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19화 (60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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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준

중국과 인도, 동남아가 망하든 말든.

청주의 SG 시티는 평화롭다. 정말 이질적인 도시가 아닐 수 없어.

짱개놈들이 한 짓 때문에 어쩌다 보니 동아시아의 최대 도시가 되어버린 곳.

아마 단위 면적당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아닐까 싶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어.

그런 거잖아? 모의 주식 투자 대회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수익률 0퍼센트인데 어쩌다 보니 1등 하게 됐다는 사례.

게다가 더 웃긴 건 SG 시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이들은 그냥 평화롭게 살고 있을 뿐이니까.

이 도시는…. 아마 끝까지 남겨놔야 할 거다.

고룡 놈의 기억에서 봤던 Q&A.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서는 인간의 목숨과 코인이 필요하다.

질문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만 명도 필요하고 천오백 명도 필요했었잖아?

그러니 모든 인간을 다 죽일 수는 없다. 이곳은 남겨놔야 해. 비상 도시락 같은 개념으로.

그나마 다행인 건 인간의 목숨과 코인을 동시에 충족시킬 필요는 없다는 거다.

게다가 목숨도 한 번에 충족시킬 필요도 없다.

그냥 질문 한 시점 이후로 요구 사항이 충족될 때까지 누적되는 시스템이니까.

고룡 그놈은 목숨을 거둘겸 코인도 겸사겸사 처리한거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SG 센터까지 왔지만, 이곳은 문이 닫혀있었다.

음? 영업을 안 하나? 아…. 더는 찾을 사람이 없나?

하긴, 내가 존나 잡아 죽이긴 했지. 그 여파가 있다면 이용자 수가 급감한 건 이해 간다.

근데 닫을 정도까진 아닐 텐데. 뭐…. 나야 아무렴 상관없지.

센터 앞에 내려와 바로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썼다.

그러자 모습이 드러난 서민준. 나를 보고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는 녀석.

이야. SG 센터가 문을 닫았는데도 아직 있네. 징한 자식.

"안녕? 오랜만이지?"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하도 안 보이길래 죽은 줄 알았는데."

"죽어버리지 왜 나타났냐는 말투네."

"이크. 제가 그런 기색을 내비쳤나요? 실수했네요. 다음부턴 안 들키게 해야지."

하여간. 역시 호락호락한 녀석은 아니야.

"아 참. 축하한다?"

"네? 뭘요?"

"SG 시티가 올해의 아시아 최대 인구 도시에 뽑혔어. 그리고 그 기록은 아마 어지간해서는 깨지지 않을 거 같다."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녀석. 그러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어본다.

"농담이 너무 고차원적이라 이해를 못 하겠는데요? 저 같은 사람도 웃을 수 있게 조금 쉽게 설명해주시지 않겠어요?"

"그래? 역시, 나는 농담의 소질이 없어. 근데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야. 말 그대로 아시아에서 여기가 가장 큰 도시가 됐다는 거지."

"아시아의 범주를 잘못 이해하신 건 아니죠? 혹시나 모르셔서 말해드리는 거지만, 아시아에는 중국과 일본, 인도나 동남아도 포함됩니다."

"너 은근히 사람을 무시하네? 설마 그것도 모를까 봐? 아. 맞다! 미안해. 최대 도시는 아니구나. 아직 울란바토르가 남았어. 미안하지만 2등으로 참아라. 윽. 벌써 기록이 깨져버렸네. 아니지. 애초에 기록이 올라가지도 않은 거구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설마 다른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말이라도 할 셈입니까?"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녀석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정말로?"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턱에 손을 댄다.

아무리 스케일 큰 녀석이라도 그런 건 생각도 못 했겠지.

녀석이 겉으로는 담담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당황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왠지 즐거운 기분이 든다.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으려면 뭘 제공해야 하죠?"

"크. 역시 기업가라 그런가? 바로 거래가 나오네. 뻔뻔하게 그냥 알려달라고 하는 게 보통일 텐데."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 말고요."

"제공이라. 그런 거 없는데. 굳이 필요하다면…. 너?"

내 말을 듣고 혐오감 짙은 표정을 드러내는 녀석.

"저는 남색에 관심 없습니다."

"야. 남색이 뭐냐. 조선 시대에서 왔니? 그리고 그건 나도 관심 없어. 자식아. 갑자기 엄한 사람을 게이로 몰아가네."

"그럼, 말을 조금 확실히 해줄래요?"

"뭐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지금 SG그룹의 회장이지?"

"네."

"그걸 버리라면 버리겠냐?"

"이유는요?"

"SG그룹이 없어지면 그 허울뿐인 호칭은 의미가 없으니까?"

"SG그룹이 왜 없어지죠?"

"글쎄. 중국이랑 인도, 일본, 동남아의 인구가 왜 다 사라졌을까?"

녀석의 표정만으로는 뭔가를 알아낼 수가 없다.

그저 잠자코 듣고만 있는 녀석. 쩝.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해줘야 녀석이 믿으려나.

"흑해방. 알지?"

"...네."

"장룡. 알고 있나? 아니면 장 대인이라고 불리는 놈."

