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16화 (6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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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들

미스터 샤이닝과 쉐도우.

원래는 이 녀석들을 이용해서 히어로 쪽 윗선을 캐보려고 했기에 간단한 기억 조작까지 했었다.

근데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가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때는 레나를 수하로 얻기 전이었으니까.

굳이 히어로 쪽을 들쑤실 필요가 없다. 이놈을 남겨둘 필요도 없고.

그냥 처분하는 게 가장 속 편할 거 같은데…. 아니지. 이런 녀석 죽여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미스터 샤이닝을 재웠다.

그리고 잡혀 온 이후의 기억과 지난번에 내가 조작한 것들, 그 외에도 이쪽에 대한 정보를 얻을 만한 기억들을 싹 삭제했다.

"레나."

"네에. 마스터."

수납에서 천리안과 투시 스크롤을 잔뜩 꺼낸 다음 여자들의 앞에 쌓아놓는다.

"이건 천리안과 투시 스크롤이야. 천리안이랑 투시가 뭔지는 알지?"

"네에. 이름 그대로 인가요오?"

"어. 한번 써보면 알아. 각자 한 번씩 쓴 다음 익숙해지도록 해. 그리고 저 미스터 샤이닝 녀석을 풀어주고 녀석을 감시해. 너희 넷 다 돌아가면서 감시하고 어디로 움직이든 녀석의 모습을 놓치지 마. 이놈은 블링크도 순간이동도 없으니 놓쳤다는 소리는 하지 말고."

"네에."

"만약, 녀석 곁에 수상한 녀석이 나타나면, 레나 니가 나서서 바로 잡아. 죽이진 말고."

"알겠어요오."

"이틀 뒤, 한국 시각으로 자정에 올 거야. 여기 시간으론…. 오전 11시쯤 되겠지. 이틀 뒤에 올 테니 그때 보자. 질문할 거 있는 사람?"

아무 말이 없는 여자들.

“그럼 수고해.”

그렇게 말을 남기고 바로 몰디브로 순간이동을 했다.

아. 밤낮이 막 휙휙 바뀌니 정신없네. 역시 글로벌은 힘들어. 쉽지 않아.

다시 느긋하게 누워 숙련하다 보니 몰디브에서도 밤이 찾아왔고 바닷가는 또 푸른빛으로 반짝인다.

이쁘다고 바라보는 네 여자. 하지만 무서워서 그런지 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못하는 게 웃긴다.

"너희 그거 알아? 지금 여기에 해가 졌다는 건 한국은 밤 열 시쯤 됐다는 거야."

"헉! 맞다!"

승희의 놀란 외침. 다들 비슷한 반응이다.

"자. 착한 어린이들은 이제 돌아가서 숙련하시고 자야죠?"

게이트를 열면서 말하자 다들 아쉽다는 듯 게이트를 타는 여자들.

그렇게 돌아가서 각자 숙련을 하기 시작한다.

자고 있는 들개들에게 침묵을 쓰는 세아와 안나, 그런 둘을 보면서 봉인 숙련을 하는 승희.

"저도 다녀올게요."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숙련 해야 하는 미나는 비행을 쓰고 둥실 떠오르며 말했다.

"혼자 안 무섭겠어?"

"음…. 조금 무섭긴 한데, 어쩔 수 없죠."

"같이 가줘?"

"음…."

"뭘 물어봐! 당연히 같이 가야지!"

"썽철. 여자에게 너무 무심한 거 아니에요?"

세아가 냅다 외쳤고, 안나가 거기에 추가타를 날린다.

그런 그녀들을 보며 배시시 웃는 미나.

"그래. 다녀올게. 아니지. 기왕 같이 갈 거면 그냥 몰디브로 가자. 굳이 멀리 날아갈 필요 없지."

내가 게이트를 열었고, 미나는 바로 들어간다.

나도 게이트를 타려는데 뒤에서 세아와 승희가 작게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나 언니도 생각보다 여우라니까."

