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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들
감옥의 문을 다 열고 나오자 정말 의외의 장면을 발견했다.
민희, 하루카, 아키가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모습.
조금 어색하거나 날을 세우고 대화하는 거라면 아무리 여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라도 그 정도는 눈치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정말로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는 여자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당신 험담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민희.
아…. 그래. 그렇구나. 어쩐지 표정이 해맑다 했어.
"그래…. 방해꾼은 빠져줄게."
"농담이에요. 삐진 거 아니죠?"
그러면서 민희는 씨익 웃는다. 쳇. 저런 퐉스 같은 여자.
저렇게 말하는데도 밉지가 않으니 원.
근데 진짜 험담하는 거 아냐? 왜 이야기하던 걸 멈춰?
세 여자를 놔두고 구덩이 쪽으로 향했다. 진짜 코인들의 핵심은 여기지. 인간 농축 코인.
연구원이나 파견대 놈들도 코인은 그나마 들고 있지만, 여기랑은 비교할 수가 없어.
규모를 보아하니 구덩이의 크기는 100개. 개당 50만은 있으려나?
지금 인원이 몇 명이지? 펜스는 정 부장 포함 여섯이고, 청평은 승규 형 포함 일곱. 캐슬은 민희 포함 셋.
총 열여섯. 하루카 포함 열일곱.
100개라고 치면 인당 5개씩은 되네. 두 명 빼고 6개는 먹을 수 있겠어.
그렇게 다들 코인 줍는 걸 기다리자 하나둘씩 슬슬 모여든다.
코인 탐지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뭐…. 나중에 한 번 더 와서 확인해보면 되겠지.
"다 됐죠?"
코인을 잔뜩 먹어서 그런지 다들 표정이 상기되어있다.
하긴, 다들 코인이 그리 넉넉하진 않았겠지. 그러니 이 정도 코인이면 저렇게 흥분할 만해.
"한 백만? 이백만? 이백만은 되려나. 이백만 코인 이하로 먹은 사람 있어요?"
없네. 아무도 반응이 없다.
"삼백만 이하는요?"
대부분의 사람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는 건 재현이랑 지아. 둘밖에 없네.
"자…. 그럼 한 명씩 나와봐요. 먼저 비행 스킬 있는 사람들부터."
비행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내 쪽으로 나왔다.
청평의 승주랑 중현, 지연이 말고는 다 있는 거 같네.
"여기 구덩이 아래 보면 코인 있을 거예요. 보이죠?"
다들 구덩이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코인이 있는 걸 보고 다들 놀란다.
"각자 여섯 개씩 먹으면 돼요. 양심적으로 먹어요. 양심적으로. 어차피 코인은 많으니까. 아. 지아랑 재현 너희는 다섯 개만 먹어."
"왜요! 대장!?"
"왜! 차별이야!?"
"니넨 300만 넘는다며."
"아…."
"조금 덜 먹을 걸 그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코인을 주우러 가는 사람들, 나는 비행이 없는 승주와 중현, 지연이를 데리고 구덩이 한쪽으로 갔다.
"자. 내가 너희들을 잡아서 이 구덩이 아래쪽으로 내려보냈다가 올려줄 거야. 무서워도 참아."
그리고 폴터가이스트로 일단 승주부터 몸을 잡고 들어 올렸다.
"어어어? 이거 뭐에요?"
"몸에 힘 빼고 있어. 괜히 바둥거리다가 다쳐."
그렇게 녀석을 잡고 움직이려는데 중현이가 나에게 말한다.
"어…. 저희 지금 코인도 생겼는데, 비행을 지금 찍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 그러네?"
염력으로 잡고 있던 승주를 내려놨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바로 비행을 찍으라고 말하자 둘은 바로 허공에 손짓하더니 둘 다 비행이라고 외친다.
느릿느릿한 비행 속도지만, 알아서 코인을 줍기 시작하는 녀석들.
"지연. 너도 찍어."
"난 아까 승주 해줬던 거 해주면 안 돼?"
"뭐하러. 그냥 비행 찍어서 주워."
"오랜만에 봐놓고 쌀쌀맞네."
지연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쩝. 내가 방치해 놓은 건 사실이니까. 내가 할 말은 없지.
그렇다고 해서 얘만 따로 특별대우해줄 생각은 없다.
그래서는 이제 막 시작한…. 아니 제대로 시작도 안 한 방주가 엉망진창이 될 거야.
"비행 배우고 직접 주워. 그리고…. 서운한 게 있으면 밤에 찾아와. 얼마든지 서운한 점을 들어줄게."
