서 이 위치를 저장한 뒤 바로 벙커로 돌아왔다.

한국 시각으로는 아침 열시.

승미세안은 전부 다 일어나 있었고, 승희는 자신의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승희야. 나 저녁 일곱 시쯤에는 깨워 줘."

"네? 알람을 맞춰놓으면 되잖아요?"

"아. 수면 지속 시간이 길어져서 나 스스로는 그 시간에 못 일어나."

"아. 수면? 근데…. 그럼 저는 뭐로 깨워요? 아.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쓰면 되겠구나?"

"어. 봉인 안 걸고 잘 테니까 그거 쓰고 내 수면 풀리면 깨워 줘. 그러면 될 거야."

"알겠어요. 잘 자요."

그렇게 승희는 나에게 가볍게 입 맞춰준다.

에고 이쁜 것. 그저 간단한 키스인데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거야?

그렇게 기분 좋은 느낌을 간직하며 바로 침대에 누웠고 바로 나에게 수면을 걸고 잠을 잤다.

"오빠. 일어나요."

방금 잠든 거 같은데. 눈을 뜨니 승희가 나를 깨우고 있다.

몸 상태가 괜찮은 거 봐선 푹 자긴 했나 보다. 하긴. 아홉 시간을 잤는데 당연하겠지.

승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바로 버프를 건 다음 바로 LA로 순간 이동했다.

이쪽 시간으로는 새벽 세시.

바로 프레드의 집을 살펴보니 그는 부인과 함께 잠들어있다.

가볍게 내려가 두 사람을 재우고 프레드의 기억을 읽는다.

대체 서민준이 왜 너를 만나려고 했을까?

프레드의 기억에는 별것이 없었다.

그는 서민준과 접촉했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와 헤어지고 나서 보고서를 만들어 자신의 상관에게 보고했을 뿐이다.

프레드는 무역회사인 루프 코퍼레이션의 시니어 디렉터였지만, 다른 직업도 가지고 있었다.

크라켄이란 곳의 스카우터. 그걸 알고 나니 서민준이 이 녀석에게 접선한 게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가 보고한 건 크라켄의 서부지부장.

아마 서민준이 스킬이 열다섯 개나 되는 놈이라 지부장에게 직접 보고한 것 같다.

음. 그럼 그 크라켄의 서부지부란 곳을 파봐야겠지.

서부지부 역시 LA에 있었기에 바로 날아간다.

다행인 건 그 서부지부장이라는 놈은 따로 출퇴근하는 게 아니라 서부지부에서 생활한다는 것?

굳이 아침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기에 서둘러 날아간다.

LA 교외에 있는 한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프레드의 기억에서 봤던 서부지부장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새끼들…. 정말 정보 통제에는 진심인 놈들이야. 이러니까 찾기가 힘들지.

뭐가 이렇게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놈들이 많은 거야? 어휴.

그렇기에 점점 궁금해진다. 크라켄이라는 곳이 뭐 하는 곳인지.

바로 페이즈 아웃으로 방으로 들어간 뒤 해제 후 무효화와 수면을 건다.

그리고 기억 읽기.

그렇게 필요한 정보만 읽고 다시 페이즈 아웃으로 건물을 나왔다.

하…. 요것 봐라.

드디어 뭔가 큰 걸 찾았네.

서민준 이 새끼. 이렇게 도움을 주다니. 고마운 새끼. 그동안 친분을 유지한 보람이 있어.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바로 버프들을 쓴 다음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살펴본다.

목적지는 샌 안토니오. 휴스턴 옆에 있는 도시.

거리를 계산해보니 여기에서 1,800킬로미터 정도 되는 곳.

예전 같았으면 투덜거리면서 존나 욕했을 거다. 땅덩이 씨발! 존나 넓어! 이러면서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킬 한계 돌파20인 나는 시속 50킬로미터의 비행속도가 시속 1,100킬로미터까지 늘었으니까.

거의 마하1에 근접하는 속도. 아마 다음 패시브를 찍으면 마하1을 넘어가겠지.

전속력으로 날면 두 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다. 그렇기에 그냥 바로 날기 시작했다.

웬만한 항공기보다 빠른 속도. 옷이랑 몸이 멀쩡한 게 가장 신기하네.