"여자는 다 여우지."

나느 그걸 듣고 피식 웃으며 게이트를 넘어가 바로 닫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진 몰디브.

눈을 돌려봐도 어둡고 광활한 바다만 있는 이곳은 조금 무섭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파도가 찰박이는 바닷가 모래 위에 앉는 미나.

나는 그런 그녀의 옆에 앉았고, 각자 스킬 숙련을 하기 시작했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 해제. 스킬 사용 불가 지대, 해제.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빠르고 정확하게 말하며 스킬을 반복하는 미나.

그리고 그 옆에서 수납을 열어놓고 휘발유를 만들어 채우고 있는 나.

입으로는 스킬 이름을 말해야 하느라 바쁘기에 대화를 못 하는 게 아쉽다.

그래도 뭐, 상관없지. 꼭 대화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상황이란 거 있잖아? 지금처럼.

그렇게 숙련을 하다가 나는 딴곳을 보며 슬쩍 미나의 손을 잡았다.

내가 손을 잡자 손을 살짝 뿌리치는 미나.

깜짝 놀라서 미나를 바라보는데, 미나가 바로 내 손을 깍지껴서 잡는다.

그리고 마주친 눈. 씨익하고 올라가는 미나의 입꼬리.

"놀랐네."

"설마 제가 오빠 손을 거절하겠어요?"

그렇게 짧게 말하더니 다시 스킬 숙련을 한다.

밤바람을 맞으며 머리카락이 살짝 날리고 얼굴의 반쪽만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미나는 정말 이쁘다.

원래도 이쁘지만, 가끔 이렇게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이쁠 때가 있다니까.

그럴 때면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근데…. 안으면 더 좋겠지?

웃긴 건 머릿속에서 반반으로 나뉘어서 싸운다는 거다.

감상만 하자는 쪽과 이대로 덮쳐버리라는 쪽.

근데 오늘은 감상파가 이겼다. 왠지 스킬 숙련하는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가 않네.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흘렀다.

물약을 잔뜩 먹은 미나는 슬슬 머리를 짚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말했다.

"힘들면 그만해.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

"그래야겠어요. 오늘은 이제 그만해야지."

그러면서 아직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일어났고 게이트를 열려는데, 미나가 살짝 비틀거린다.

바로 어깨를 잡아주자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약간 힘없는 웃음을 짓는다.

"고마워요."

"게이트 열어줄까?"

내 말에 잠깐 대답을 하지 않던 그녀는 눈을 살짝 위로 뜨면서 나에게 말한다.

"조금…. 쉬다 갈까요?"

여우 맞네. 여우 맞아.

"미나 너는 아이돌 계속했으면 나중에 배우 쪽을 했어도 됐을 거야."

"네?"

그런 미나를 안아 들고 그대로 숙소로 들어갔다.

얼굴을 살짝 붉히는 미나. 그리고 그렇게 안에 들어간 우리는 금세 알몸이 되었고, 서로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밤의 몰디브. 은은한 조명 아래 미나의 나신.

이러고 있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겁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입에서 야한 신음이 나오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미나와 벙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다들 잠들기 위해 방으로 돌아간 후였다.

"저도 들어가 볼게요. 잘 자요."

잔뜩 진이 빠진 모습의 미나. 하긴…. 짧은 시간에 좀 과하게 하긴 했지.

그렇게 미나가 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음…. 내일은 또 할 게 많긴 한데, 바로 자기는 아쉽네.

침대에 누워 수납을 받치고 기름 생성 숙련을 좀 더 했다.

그러다 보니 방에 휘발유 냄새가 진동한다.

어우 더는 못하겠네. 냄새가 끔찍해.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야.

다음날.

정오라고 하긴 했지만, 한 시간 일찍 방주로 순간이동 했다.

방주 최하층. 내 게이트가 아닌 작은 게이트가 열려있는 모습.

