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97화 (59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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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녀석의 말이 꼴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말려 들어갈 정도는 아니다.

내가 그정도로 피가 뜨거운 사람은 아니거든.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녀석의 알 수 없는 능력은 총 네 가지.

수면이 걸리지 않는 몸.

몸이 꿰뚫리고도 멀쩡한 몸.

나노화에 투명화까지 걸려있는 나를 발견 한 것.

유도 암석 탄환.

아. 다섯 개네. 저 모든 것들이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까지.

녀석에게 빡친 척하면서 심리전을 걸어볼까?

내가 과격하게 나오면 어떻게든 빈틈을 노리려고 할 거다. 그걸 예측해서 카운터를 치는 거지.

근데 심리전도 이쪽의 공격력이 충분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유틸 스킬만 잔뜩 배웠더니 이렇게 밑천이 털리네.

솔직히 죽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거 같다. 수납은 위대하니까.

그냥 녀석을 덮어버리면 끝이잖아? 아무리 움직임이 빨라도 내 수납 영역 바깥으로 도망갈 수는 없어.

하지만…. 그래선 내 패배나 다름없다. 코인은 남겠지만 정보는 그대로 사라지잖아?

수납을 쓰는 건 최후의 최후로 아껴야 한다. 내가 죽을 것 같을 때나 쓰는 거지…. 지금은 아냐.

머리를 싸매보지만, 녀석은 나에게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또다시 날아오는 유도 암석 탄환. 그리고 이번엔 채찍까지 함께 날아든다.

축소를 썼기에 회피는 크게 어렵지 않다. 손가락마다 하나 정도 되는 나를 채찍으로 맞추는 건 상당히 힘들 테니까.

암석 탄환도 마찬가지. 나를 끈질기게 쫓아오긴 하지만 어찌어찌 피할 수는 있다.

한계 돌파를 다 찍어 놓은 보람이 있어. 비행 속도가 빠른 게 다행이지.

공격. 공격. 공격.

결국은 공격이 문제다.

열심히 도망치면서 폴터가이스트를 이용한 염력 촉수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녀석의 빛의 검에 번번이 막힌다.

그래도 염력 사 몇 가닥을 바닥에 깔아 녀석의 다리를 몇 번 꿰뚫었다.

하지만 녀석은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고 빛의 검으로 스윽 주변을 긋고 묵묵히 포션을 하나 사서 마실 뿐이다.

공격할 방법을 찾아야 해. 지금 이 상황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다.

하다못해 안나가 봉인이라도 배웠으면 여기로 불러서 데스 윈드 한방만 깔아도 될 텐데.

아니, 데스 윈드가 뭐야. 미나의 번개 정도로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뭘 던지거나 잡아둘 만한 것도 없다. 아니 뭐 있다고 해도 폴터가이스트랑 빛의 검에 다 막히겠지.

쳐내고 끊어버리면 되니까. 의미가 없어.

나를 쫓아오는 암석 탄환의 기세가 흉흉하기에 이번에는 녀석의 머리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그대로 급강하했다.

채찍과 휘둘러지는 빛의 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염력이 내 염력에 충돌하는 느낌.

염력 탄을 뿌려서 녀석의 염력이 어느 정도에 있는지 소리를 들어 알아채고 한계까지 갔다가 바로 블링크로 빠졌다.

대부분의 암석 탄환은 그대로 휘어서 다시 나를 쫓아 왔지만, 몇 개가 녀석의 몸에 맞았다.

문제는…. 녀석이 그다지 타격을 받은 게 없어 보인다는 것.

미친 거 아냐? 저것도 버틴다고?

옷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녀석의 피부는 살짝 까진 수준이다.

아니…. 뭐냐고. 융해? 설마 융해인가? 근데 융해는 또 아닌거 같다. 액체로 변한 게 아니야. 그냥 몸으로 맞고 버틴 거지.

설마…. 초인의 체력인가?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저건 너무 심한데.

나도 저렇게 막을 수 있는지 맞아볼 엄두는 절대 안 나고.

끝없는 술래잡기. 그리고 내게 남은 카드는 없다.

결국, 타이밍을 보고 수납으로 죽여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씨발. 아까워도 어쩔 수 없네.

정보고 뭐고 그냥 죽이는 수밖에.

근처로 블링크 해서 수납을 크게 펼쳤다.

그러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채찍으로 멀리 있는 기둥을 잡고 그대로 쭉 날아갔다.

이 씨발 놈이? 아까 봤다 이건가?

다시 블링크. 다시 수납을 휘두르지만, 또 채찍으로 다른 기둥을 잡고 피한다.

상당히 빠른 움직임. 어디 씨발 계속해보자. 누가 이기나.

블링크만 하는 게 아니고 비행을 섞어가며 이리저리 녀석을 노려본다.

