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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드디어...600화 가깝게 이어오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나왔네요.
으하하하. 아이고 길었다.
소망과 결핍
멍하니 앉아 그저 하늘을 바라본다.
"똑똑. 오빠. 거기 있어요?"
"음?"
나를 보고 빙긋 웃으며 물어보는 미나.
이젠 약간 따가운 6월의 햇살을 받은 그녀의 미모는 한창 피어나는 꽃 같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담고 있는 듯한 모습. 그리고 그 미소가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건 참 즐거운 일이야.
"넋이 빠져있는 거 같아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니가 이쁘다는 생각."
"흐응. 그건 뭐 인정이죠."
그러면서 내 옆에 앉는다. 짧은 반바지를 입었기에 그녀의 새하얀 허벅지가 그대로 보였고 나는 무심코 거기에 손을 댔다.
"왜요? 뭐 묻었어요?"
"아니. 너무 탐스러워서."
아무 말하지 않고 내 손길을 느끼는 미나. 왠지 되게 야하네. 아무 생각 없이 만졌는데.
"고민 있어요?"
"음. 미나랑 어디로 데이트 가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
"와. 좋아라. 그럼 언제 갈 건데요?"
"지금 갈까?"
"으음. 아니요. 저 화염 지대 마스터 하고 메테오 찍고 천국의 문까지 찍으면 그때 갈래요."
"왜?"
"그냥. 지금은 거기에 집중 하고 싶어요."
"그래? 그럼 또 니 의견은 존중해 줘야지."
"아. 화염 지대 한 번도 못 봤죠? 한번 볼래요?"
"그럴까?"
"가요."
내 손을 잡고 일어서는 미나. 마그마 샷을 연습하던 구덩이 쪽으로 향하더니 말한다.
"거기 서 있어요."
"어차피 파티라서 피해 없을 텐데 뭐."
"아. 그러네요. 그럼 쓸게요?"
자리를 잡고 짧게 중얼거리는 미나. 그리고 그녀의 발밑에서 붉은 원이 나와 구덩이 안쪽을 딱 채운다.
그리고 미나의 키 두 배는 되는 불꽃이 넘실대기 시작한다.
"되게 평범하네?"
"근데 이게…. 범위가 되게 커요."
"아. 이게 최대가 아닌거야?"
"네. 일부러 구덩이 크기에 맞춘 거예요."
"모양을 바꿀 수 있어?"
"네."
"흐음. 그렇구나. 별로 쓸 일은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쵸?"
"발화랑 크게 다른걸 못 느끼겠네. 뭐…. 어차피 불이라서 그게 그건가?"
"내일이면 마스터 할 거 같아요."
"기대되네."
그렇게 미나랑 이야기하고 또 가만히 앉아있으려다가 여기 계속 있으면 네 여자가 번갈아 가면서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돼. 지금 나는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나가자. 나가서 좀 한가한 곳에서 생각 좀 하자.
다시 스킬 숙련을 하는 미나에게 나갔다가 온다고 이야기하고 순간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허브. 아. 한가하다. 한가해.
어제 그 짱개놈이 죽은 지 이틀째인데도 여기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열려있는 게이트도 없고 공항도 한가하다. 그리고 그 옆의 호텔은 여전히 파견대 놈들로 가득가득 만실이고.
그래. 생각이 필요할 땐 짱개 쓸어버리는 게 최고지.
가벼운 운동과 함께 하는 코인 벌이. 생각도 하고 코인도 벌고. 얼마나 좋아?
버프를 모두 두르고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봉인한다.
그리고 호텔 입구에서 호기롭게 외쳤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들은 놈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뭐…. 내 알 바 아니지.
지들이 이 안에서 뭘 어떻게 할 거야? 꼬우면 뛰어내리던가. 아니면 싸워보던가.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들을 모두 부른 다음 소파를 들고와 문이 안 닫히게 막았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며 녀석들이 있는 5층부터 차례차례 문을 따고 염력 촉수를 들여보낸다.