내 말을 들은 지연이는 빙긋 웃었다.
아무래도 저 여자가 원하는 건 저거겠지. 그래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여기 이렇게 온 거고.
그녀 역시 허공에 손짓하더니 비행이라고 짧게 중얼거리는 그녀.
그리고 천천히 코인을 먹기 시작했다. 그럼 쟤는 됐고.
다시 민희와 아키, 하루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직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세 여자.
"하루카."
"네?"
"너 괴력은 마스터 했니?"
"괴력이요. 어…. 아니요."
찍은 지 한참 됐는데. 아직도 마스터가 아니란 말이야? 하긴, 얘는 숙련을 한 게 아니지.
하루에 괴력을 쓰는 건 몇 번 안됐을 테니까.
"하루카는 나랑 같이 가자."
"어머. 귀여운 여자아이만 데리고 어딜 가려고요?"
민희의 말에 아키도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뭐지. 아키 쟤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민희랑 붙여 놓은 게 실수였나? 아…. 망했네. 망했어.
"그럼 같이 가던가."
"미안해요. 당신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자꾸 놀리게 되네. 다녀와요. 저는 아키랑 여기 있을게요."
게다가 벌써 친근하게 이름까지 부르는 건가?
왠지…. 아키를 노려보기도 전에 민희에게 뺏긴 느낌인데.
나는 약간 어이없음을 느끼며 하루카를 데리고 감옥 쪽으로 갔다.
감옥에 들어가자 별로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에 겁을 먹은 하루카가 나에게 바짝 붙는다.
"무서워?"
"네? 네. 약간 좀 으스스하네요."
"걱정 마. 아무도 없어. 분위기가 좀 삭막하긴 한데, 겁먹을 정도는 아니잖아?"
"그래도…. 귀신이라던가…."
"귀신은 무슨. 귀신같은 게 무서운 게 아냐. 사람이 무섭지. 그리고 내가 천사님인데 귀신 같은 걸 무서워하는 거야?"
내 말에 풋 하고 웃는 하루카. 그러더니 무서워하는 게 좀 덜해진 거 같다.
이런 게 효과가 있다니, 얘도 참 이상해.
"내가 문들은 다 열어 놨거든? 그러니 여기 감옥 안에 있는 코인 주머니들 다 주워."
그렇게 코인 주머니 하나를 먹은 하루카는 바로 깜짝 놀란다.
"어…. 이거 방금 50만 코인이 넘게 들어왔는데요…?"
"그래? 딱 좋네. 계속 주워."
잠겨 있던 감옥들은 꽤 됐지만, 코인 주머니가 있던 건 열여섯 개 정도밖에 없었다.
전부 50만씩이면 800만. 뭐…. 그 정도는 하루카가 독식해도 되겠지.
감옥에 있는 코인들을 전부 다 먹은 하루카에게 코인 얻은 양을 물어보니 역시 800만이라고 대답한다.
딱 좋네. 그 정도는 줘야지. 아무리 전투원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있어야 앞으로 코인 걱정은 안 할 거야.
"나가자."
밖에 나가니 다들 구덩이에 있는 코인들을 다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민희와 아키, 하루카가 구덩이 코인을 먹지 않았기에 남은 코인들은 코인 양이 제일 적은 사람들을 확인하고 골고루 먹게 했고 이제 다음 코스로 넘어간다.
"다들 만족해요?"
다들 600만에서 700만 정도의 코인을 얻었기에 기뻐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
그런 그들에게 이번엔 싱가포르 게이트를 열어줬다.
"아직 안 끝났어요. 여기도 코인이 더 있으니까."
다들 우르르 게이트를 넘어갔고, 그들은 잔뜩 부서진 싱가포르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여기는 어디예요?"
정 부장의 질문에 나는 친절히 대답해준다.
"싱가포르고요, 해일과 한파, 지진이 났던 곳이에요. 그걸 일으킨 건 저고요."
내 말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 하긴, 예전의 나라도 놀랐을 거다. 인간이 어떻게 그런 걸 일으켜.
어이없을 만 하지.
"정 부장님이랑 승규 형, 민희. 이리 와 봐요."
셋이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들을 보고 말했다.
"여기 코인은 줍기 쉽지 않을 테니 천천히 주워요. 방어조를 줍게 해도 되고, 필요하다면 그 외에 코인이 필요한 사람들도 데리고 와서 줍게 해요. 얼마나 있을지는 저도 잘 몰라요. 아까 연구소라면 대충 예상이 됐는데 여기는 저도 예측이 안 되니까."
"성철 씨 또 가려고 하는 거죠!?"