하긴, 저속이었을 때도 관성이나 중력을 무시했는데, 인제 와서 마찰열 따위가 적용될 리는 없겠지.

빠르게 날아가면서 서부지부장에게 읽은 기억에 대해서 생각했다.

크라켄은…. 한 조직의 이름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프레드와 서부지부장 둘 다 잘 몰랐다.

아마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만 알고 있는 녀석들.

그리고 그곳은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괜히 프레드가 스카우터란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어.

그는 스카우터의 역할밖에 알지 못했기에 자기가 스카우트해서 크라켄으로 보낸 사람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몰랐다.

서부지부장도 마찬가지.

그는 그저 스카우터들이 보낸 보고서를 받아서 본부에 보고하고 본부에서 원하는 사람을 결정해주면 그를 영입하는 역할이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역할을 주는 구조.

그리고 자신의 업무 영역 외의 일들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역시…. 무슨 조직이든 기밀 유지 만큼 중요한 게 없지.

방주도 이런 걸 적용하긴 해야 할 텐데. 뭐…. 그거야 승규 형이랑 정 부장, 민희가 알아서 하겠지.

어쨌든 나는 크라켄이라고 하는 놈들의 본부가 있는 샌 안토니오로 계속 날아갔고, 약간 헤맨 끝에 두 시간을 조금 넘겨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샌 안토니오 도시에서 외곽으로 꽤 나가니 보이는 넓은 숲, 그 안쪽에 있는 커다란 건물들이 몇 개 있는 곳.

근데…. 여기가 본부라고? 진짜로? 생각보다 작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도 별로 없고.

아니…. 진짜 여기가 본부 맞아?

예상했던 것보다 작아서 실망감과 걱정이 먼저 든다.

젠장. 여기도 알고 보니 무슨 소규모 지부 이런 거 아냐?

그렇게 하늘 위에서 살펴보는데 기척이 조금 이상하다.

조금 멀리 떨어져 지상 쪽으로 내려와서 살펴보니 인기척들이 지하에도 느껴진다.

그것도 제법 깊은 곳에.

얼래? 지하에도 무슨 시설이 있는 건가? 근데 기척은 별로 없는데?

다 합쳐서 100명도 안될 거 같은 인원이잖아?

어쨌든 조금 더 살펴본다.

근데…. 본부 치고는 너무 대놓고 있는 거 아냐? 지하에도 시설이 있으면 굳이 지상에 저렇게 건물을 세울 필요가 있나?

아니지. 도시랑 거리가 꽤 돼서 상관없나?

그렇긴 하겠다. 워낙 땅덩이가 넓은 나라니 조금만 교외로 나가도 인적이 확 줄어드니까.

입고 있는 쪽을 살펴보니 철조망과 경고 표시로 가득하다.

뭐…. 민간인이라면 실수로라도 들어오지 않을 거 같네. 워낙 사유지에 민감한 사람들이니까.

이해할 수 있겠어.

어쨌든,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돌아다니면서 찾으라고 하면 아마 아무리 찾아도 못 찾을 곳이긴 하다.

지금이야 알고 왔으니 여기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날아가면서 쓱 살펴보면 별다른 의심 없이 쓱 지나갈 것 같은 곳.

하긴, 굳이 꽁꽁 숨겨놓을 필요가 없지. 그러면 오히려 의심만 더 사니까.

어쨌든 이곳에서 뭔가를 얻어가야 할 텐데.

어떤 놈의 기억을 읽어야 정보를 알 수 있을까?

LA에서는 아직 이른 새벽이었지만, 오는 시간과 시차 때문에 이곳은 아침이 되어있었다.

부지 안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조깅하는 사람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 식사하려고 움직이는 사람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근데 다들 묘하게 각이 잡혔네. 신기하게.

다시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 천리안과 투시로 건물과 지하를 찬찬히 살펴본다.

어디부터 살펴봐야 하지? 감을 못 잡겠네.

기왕이면 조금 일찍 올걸. 차라리 한밤중에 왔으면 몰래 잠입해서 기억이라도 읽어 볼 텐데.

시간이 애매하네. 되게 애매해.

그냥 일단 오늘은 스킬 숙련을 하면서 지켜봐야겠다.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뭔가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살펴보지 뭐.

그렇게 지속 회복 포션 제작 스킬을 숙련한다.