쉬고 있는 놈들, 스킬이 안 써져서 당황하는 놈들, 방 밖으로 뛰어나오는 놈들.
하나하나 차근차근 쳐 죽이는 살육.
어제 그 짱개놈이랑 싸우고 나서 그런가? 이놈들은 그냥 민간인이랑 다른 건 없어보인다.
하긴. 스킬 못 쓰면 민간인 맞지 뭐.
그렇게 하나하나 청소를 하며 어제 그놈에 대해서 생각했다.
짱개. 녀석들이 부르기로는 고 대인, 혹은 고룡이라고 부르는 놈.
뭔가 끝판왕같이 생긴 놈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아니다. 녀석은 흑해방의 삼룡 중에 하나.
그 말은 그 녀석이랑 비슷한 놈이 둘이나 더 있다는 거다.
장 대인이라 불리는 장룡. 왕 대인이라 불리는 왕룡. 씨발. 이름들 하고는 진짜.
고룡은 인도, 왕룡은 동남아, 장룡은 중국을 책임지고 있었다. 세력으로 따지면 중국을 담당하고 있는 장룡이 가장 크다.
고룡과 왕룡이 인도와 동남아에서 얻어 들인 코인을 반씩 상납받는 녀석.
아무래도 녀석이 모든 식량을 총괄하고 있으니 그런 거겠지.
그래. 뭐 녀석들의 룡룡거리는 촌스러운 이름들은 뭐 그렇다 치고.
어제 내가 잡은 고룡. 그 새끼는 야심이 큰 놈이었다.
부하를 많이 만들기보단 소수정예로 육성하고 정말 중요한 건 본인이 다 직접 테스트 할 정도로 실험적이고 호전적인 녀석.
배운 스킬만 해도 37개 정도. 미친 새끼야. 미친 게 틀림 없어.
인도를 잡아 족쳐서 나온 막대한 코인들을 연구소를 거쳐 가공해서 직접 받던 녀석은 일주일 전에 Q&A를 찍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이 처음으로 물어본 질문.
역시 사람은 다 비슷한가 봐. 내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그대로 했어.
‘왜 이 세상이 이렇게 됐는가?’
그리고 Q&A는 그 대답을 해주기 전에 먼저 다른 것을 요구했다.
일만 명의 목숨과 일억 코인.
미친놈들이 아닐 수 없다. 고작 답변하나 들으려고 목숨과 코인을 내놓으라니.
물론 고룡 그놈은 그럴 만한 능력이 됐다. 인도인들을 쓰면 되니까. 게다가 그는 연구소도 잔뜩 있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렇게 인간과 코인을 바치고 나온 대답.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마지막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들은 고룡은 계속해서 Q&A를 썼다.
하지만 의외로 답변을 받기는 어려웠다.
아예 대답을 거부한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
그거에 실망한 녀석은 사소한 질문들로 Q&A를 쓰는 방법을 바꿨다.
아마 저 마지막 한 사람이라는 목적에 꽂혔겠지.
하지만 내가 자꾸 연구소를 박살 내서 결국 질문을 못 받다가, 내가 녀석을 죽인 날 대답을 받았다.
장룡의 본거지 위치와 그의 능력에 대한 것.
고작 그런 질문에도 인간 천오백 명과 천오백만 코인을 요구하는 거지 같은 놈들.
뭐…. 대답은 듣고 죽었으니 다행이네. 덕분에 그 정보는 내가 잘 쓸 수 있게 됐으니까.
아. 파견대 놈들. 왜 이리 많냐. 하나하나 죽이려고 하니까 너무 힘드네.
역시 나도 좀 더 공격적인 스킬이 필요해. 이번에 확실히 알았잖아?
수면이 병신 되니까 아무고토 못하고 쩔쩔맸던 거.
그래. 수면. 그거. 그것도 대박이다. 사실 고룡인지 지렁인지 하는 놈보다 녀석이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는지에 대해서 알아낸 게 크다.
그리고 위시와 원트 스킬의 쓰임새도.
위시는 원하는 물건을 얻는 스킬이다.
