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21화 (60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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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

다음날.

서민준을 방주로 영입해서 적당히 긴장을 주려 했지만 실패한 게 좀 아쉽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돌아보는 수밖에.

고용주의 CCTV 감시는 불법이지만…. 이건 직접 보는 거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상관없을 리가 없지. 알게 된다면 기분 나빠하는 게 당연하겠지.

근데 안 걸리면 되잖아? 내색 안 하면 되지.

조선 시대 임금도 종종 저잣거리를 암행하고 그랬잖아. 그런 거라고 생각하자.

사실…. 나도 이 방주에 뭐가 있는지 완전히는 잘 모른다.

그냥 여러 시설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스마트 팜, 최첨단 축사, 양식장…. 이런 식량과 관계되어있는 곳들 위주로만.

어차피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축소와 투명화, 봉인으로 탐지.

이러면 뭐…. 나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없지. 그야말로 완벽한 암행이잖아?

근데 그 말은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들어오면 막을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물론 제약 해제를 배우고 봉인을 배운 사람이 있기야 하겠느냐마는…. 어쨌든 이에 대한 대비도 있긴 있어야 해.

생산 시설은 정신이 없어보인다.

새로운 환경인 데다가 기존처럼 비닐하우스에 짓는 방식이 아닌 스마트 팜이라 그런지 다들 익숙지 않아 하는 모습.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도 성장이 있으니 별문제는 없을 거다.

얼마나 익숙해지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정 부장과 함께 있는 사람 중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쟤들은…. 식물 자매네. 연서와 미연. 그리고 민주하고 유진이.

청평에 있던 성장 스킬 있는 여자들. 하긴, 정 부장으로선 신나는 일이겠지.

성장 스킬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

펜스의 생산 스케쥴도 모두 관리했던 그에겐 성장 스킬을 쓸 수 있는 인원은 곧 생산성으로 직결된다.

기존에 펜스에 있던 성장팀과 캐슬에서 온 성장 스킬 보유자, 그리고 청평의 넷을 데리고 신나는 듯 뭔가를 설명하는 정 부장.

되게 즐거워 보이네? 그럼 됐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는데 정 부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양식장으로 이동한 사람들. 그리고 정 부장은 한 사람을 부른다.

"하하. 김 반장님. 오랜만에 물고기들 보니까 두근두근합니까?"

"캬아. 내가 회칼 놓은 지 5년 만에 다시 광어를 잡을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러더니 양식장 아래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김 반장이라 불린 남자.

"칼 잡는 거 다 까먹은 거 아니에요?"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어디. 지금 한번 보여줘?"

"좋죠. 상태도 점검할 겸.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잖습니까? 준비도 잔뜩 해 오셔놓고선."

"그래. 그렇지!"

그러더니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고 다른 두 명의 남자랑 함께 양식장 쪽으로 향한다.

옆에 놓인 기다란 뜰채를 들더니 양식장 아래쪽을 휘휘 몇 번 저었고 바로 물고기 한 마리를 떠올리는 김 반장.

그리고 그사이 다른 두 명은 접이식 테이블을 가져오고 미리 준비한 듯한 도마와 칼들 같은 걸 꺼낸다.

오늘을 위해서 미리 준비 한 거 같은 모습.

그렇게 몇 마리의 물고기를 뜨더니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회를 뜨기 시작한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이 회를 뜨는 남자들의 칼 놀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접시에 새하얀 회가 소복하게 담기게 됐다.

"먹어보쇼. 이야. 나는 이제 소원이 없다. 거 초장도 준비해왔으니 다들 한점씩 들어봐."

정 부장을 비롯해 다들 우르르 다가오더니 젓가락 같은 것도 없이 맨손으로 회를 잡아서 초장에 찍고 입에 넣는다.

그리고 그렇게 회를 입에 넣은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이 되었다.

우물거리면서도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는 얼굴들.

"이야…. 이거 대낮부터 소주 생각이 간절하네."

누군가가 이야기했고 다들 은근히 공감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부지런히 회를 집어 먹는다.

그걸 보는 나는…. 약간 억울했다.

왜 몰래 왔지? 대놓고 올걸. 그러면 회 한 점은 얻어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 멍청이. 멍청해. 멍청하다고.

광어라 그랬나? 아. 새하얀 생선 살…. 존나 맛있어 보이네.

아…. 지금이라도 막 온 것처럼 나서 볼까?

하지만 생선을 몇 마리 잡지는 않아서 접시는 금방 바닥을 보인다.

다들 상당히 아쉬워하는 분위기. 젠장. 그래도 댁들은 맛을 봤잖아!!

"크으. 죽이네. 그럼 이걸 주기적으로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말이죠?"

"보자…. 양식 규모가 꽤 되니까. 아마 안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식사 메뉴로 올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일주일에 한 번? 그렇게 나요?"