"당신이 어떻게 그 이름을 알죠?"

"거래해봤어? 그 코인 담겨있던 여자?"

"그 역겨운 거요? 전 안 했어요.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고."

"오. 알고 있네? 어떻게 알지? 거래도 안 해봤다면서? 아. 설마 아버지가 회장일 때 거래했나?"

"하아. 네."

"그렇게 혐오스럽다는 표정 짓지마. 대호 놈들도 했으니까."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제 장룡은 없어. 죽었거든."

서민준이 나를 보는 시선이 살짝 달라졌다. 혼란? 고민?

천리안을 쓰고 있기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인다. 뭘 고민하지? 저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녀석. 남자 새끼가 뭘 저렇게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냐.

“당신이 흑해방의 장룡을 죽였다고요?”

녀석의 말을 듣고 있는데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내 머리 뒤 조금 위쪽에서 들린 아주 작은 소리.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녀석에게 바로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그대로 쓰러지는 녀석.

이 새끼. 상당히 음흉한 새끼였네. 아니. 그건 원래 알았지. 근데 이정도일지는 몰랐어.

보호막이 없는 나는 평소에는 지금 같은 경우에는 폴터가이스트로 몸을 가리고 있다.

광역 스킬은 못막아도 물리적인 공격은 어느정도 막아줄 수 있으니까.

틱 소리가 난 곳은 그렇게 폴터가이스트로 염력을 둘러놓은 부분이었다.

뭔가가 나를 감싸던 나의 염력을 건드렸다는 것.

그리고 그건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녀석을 제압한 거다.

내가 알기로는 그런 건 폴터가이스트밖에 없으니까.

녀석을 알고 나서 지금까지 무슨 스킬이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 알아내려고 한 적은 없다.

타인을 믿지 않는 나에게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긴 했지. 그것도 남자 놈을.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감히 나를 간을 봐?

그게 새끼고양이의 나약한 이빨이라도 어쨌든 이를 드러낸 거잖아? 그건 참을 수는 없지.

녀석을 집어 들고 그대로 근처 청주 공항으로 이동했다.

아마 이 녀석에겐 발신기 같은 게 달려있을 거야. 곧 헬기가 날아오겠지.

그러니 조금 한적한 곳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설치다간 많은 놈이 볼 수도 있으니까.

공항. 6월 말의 더위라 아스팔트 위는 찌는 듯한 더위가 가득하다.

그런 공항 활주로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그나마 제법 시원하다.

아직 공조기들이 죽지 않았나 봐. 다행히도.

그렇게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고,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스킬, 개수, 최근에 한일…. 일단 빠르게 읽었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놀랐다. 이놈…. 제법이잖아?

서민준 녀석은 스킬이 열다섯 개였다. 게다가 역시나 폴터가이스트도 있었다.

나름 대단한 놈이네? 혼자 힘으로 이런 걸 알아내고?

녀석이 이런 게 가능한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예전에 내가 말해서 만들어낸 SG의 전략연구소.

거기에서도 스킬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마치 짱개놈들의 제1 연구소와 같은 시설.

물론, 짱개의 국가적인 지원을 받는 연구소와는 시설 규모가 다르긴 했다.

그래도 녀석은 나름 비슷하게 해냈고, 제법 많은 것을 얻어냈다.

이런 폴터가이스트 같은 히든 스킬 몇 가지.

녀석이 그런 코인을 어디서 충당했나 싶어서 기억을 읽어보니 내가 했던 짓을 그대로 했었다.

SG 센터로 오는 녀석들을 하나둘씩 빼돌려서 코인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국내에 남아있던 BFV와 계림을 쓸어버린 것.

게다가 BFV와 계림은 무려 직접 가서 자기손으로 정리했다.

이야…. 이 새끼 제법 하는 짓이 제대로 됐단 말이지.

뒤에서, 안전한 곳에서 엣헴거리고 숨어있는 타입이 아니다. 행동력도 있고 실력도 있어.

근데 왜 간을 봐…. 바보같이.

나도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차마 대놓고 확인할 수는 없으니 몰래 해본 거겠지?

그렇게 녀석의 기억을 읽고 있는데 요란하게 헬기 소리가 들렸다.

쯧. 멍청한 놈들. 그렇게 요란하게 다니면 쓰나. 저래서 헬기는 못써. 너무 시끄러워.

축소를 비롯한 모든 버프가 걸려있는 걸 확인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공항으로 날아오는 헬기 네 대. 바로 블링크 해서 하나씩 수납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제법 커다란 헬기였지만, 내 수납이 더 크다.

안에 잡다한 게 엄청 많이 들어있지만, 헬기 네 대 정도는 우습지.

순식간에 헬기 네 대 먹방을 마친 나는 찔끔 들어오는 코인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신경도 안 썼다.

더 올 놈들이 있으려나? 없겠지?

다시 서민준이 있는 곳으로 내려온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 이 깜찍한 새끼. 이 새끼를 어쩌면 좋나.

이놈은…. 메기가 아니다. 이정도면 상어 정도는 되지.

함부로 방주에 들였다가는 긴장감은커녕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어.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다.