왜 이런 게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녀석이 테스트해 본 바로는 전투기나 폭약, 탱크 같은 사라져버린 열병기는 얻을 수 없었다.
일정한 코인을 내면 열병기 같은 것들은 제외하고 지구상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물건을 뭐든지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정말 쓸데없는 스킬인데. 녀석은 상당히 맘에 들어 했다.
왜냐면 완전히 소실된 물건이나 사라진 물건, 행방불명된 물건,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물건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어차피 망할 세상, 비밀 대 방출! 이런 느낌?
녀석은 코인을 들여서 무슨 금으로 만든 동전이나 메달, 조각된 달걀, 고서적, 도자기…. 그런 것들을 샀다.
미친 새끼. 아마 대호에게 문화재를 코인으로 사 간 새끼가 그 새끼였을 거야.
세상이 망했는데 그런 거나 코인으로 낭비하고 말이지. 그러니까 죽은 거야. 븅신 같은 새끼.
어쨌든 다행인 건 예상했던 대로 위시는 숙련이 없었다.
배우기만 하면 바로 원트를 배울 수 있다.
원트. 그래. 이게 씹사기 스킬이다.
원트의 효과는 간단했다.
스킬을 패시브로 만들어주는 것.
혹은 두 가지 스킬을 조합하여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
녀석이 수면에 안 걸린 이유가 그거였다. 상태 회복 스킬의 패시브 화.
미친 새끼야. 진짜 미친 새끼가 아닐 수 없어. 고마운 새끼. 덕분에 잘 배웠다 새끼야.
상태 회복이 패시브로 돼버리면 수면, 기절, 마비, 매혹…. 암튼 그런 CC기에 그냥 면역이 된다는 소리다.
나 같은 놈에겐 천적과도 같은 놈들이 우수수 생긴다는 소리.
하지만 뭐, 원트 자체가 배우기 힘든 스킬이고 티어23이니 개나 소나 배우진 못하겠지.
당분간은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될 거고.
근데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저 상태 회복을 패시브 화 할 수 없다.
빌어먹을 불면증. 그게 문제야.
상태 이상에는 면역이 될 테지만, 다시 불면증에 고생하는 나날이 될 거다.
미친 소리지. 그걸 어떻게 선택하냐. 젠장.
어쨌든 그건 그렇다 치고….
녀석은 데미지 감소와 천리안, 추적도 패시브 화 시켜버렸다.
그래서 염력 사로 존나 찔러대도 안 죽는 거였어.
암석 탄환에 맞아도 생채기 조금만 난 게 이해가 간다.
받는 데미지를 80퍼센트나 감소시키는 걸 패시브로 두르고 다니면…. 씨발 개사기지.
투명화에 나노화를 쓰고 있던 나를 발견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천리안은 탐지를 볼 수 있으니까.
게다가 작은 내 모습도 엄청 크게 보였겠지.
추적이 패시브 화 되는 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건 상대에게 거는 스킬이잖아? 게다가 나는 반사도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나에게 추적을 걸었다. 반사도 당하지 않았고. 이게 핵심이다.
패시브 스킬은 반사가 되지 않는 다는 것.
근데 문제는…. 패시브 화 하는 데 1억 코인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2억 코인. 세 번째는 3억 코인….
코인을 물 쓰듯이 써야 하는 스킬. 근데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이 세상의 목표가 단 한 명만 생존하는 거라면, 그런 식으로 좋은 스킬을 몸에 덕지덕지 바른 놈이 역시 가장 강해지는 게 맞겠지.
뭐, 그래. 그건 이해할 수 있어.
얼핏 보면 오토 스킬이랑 비슷한 거 같긴 하지만, 약간 효과가 다르긴 하다.
반사 같은 건 패시브 화 시킬 수 없으니까. 괜히 패시브로 만들어버리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어. 게다가 축소 같은 것도 그렇지.
근데 축소를 패시브 화 시키면 어떻게 되나? 소인종이 되는 건가?