만들어서 수납에 넣고, 만들어서 수납에 넣기를 반복하는 작업.

하. 지겨워.

스킬 이름 긴 스킬은 지겨워. 왜 줄임말이 안되냐고? 거지 같은 놈들.

그렇게 스킬을 숙련하다가 점심쯤이 되니…. 날씨가 말도 못 하게 더워진다.

무엇보다 습도가 높다. 진짜 짜증이 날 정도로 습도가 높아.

근처가 바다라서 그런가? 좆같네 정말.

나무 그늘에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며 기분이 나빠진다.

하. 씨발. 겨울에는 여름이 그립고,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고.

지랄 같네 정말.

얼음 스킬을 배울 걸 그랬어. 아. 미나를 불러서 소규모 동결 조금만 쓰고 가라고 할까?

아. 이미 잘 시간인가? 한국 시각으론 새벽 두시네. 아깝다.

음…. 카타스트로피를 한파가 나올 때까지 돌릴까?

아. 더우니까 무슨 미친 생각만 잔뜩 하게 되네.

그렇게 있다가…. 내가 정말 병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이러고 있지? 바본가?

수납을 뒤져서 그릇 하나를 꺼내고 생수 한 통을 꺼내서 거기에 부었다.

나무 그늘. 크라켄 본사가 잘 보이는 곳에 그걸 놓은 뒤 축소를 쓴다.

그리고 옷을 훌훌 벗고 알몸으로 그릇 안에 들어갔다.

하. 이제야 살 거 같네.

진작 이러고 있을걸. 왜 멍청하게 더위랑 싸우고 있었던 거야?

느긋하게 그릇에 등을 기대고 크라켄 본부를 내려다본다.

더위가 가시니까 눈에 보이는 게 달라진다. 아까보다 조금 더 선명해 보이는 느낌이야.

역시, 몸과 마음이 편해야 머리도 맑아지지.

근데 남들이 투명화를 쓰고 물 안에 들어있는 내 모습을 보면 진짜 웃기겠네. 물리 엔진 버그 난 거 같은 모습으로 보일 거잖아?

그렇게 또 한참을 지켜보면서 느긋하게 포션 제작 숙련을 하는데…. 크라켄 본부 쪽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었다.

한 스무명 정도가 줄을 맞춰서 밖으로 나오는 모습.

거의 다 남자고 여자가 몇 명 껴있긴 했는데, 전부 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 하얀 상의에 하얀 바지.

약간 해군 복장 같기도 하고?

그러더니 그들은 게이트 하나를 열고 그쪽으로 한 명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 어디를 가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하니 참을 수가 없네.

바로 물에서 나와 스킬 사용 불가 지대의 봉인을 리필하고 바로 게이트 앞까지 블링크 했다.

그리고 바로 넘어가 다시 하늘로 블링크.

근데…. 어우. 뭐야 여긴? 좀 싸하네?

내가 알몸인 상태이기도 하고 더운 곳에서 와서 그런가? 여기는 조금 싸한 느낌이다.

서둘러 몸을 닦고 옷을 꿰어 입자 그나마 활동하기 좋은 상태가 됐다. 근데…. 여긴 어디지?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거로 봐선 해안가 도시인 거 같다.

그리고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저 멀리에서는 느껴지네.

그러는 사이 아까 게이트를 타던 사람들이 전부 넘어왔고, 맨 앞에 선 사람을 따라 모두 날아가기 시작한다.

탐지에서 기척이 느껴지는 곳. 그쪽으로 날아간 스물 한 명의 인원.

그렇게 녀석들은 어느 정도 가더니 공중에서 멈췄고, 가장 앞장서던 남자가 남은 스무명을 보고 뭐라고 말하려고 한다.

아. 궁금하니까 들어봐야지. 가까이 가보자.

탐지에 봉인을 걸고 녀석들의 근처로 블링크 했다.

그와 동시에 입을 여는 남자.

"지금부터 여섯 시간 동안 작전을 시행한다. 팀별로 이동하며 작전 시간이 끝나면 이 자리로 귀환한다. 질문 사항?"

아무런 대답이 없는 스무명의 남녀.

그걸 본 남자는 짧게 외쳤다.

"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스무명의 남녀는 네 명씩 뭉쳐서 그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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