"광어는 수율이 좋으니까. 근데 생선은 성장 쓰기가 좀 힘들겠네?"

"그렇긴 해요. 그래도 방법을 생각해 봐야죠. 근데 세 분이 이 많은 회를 다 뜰 수 있어요? 인원이 600명이 넘는데?"

"거 어디야. 캐슬? 거기도 사람 많던데. 뒤져보면 회칼 잡을 줄 아는 사람 한둘은 있지 않겠어?"

"그렇긴 하겠네요. 어쨌든 좋은 소식이네요. 그동안 생선이 참 그리웠는데. 드디어 먹을 수 있게 되다니."

그렇게 생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더 보고 싶었지만, 회를 못 먹은 게 조금 가슴이 아프다.

다른 데로 가야지. 더 있다간 속상해질 거 같아.

다른 곳을 돌아다니다가 음식 냄새가 코끝을 살짝 스치기에 그쪽으로 가봤다.

딱 봐도 식당인 곳. 생각보다 깔끔하고 큼직하다. 아마 방주 안의 사람들이 한 번에 몰려도 죄다 수용할 수 있을 거 같은 크기.

그리고 그 안쪽 주방. 거기에는 유정 형수가 있었다. 그리고 청평의 몇몇과 펜스의 식당 아주머니. 게다가 하루카까지.

와…. 베스트 맴버네. 이 정도면 음식 맛은 보장 된 건가?

화학조미료의 마술사 펜스 식당 아주머니와 자연식의 지배자 하루카의 만남이라니.

게다가 유정 형수도 실력이 꽤 좋단 말이지.

이런 망한 세상에서 토마토를 길러 케첩까지 만든 노력파니까.

아직 점심이 되려면 시간이 꽤 남았지만, 저들은 상당히 정신없어 보였다.

그래. 점심 준비를 하려면 저들은 지금이 가장 바쁘겠지.

안쪽을 보니 남자들도 상당히 많다.

하긴, 펜스나 캐슬 쪽으로 들어온 사람 중에는 요리 쪽 일 하던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

어디 보자…. 점심 메뉴는 뭐지?

뭔가가 잔뜩 준비되고 있어 보이긴 하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고기는 잔뜩 있다는 것.

그래. 잘 먹고 잘살아야지. 그게 좋지.

여기도 계속 있으면 배가 고파질 거 같아서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이거 구경하는 재미가 있네. 여기저기에 아는 얼굴들이 보이는 것도 즐겁고.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조합을 이루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보면 볼수록 합친 게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들 정도.

고맙다 장룡아. 이것도 다 니놈 덕이겠지.

야쿠자의 왕 녀석 술 한잔 따라줄 때 니놈도 따라주마.

이거 점점 술 따라 줄 놈들이 많아지네.

애초에 이곳은 중국의 고위층을 위한 벙커 같은 곳이었나보다.

생각보다 시설들이 많다. 대형 목욕탕과 실내 물놀이장, 수영장이 있을 정도니까.

게다가 볼링장이나 탁구장, 헬스장 같은 시설도 있고…. 하여간 상당히 좋은 곳이다.

뭐, 그러니까 여길 쓰려고 한 거지. 장룡 그놈은 그런 시설은 안 쓰고 묵혀둔 거 같지만.

시설마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재개장을 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일단 저들이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건 곳곳에 보이는 짱개어를 지우고 한글로 바꾸는 작업.

그래. 그게 가장 중요하긴 하지. 여기 짱개어를 쓰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걸 전부 감독하고 있는 건 승규 형.

계속 돌아다니면서 문제점이나 필요한 물건들, 부족한 점 같은 걸 확인하고 있는 모습.

시설 관리는 승규 형이고, 생산 담당은 정 부장인가? 그럼 민희는 뭐하지?

탐지를 돌려서 기척들을 하나하나 싹 훑어봤다.

그리고 발견한 민희. 그녀는 화면이 벽면에 잔뜩 붙어있는 곳에 있었다.

아마도…. 저기는 보안실인거 같은데.

페이즈 아웃을 쓰고 민희가 있는 보안실로 들어가자 그 옆쪽에 진영이가 보였다.

뭔가를 작업하고 있는 녀석. 보니까 CCTV관련 된 일인가보다.

하긴, 녀석은 청평에서도 그쪽은 자기가 다 알아서 했지.

다른 나이 좀 있는 남자와 대화하면서 뭔가를 만지고 있는 녀석.

아마 펜스 쪽에서 온 사람인가 보다. 그쪽에는 여러 전문가가 제법 있었으니까.

둘이 대화를 하는 거 보면 무슨 소린지는 몰라도 다들 이 상황을 재밌어하는 게 느껴진다.

모니터들을 살펴보는 민희. 그런 그녀를 옆에서 계속 지켜봤다.