원트의 두 번째 효과. 스킬 조합도 말도 안 되는 능력이다.
녀석이 썼던 유도 암석 탄환.
그건 추적과 암석 탄환을 조합한 스킬이다. 그리고 그걸 패시브 화 까지 시켰고.
이거 스킬들이 점점 미쳐 돌아가는 거 같은데.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특히 추적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조합 재료지.
뭐든 추적이랑 조합하기만 해도 최소한 몇 배의 효과는 보일 거야.
게다가 그런 스킬들을 모두 패시브 화 해버리면…. 그럼 뭐…. 무서울 게 없지.
보이는 순간 죽었다고 보면 된다.
티어가 낮은 놈들은 높은 놈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지.
하긴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노력한 정도가 다르고, 해온 일이 다른데.
낮은 티어에서 쉽게 높은 티어를 잡을 수 있으면 그것도 억울하지.
그럼 누가 노력하겠어. 아무 의미가 없는데.
아. 파견대 놈들. 다 잡은 거 같네.
호텔은 정적에 휩싸였다. 탐지를 돌려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의 백 명 가까운 파견대 놈들을 잡고 2,200만 코인. 5로 나눈거니까 1억 1천만.
이제는 억대 코인이 기본이네.
문제는 짱개놈들을 다 죽이고 나면 이젠 이런 수익이 없을 거라는 것.
하아. 골치 아프네. 사실 짱개놈들이 참 좋았는데.
알아서 인도랑 동남아 코인도 싹 모아서 상납해주고 말이지.
그래도 아직 두 놈이 더 남아있으니 다행이긴 하네. 그놈들도 빨리 잡긴 해야겠어.
그리고 그렇게 그놈들까지 다 죽이면 그때는 코인을 좀 아껴 쓰긴 해야할거다.
이렇게 많은 코인은 더 구하기 힘들 테니까.
어쨌든 좋은 것들을 알았으니 빨리 스킬 숙련을 올려서 나도 원트를 써봐야 한다.
패시브 화. 그게 핵심이야. 그것만큼 좋은 게 없어.
파견대 놈들을 다 잡고 호텔을 나와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밖으로 다리를 내놓고 앉아 다시 생각에 잠긴다. 아. 이제야 좀 조용해서 좋네.
짱개 놈에게 얻은 정보들을 떠올리며 복잡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엔 또 떠오르게 된다.
한 명. 이 넓은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단 한 명.
그래….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아.
근데 한 명이라는 게 문제다. 한 명. 그럼…. 승희는?
미나는? 세아는? 안나는? 민희는?
하루카도 있고 아키도 있다. 정 부장도 있고 승규 형도 있지. 펜스와 청평, 캐슬의 사람들은?
위치스…. 모르겠다. 걔들은 필요가 없어지면 죽일 수 있을까?
성연은? 어렵게 찾은 그 아들은?
결국…. 마지막 남은 사람은 자기가 아끼는 사람들까지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건가?
아니지 직접 죽여야 할 필요는 없지.
그냥 늙어 죽을 때까지 다 같이 하하호호 하면서 살면 되잖아?
그렇게 다 늙어 죽으면, 세상에 마지막 남은 사람은 누가 되지? 지금 여섯 살인 애들이 가장 확률이 높은가?
그럼…. 승규형의 딸인 하율이가 가장 유리한 거야?
끝을 알아버린 이상 나는 평생을 고민하겠지.
무서운 결말이다. 이건…. 잔인해.
나는 승희, 미나, 세아, 안나에게 이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만약에 이 세상에 우리 다섯만 남았다면,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녀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최후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서로를 죽일까?
아니면 누군가를 최후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스스로 포기할까?
나는…. 모르겠다. 모르겠어.
뭐가 됐든 좋은 결말이 없다. 아름답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
파멸이 예정된 종착지. 그런데도 나는 그 끝으로 걸어가야 한다.
지독해. 지독한 새끼들. 빨리 Q&A를 찍어야겠어. 그리고 물어봐야지.
니놈들은 왜 그렇게 개새끼들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