하지만 이 녀석은 정말 움직임이 엄청나다.

갑자기 사각을 노렸는데도 그걸 반응하고 재빨리 몸을 빼는 녀석.

수납 크기를 작게 하면 휘두르는 게 빨라지지만, 면적이 작아져서 피하기가 쉬워진다.

크기를 크게 하면 휘두르는 게 느려져서 녀석이 그대로 피해버린다.

하.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스킬 활용도도 그렇고 감이 뒤지게 좋다.

아! 이 새끼 혹시 그거 있나? 번개 같은 반사 신경?

그렇지. 그게 있었네. 그게 있으면 저런 움직임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큭큭큭큭."

어느새 단상 위에 서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웃는 녀석.

"더 할 수 있는게 있으면 해봐라. 오랜만에 핸디캡을 걸고 이런 운동을 하니 몸이 풀리는군."

"우와…. 씨발. 존나 고맙네. 넌 이제 졌다."

"무슨 소리지? 애송이?"

"보통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지게 돼 있거든."

"헛소리를."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다.

수납을 믿고 있었는데 수납마저 쉽지 않게 됐으니까.

하. 씨발…. 어쩌지? 이대로 가면 내 말은 그저 허세로 끝나게 되는데.

"더 공격할 방법이 없나 보지?"

"음…. 있는데. 너무 잔인해서 고민 중이야."

"없나 보군. 그럼 내가 가도 될까?"

"거. 씨발. 존나게 정중하시네. 뒤질 때도 물어봐라. 죽어도 될까요? 하고."

"애송이에 입만 산 놈이었군."

그러면서 자신의 소매 단추를 푼다.

씹새끼. 그래. 저놈은 내가 수납 쓰기 직전까지도 존나 당당하게 서있었지.

여유 하나는 좆되네 진짜.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며 머리를 굴린다. 언제 녀석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니 긴장을 풀 수도 없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방법.

몸이 튼튼한 데다가 수납도, 수면도 안 먹히는 놈에게 일격을 먹일 방법.

"간다."

"아!"

블링크를 썼다. 바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

녀석의 주변으로 거대한 게이트가 열렸다.

최대 크기 52미터의 게이트. 그리고 앞뒤 좌우 위에서 쏟아지는 서해바다의 짭짤한 바닷물.

처음으로 녀석의 표정에 황당함과 낭패의 기색이 떠올랐다.

채찍으로 뭔가를 잡고 피하려 했지만, 딱 기둥 사이에 설치한 게이트라 녀석이 잡을 곳은 하나도 없다.

쏟아지는 바닷물이 녀석을 휩쓸었고 게이트 안쪽에 엄청난 거품이 생긴다.

천리안과 투시로 바라보자, 녀석은 입을 앙다물고 눈을 부릅뜬 채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몸을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사방과 위에서 쏟아진 바닷물은 와류를 만들었기에 녀석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 뿐, 아무런 소용이 없는 모습,

한 3분 지났을까? 녀석의 입에서 부르르륵 하고 거품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몸에 힘이 빠지는 모습. 서서히 떠오르는 녀석의 몸을 게이트 사이로 염력 사를 넣어 잡았다.

"멍청한 녀석. 여유 부리더니 잘됐다. 새끼야. 그러니까 주둥이는 함부로 터는 게 아니야."

한 20초 정도 더 기다렸다가 천장까지 올라간 뒤 게이트를 닫았다.

쏴아아아아!!!

사방으로 퍼지는 물. 그리고 녀석의 축 늘어진 몸만 공중에 대롱대롱 떠 있다.

하아. 일단 기절은 시켰는데.

이 새끼를 어쩌지? 수면이 안 되면 녀석을 무력화시킬 수 없다.

그리고 테이프로 돌돌 감아놔도 채찍과 폴터가이스트가 있으니 의미도 없고.

지금 녀석이 깨어나기 전에 기억을 읽어야 한다는 소린데.

갑자기 일어나면 답이 없어. 하. 씨. 골때리네.

물을 잔뜩 먹은 듯한 녀석. 저 물은 빼야 할 텐데, 안 그러면 죽는 거 아냐?

근데 그럼 깨어날 거 같고.

일단 빠르게 기억부터 읽어본다. 녀석이 수면이 안 먹히는 이유부터.

그걸 알아야 씨발. 뭘 하든지 말든지 하지.

폴터가이스트로 녀석의 사지를 꽉 움켜잡고 바로 기억을 읽었다.

수면…. 수면…. 녀석이 수면이 안 걸리는 이유.

그리고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하. 씨발. 이놈의 스킬은 뭐 까도 까도 나오네.

무슨 양파야? 하.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

"게이트."

도쿄의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게이트 쪽에 와락 소리를 지른다.

"신영! 레나 불러와!"