아. 내 게이트가 꺼지고 민희가 자신의 게이트를 열어놨나 보네.

게이트가 기본 지속이 20분이던가? 그럼…. 계산하면 8시간 반 좀 넘겠구나.

"왔어요?"

나를 발견한 민희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왠지 화장에 기합이 빡 들어간 거 같네.

이제는 같은 소속이 됐지만, 아직은 외부인들이랑 다름없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이런건가?

평소의 모습보다 훨씬 이뻐 보인다.

"방주에 있는 다른 여자들이 너를 보면 여기도 화장 붐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몰라."

"이쁜 아가씨들 있으면 소개해줘요. 나는 내 화장도 자신 있지만, 남들 화장해주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네. 아. 게이트 내가 열어줄 테니 민희 너는 닫아."

"알겠어요."

게이트를 지나는 차량들과 사람들을 잠시 통제하고 내 게이트를 열었다.

민희의 게이트가 정말 통로였다면, 내 게이트는 워낙 커서 거의 공간과 공간을 이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하긴, 최대로 키우면 거의 60미터는 되니까. 그 정도면 뭐 엄청나지.

"이주는 잘 돼가?"

"네. 순조롭죠. 바쁜 건 저쪽이 바쁘지."

한쪽을 가리키는 민희.

보니까 그쪽에는 정 부장과 승규 형이 둘이 모여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민희에게 저쪽으로 가본다고 하고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뭐해요?"

내가 가서 말하자 나를 보더니 정말 반가운 표정을 짓는 정 부장과 승규 형.

"아. 성철 씨. 왔어요?"

"정오에 온다더니 일찍 왔네."

"어차피 다른 곳 들렀다가 와야 해요. 그냥 미리 와봤어요. 잘 돼 가요?"

"네. 순조롭게 잘 돼 가고 있죠. 이렇게 다 갖춰진 곳인데 옮길 것도 뭐 없고. 어려울 게 없죠."

"다행이네요. 청평은요?"

"아. 우리 애들은 이미 거의 다 들어왔어. 우리야 옮길 것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 아. 성철이 네가 게이트 키워줬으니 남은 거나 마저 옮겨야겠네."

"큰 거예요? 필요하면 말해요. 수납으로 한 번에 옮겨드릴 테니까."

"아. 맞네. 네 수납은 엄청 크지. 그럼 한 번에 옮길 수 있게 마저 정리 좀 하러 가야겠다. 정 부장님. 저는 저희 쪽 보러 갔다 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그 사이에 제법 친해졌나 보네. 역시, 인간관계에 큰 어려움 없는 사람들은 참 부럽다니까.

"성철 씨."

"네?"

"왜 이제야 합쳤어요."

"무슨 소리에요?"

"저런 사람이 있었으면 진작 합치지. 그럼 내 일이 반은 줄었을 텐데."

"아. 승규 형이요?"

"네. 승규 씨 저 사람. 나이도 젊은데 일머리가 있어. 탐나는 사람이야."

"그렇다니까요. 내가 괜히 관리자로 만든 게 아니에요."

"크. 있잖아요. 본인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웃기지만, 나는 성철 씨 만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또, 또 자꾸 그렇게 아부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요."

"아부라니요. 나는 진심을 말하는 거라고요. 나는 성철 씨 만나고 나서 좋은 일만 생겼는걸요? 이사장 놈도 사라졌지, 살면서 평양도 정복해봤지, 이제는 이런 으리으리한 곳에 들어앉아서 여생을 편하게 보낼 생각 하니까 얼마나 기쁜데요."

"사심이 잔뜩 들어가 있는 거 같은데요."

"어휴.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는 좀 사심 부려도 되지 않겠어요? 저기 뭐야. 민희 씨도 일 처리는 똑 부러지던데. 나는 이제 저 두 사람만 도와주면서 느긋하게 살아도 될 거 같아."

"크크크. 벌써 희망찬 노후를 준비하는 거예요? 아직 30대면서?"