SG 시티가 내 비상 도시락으로 남아있으려면 이놈이 계속 유지를 하고 있어야 해.

그렇다고 그대로 이렇게 풀어주기는 조금 찝찝한데.

풀어줬다가 녀석이 이대로 잠적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의 기반을 모두 버리고 떠나버리면 답이 없긴 한데.

그래도 녀석의 전략연구소나 사는 곳, 비밀 안가, 별장, 벙커 그런 곳들은 다 읽어서 일단 위치를 적어 놓긴 했다.

녀석이 자신이 가진 것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찾아낼 수는 있어.

아. 추적을 빨리 배울걸.

쯧…. 그러면 훨씬 더 일이 편할 텐데. 귀찮아졌네.

으…. 마킹. 진짜 아쉽네. 원트고 뭐고 미리 찍어 놓을 걸 그랬나?

아! 맞다. 레나가 마킹이 있지?

아이. 돌대가리. 사람이 하도 많아지니 이런 것도 까먹고 있었네.

녀석에게 다시 수면을 한 번 더 걸고 라스베이거스로 게이트를 연 다음 바로 넘어간다.

"레나!"

"앗! 주인님! 아니, 마스터어!"

레나는 또 나한테 달려와 안겼고, 나는 그걸 막지 않았다.

아무런 방해 없이 나를 안고서 자기도 깜짝 놀란 레나.

"어어? 왜…?"

"시끄럽고, 따라와."

게이트를 다시 넘어 서민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 추적 걸어."

"네. 추적. 됐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놈 추적, 풀지 마. 아 참. 그럼 미스터 샤이닝 그놈에게도 추적 걸었나?"

"네에. 마스터가 말해주시지 않았어도 다아 걸었죠오."

"잘했어."

엉덩이를 한번 꽉 움켜주자 으응 하면서 나에게 달라붙는 여자.

웃겨. 이런 게 포상이 된다니. 진짜 신기하다니까.

"이상한 놈은 발견했어?"

"아니요오. 지금까지는 아무 일 없어요오."

"알겠어. 다시 넘어가. 이 녀석 마킹 된 거 풀리지 않게 하는 거 잊지 말고. 아. 이거 걸리면 이놈은 자기가 걸린 거 모르지?"

"네에."

"알겠어. 돌아가."

아쉬워하며 게이트를 넘어가는 레나. 그녀가 넘어가자마자 바로 게이트를 닫았다. 이러면 이제 됐고.

바로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깔았다.

그러자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쓰더니 바로 벌떡 일어나는 녀석.

"민준아."

"아. 씨발……. 망했네."

내 쪽을 바라본 녀석은…. 얼굴 가득 좆됐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랄까. 지금까지는 가면 하나를 쓰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걸 벗어버린 것 같은 모습.

"그러니까 한입에 삼키지도 못할 걸 왜 사이즈를 재보니."

"시끄러. 새끼. 존나 잘난 척하네. 근데…. 왜 살려뒀냐? 아니, 왜 감금하거나 묶어두지도 않냐?"

"너한테는 그런 거 안 해도 돼. 뭐가 무섭다고 감금하거나 묶어놔. 이쁜 여자도 아닌데."

"하. 씨발…."

머리를 잔뜩 헝클이는 녀석.

그동안의 모습이 재벌 2세의 깔끔한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딱 녀석의 나이와 비슷한 수준의 모습이다.

뭐…. 해봐야 나랑 별 차이도 안 나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아무튼…. 살려줬으면 주제넘지 않게 잘 살아라. 괜히 오바하지 말고."

"좀…. 닥쳐. 거들먹거리는 꼴 존나 보기 싫네."

"야. 근데 그냥 옛날처럼 굴면 안 되냐? 그 모습은 되게 어색하다."

"닥치라고 했잖아. 씨발 새끼. 오냐오냐 맞춰줬더니 매번 주둥이는 존나 터네."

그러더니 자신의 옷을 한번 탁 털고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녀석.

바깥에 보이는 활주로를 보고 어딘지 감을 잡은 거 같은 녀석은 뭐라고 중얼거려봤지만, 인상만 쓸 뿐이었다.

스킬을 썼나? 순간이동도 배웠던데. 근데 그게 될 리가 있나.

"씨발."

한 번 더 투덜거리더니 그대로 밖을 향해 나가는 녀석.

"어디 가냐?"

"남이사. 내가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야."

"그래. 상관 할 필요 없지. 잘 가라. 다음에 보자."

"좆까세요. 너라면 보고 싶겠냐?"

그렇게 말하고 공항 바깥으로 나가는 녀석.

전의 모습이 더 익숙하긴 하지만, 지금 모습이 더 자연스럽긴 하네.

근데 저놈은 왜 되지도 않는 짓을 했지? 이해를 못 하겠네.

그동안에도 틈틈이 나를 노리고 있던 걸까? 아무래도 그게 맞겠지?

암튼, 녀석이 방주에 들어올 일은 없어졌다. 쯧. 그럼 어쩔 수 없지.

방주는 그냥 평화롭고 잔잔한 곳으로 남게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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