신영이가 후다닥 달려가는 소리. 그리고 게이트 너머에서 '주! 인! 님!' 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끄럽고 빨리 와! 장난하지 말고!"

내 고함에 얼굴을 굳히고 후다닥 달려오는 레나.

"이놈한테 마리오네트 써. 내가 특별하게 말하지 않는 한 무조건 마리오네트를 유지하고 있어. 셋을 세면 바로 쓰는 거야. 하나. 둘. 셋. 해제."

"마리오네트."

제대로 걸렸는지 레나의 몸이 미동 없이 가만히 서 있게 됐다.

그제야 남자의 배를 염력으로 퍽 하고 쳤다. 그러자 쿨럭쿨럭하면서 물을 뱉어내는 녀석.

도쿄 게이트를 닫고 수원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마리오네트가 걸린 남자와 레나를 통째로 들고 게이트를 넘어간다.

"하아."

이정도면 됐어. 마리오네트가 유지되는 동안은 저놈이 무슨 짓을 할 수는 없을 거야.

"잠깐 이러고 있어. 이놈은 위험한 놈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마리오네트 풀면 안 돼."

혹시 모르니 눈과 입, 손과 발은 테이프로 감았다.

어차피 폴터가이스트로 풀더라도 약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시 게이트를 넘어간다. 그리고 탐지.

아. 젠장. 위층에 있던 정장 놈들이랑 여자들은 도망갔나보네. 탐지에 안 잡힐 정도로.

결국, 이 안에서 있던 일은 금방 퍼지겠어. 젠장.

어쩔 수 없다. 포기해야지. 지금은 저놈이 먼저야.

다시 수원. 게이트를 닫고 기억을 읽기 시작한다.

마리오네트는 지속시간이 없다. 레나의 체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어.

그렇다고 해도 무한하지는 않으니 중요한 순서대로 기억을 읽는다.

그렇게 열여덟 시간.

레나의 몸을 편히 눕혀놓긴 했지만, 더는 무리인 것처럼 보인다.

하아. 더 읽을 게 많긴 한데…. 이놈을 잠시라도 풀어놓으면 다시 잠을 자신이 없어.

"레나. 고생했어."

남자를 수납으로 삼켰다. 그대로 사라져버린 남자.

[1,709,812,419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예상은 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17억 코인. 아찔한 숫자.

근데 이건 별거 아니다. 이놈이 코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을 때는 30억까지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포션을 하나 사서 한 모금 입에 머금고 힘없이 나를 바라보는 레나의 입에 넣어줬다.

이런 상황에서도 혀가 들어오는 여자. 고생해줬으니 봐준다. 하여간 이 여자도 대단한 여자야.

"헤헤헤. 주인님께 도움이 된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런 그녀를 안아 들고 도쿄 게이트를 열었다. 그녀의 방까지 가서 눕혀주고 무효화와 매혹을 리필한다.

"신영, 가인. 이 여자 먹을 것 좀 챙겨줘. 부드러운 거로."

"네."

"네."

마땅찮은 표정이지만 내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대답하는 두 여자.

그런 그녀들의 사이에 들어가 양팔로 어깨동무를 하며 한쪽씩 가슴을 만지고 말한다.

"서로 잘 지내란 말야. 그래야 나도 너희에게 포상을 주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들. 그런 둘에게도 매혹을 리필한다.

아. 힘들다. 힘들어.

너무 급하게 지식을 머리에 쑤셔 넣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일단은 들어가서 쉬어야지. 정리할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아졌어.

벙커로 순간이동.

그러자 내 침대에서 스킬 숙련을 하는 네 여자가 보인다.

"왔다!"

벌떡 일어나는 네 여자.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전부 나에게 와락 안긴다.

"파티 해제 돼서 깜짝 놀랐잖아요!"

아아. 맞다. 내가 말을 안 해주고 그냥 파티를 해제해버렸구나.

"미안해. 걱정했어?"

"제발 말 좀 해주고 해제하라고요…. 안 되겠어. 오빠 빨리 통신 배워요!"

"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데. 차라리 너희 중 하나가 배우는 건 어때?"

"어? 그러네?"

"암튼. 걱정시켜서 미안. 근데 지금 내가 상당히 힘들거든? 내 잘못은 일단 씻고 한숨 잔 다음 따지면 안 될까?"

"으이그…. 진짜! 제멋대로야! 알았어요! 무사하니까 됐어요! 일단 우리 파티나 줘요."

"파티 생성."

파티를 생성한 다음 네 여자에게 전부 초대를 줬다. 그러자 순순히 바깥으로 나가는 넷.

적당히 씻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나에게 수면을 걸려는데 녀석의 기억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 세상에서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라고? 미치겠네.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렇게 한숨을 쉰 나는 나에게 수면을 걸었고 몇 번의 반복 끝에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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