"당연하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그렇게 말하는 정 부장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인다.

하긴, 승규랑 민희가 어설프고 부족한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내가 맡기질 않았겠지.

그래도 제법 까다로운 것 같은 정 부장 눈에 들었으니 인증서가 발급된 거나 마찬가지네.

"어제 제가 말한 건 다 전달 됐어요?"

"그녀들이요?"

"네에. 그녀들이요."

"정오에는 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 안 해요. 음. 그럼 이따가 정오에 봅시다. 잠시 들릴 곳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세 곳을 합치는 일이야 걱정 안 한다.

다들 능력 있는 사람들이고 짬이 있으니까.

서로 첫인상도 괜찮은 것 같고 만족하는 거 같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거다.

문제는 나지.

막상 저질러 놓긴 했지만, 민희가 문제네.

다른 여자들끼리 만나서 나에 대한 실체를 알게 되고 평판이 꼬라박는 건 뭐…. 크게 신경 안 쓴다.

결국, 민희가 문제다. 민희가 나에게 실망하게 되면 그건 좀 가슴 아플 거 같은데.

홋카이도로 가기 전에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민희에게 미리 말은 해놔야겠다.

이미 늦은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민희."

"아. 잠깐만요. 1분만. 그래서 지금 가축들은 우리 것까지 가지고 올 필요는 없어. 여기 원래 있던 가축들하고 펜스만으로도 충분해. 근데 혹시 모르니까, 저기 펜스의 정 부장님에게 가서 축산 관련 전문가분 있으면 한번 봐달라 고 요청해봐. 전부 도축해서 들여와도 되냐고. 남겨야 할 거 있냐고. 알겠지?"

"네. 성주님."

민희가 컨테이너에 갇혀있을 때 끝까지 남아줬던 남자 녀석. 이름이 용훈이였나?

암튼 민희에게 지시를 받은 뒤 나를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하고는 정 부장 쪽으로 가는 녀석.

그런 그가 가자 나를 바라보고 민희가 환하게 웃는다.

"끝났어요. 고마워요. 기다려줘서."

"고맙기는. 뭐 기다린 것도 별로 없는데. 어. 뭐냐. 잠깐…. 할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말하자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보는 민희.

"으음. 혹시 여자에 관한 거라면 그건 나중에 느긋하게 할래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뭐지? 이 여자…. 기억 읽기라도 하나? 뭔가 지금 굉장히 간파당한 느낌인데.

"후후. 놀랐어요? 놀랄 거 없어요. 천하에 둘도 없이 뻔뻔한 당신이 그렇게 쭈뼛거리면서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할 내용은 그거밖에 없죠."

"내가 얼굴에 티가 많이 나는 거니? 아니면 니가 예리한 거니?"

"둘 다요."

"어휴. 그렇구나. 역시 여자는 무서워."

"무서워하지 마요. 지금 이러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 건데?"

살짝 오싹한 느낌.

웃고 있는 민희의 모습이 순수한 웃음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아…. 이건 좀 각오를 해야겠네.

"후후. 농담이에요. 농담. 괜히 나 때문에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마요."

그러더니 내 귓가에 살짝 입술을 가져와 조용하게 말한다.

"당신이 여러 여자를 만나는 건 별로 상관없어요. 어차피 나는 자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짝 거리를 벌린다.

생각해보니, 아까 민희를 처음 만나 화장 이야기를 했을 때도…. 민희는 자연스럽게 이쁜 여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지.

자기에게 데리고 오면 화장까지 해줄 수 있다는 말. 그건 자신감이었던 거네.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건가. 저 기합 들어간 화장도 그런 뜻이고?

무섭네. 무서워. 나는 대체 여자에 대해 아는 게 뭘까?

내가 그렇게 민희를 바라보고 있자 나를 향해 귀엽게 윙크하는 여자.

와…. 씨. 홀려버리겠네. 역시 이 여자는 대단한 여자야. 요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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