"맞아요. 성철이가 이런 말 하는 거 보면 백 퍼센트 가려는 거에요."
정 부장과 승규 형의 합공. 아…. 젠장. 가려고 한 건 맞긴 하는데, 너무 이렇게 쉽게 간파당하니까 조금 그렇네.
"맞아요. 갈 거예요. 저도 바쁘니까.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죠."
"아마 이 사람은 평생 한가해지지 않을걸요? 진짜 한가해져도 바쁘다는 핑계 댈 사람인데."
민희의 말에 정 부정과 승규 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너무 많이 간파당했네.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죠. 성철 씨 성격이 그러니까. 그래도 자주 와줘요. 항상 같이 있어 달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식량 받아갈 때만 잠깐 왔다 갈 생각 하지 말고요."
정 부장의 말. 단순한 핀잔이 아닌 걱정이 섞여 있기에 그 말은 진심으로 다가온다.
"알겠어요. 노력해보죠. 아 그리고 민희 너는 잠깐 나 좀 보자."
정 부장과 승규가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갔고, 나는 민희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머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따로 부르셨을까?"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민희. 나는 그런 그녀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아마….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이야기하면서, 나에 대해 실망할지도 몰라. 특히 여자에 대해서."
"나중에 말하자니까…. 너무 성급한 거 아니에요?"
"그만큼 내가 초조하다는 거지. 니가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어요."
팔짱을 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자.
하지만 화내는 여자보다 웃는 여자가 더 무섭다. 길길이 화내는 적보다 냉정하게 상황 판단을 하는 적이 더 무섭듯이.
팔짱을 푼 민희는 내게 안기면서 목 뒤로 팔을 두른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오긴 했지만, 상당히 대범한 모습.
"별거 아닌 거로 초조해하고 걱정하는 당신을 위해서 단호하게 이야기해줄게요. 그런 거로 고민하지 마요.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내가 알아서 챙겨가요. 그리고 당신 곁에 누가 얼마나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내가 원하는 부분은 내가 챙겨갈 자신 있으니까."
그러더니 민희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친다.
순식간에 닿아 벌어지는 입술, 달콤하게 얽혀든 혀.
짧고도 강렬한 키스를 내게 전한 민희는 다시 살짝 물러나며 고혹스럽게 웃는다.
"입술, 꼭 닦고요. 다음에 봐요."
수납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화장을 한번 점검하더니 다시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나가는 민희.
하…. 당해낼 수가 없네. 대체 저걸 어떻게 이기냐.
아니지. 이길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게 맞겠지. 그냥 그녀가 원하는 부분만 순순히 내주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어쨌든, 방주는 이제 알아서 돌아갈 거다.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하고 능력 있는 세 사람을 붙여놨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겠지.
만약 잘못된다면, 그건 뭐…. 저들의 능력인 거야. 근데 잘못될 거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들은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잘 할 거야. 잘 하겠지.
그렇게 방주에 꼭 태워야 하는 사람은 다 태웠다.
그럼 이제…. 추가 합격 인원을 뽑아볼까?
그동안 신경 못 썼지만, 보러 가야 할 놈이 하나 더 있잖아?
서민준. SG그룹의 회장.
그놈을 보러 가야 해.
지금 방주에 모인 이들은 너무 착하다.
물론…. 정 부장 같은 사람은 성향이 순수 선이라고는 볼 수 없지.
하지만, 어쨌든 그도 겉으로 보이는 건 착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필요에 있어서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인 거지 성격이 악한 사람은 아니야.
착한 사람들만 모아놓으면 결국은 오래가기 힘들 거야.
어느 정도는 경쟁을 하고 대립각을 만들어 놔야 서로 발전하지.
그런 의미에서 서민준 그놈만큼 좋은 놈은 없다.
물론…. 너무 잘생긴 게 기분 나쁘긴 하지만, 어쩌겠어. 그런 놈도 있어야지.
메기 효과라고 하지? 이런걸?
노르웨이의 한 어부가 썼던 비법.
잡은 정어리들을 항구까지 신선하게 데려오기 위해서 수조에 메기 한 마리를 넣는다는 방법.
서민준 정도면 충분히 메기가 될 수 있을 거다. 물론…. 메기치고는 잘생긴 게 문제지만.
녀석도 똑똑한 녀석이니 뭐가 자신에게 유리한지는 충분히 계산이 될 거야.
게다가 서민준이 그놈은 라인도 잘 타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이잖아?
그러니 그런 녀석을 만나러 가본다. 방주에 적절하게 긴장감을 줄 메기가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