평상시에도 이쁘지만, 일하고 있는걸 보니까 훨씬 더 이뻐 보이네.

게다가 지금 입고 있는 오피스 룩은…. 그야말로 실전형이잖아?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방으로 불러서 블라우스 앞섶을 잡고 뜯어버리고 싶은 정도야.

근데…. 참아야지. 그정도로 발정 난 건 아니니까.

그렇게 민희를 잠시 더 보다가 바깥으로 다시 나갔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볼까.

구석진 곳에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다시 축소를 비롯한 버프들을 전부 썼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최하층, 공터와 활주로가 있는 곳.

거기에선 아키가 윤서, 송이, 정현, 지아, 지원과 함께 모의 전투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연속되는 블링크. 그리고 서로를 잡기 위한 술래잡기.

아마 술래가 아키고 나머지가 도망가는 상황인가 보다. 하지만 의외로 금방금방 아키가 하나씩 잡아낸다.

저건 탐색조 여자들이 약하다기보단…. 아키가 감이 너무 좋네.

쟤는 번개 같은 반사 신경도 없는데 움직임이 좋단 말이지. 신기하게.

그 밑에서는 다른 보안조 사람들이 그 움직임을 구경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이제 막 비행을 배운 승주와 중현이, 지연이가 비행 숙련을 하는 게 보인다.

음…. 뭐 다들 잘 어울리고 있는 거 같네.

이 정도면 뭐 문제없겠지.

뭔가를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지시 안 해도 알아서 잘 산다는 건 참 좋은 일이야.

번거로울 게 없잖아? 게다가 내가 저 사람들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할 정도로 잘난 사람도 아니고 말이지.

순간이동을 써서 청주로 이동했다.

어제 떠나오기 전 저장해놓은 청주 공항.

방주는 됐으니 이제 또 다른 암행을 해봐야지.

서민준. 그 녀석.

영입은 실패했지만, 나의 제물이 될 수 있는 SG 시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녀석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녀석이 쓸데없는 짓을 못하게 하려면 주기적으로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어.

일단 어제 기억에서 읽었던 녀석의 기반 시설부터 한 번씩 살펴본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전략 연구소.

녀석은 짱개처럼 연구소를 깊은 곳에 숨겨놓고 하지는 않았다.

SG 시티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빌딩. 거기에 있는 연구소.

바로 가서 확인해본다. 딱히 별건 없지만, 그래도 눈으로 봐두긴 해야지.

생긴 지 오래 되지 않아 그리 전문적이진 않은 곳. 그래도 티어15까지는 모든 확인이 된 곳.

요즘에는 히든 스킬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사실 이 정도만 보면 그래도 많이 따라오긴 했지.

녀석이 티어15인 것도 상당히 놀라운 일이긴 했으니까.

서민준 녀석의 모습은 보이진 않지만, 연구소는 매우 바쁘게 돌아가는 거 같다.

음. 녀석은 어디 있으려나. 집에 있나?

녀석의 집으로 가서 봤는데…. 없다. 아. 평일 점심이니 집에 있진 않겠지. 녀석의 사무실로 가볼까?

산업공단 옆쪽에 커다랗게 있는 SG의 높은 건물들. 그곳에 있는 사무실에서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깍지 낀 손을 이마에 대고 있는 모습.

점심을 뭘 먹을지 고민하는 모습은 아니다.

아마 저 녀석이 저러는 건 나 때문이겠지. 음흉한 새끼.

솔직하고 남자답게 말했으면 어느 정도 정보는 알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등신같이 간을 봐?

만약 거기서 내가 폴터가이스트가 없었다면? 나를 제압하려 했을까?

잡아다가 가둬놓고 내 기억들을 전부 읽으려고 했을까?

굳이 기억 읽기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매혹만 걸어도 알아서 줄줄 이야기했을 테니까.

하여간 괘씸한 새끼. 넘볼 걸 넘봐야지.

폴터가이스트 하나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했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직 녀석이 모르는 세상이 많고 많은데 말이지. 한심한 녀석.

당장은 뭘 꾸미고 있는 게 아닌거 같으니 일단은 놔둔다.

기반이 있는 놈들은 그걸 벗어나질 못하지. 그게 단점이야.

저 녀석이 회장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녀석은 내 수중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어차피 레나가 추적도 걸어놨으니 놓칠 리도 없고.

됐어. 이 정도면 암행은 됐고…. 가서 스킬 숙련이나 해야지.

이틀에 하나씩 숙련하면 앞으로 일주일 안에는 원트를 찍을 수 있을 테니 좀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어.

그렇게 벙커로 다시 돌아온 나는 들개들에게 침묵을 걸고 있는 세아와 안나 옆에서 콘크리트 생성물을 하나씩 만들어 우한 게이트에 던져넣으며 숙련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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